2026년 새해가 밝았다. 새로운 해는 언제나 기대와 다짐을 안겨준다. 동포사회에 새해는 공동체의 방향을 다시 돌아보고 미래를 준비하는 소중한 계기이기도 하다. 이민의 역사 속에서 수많은 도전과 성취를 이뤄온 동포사회가, 새해에는 더욱 성숙하고 단단한 공동체로 나아가기를 소망하는 이유다.
새해를 맞아 세대 간 이해와 연대가 한층 깊어지기를 기대해본다. 연대는 함께하는 경험과 공정한 구조 속에서 형성된다. 1세대의 헌신과 희생 위에 1.5세와 2세대의 창의성과 전문성이 더해질 때, 동포사회는 다음 단계로 도약할 수 있다. 언어와 문화의 차이를 넘어 서로의 경험을 존중하고 배움으로 이어간다면, 세대 간의 간극은 갈등이 아니라 다양성의 힘으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이다.
세대 간 협력의 장을 넓히고, 어느 한쪽의 희생을 전제로 하지 않는 공정한 구조가 마련될 때 신뢰와 연대는 지속 가능해진다. 1세대는 안정된 삶의 존엄을 지키고, 1.5세와 2세대는 미래를 설계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
한쪽의 희생에 기대는 연대는 오래갈 수 없다. 세대 갈등은 가치의 대립이라기보다, 각 세대가 살아온 시대적 조건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가정과 커뮤니티 차원의 이해와 소통이 더욱 중요해진다.
물론 한인회를 비롯한 여러 동포 단체들이 이러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언론과 SNS의 책임도 점점 커지고 있다. 디지털 공간은 이제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공동체를 이어주는 중요한 통로가 되었다.
언론은 1세대의 경험을 젊은 세대의 언어로 풀어내고, 차세대의 목소리를 공동체 전체의 담론으로 확장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디지털 플랫폼과 전통 매체가 서로를 보완하며 세대 간 가교가 될 때, 동포사회는 새로운 통합의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우려스러운 현실도 존재한다. 일부 1세대 공동체가 SNS를 통해 전달되는 한국 정치에 깊이 매몰되면서, 이념적 대립과 갈등의 언어가 일상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정치 담론이 숙성된 토론이 아니라, 갈등의 구조로 거의 비판 없이 수용되며 공동체의 일상을 잠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차세대에게 1세대는 거울과 같은 존재다. 그러나 이미 1세대 내부는 정치적 성향에 따라 갈라져 있다. 한국에서 보던 진영 논리가 이곳에서도 재현되며, 사람을 줄 세우고 침묵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그 과정에서 동포사회가 오랫동안 쌓아온 신뢰와 연대는 적지 않게 훼손되었다. 카카오톡을 통해 반복 재생되는 정치적 프레임에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고 있는 현실도 부인하기 어렵다.
물론 조국의 정치에 관심 갖고 의견을 표현할 자유는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자유가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차세대에 부정적인 메시지를 남긴다면 우리는 한 번쯤 멈춰 서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곳은 민주주의와 자유시장 경제를 토대로 성장한 사회다. 이러한 환경에서 한국 정치의 극단적 갈등 구조가 그대로 공감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단순한 정치 소비자가 아니라, 멀리서라도 성찰과 판단의 책임을 지는 존재여야 한다.
공동체 철학자 찰스 테일러는 정체성이란 관계와 공동체 속에서, 곧 ‘인정의 공간’에서 형성된다고 말한다. 서로 인정하지 못하는 사회는 결국 스스로를 잃게 된다.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의 애국심을 의심하고 인격을 단정하며 대화를 거부하는 순간, 우리는 공동체가 아니라 이념으로 분절된 군중에 머무르게 된다. 그 모습은 고스란히 차세대의 기억에 남아 또 다른 갈등의 씨앗이 된다.
새해에 다시 묻는다. 우리는 어떤 공동체가 되고자 하는가. 그 답은 서로를 대하는 태도 속에 있다. 다름을 인정하며 토론 속에서 진실을 찾으려는 자세가 공동체의 품격을 결정한다.
2026년 새해의 바램은 분명하다. 차세대와 더 많이 소통하고, 더 오래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차세대에 남겨줄 유산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성찰과 절제 속에서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