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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인사이트] 똑똑한 AI의 그늘, 감춰진 편향성

인공지능(AI)의 활용이 급속도로 확대되는 가운데, AI의 편향성 문제에 대한 경각심이 요구된다. AI의 답변은 어떤 데이터를 바탕으로 학습했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으며, 그 과정에서 의도치 않은 왜곡과 불균형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AI는 온라인 뉴스나 인터넷과 같은 거대한 공공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되고 있지만, 모든 데이터를 전문가가 검증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학습 데이터의 질적 한계를 완전히 극복하기 어려우며, 이로 인해 정보의 정확성과 일관성 측면에서 여러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특히 한국어 기반 AI 서비스에서는 편향성이 더욱 심각한 문제로 떠오른다. AI가 역사·문화·사회적 가치관을 반영하는 과정에서 서구 중심적 시각이나 특정 국가의 입장이 강화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부 AI 챗봇과 번역 AI가 일제강점기 위안부나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 왜곡된 정보를 제공하는 사례가 발생했다. “위안부는 자발적으로 일했다”거나 “강제징용은 노동 계약이었다”는 식의 오류는 AI가 서구권 데이터에서 일본 측 자료를 더 많이 학습한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독도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AI가 독도를 “리앙쿠르 암초” 혹은 “일본과 한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섬”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학습 데이터 편향성의 단적인 예다. 이는 한국뿐만 아니라 역사적·문화적 정체성이 중요한 많은 국가들에게도 심각한 문제로 작용할 수 있다.   AI의 편향성 문제는 특정 국가나 문화에 국한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도 성별과 젠더 이슈와 관련된 AI 편향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일부 AI 모델이 “여성은 감성적이고, 남성은 논리적이다”와 같은 성 역할 고정관념을 답변에 반영하는 사례가 있다.     이는 AI가 학습한 방대한 인터넷 데이터 속에 성차별적 편견이 내재하여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AI가 단순히 사실을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라, 학습된 데이터에 따라 특정한 관점을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우리가 깊이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 ‘미세한 편향성’이다. 서구권 데이터로 학습된 AI는 서구권의 감정, 철학, 가치관을 자연스럽게 반영하며, 이는 궁극적으로 서구권에 유리한 정보 제공으로 이어질 수 있다.     마찬가지로, 중국 데이터로 학습된 AI는 중국의 사고방식을 반영해 중국에 유리한 정보를 생성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이러한 미묘한 편향성이 반복적으로 축적되면서 사용자들이 무의식적으로 친서구적, 친중국적 사고방식을 내면화할 위험이 있다는 점이다.     특히, 미래 세대가 AI를 주요 정보원으로 삼을 경우, 편향된 정보가 그대로 교육에 반영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편향성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이미 존재하는 데이터에서 편향성을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최소한 한국에 맞춘 AI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대용량의 다양한 양질의 한국어 데이터를 확보해야 하지만, 단기간에 이를 구축하기란 쉽지 않다.     현재 네이버와 같은 기업과 정부가 협력해 한국형 AI 개발에 나서고 있지만, 학습에 필요한 방대한 한국어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근본적 한계를 극복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AI의 편향성 문제는 단순히 기술적 해결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AI가 학습에 사용한 데이터가 가진 원천적 편향성의 문제는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이기에 AI의 사용자들은 이 문제를 항상 염두에 두고 AI의 답변을 다시 한번 검토해 소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김선호 / USC 컴퓨터 과학자AI 인사이트 편향성 그늘 편향성 문제 서구권 데이터 학습 데이터

2025.04.0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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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마당] 성공의 그늘, 양심의 무게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는 오래된 속담은 단순한 비유를 넘어, 삶의 진리를 담고 있다. 부모의 언행과 가치관은 마치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고스란히 자녀에게 투영되며, 때로는 부모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깊은 곳까지 스며들어 그들의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다. 아무리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더라도 정직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이는 부모 밑에서는 자녀 역시 올바른 가치관을 형성하기 쉽다. 반대로, 부도덕한 방법으로 부를 쌓거나 남을 착취하는 행태를 보이는 부모의 영향 아래서는 자녀가 그릇된 길을 걸을 가능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부모는 자녀에게 삶의 좌표를 설정해주는 나침반과 같기에, 그 책임은 막중하다.   대다수의 한인 이민자들은 자녀에게 더 나은 교육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머나먼 미국 땅을 밟는다. 언어와 문화의 장벽, 경제적인 어려움 등 수많은 역경 속에서도 굳건히 자녀를 키워내 사회적으로 성공시키고, 나아가 한인 사회 전체에 희망과 자긍심을 안겨주는 자랑스러운 이들이 적지 않다. 이들의 이야기는 종종 언론을 통해 소개되며, 같은 이민자로서 큰 감동과 용기를 주곤 한다. 내 자식이 아닌 그들의 성공에도 마치 내 아이의 일처럼 기뻐하고 축하하는 것은, 그들의 노력이 곧 우리 모두의 노력이자 결실임을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한국에서 탄탄한 기반을 가진 가정의 자녀들이 미국으로 유학 오거나, 기업 주재원이나 정부 관료의 자녀로 파견되는 경우도 많다. 이들은 비교적 풍족한 환경 속에서 어려움 없이 성장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최근 하와이 한인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사건은, 풍요로운 환경이 반드시 올바른 인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한인 의사가 무려 100만 달러에 달하는 보험 사기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현지 언론의 상세한 보도에 따르면, 와이키키, 와이파후, 카일루아 등에서 오랫동안 진료 활동을 해 온 이 의사는 정부 및 민간 의료 보험사에 허위 또는 과장된 진료 기록을 제출하여 거액의 보험금을 부당하게 청구한 혐의를 받았다. 지난해 9월 기소된 후 끈질긴 법정 공방을 벌였으나, 결국 지난주 자신의 혐의를 인정하고 보석금을 납부한 채 석방되었다. 내년 1월로 예정된 그의 선고 결과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이미 그의 범죄 행위는 하와이 한인 동포 사회 전체의 얼굴에 먹칠을 하고, 오랜 기간 쌓아온 한인들의 신뢰와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남긴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특히 이번 사건은 언어 소통의 어려움 때문에 한국인 의사를 찾았던 많은 한인 노인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이들은 자신의 건강을 믿고 맡겼던 의사로부터 오히려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사실에 분노와 배신감을 느꼈다. 30분 남짓한 짧은 진료 후 3시간 진료를 받았다는 서명을 요구하는가 하면, 이에 항의하는 환자들에게 “정부에서 무료로 의료 혜택을 받으면서 불만이 많다”며 오히려 윽박지르는 몰상식한 행태를 보이기도 했다. 심지어 병원 주차장에서 1시간밖에 주차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3시간 진료비를 청구하는 황당한 사례까지 발생했다. 결국 그의 부도덕한 행위는 연방 정부의 수사망에 포착되었고, 그는 이미 구치소에서 짧지 않은 시간을 보냈으며, 의사 면허마저 완전히 회복될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그의 범죄 기록은 연방 법원 기록에 영원히 남을 것이며, 이는 단순히 개인의 일탈을 넘어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양심을 저버린 심각한 범죄 행위로 규정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일이 벌어진 것일까? 이 사건의 근본적인 원인을 단순히 개인의 탐욕과 일탈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어쩌면 그의 부모 역시 자유로울 수 없을지도 모른다. 자녀는 부모의 삶을 통해 세상을 배우고 가치관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환경에서 성장하고 명문 대학을 졸업했으며 한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한다 할지라도, 가난하고 병든 동포들을 착취하는 삶을 살아온 그의 모습은 어쩌면 부모의 삶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결과일 수도 있다. 그는 결국 연방 정부에 의해 발각되어 영원히 지울 수 없는 범죄 기록을 갖게 되었고, 이는 돈으로도 명예로도 결코 되돌릴 수 없는 오점으로 남을 것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아들의 범죄 사실이 명백히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아버지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거친 언사를 쏟아냈다는 소식이다. 자식의 잘못을 감싸려는 부모의 마음은 이해할 수 있지만, 진실을 외면하고 현실을 부정하는 그의 모습은 마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어리석은 행동처럼 느껴져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악은 인간 본성에 깊이 뿌리내린 질병과 같아서, 진심으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하는 과정을 통해서만 비로소 치유될 수 있다. 그러나 부모가 끝까지 자녀의 죄를 변명하고 은폐하려고 온갖 수단을 동원하는 것은 또 다른 죄를 짓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는 모두 아담과 하와의 후손으로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만, 중요한 것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뉘우치는 태도이다. 성경에도 주홍빛 죄라도 회개하면 눈처럼 희게 씻어주신다는 약속이 있지 않은가.   미국의 석유 재벌 록펠러 가문의 어머니는 자녀들에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끊임없이 짓게 되는 죄를 가능한 한 빨리 회개하여 죄로 인한 괴로움과 고통을 피해야 한다”라고 가르쳤다고 한다. 이러한 어머니의 가르침을 실천한 결과, 록펠러 가문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기부를 하는 자선 단체를 설립하여 사회에 큰 공헌을 하고 있다. 이는 진정한 회개가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시이다.   이민자로서 자녀의 성공은 개인과 가문의 영광일 뿐만 아니라, 한인 사회 전체의 위상을 드높이는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소외된 저소득층 동족들을 상대로 부당하게 과도한 의료비를 청구하여 착취하고, 결국 연방 범죄 단속반에 발각되어 벌금형과 함께 감옥살이까지 한 이번 사건은 단순히 한 개인의 문제를 넘어, 우리 한인 커뮤니티 전체가 깊이 반성하고 성찰해야 할 뼈아픈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최소한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양심을 지켜야 한다. 특히 부모 된 우리는 타인에 대한 정직은 물론, 자기 자신에게도 한 점 부끄럼 없이 솔직해야 한다. 우리의 말과 행동, 그리고 삶의 태도는 고스란히 자녀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내 속에 숨겨진 작은 악함조차 자녀는 무의식적으로 닮아갈 수 있다.     부모가 된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가슴 깊이 새기고, 최소한 우리의 자녀가 범죄자가 되어 감옥에 가는 불행한 일을 겪지 않도록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해야 할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자신을 냉정하게 거울에 비춰보며, 내면의 어두운 그림자를 직시하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자신을 평가해야 할 때이다. 차덕선 / 수필가문예마당 성공 그늘 한인 사회 한인 의사 한인 이민자들

2025.04.03. 20:07

[중앙칼럼] ‘그늘 차별’ 받고 있는 한인타운

지난 5월 할리우드의 작가들이 파업에 돌입했다. 7월에는 배우·방송인 노동조합(SAG-AFTRA)도 파업을 선택했다. 할리우드 생태계를 떠받치는 양축이 63년 만에 ‘동시 파업’에 들어간 것이다. 제작사 입장에서 제작 지연은 곧장 손실로 이어진다.     양측의 긴장감이 팽팽해지던 때 ‘그늘 논쟁’이 파업 불길에 기름을 끼얹었다. 유니버설시티 인근 NBC유니버설 스튜디오 앞길의 ‘피커스’ 나무들이 하루아침에 짧게 가지 쳐진 게 발단이 됐다. 7월 뙤약볕을 가로수 그늘에서 피하며 시위하던 배우들은 NBC유니버설을 비난했다. 시위대를 땡볕으로 내몰며 파업할 권리에 보복을 가했다는 비난으로 번졌다. 회사 측은 정해진 일정에 따른 작업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가로수를 대체할 그늘막을 제공하겠다고 제안했지만, 비난은 잦아들 줄 몰랐다. 이후 노조의 요구로 LA시가 조사한 결과, 해당 바햄 블러바드 선상의 가로수 관리는 시 정부 관할이고 지난 3년 동안 가지치기를 허용한 적이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늘을 두고 이런 다툼도 있었는데 다른 한편에선 그늘 때문에 더는 야자수를 심지 말자는 주장이 나왔다. 최근 LA타임스는 남가주에 더 많은 그늘이 필요하다며 토착 식물도 아니고, 가성비도 좋지 않은 야자수 퇴출 움직임이 곳곳에서 일고 있다고 전했다. 플로리다주 웨스트팜비치는 야자수 폐기를 발표했고, 마이애미비치는 30년에 걸쳐 가로수 중 야자수 비중을 현재 60%에서 25%까지 줄이기로 했다. 가주 산림소방국은 도시·지역사회 산림 조성 보조금 수령자가 야자수 심는 것을 금지했다. LA에서는 햇살 가득한 번영을 상징하고 이국적인 분위기를 낸다며 100여 년 전 붐을 일으켰던 야자수지만 지구온난화, 기후변화, 폭염 장기화 속에서 “키만 컸지 그늘도 하나 제대로 못 만든다”며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꼴이 됐다.     그늘은 LA에서 차별을 만들기도 한다. 부자 동네와 그렇지 못한 지역에서 최대 6배 이상 나무 그늘의 규모 차이가 난다는 연구도 있다. 범죄 예방을 위해 나무 심기에 소극적이라는 말도 있지만, 폭염 사망자가 갈수록 증가하는 상황에서 적절한 변명은 아닌 듯하다. 임대주택에 에어컨 설치 의무화가 추진 중인 것처럼 이제 그늘은 커뮤니티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요소가 됐다. 역대 시장들도 이를 의식해 많은 약속을 했지만 목표 달성에는 실패했다. 안토니오 비야라이고사 전 시장은 2006년 무려 100만 그루 나무 심기를 약속했지만, 절반에 못 미쳤다. 그마저도 5그루 중 1그루는 심은 뒤 5년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에릭 가세티 전 시장도 9만 그루를 공약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인도 대사로 떠났다.     이런 가운데 한인타운 청소년회관(KYCC)이 한인타운과 그 주변에 3년간 3000그루의 나무를 심겠다고 나선 건 반가운 소식이다. KYCC는 가주 천연자원부(CNRA)와 가주 산림소방국이 선정한 24종의 나무를 심게 된다. 2016년 LA카운티 공원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한인타운의 공원 공간은 주민 1000명당 0.1에이커로 카운티 전체 평균 3.3에이커에 크게 못 미쳤다. 또 한인타운 주민 39%만이 사는 곳에서 0.5마일 이내에 공원이 있는 것으로 조사돼 카운티 평균 49%와 차이를 보였다. 이처럼 LA에서도 손꼽히는 녹지 부족 공간인 한인타운의 ‘그늘 공정성’이 개선되길 바란다. 평균 70피트 높이보다 2배 더 큰 그늘을 만들어준다는, 캘리포니아에서 자생하는 상록수 ‘코스트 라이브 오크’ 같은 가로수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한인타운이 되길 많은 한인은 기대하고 있다. 류정일 / 사회부장중앙칼럼 한인타운 그늘 가로수 그늘 그늘 논쟁 그늘 때문

2023.11.1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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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당] 넝마도 그늘이 있어야 한다

 지나가는 사람이 모두 이무럽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여름날 정오   그늘이라고는 없는 길가에서 함박웃음은 힘든 넝마 속의 잡화들   넝마 속일망정 화사하고 정 스러워야 한다   얼굴을 활짝 펴서환한 웃음으로 손님을 맞이해야 한다   더 넓은 곳으로 도로변이 아닌곳에서  안락한 가정의 삶을 생각하며       세파에 무너진 희생자는 너무강한 의지를 가졌었는가   아니면 폐자였을까   수줍은 미소는 마르고 먼지 묻은 얼굴에 더욱 어두운 그림자를 그린다   넝마를 소중히 지키며 번화가 한쪽에 몇 년을 버티며 몸을 숨기고 있다   뒷짐을 쥔 손에 셀폰을 쥐고 기웃거리며 세상구경을 하는 남자   춤과 멋진 걸음으로 모든이의  눈길을 끄는 여자에 무관심한 그녀       반대편 보도블록에 눈길이 간다   시멘트 블록의 물 홈에 자라는 질경이   밟아도 밟아도 개의치 않는 푸르름의 낮은 속삭임   건장한 나뭇잎들 아직 기다리는 곳이 없다   어디를 향하여 어디쯤 걷고 있는가   바람은 질경이의 끊임없는 태양의 축복을 붙들고 노파의 얼굴에   웃음을 안기기를 희망한다   잡화 속에 파묻힌 그녀의 눈은 오뚝이를 닮았다 정숙자 시인 / 아스토리아글마당 넝마도 그늘 넝마도 그늘 반대편 보도블록 여름날 정오

2023.09.01. 22:00

[시] 감나무 그늘 아래

감나무 그늘 아래 레몬밤향기       봄바람 틈새로 추억을 부르고   늘어진 기저귀 엉덩이에 감싸여   살며시 묻혔던 어머니의 품 안   지금도 따스한 숨소리가 출렁인다.       감나무 그늘 아래 달맞이꽃향기   달빛 사이로 흔들리고   저 너머 이국땅에 떠나보낸 아쉬움   명치끝에 꾹 꾹 눌러 놓았던   어머니의 그리움의 씨앗   어젯밤 나의 꿈속에서 피었나 보다.       감나무 그늘 아래 백합꽃향기   가로등 빛에 흔들리고   세월의 주름을 접으며   두 손 모은 어머니 기도 소리   밀물처럼 밀려와 내 마음을 적신다.       보고픈 마음   조심 조심 다독여   눈을 감으면   썰물처럼 가 닿을까. 김수지 / 시인시 감나무 그늘 감나무 그늘 어머니 기도 기저귀 엉덩이

2023.07.06. 20:11

[글마당] 한여름 그늘 문

뒤안푸른 잎들 귀 세우고 수런거리는   녹음의 빗장 살짝 흔들린다   둥근 안경테 속 피로한 여행자의 눈빛에   푸른 물속그늘 문 열린다   끝없이 마주 보며 지어지다 허물어지는 초록빛 기와집들   꿈의 물고기 그림자 낮게 춤추며   숨 빛으로 지어지다 흔들리는 토벽들,   깊게 솟구치며 낮게 속삭이듯 흐르는   한여름 물속 이야기 한 구절, 한 구절   변화하는 초록의 채도, 흔들리는 빛의 추   예기치 않은 여행, 되씹고 뒤쫓으며 앞서며   낯설음, 낯익음 뒤섞이는 깊은 물길   묵묵한 해시계 곁   잠잠하게 빛나는 물빛 눈에 어룽이는   연하디연한 속뜻 김종란 / 시인·맨해튼글마당 한여름 그늘 한여름 그늘 한여름 물속 초록빛 기와집들

2023.06.30. 18:08

[수필] ‘그리운 것’은 산 그늘에 묻혀있다

옛날 시골집엘 가면 너른 마당에 ‘바지간지대’라는 게 있었다. 어른 키보다 두서너 뼘 정도 더 높게 서 있는 키다리 나무 장대를 일컫는다. 표준말로는 ‘바지랑대’라고도 하는데, 이놈은 마당 복판에서 안채 처마 밑에서 행랑채 서까래, 혹은 감나무 가지 밑동이 까지 가로질러 다소 느슨하게 잡아맨 긴 빨랫줄을 받치고 있다. 이놈은 빨랫줄의 중간에 비스듬히 제 몸을 기대거나 그 줄을 힘겹게 떠받치며, 허구헌날 마당 창공을 가로지르는 온갖 풍경을 혼자서 멀거니 보고 느끼고 혼자서 건들대는 싱거운 물건이다.     이 키다리 나무 장대는 보통 동네 곳곳에서 흔히 자라던 버드나무를 베어다 만들거나 실한 대나무를 잘라 끝을 살짝 가르고 중간에 짧은 쐐기 막대를 끼워 결 따라 갈라지지 않도록  끈으로 묶어 끝부분을 새총처럼 V자로 남김으로써 빨랫줄에 끼어 걸 수 있게 짝을 맺어주었는데, 아마 유년을 널찍한 마당이 있는 시골집에서 살아본 사람들은 그때 그 시절 잔바람에도 싱겁게 건들거리던 키다리 ‘바지간지대’의 그 희화적 풍경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수필가는 이 ‘바지간지대’에 관련해 이렇게 표현한 적이 있었다.     ‘빨랫줄이 한가할 때는 이 녀석도 건들거리며 늘어지게 쉬곤 하지만, 어쩌다 젖은 겨울 빨래라도 가득 널리는 날이면 땀을 줄줄 흘리며 줄을 붙잡고 온종일 서 있어야 한다. 줄과 이루는 각도를 적당히 하면서 빨래가 땅에 닿지 않도록 하는 것이 이 녀석의 소임이기 때문이다. 이 녀석은 이렇듯 그 훤칠한 키에도 불구하고 바람 따라 다소 건들대긴 하지만, 그래도 혼자서 힘자랑하듯 외다리로 마당을 지그시 밀어 올리고 나서야 겨우 제 몸을 세우는, 그야말로 집안의 돌쇠 머슴처럼 시골엔 꼭 필요한 물건’이라고 했다.     가만 돌이켜보면, 시골 마당의 상징처럼 서 있던 바지간지대... 그게 어디 보통 물건이던가, 나무에 걸려 맥을 못 추던 연을 걷어 살려내고 초가지붕 위에 냉큼 올라앉은 속수무책의 제기를 마당으로 다시 내려오게 하는가 하면, 감나무 끝에 매달린 홍시를 따먹기 위해서는 필수의 무기(?)가 아니었는가. 그야말로 아이들에게는 구세주 같은 물건이었다. 그런가 하면, 바지막대기는 바람이 드세게 부는 날은 똑바로 서 있기보다 옆으로 비스듬히 비켜서는 법을 알고, 꼿꼿하게 서서 모진 바람과 맞서기보다는 바람과 함께 이리저리 흔들리며 고꾸라지지 않는 법을 알던 지혜로운 물건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요즘 세대들은 별 신통한 반응이 없을 것이다. 요즘은 이제 시골에서도 마당 한쪽 끝에서 다른 한쪽 끝까지 사선으로 쳐진 논스톱 빨랫줄을 보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또한 물이 뚝뚝 떨어지는 빨래를 내다 거는 일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굳이 찾아보면 이 물건의 짝이었던 빨랫줄의 흔적은 조금은 남아있다. 가끔 아파트 옥상에는 옹색하지만 빨랫줄이라는 게 있는데... 진화 뒤끝에 생긴 퇴화의 흔적이라 할까, 마치 인간의 퇴화한 꼬리뼈 같아 삐시기 웃음이 나올 때도 있다.     어느 시인은 “그리운 것들은 산 뒤에 있다”고 했다.     "혹 산 뒤에 있는 이런 물건들을 아는 사람을 만나면 오래전부터 서로가 아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것은, 결코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여서가 아닐 것이다. '산이 있어 그 산을 오른다'는 말처럼 이미 산자락에 가려져 있는 그리운 것들을 함께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라고.   그래서인지… 여유 없이 살다보면 어떨 땐 가끔 수평과 수직이 서로 기대어 말없이 떠받드는 옛날 시골 너른 마당의 그 풍경이 떠오른다. 수평을 높여 비스듬히 제 몸을 세우던 ‘바지간지대’의 그 넉넉한 마음이 그립다.  삶이 힘들고 팽팽하여 명치끝이 콕콕 찌를 땐, 느긋한 빈 빨랫줄을 지그시 누르던 그 ‘바지간지대’라도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산자락에 숨어 있더라도 그런 물건을 함께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혹 서로 마음이 통하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손용상 / 소설가수필 그늘 논스톱 빨랫줄 옛날 시골집 키다리 나무

2022.08.04.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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