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순이 훌쩍 넘은 시인의 짧고 간결한 시에는 ‘사랑과 그리움’이 가득했다. 제26회 해외문학상 대상에 선정된 김일형 시인의 시 ‘참 기쁨’, ‘아름다운 석양’, ‘맑은 샘물’ 등 3편 수상작에 대한 평이다. 심사위원단은 “김 시인의 작품은 사랑과 그리움의 서정시"라며 "언어의 안정감과 표현 능력이 예리하면서도 쉬운 묘사로 삶에 대한 따뜻한 이미지를 담아냈다"고 평했다. 1931년 평북 철산에서 출생한 김일형 시인은 올해 93세다. 한국전쟁에 학도병으로 참전하고 중앙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베트남 미 해군기지에서도 일했다. 1972년 미국으로 이주해 플러튼대학원에서 미학을 공부하며 반평생 시를 써왔다. 테크니션으로 일하다 은퇴 후 문학 작품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것은 인생을 깊이 알고 싶어서였다. 70세가 넘은 나이에 수필을 쓰기 시작해 '크리스찬 문학' 수필 부문 당선, '해외문학' 신인문학상 시 부문에 당선되어 등단했다. 제26회 해외문학상 수필 부문에서는 최수잔 작가의 '사랑의 빛깔'이 영예를 안았다. 신인상 시 부문에는 신영해 씨 '민들레'와 '꽃반지' 등이 당선됐다. 해외문인협회(회장 박윤수)는 오는 29일 오전 11시 30분 오렌지카운티 회관에서 제26회 해외문학상 시상식과 '해외문학' 제28호 출판기념회를 개최한다. ▶문의:(562)881-1730 이은영 기자해외문학상 그리움 해외문학상 수필 해외문학상 시상식 해외문학상 대상
2024.10.27. 17:47
실비치한인합창단(단장 김형구 목사)이 내달 2일(토) 오후 5시 웨스트민스터의 오렌지카운티 제일장로교회(8500 Bolsa Ave)에서 제12회 정기연주회를 연다. 연주회 주제는 ‘그리움 그리고 하나님의 손길’이다. 단원들은 ‘그대 있음에’ ‘추억’ ‘꽃 파는 아가씨’ ‘그리움’ ‘별’ 등 한국 가곡과 ‘아리랑’ ‘새야 새야 파랑새야’ ‘신고산 타령’을 비롯한 민요 외에 성가도 선보인다. 지휘는 송규식 목사, 피아노 반주는 김애영씨가 맡는다. 소프라노 에스더 김씨와 바리톤 김경태씨, 클라리넷 연주자 나민주 목사, 트럼펫 연주자 캐스터 테오가 특별 출연한다. 실비치한인합창단은 대규모 은퇴자 거주 단지인 실비치 레저월드를 중심으로 활동한다. 합창단 측은 “단원들은 물론 레저월드에 사는 2000여 명의 한인 모두가 인생의 황혼기를 보내고 있기 때문에 정서적으로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고 설명했다. 송규식 지휘자는 “한민족이 겪으며 살아온 지난 80여 년 세월 속에 쌓이고 쌓이다 못해 이젠 잊혀 가는 ‘그리움’을 주제로 우리 가곡과 민요를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또 “공감하는 모든 이에게 아픔과 슬픔에 대한 위로와 치유를 전하고 아직 남은 우리 삶에 대한 환희와 소망을 함께 나누면서 찬양곡 연주로 우리 인생을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손길에 감사드릴 것”이라고 말했다. 실비치 한인합창단은 17년 전인 2007년 4월 16일에 그레이스 김씨가 창단했다. 초대 지휘자 박환철 장로가 7년, 2대 지휘자 백경환 목사가 9년 동안 합창단을 이끌었다. 단원들은 은퇴한 백 목사의 뒤를 이어 올해 1월 3대 지휘자가 된 송 목사와 함께 멋진 공연을 선보이기 위해 맹연습 중이다. 문의는 전화(714-699-0210)로 하면 된다. 임상환 기자그리움 가곡 민요 선사 아가씨 그리움 그리움 주제
2024.10.21. 20:00
“귀한 민족시, 겨레 시를 모아서 시조집에 수록해 나누고 싶었습니다.” 이초혜(사진) 시인이 첫 시조집 ‘그리움 뿌리에 보듬고(시산맥·사진)’를 출간했다. 첫 시집 ‘창밖엔 치자꽃이’에 이어 11년 만에 펴낸 두 번째 시집 ‘시간의 바람결’에 이은 세 번째 출간이다. 올해 84세로 팔순이 훌쩍 넘은 이 시인은 “두 번째 시집 출간 이후 12~13년 동안의 삶이 담겨있다”며 “캘리포니아에서 어언 반백 년의 삶과 신앙생활을 시조 문학으로 표현했다”고 밝혔다. ‘그리움 뿌리에 보듬고’에는 1부 봄, 2부 여름, 3부 가을, 4부 겨울 등 총 4부에 81편의 시조 작품이 수록됐다. 유심시조아카데미 홍성란 박사는 “미국으로 건너간 지 45년, 적지 않은 텍스트에서 시인이 통과한 신고의 시간이 보인다”며 “단독 시조집을 내지 않은 만큼 다작은 아니지만 이초혜 시인 시조의 진폭은 크다”고 평했다. 이화여자대학교 재학 시절 시조부에서 이태극 교수로부터 시조를 배운 이 작가는 방언, 시조, 향가, 민요, 전설 등을 수집하며 시조를 연구했다. 졸업 후 동아일보 기자를 역임하고 1979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1996년 ‘문학세계’로 시등단을 한 후 ‘창밖엔 치자꽃이’, ‘시간의 바람결’ 등 시집을 출간했다. ‘해외동포창작문학상’, ‘미주PEN문학상’, ‘한미문학상’, ‘영매상’ 등을 수상했다. 미국방외국어대학(D.L.L.) 한국어 교수, 남가주한국학교 교장 등을 역임하며 미주지역에서 2세 한국어 교육과 한국어 알리기에도 평생 힘썼다. 이은영 기자그리움 시인 그리움 뿌리 시인 시조 유심시조아카데미 홍성란
2024.04.07. 16:36
이따금 구름산에 올라갔다. 보고 싶은 너는 보이지 않고 하늘만 흔들리고 있었다 새들이 날아와 울기 전에 우리는 꼭 만나리라 세상은 메아리가 있는 아름다운 곳이니까 그렇지만 서둘지 마라 서두를수록 망가지는 게 인생살이란다 슬픔은 남아 있는 자의 몫이라고 흘린 땀 맛을 알아야 인생의 가치를 아는 거라고 외쳐 본다 너의 마음이 하얗게 물들 때까지 그런데 너는 끝내 보이지 않는구나! 아직도 너에게 전해 줄 마지막 사랑이 남아 있는데 김석인 / 시인글마당 그리움 이별 마지막 사랑
2024.01.26. 17:57
이따금 구름산에 올라갔다. 보고 싶은 너는 보이지 않고 하늘만 흔들리고 있었다 새들이 날아와 울기 전에 우리는 꼭 만나리라 세상은 메아리가 있는 아름다운 곳이니까 그렇지만 서둘지 마라 서두를수록 망가지는 게 인생살이란다 슬픔은 남아 있는 자의 몫이라고 흘린 땀 맛을 알아야 인생의 가치를 아는 거라고 외쳐 본다 너의 마음이 하얗게 물들 때까지 그런데 너는 끝내 보이지 않는구나! 아직도 너에게 전해 줄 마지막 사랑이 남아 있는데 김석인 / 시인시 그리움 이별 마지막 사랑
2024.01.18. 20:29
작은 풀꽃 되어 언덕에 누웠습니다. 하늘이 바로 내 얼굴로 내려와 눈 속에 구름을 그려줍니다. 이리저리 뒤척여도 같은 세상, 걱정 없는 청명한 세상입니다. 누구라도 함께 누우면 친구가 되고 서로의 이야기가 들려올 듯 합니다. 하루를 지낸 이야기, 속상했던 이야기, 행복했던 이야기를 듣고 나누는 동안 하늘은 여러번 얼굴을 바꿉니다. 옅은 푸른색에서 청색으로, 지금은 깊은 푸르른 블루입니다. 누군가가 마음에 담겨 노을처럼 떠나지 않습니다. 마음을 지긋이 누르는 아픔이 찿아드는 밤입니다. 그리움의 변주 꽃이 필 때 하늘이 온다 / 높은 하늘이 낮은 세상으로 내려 / 얼굴을 부빈다 / 꽃이 필 때 물결이 설레인다 / 잔잔한 물결이 설레임으로 다가와 / 어깨에 기댄다 / 꽃이 필 때 한 얼굴이 온다 / 낯익은 한 얼굴이 홍조 띄고 / 옳은 걸음으로 온다 / 꽃이 필 때 하나의 설레임 / 하나의 그리움 / 또 하나의 세상이 온다 // 꽃이 질 때 이별 하나 운다 / 꽃이 질 때 풀꽃보다 고운 그대가 운다 / 바람처럼 그대는 어깨를 떨며 고개 숙인다 / 노을 아래 언덕에 / 꽃보다 그리운 그대가 묻힌다 심지도 않은 소나무가 뒤란에 두 그루나 잘 자라고 있습니다. 4~5 년 전 죽은 소나무를 잘라주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작은 소나무 싹이 바로 옆자리에서 무럭무럭 그 키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이젠 내 키를 훌쩍 넘는 큰 소나무로 자랐습니다. 죽은 소나무가 자기를 사랑해주고 솔향기를 좋아했던 한 친구에게 남겨준 선물이라 생각됩니다. 쭉쭉 자라나는 소나무를 대견스레 바라보는 일은 이제 나의 기쁨입니다. 또 한 소나무는 이제 내 어깨만큼 자랐는데 이것 역시 스스로 그 씨가 어디론가에서 날아 데크 맞은편 정원에 뿌리를 내리고 무섭게 성장해가고 있습니다. 세상에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은 자라납니다. 성장을 멈췄다면 그건 생명이 끊어진 상태나, 이제 제 몫을 다 했거나, 병들어 곧 생명이 끊어질 위기에 놓인 경우가 될 것입니다. 시간이 멈춘 뒤란의 새벽은 황홀입니다. 발자국 소리가 지나가는 곳마다 꽃들이 눈을 뜹니다. 잎사귀마다 기지개를 폅니다. 머리 속은 온통 노랑, 분홍, 퍼플입니다. 바람이 불면 당신의 향기가 온 몸으로 부딪혀옵니다. 지금 이곳의 시간은 읽을 수 없습니다. 모든 감각이 살아나는 태고의 정원 같기도 하고, 꽃 이름도 생소한 곳에서 들려오는 나지막한 메아리의 울림 같기도 한, 미래의 어느 한날 같습니다. 나는 손을 흔드는 당신을 기다린다는 즐거움도 잊은 채 하늘로 치솟은 전나무를 돌아 언덕으로 마주한 샛길을 오르고 있습니다. 당신과의 첫만남. 북촌의 생소한 거리를 지나가며 막무가내로 만났던, 그리움의 변주 같은, 물방울 속에 담겨 튀어 오르던 언어. 이제 길이 시작되었습니다. 나를 네게로 이어줄 알 수 없는 긴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북촌의 저녁과 시카고 뒤란의 새벽. 14시간의 느리고 빠른 간극을 넘어 기대와 잔잔한 감흥으로 이어질 작은 통로가 되었습니다. 그 길로부터 다가오는 아침을 천천히 당신의 향기로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곳 뒤란과 언덕은 여전히 생명으로 충만합니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그리움 동안 하늘 발자국 소리 데크 맞은편
2023.07.10. 13:24
늘 순종만 했던 내가 처음으로 반항했을 때 어머니는 돌아서서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리셨다 헝클어진 실타래처럼 세상을 거꾸로 보고 싶었던 내 마음도 절망적인 상처의 전율로 흐느끼는 야윈 등이 동공에 확대되어 한없이 주기만 했던 사랑이었는데 문득 치솟는 후회로 허물어진 담벼락처럼 무너져 손을 꼭 잡고 눈물로 용서를 구했다 돌아서서 오냐 하신 한 말씀 환해진 마음의 창을 열고 다짐했다 사랑하리라 모든 것은 지나가 투정부리고 싶어도 반항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어빈 허공에 불러본다 둥근 메아리 되어 돌아오는 어머니 양기석 / 시인·퀸즈글마당 그리움
2023.06.02. 17:36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청마 유치환의 ‘행복’이라는 시다. 참다운 행복이 무엇인가를 생각게 하는 시다. 우리가 아끼고 사랑했던 것들, 우리를 푸근하게 감싸주던 것들, 우리 마음을 훈훈하게 데워주던 것들이 알게 모르게 사라져가고 있다. 초가집들이 사라졌다. 가을 양광에 늙은 박 덩굴을 무료히 머리에 이고 있는 우리의 노모 같은 초가집은 산업화의 회오리에 밀려 어느새 그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도시에서는 밤하늘의 총총한 별들을 바라보는 것을 단념해야 하고, 봄 노고지리, 가을 메뚜기를 시골에서조차 만나기 어렵게 됐다. 해질 무렵 시골 농가의 굴뚝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밥 짓는 연기는 옛 추억 속에 잠겨버렸고, 우직한 소달구지의 정겨움은 버릇없는 트럭으로 대체되었다. 우리 어머니들의 알뜰함이 담겨있던 대나무로 짠 시장바구니는 어느새 일회용 비닐봉지가 그 구실을 대신하고, 때도 철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과일과 푸성귀는 원두막과 콩서리에 얽힌 그리움을 앗아가 버렸다. 또 이메일과 스마트폰의 보급은 편지 쓰는 즐거움과 편지 받는 반가움을 부질없는 일로 만들었다. 시간을 아끼는 현대인은 이제 편지 따위는 하릴없는 사람이나 끄적거리는 것으로 치부한다. 정보화시대의 철학자 맥루한은 열렬한 전화예찬론자이다. 활자문화에서 자라난 구세대들은 전화를 싫어하지만, 전파시대에 출생신고를 낸 아이들은 스마트폰을 애완동물처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화는 그의 이론을 듣고 있으면 애정만이 아니라 인간의 사고방식과 일반적인 행동까지도 바꾸어놓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활자문화 속에서 자라난 구세대는 고립적인 개인주의에 그 특징이 있지만, 정보화시대에 사는 현대인은 높은 참여성이 있다고 맥루한은 주장한다. 그리고 전화야말로 현대인에게 그러한 성격을 부여한 챔피언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전화는 참여성이 강한 미디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스마트폰을 현대의 메시아로 보든, 혹은 독신자가 샤워를 할 때마다 울리는 현대의 악마로 보든, 그것은 분명 현대인의 관계를 횡적으로 확대시켜주고 있다는 것이다. 편지는 말하자면 글자는 우리에게 영원이라는 것을 가르쳐준다. 감정도 사상도 문자로 얘기할 때는 그것이 수백 년 수천 년의 먼 훗날까지 남으리라는 것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화는 축지법처럼 공간을 훌쩍 뛰어넘어 공간을 소멸시킨다. 그 대신 시간을 정복할 수는 없다. 옆으로만 번지게 하고 시간에 그 종적(縱的)인 관계를 생각하지 않게 한다. 현대인은 하루살이처럼 살아간다. ‘오늘만!’, ‘오늘만!’ 이렇게 외치면서 그들은 전파의 가벼운 날개를 타고 시간의 강하를 따라간다. 편지의 깊고 그윽한 맛을 잃어가고 있다. 편지란 흩어진 가족이나 멀리 떨어져 있는 친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감싸주는 위로자다. 편지를 쓰는 사람이나 받아보는 사람 모두가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반성할 수 있는 장(場)을 마련해준다. 편지에는 화려한 문체나 깊은 지식, 물 샐 틈 없는 논리가 없어도 좋다.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백시킨 진실만을 드러내주면 된다. 이러한 편지는 말로만 주고받거나 분위기로만 맺어진 사랑과 정을 더욱 깊게 해준다. 여름방학 때 멀리 있는 친구로부터 받는 한 장의 편지, 그 편지의 어느 구석엔가 호박잎 같은 냄새가 나는 것을 읽고 또 읽으면서 모닥불처럼 피어오르는 행복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훈련소에 입영한 아들로부터 배달된 첫 편지를 받아들고 땀이 배어있는 사연을 읽고 또 읽으면서 기뻐 눈물 흘리는 엄마의 마음… 편지 이외의 통신수단이 대중화되지 못했던 시절만 하더라도 우편배달부를 기다리는 마음은 그리움 그 자체였고, 편지를 쓴다는 행위도 즐거움 그 자체였다. 어버이가 자녀를 외지로 떠나보낼 때나 친지들을 만났다 헤어질 때면 ‘편지를 하라’는 정감어린 말이 오갈 정도였지 않은가. 그러나 전화가 대중화되면서 편지는 서서히 빛이 바래기 시작, 푸대접받아 뒷전으로 물러나 앉고 말았다. 더구나 이메일, 스마트폰이 개선장군처럼 등장하면서부터 편지라는 존재는 점점 더 고전으로 묻혀지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모든 사람의 생활 주변에서 사랑과 정을 담은 편지를 주고받는 일이 가뭄에 콩 나는 것과 다름없게 되어버렸다. 요즘 아이들은 편지를 쓰지 않는다. 서울이나 외국에 유학 간 아들에게서 행여 소식이 올까 하고 까치 울음소리를 상서로운 조짐으로 반기던 우리 어머니들의 ‘기다리는 마음’을 아이들은 모른다. 그래서 편지는 아련한 향수다. 그리움이다. 사라져가는 것은 정겹고 아름다운 것뿐이다. 그 사라져간 자리에는 이메일, 스마트폰과 이른바 ‘능률적인 인생’이 버티고 서 있다. 이렇게 해서 편지의 시대는, 문자의 시대는 지나간다. 러브레터의 시대가 가고 그 대신 스마트폰의 벨 소리가, 카카오톡의 요상한 신호음이 귀를 두드린다. 정글의 약자였던 인간은 소셜 애니멀의 지혜로 야생의 위협과 싸우며 문명을 이룩했다. 문명은 SNS(소셜네트워킹서비스)라는 꼭짓점에서 초연결의 정점을 찍었지만, 동시에 우리는 서로를 감각하던 민감한 협응의 촉수를 잃어버렸다. 너무 쉽게 우정을 거래하고, 물건을 사는 ‘소비 네트워크 서비스’라는 동굴 안에서, 우리는 점점 더 무력해졌다. 외로움이 바이러스보다 무서운 세상이다. 외로움의 동굴에서 서로를 구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다정함이다. 강해지려면 다정해져야 한다. 다정해지려면 부드러워져야 한다. 부드러워지기 위해 우리는 더 필사적으로 서로를 ‘감각’해야 한다. 재난 현장에 고립돼도 다가오는 인간의 기척이 우리를 살게 한다. 살며 생각하며 그리움 편지 편지 이외 편지 따위 이메일 스마트폰
2021.12.28. 1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