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한인타운 주민들이 폭염 속에서 ‘그늘 부족’ 문제를 호소하고 있다. 이번 주 내내 LA카운티 최고 기온이 100도에 육박하며 폭염 경보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한인타운이 포함된 지역의 그늘 부족 문제가 가장 심각한 것으로 조사됐다. USC가 최근 LA카운티 주민(134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5명 중 4명(83.9%)이 나무 그늘이 부족한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반면 나무 그늘이 풍부한 지역에 산다고 답한 주민은 4.6%에 불과했다. 지역별로는 한인타운이 포함된 LA카운티 2지구 주민들의 그늘 부족 체감도가 가장 높았다. 2지구 응답자 293명 중 약 98%가 “그늘이 충분하지 않다”고 답했다. 롱비치와 토런스 등이 포함된 4지구도 94%로 뒤를 이었다. 김정자(72·LA)씨는 “최근 수년 사이 한인타운 내 무성했던 나무 가지들이 정리되면서 거리가 깔끔해지기는 했지만, 반대로 나무 그늘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며 “특히 지금 같은 폭염에는 잠시 그늘 아래에서 쉴 수 있는 곳을 찾는게 쉽지 않아 대낮에 다니기가 매우 힘들다”고 말했다. USC는 보고서를 통해 “유색인종과 저소득층 밀집 지역일수록 나무 그늘이 부족해 녹지 공간 확대가 시급하다”고 밝혔다. 본지도 LA 지역 공원 현황 및 실태와 관련해 UCLA-베조스 펠로십에 참여, 한인타운 주민들이 산책하며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공간의 필요성을 기획 기사로 보도한 바 있다. 〈본지 2025년 5월 19일자 A-4면〉 관련기사 공원이 필요하다…LA '한인 쉼터' 서울국제공원 이 같은 현상은 인구 특성별로도 뚜렷하게 나타났다. 저소득층과 유색인종, 고졸 이하 학력 인구가 밀집한 지역에서 그늘 부족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두드러졌다. 특히 아시아계 응답자의 80.3%, 히스패닉 응답자의 91.6%가 나무 그늘 부족을 호소했다. 뙤약볕 아래서 버스나 전철을 기다리는 대중교통 이용 환경 역시 열악한 것으로 나타났다. LA 메트로 버스 정류장과 전철역에서 ‘그늘이 충분하다’고 답한 비율은 23.3%에 그친 반면, 47.5%는 “매우 부족하다”고 응답했다. 특히 한인타운이 포함된 2지구에서는 응답자의 절반 이상(51.7%)이 정류장 그늘막 부족을 지적해 공공 인프라 개선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민들은 해결책으로 가로수 확대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전체 응답자의 77.6%가 가로수 식재 및 관리 예산 확대에 찬성했으며, 그늘이 부족한 지역에서는 찬성률이 82%까지 높았다. 가로수 확대 효과로는 공기질 개선(약 68%), 체온 감소(약 66%), 도시 미관 개선(55%) 등이 주요 이유로 꼽혔다. 한편 폭염이 지속되자 LA시는 긴급 대응에 나섰다. 도서관과 레크리에이션 센터 등 수백 개 공공시설을 냉방 공간으로 개방하고, 일부 시설은 오후 10시까지 연장 운영 중이다. 이와 함께 폭염에 취약한 시니어를 대상으로 한 지원도 강화된다. LA시 노인국은 65개 이상의 급식소와 19개 다목적 센터를 통해 냉방 공간과 식사, 안부 확인, 교통 연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김경준 기자la카운티 그늘 나무 그늘 la카운티 2지구 그늘 아래
2026.03.17. 21:59
지금 옛꿈은 묻어 놓고 새로운 꿈을 엮고 있다 가끔 뼈처럼 드러낸 녹슨 철로는 구름 너머 아득한 옛일을 간직한 채 희미하게 잊혀져 가고 있다 피곤한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 젊은 연인들의 싱그러운 미소를 본다 길옆 꽃밭에 그들의 미소가 예쁘게 피어나고 있다 벤치에서 일어나 녹슨 내 꿈을 안고 잊혀져 가듯이 High line 길을 천천히 걷는다 낯선 존재처럼 양기석 / 시인·퀸즈글마당 high line high line 나무 그늘 길옆 꽃밭
2025.10.02. 17:52
우리말에서는 숨을 쉰다고 말합니다. 쉬다라는 말은 숨과 관련이 있는 말입니다. 우리말에서는 동사나 형용사의 어간이 명사와 관련되는 예가 많습니다. 우리 신체 기능 중에서 제일 소중한 것은 숨을 쉬는 것입니다. 숨을 더 이상 쉬지 않으면 죽습니다. 숨이 멎었다는 표현은 그대로 죽었다는 뜻입니다. 또한 숨을 거두었다는 말도 더 이상 숨을 쉬지 않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목숨이라는 표현은 그래서 나온 말입니다. 눈을 감는다는 표현은 비유적인 느낌이 있습니다. 눈을 감는 행위가 꼭 죽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죽은 듯이 잠을 잔다는 표현을 합니다. 눈을 감는 게 그저 잠을 자는 것이거나 앞을 보지 못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숨이 막힌다든지 숨이 찬다든지 하는 표현에서 숨은 단순히 쉬는 것만이 아니라는 점도 알 수 있습니다. 숨을 급하게 쉬거나 제대로 쉬지 못하는 것은 괴로움입니다. 힘든 일을 하거나 빨리 움직여야 할 때 숨이 차오릅니다. 숨을 쉬기가 어렵습니다. 긴장하거나 누군가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당할 때 아예 숨을 못 쉬기도 합니다. 죽을 것 같다는 말은 이럴 때 딱 알맞습니다. 너무 숨을 빠르게 쉬거나 쉬지 못하는 상태는 죽음 바로 앞의 괴로움입니다. 하지만 숨을 빨리 쉬지 않으면 진짜 죽습니다. 저는 가파른 산을 빠르게 오를 때 이런 극도의 고통을 느낍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도 아니고, 천천히 올라도 크게 문제가 없는데도 빠르게, 숨차게 오릅니다. 숨이 차면 힘들지만 그 후에 이어지는 시간은 마음을 편하게 합니다.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거친 숨소리가 위로가 되는 순간입니다. 숨은 나를 단련시킵니다. 등산을 즐기는 사람이나 마라톤을 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경험하는 기쁨일 겁니다. 운동이라는 게 대부분 가쁜 숨을 느끼며 성장하게 하는 행위입니다. 우리말 쉰다는 말에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하나는 지금까지 이야기한 숨을 쉬는 겁니다. 빠른 숨도, 거친 숨도, 가쁜 숨도 모두 숨을 쉬는 겁니다. 가슴이 터질 듯한 행위입니다. 괴롭지만 즐겁고, 죽을 것 같지만 살아있음을 느끼는 행위입니다. 숨을 쉬는 것은 살아있음을 증언합니다. 숨만 잘 쉬어도 충분히 훌륭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숨 쉬는 수련이 종교에서 기본인 것은 그러한 이유일 겁니다. 좌선, 요가, 명상이 모두 숨 쉬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운동과는 반대 방향의 숨쉬기네요. 쉬다의 다른 뜻은 휴식입니다. 휴식 역시 숨을 쉬는 겁니다. 가쁜 숨을 거두고, 참았던 숨을 서서히 토해내는 과정입니다. 다 토해내고 나면 시원한 마음이 몸을 풀어줍니다. 그런 우리의 모습을 쉬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쉰다는 말에는 나무 그늘 아래에서라는 배경이 잘 어울립니다. 그래서 쉬다를 의미하는 한자 휴(休)의 모양이 사람 인(人)과 나무 목(木)으로 이루어져 있을 겁니다. 숨 쉴 식(息)은 코를 의미하는 글자[自]와 심장을 의미하는 글자[心]가 합쳐져 있네요. 숨이 막히면 코와 심장이 괴롭습니다. 전헌 선생님과 소식을 나누다가 ‘헐떡헐떡이쉬엄쉬엄 보다 푹 쉽니다’는 말씀이 인상 깊었습니다. 급하면 더 숨이 많이 쉬게 되고, 그래서 다시 살아난다는 생각을 합니다. 산에 오르면 가쁜 숨이 고마울 때가 있습니다. 헐레벌떡 숨이 가쁜 시간이 지나면 그때는 너무 힘들어 죽을 것 같았지만 그다음부터는 힘들어도 두려움이 적어집니다. 숨이 가빠올 것은 알지만 그 숨도 다시 잦아들 것을 내 몸이 제대로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 몸은 가빴던 기억을 안고, 더 큰 헐레벌떡도 견디어 냅니다. 다시 살아나는 몸입니다. 힘들어도 숨이 차도 잘 견뎌냅시다. 나무 그늘 아래에서 쉴 때가 찾아옵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나무 그늘 좌선 요가 반대 방향
2022.10.09. 17:25
내가 다니는 성당은 자체 건물이 없어 학교 성당을 빌려 주일에만 미사를 드리는 작은 공동체다. 성당이 없는 대신 넓은 대지에 사제관과 별도의 작은 경당이 있는 회관을 가지고 있다. 회관에는 오렌지와 자몽, 석류나무 등이 자라고 있다. 그동안 다녀가신 신부님들 중에 정원 일에 관심을 가진 분은 없었지 싶다. 넓은 마당은 가드너가 관리하고 철 따라 나무는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도 대부분 땅에 떨어져 버리곤 했다. 작년에 오신 신부님이 정원의 나무들에 관심을 보이고 돌보자, 나무는 탐스러운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신부님은 때맞추어 가지치기를 하고, 거름과 물을 준다. 마당에 심은 포도가 열매를 맺자, 몇 개씩 잘라 신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얼마 전에는 신자들에게 장바구니에 이름을 써서 가지고 오라고 하더니, 다음 주에 성당에 가니 바구니마다 오렌지가 가득 담겨 있었다. 집에 가지고 와서 먹어 보니 여간 맛있는 것이 아니다. 코로나 이전에는 미사가 끝나면 다과를 나누는 친교시간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 코로나 셧다운이 풀리고 다시 성당에 나가기 시작하며 우리 반은 미사가 끝나면 주차장 한편의 나무 그늘에 모여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 헤어진다. 7월 초, 신부님이 우리 반 자매들에게 시간이 있느냐고 물었다. 무슨 일인가 하니, 오렌지로 잼을 만들어 신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싶은데, 만들어 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자리에서 의기투합, 수요일에 회관에 모이기로 했다. 잼을 만들기로 한 날, 아내는 10시 전에 회관으로 가고, 나는 점심시간에 맞추어 햄버거를 사서 갔다. 사제관에 들어서니 온통 달콤한 오렌지 냄새다. 거실에도 부엌에도 오렌지가 가득하다. 아마 700~800개도 넘었을 것이다. 신부님 혼자 3일 동안 딴 것이다. 오렌지 잼을 만들려면 먼저 껍질을 벗겨, 주스를 짜고 (또는 갈아서), 적당하게 썬 껍질과 설탕을 넣고 졸여야 한다. 성당의 오렌지로 이미 두 차례 집에서 실험해 본 아내는 지난밤 유튜브를 보며 오렌지를 살짝 데치면 껍질이 쉽게 벗겨진다는 것을 알아냈다고 한다. 나는 껍질 벗기는 작업을 잠시 도와주다 회사 마감을 해주어야 해서 돌아오고, 아내는 밤 10시나 되어 돌아왔다. 신부님이 구입하신 병 160개 중 150여 개를 잼으로 채웠다고 한다. 주일 아침 성당에 가니, 입구에 잼이 담긴 병들이 테이블에 줄을 맞추어 놓여 있다. 미사가 끝나자 잼을 한 병씩 받아 든 신자들이 기쁜 표정으로 돌아간다. 나무 그늘에 서 있는 우리에게 손을 흔드는 사람, 와서 인사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눔의 즐거움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10시간 넘게 잼을 만들었던 자매님들도 힘은 들었지만 마음은 가볍고 흐뭇하다고 했다. 게다가 그날은 루비나 할머니를 성당에 모시고 다니던 부부가 일이 생겨 우리 반 다섯 가정이 돌아가며 차편을 제공하기로 한 첫날이었다. 루비나 할머니는 밭에서 키운 애호박을 우리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바람직한 공동체의 모습은 이런 것이지 싶다. 좋은 것이 있으면 나누고, 부족한 것은 서로 채워주며 사는. 신부님이 과일 농사를 잘 지으시면, 내년에도 잼 공방은 문을 열 것이다. 고동운 / 전 가주공무원이 아침에 기쁨 자몽 석류나무 학교 성당 나무 그늘
2022.07.20. 1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