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부인인 낸시 여사 장례식 대신에 당초 예정됐던 텍사스 오스틴에서 열리는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SXSW) 축제에 참석할 예정이어서 논란이 일고 있다. SXSW는 매년 3월 열리는 음악.영상.멀티미디어 페스티벌로, 오바마 대통령은 낸시 여사 장례식이 열리는 11일 개막식에서 기조 연설을 할 계획이다. 낸시 여사의 장례식에는 퍼스트레이디인 미셸 오바마 여사가 대신 참석한다. 이를 두고 뉴욕데일리뉴스는 "오바마 대통령이 SXSW에 참석하기 위해 낸시 레이건의 장례식을 빼먹는다"고 표현하는 등 보수 논객들이 비난에 나섰으나 일부에서는 전.현직 대통령은 대체적으로 영부인 장례식에는 참석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며 제럴드 포드 대통령의 부인 베티 여사가 2011년 사망했을 때도 낸시 여사와 로절린 카터, 힐러리 클린턴, 미셸 오바마 등 영부인들만 참석했다고 반박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보수 성향 앤터닌 스캘리아 대법관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했다가 일부에서 비난이 일자 일정을 바꿔 참석한 바 있다.
2016.03.09. 21:31
퀸즈 플러싱 한인타운 한복판에 있는 2층짜리 단독주택이 지난 6일 별세한 낸시 레이건의 생가로 알려지면서 화제가 되고 있다. 출생 당시엔 '앤 프랜시스 로빈스'라는 이름을 갖고 있던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부인인 낸시 여사는 1921년 맨해튼 업타운 워싱턴하이츠에 있는 한 병원에서 태어났다. 이후 현재 먹자골목이 위치한 루스벨트애비뉴와 149플레이스에 있는 주택(149-40)에서 2년을 살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본지가 8일 건물을 확인해본 결과 안내문이나 기념비는 없었으며 주변 이웃들조차 이곳이 낸시 여사의 생가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별세 소식이 전해진 뒤 이 주택이 생가라는 것을 알게된 일부 주민들의 발걸음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낸시 여사는 이곳에 살다 부모의 이혼으로 메릴랜드로 이주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 이 주택은 어번데일에 사는 한 부부의 소유로 확인됐다고 뉴욕1이 이날 보도했다.
2016.03.08. 18:17
로이터 "영향력 가장 셌던 영부인" 이란-콘트라 스캔들 적극 해결 83년 방한, 심장병 아동 치료 도와 남편 묻힌 레이건 도서관 뜰에 안장 미국의 황금시대를 이끌었다고 평가받는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제 40대)의 부인 낸시 레이건 여사가 6일 벨에어 자택에서 울혈성 심부전으로 별세했다. 94세.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부인 미셸 여사는 7일 성명을 내고 "낸시 여사의 삶과 지도에 감사하며 레이건 전 대통령(2004년 6월 사망)과 다시 함께 하길 기원한다"고 밝혔다. 낸시 여사는 "미국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퍼스트레이디"(로이터통신)란 평가를 받았다. 뉴욕타임스도 이날 레이건 전 대통령와 절친했던 마이클 디버 전 백악관 비서실 차장을 인용 "낸시가 없었으면 레이건 캘리포니아 주지사(1967~75)도 레이건 대통령(81~89)도 없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낸시 여사는 21년 7월 6일 뉴욕에서 자동차 딜러인 아버지와 여배우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의 영향으로 명문 여대인 스미스칼리지 재학 때 연극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배우로 데뷔해 첫 작품 '류트 송(Lute Song)'에서 유명 배우 율 브리너와 연기하기도 했다. 그는 레이건 전 대통령과 운명적으로 만났다. 메카시즘(극단적 반공주의)이 할리우드를 강타하던 49년 그는 공산주의 동조자 리스트가 보도된 신문에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동명이인임을 호소하기 위해 당시 영화배우 직능협회장이던 레이건 전 대통령을 처음으로 만났다. 3년 뒤 두 사람은 결혼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당시 이혼남이었다. 백악관 시절 낸시 여사는 '막후 실력자' 혹은 '퀸(여왕) 낸시'로 통했다. 각료 부인들과의 모임을 주도하며 정부의 원활한 정책 추진을 위해 각자의 네트워크를 최대한 가동하라고 독려하기도 했다. 남편이 이란-콘트라 스캔들로 큰 정치적 위기를 겪을 때 해결사로 나서기도 했다. 미국이 비밀리에 이란에 무기를 지원해 얻은 수익으로 니카라과 좌파 정권을 전복하려는 콘트라 반군을 지원한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낸시 여사는 사건이 폭로된 책임을 물어 백악관 비서실장이던 도널드 리건의 해임을 주도했고 남편에게 '대 국민 사과'를 하도록 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이 81년 3월 30일 워싱턴 힐튼 호텔 앞에서 총격을 당한 뒤에는 이를 예언했던 캘리포니아의 점성술사 조앤 퀴클리에게 크게 의지했다. 남편 재임 중엔 청소년 마약 퇴치 운동인 '저스트 세이 노(Just Say No)' 캠페인 퇴임 후에는 남편이 앓았던 알츠하이머에 대한 연구 지원에 헌신했다. 한국과는 83년 방한 당시 귀국길에 심장병 어린이 2명을 데려가 치료한 인연이 있다. 낸시 여사는 레이건 전 대통령의 묘소가 있는 캘리포니아 시미밸리의 '레이건 도서관' 뜰에 함께 묻힐 예정이다. 장례식은 11일 오전 11시 시미밸리 레이건 대통령기념관에서 비공개로 열린다. 9일 오후 1시부터 7시 10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는 일반인도 추모할 수 있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2016.03.07. 20:44
낸시 레이건의 타계로 로널드 레이건 시대는 완전히 작별을 고했다.
2016.03.07. 20:38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영부인 낸시(사진) 레이건이 6일 오전 LA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94세. 배우였던 레이건 여사는 1949년 레이건 전 대통령을 만났다. 당시 레이건 전 대통령은 전 아내와 48년 이혼한 지 1년 뒤였지만, 두 사람은 곧 사랑에 빠졌고 3년 뒤인 52년 결혼했다. 이후 레이건 여사는 남편이 주지사를 거쳐 대통령직에 오를 때까지 한결 같이 남편의 곁을 지켰다. 레이건 전 대통령이 재임하던 81년부터 89년까지 8년간 영부인으로 활동했다. 94년 레이건 전 대통령이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자 레이건 여사는 남편과 함께 '로널드 앤드 낸시 레이건 연구소'를 설립하고 알츠하이머 연구를 지원했다.
2016.03.06. 19:40
고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영부인 낸시 레이건(사진) 여사가 6일 오전 LA 벨에어 지역의 자택에서 별세했다. 94세. 레이건 대통령 기념도서관의 조앤 드레이크 대변인은 사인을 울혈성 심부전(congestive heart failure)이라고 밝혔다. 로이터통신은 1981년부터 1989년까지 퍼스트레이디로 활동했던 낸시 여사를 "미국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퍼스트레이디"로 평가했다. 1921년 뉴욕 출생인 레이건 여사는 1940~50년대 할리우드에서 영화배우로 활약하다가 1949년 당시 배우조합 회장을 맡고 있던 레이건 전 대통령을 만났다. 당시 레이건 전 대통령은 전 아내와 48년 이혼한 지 1년 뒤였지만 두 사람은 곧 사랑에 빠졌고 3년 뒤인 52년 결혼했다. 이날 레이건 전 대통령의 아들인 마이클 레이건은 트위터에서 "어머니는 사랑하던 남자에게로 다시 돌아갔다"며 슬픔을 표했다. 각계 인사들과 대선 주자들도 잇따라 애도성명을 발표했다. 이조은 기자
2016.03.06. 19:21
미국의 제40대 대통령 고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부인 낸시 레이건 여사가 6일 향년 94세로 별세했다. 앨리슨 보리오 보조원에 따르면 낸시 여사는 이날 오전 로스앤젤레스 벨 에어 자택에서 울형성 심부전으로 숨졌다. 낸시 여사는 1981년부터 1891년까지 레이건 전 대통령의 영부인으로 활동했으며, 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마약 퇴치 캠페인 '저스트 세이 노(Just Say No)' 캠페인을 주도한 것으로 유명하다. 1940년대와 50년대에 영화배우로 활동했던 낸시 여사는 당시 유명 배우였던 레이건 전 대통령과 결혼해 그가 백악관에 발을 들이기까지 적극 지원했다. 그는 언제나 레이건 전 대통령의 애칭인 '로니'를 지원하는 것이 임무였다고 강조해 왔다. 퇴임 이후에도 레이건 전 대통령이 알츠하이머 병과 투병하는 동안에도 그를 끝까지 간호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2004년 6월 폐렴 합병증으로 93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낸시 여사는 레이건 전 대통령 타계 후에도 알츠하이머 병 연구를 위해 수백만 달러를 기부하는 등 알츠하이머 병 퇴치운동을 전개했다.
2016.03.06. 16: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