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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케의 저울] 트럼프 대 뉴섬, 미국 헌정사의 분기점

다른 나라들에 비해 미국의 특이한 정치제도 중 하나는 ‘연방주의(Federalism)’다.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권한을 분리하여 각자의 고유한 역할을 수행하는 이 독특한 체제는, 미국 독립 당시부터 헌법에 새겨진 정치 철학이다.     독립 이전 영국과의 갈등은 단순한 세금 문제를 넘어서 ‘누가 통치권을 갖는가’의 문제였고, 독립 이후 제정된 미국 헌법은 군주제와 다른 권력 분산을 그 핵심 원리로 삼았다.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경계했던 바도, 강력한 중앙집권보다는 분산된 권력이 더 자유롭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든다는 신념이었다. 따라서 미국은 지금도 연방정부가 모든 권한을 독점하지 않으며, 교육, 치안 등 많은 영역은 주정부가 담당한다.   하지만 이런 이념적 구조는 종종 실제 정치 현장에서 충돌을 일으켜 왔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간에 벌어지고 있는 법적 갈등도 그 중 하나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충돌이 아니라, 미국 헌법 질서와 권력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사건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LA 시내 시위에 대응한다는 명목으로 병력을 배치하고 캘리포니아주 방위군(National Guard)의 지휘권을 연방정부로 이전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뉴섬 주지사는 연방정부가 주정부의 동의없이 주 방위군을 연방화하는 것은 위헌이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의 첫 번째 핵심은 1807년에 제정된 ‘반란법(Insurrection Act)’에 대한 해석이다. 반란법은 연방정부가 주정부의 요청 없이도 군 병력을 동원할 수 있도록 허용하지만, ‘반란, 폭동, 또는 법의 집행이 불가능한 상황’으로 한정된다.     뉴섬 주지사는 시위가 대체로 평화적이었고, 법 집행도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며, 트럼프의 행위는 초법적 조치라고 주장했다. 일단 연방법원도 이에 동의했다. 연방법원은 대통령의 조치는 법률이 허용한 범위를 벗어난 것이며, 연방정부는 주정부의 고유 권한을 침해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반란법의 적용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두 번째 쟁점은 연방헌법 ‘수정헌법 제10조(Tenth Amendment)’다. 이 조항은 연방정부에 명시적으로 부여되지 않은 권한은 모두 주 정부 또는 국민에게 귀속된다고 규정하고, 이는 연방정부의 권한 남용을 막는 헌법적 근거가 된다. 캘리포니아주는 대통령이 주 방위군을 연방화한 것은 주의 치안과 군사 운영에 대한 자율성을 침해한 것이며, 특히 사전 협의조차 없이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군사력을 행사한 점은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세 번째 쟁점은 1878년에 제정된 ‘포시 코미터스 법 (Posse Comitatus Act)’이다. 이 법은 연방군이 국내 민간 치안 업무에 개입하는 것을 금지한다. 이 법의 본질은 군대가 시민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사용돼서는 안 된다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반영한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군대를 LA 지역에 배치했고, 이들 병력이 민간 시위대를 제지하는 데 개입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명백한 위법 소지가 제기되었다. 정부 측은 군대는 단지 연방 자산을 보호하기 위한 배치라고 주장했지만, 현장 영상과 증언은 군 병력이 사실상 치안 유지에 나섰음을 보여준다.   이 사건은 단순한 정치적 충돌을 넘어, 미국 헌법상 연방정부 권한의 경계를 시험하는 중대한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뉴섬 주지사는 대통령도 헌법 위에 있지 않다며 연방지방법원 승소 이후 연설에서 “우리는 군사력보다 법의 힘을 믿는 나라”라고 강조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즉각 항소했고,  고등법원에서는 일단 대통령의 손을 들어준 상태다.   미국의 역사에서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갈등은 낯선 일이 아니다. 남북전쟁도 연방정부와 주정부간 주도권을 둘러싼 싸움이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연방주의의 원칙상 연방정부와 주정부간 권력 한계에 대한 중요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연방주의는 역사 속에 박제된 유물이 아니라 여전히 미국 민주주의 현실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김한신 / 변호사니케의 저울 미국 트럼프 트럼프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초대 대통령

2025.06.18.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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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케의 저울] 한국의 사법 논쟁, 미국을 묻다

최근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 재판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사법제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단순히 정치인의 운명을 넘어, “과연 우리의 사법 시스템은 올바르게 작동하고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이어지고 있다. 무엇이 사실이며, 어떻게 법리가 적용되었는지를 둘러싼 격론은 우리 사회가 어떤 사법 제도를 지향해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과 비교할 때 미국 사법 시스템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단연 ‘배심원 제도’다. 형사 사건은 물론 대부분의 민사 사건에서 일반 시민들로 구성된 배심원단이 사건의 ‘사실’ 관계를 판단한다. 판사는 법률을 해석하고 재판 절차를 이끌지만, ‘유무죄’ 또는 ‘손해 발생 여부’ 등 핵심적인 사실 판단은 시민의 손에 달렸다. 이는 단순한 제도적 장치가 아니라, ‘시민의 참여’를 핵심으로 하는 민주주의 국가 미국의 철학적 반영이기도 하다.   이 배심원 제도의 뿌리는 영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특히 미국 독립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식민지 시절 영국은 밀무역 단속을 빌미로 식민지 주민들을 배심원 없는 특별 해사재판소(Vice-Admiralty Court)에 세웠다. 영국 본국에서 파견된 판사들로만 채워진 이 재판은 시민 참여가 원천 차단된 불공정한 절차로 인식됐다.     이는 ‘대표 없는 과세’와 함께 식민지 주민들이 ‘시민 없는 재판’에 분노하게 만든 핵심 요인이었다. 사법이 정치적 저항의 기폭제가 된 역사적 순간이다.     이로 인해 독립 이후 미국은 배심원 제도를 헌법적 권리로 보장하며 시민 참여형 사법 구조를 확고히 다지게된다.   미국 사법 제도는 이처럼 ‘사실’과 ‘법리’를 분리해 다루는 구조다. 1심 재판에서 배심원이 사실 관계를 확정하면, 항소심 법원은 새로운 증거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직 1심에서 법리가 제대로 적용되었는지, 법적 오류는 없었는지만을 엄격하게 검토한다.   시민이 사실 판단을, 판사가 법리 판단을 담당하는 이 구조는 미국 사법의 근간을 이루지만, 완벽한 것은 아니다. 배심원의 판단이 때로는 감정에 치우치거나 대중 심리에 휘둘려 논란을 낳기도 한다. 이에 대한 보완 장치로, 미국 법원은 극히 드물지만 판사가 배심원의 평결을 뒤집을 수 있는 권한(Judgment as a matter of law 또는 Judgment notwithstanding the verdict)을 부여하고 있다. ‘합리적인 배심원이라면 도저히 내릴 수 없는 결론’이라고 판단될 경우에 한해서다. 시민의 집단지성을 신뢰하지만, 그 한계를 제도적으로 견제하려는 시도인 셈이다.   한국과의 또 다른 큰 차이는 ‘이중(Dual) 사법 체계’, 즉 연방 법원과 주 법원이 병존한다는 점이다. 연방 헌법이나 연방법이 적용되는 사건, 또는 여러 주(州) 간 분쟁 등은 연방 법원의 관할이며, 대부분의 민형사 사건은 각 주 법원이 담당한다.   연방 법원은 크게 지방법원(District Court), 순회항소법원(Circuit Court), 대법원(Supreme Court)의 3심 구조로 이루어진다.     지방법원이 배심원 재판을 진행하는 1심이고, 순회항소법원과 대법원은 법리만을 심리한다. ‘Circuit’이라는 명칭은 과거 판사들이 말을 타고 관할 지역을 순회하며 재판했던 전통에서 유래했다.   주 법원의 구조와 명칭은 주마다 다르다. 가령 캘리포니아주의 1심 법원은 ‘Superior Court’인데, 뉴욕주의 경우 1심 법원 이름이 ‘Supreme Court’이고, 최종심 법원은 ‘Court of Appeals’다. 같은 이름이라도 주에 따라 역할이 전혀 다를 수 있다.   사법 제도는 정치 제도나 사회 규범처럼 그 시대의 가치와 철학을 담는다. 미국의 배심원 제도나 사실-법리 분리 구조는 시민 참여와 권력 견제를 중시하는 미국 민주주의의 역사적 산물이다.     하지만 어떤 시스템도 완벽할 수는 없다. 배심원 집단지성의 오판 가능성, 판사의 권위적 개입 우려, 복잡한 이중 시스템으로 인한 혼란 등 현실적인 문제점들이 상존한다.   중요한 것은 제도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과연 우리 사회에 최적의 사법 시스템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묻고 개선하려는 노력일 것이다. ‘완벽한 정의’는 이상에 가깝지만, ‘더 나은 사법’을 향한 성찰과 노력은 결코 멈춰서는 안 된다. 김한신 / 변호사니케의 저울 미국 한국 시민 참여형 사법 제도 사법 시스템

2025.05.19.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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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케의 저울] 법치의 의미와 그 역사적 발전

최근 대한민국은 헌정 사상 초유의 검사 출신 대통령 탄핵이라는 불행한 역사를 새롭게 기록했다. 정치적 입장을 떠나 한 국가의 최고 지도자가 헌법을 중대하게 위반하여 그 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는 사실은 대한민국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깊은 자괴감과 함께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게 한다.   탄핵 자체의 충격도 크지만, 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준수할 것으로 기대되었던 법조인 출신 대통령이 헌법을 위반했다는 사실은 국내는 물론 해외 한인들에게까지 큰 실망과 함께 깊은 우려를 안겨주었다. ‘공정과 상식’을 기치로 내걸고 국민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대통령이었기에, 이번 사태는 많은 이들에게 ‘법을 아는’ 지도자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했다.   이에 우리는 다시 한번 ‘법치’의 의미와 그 굴곡진 역사적 발전에 대해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   흔히 법치를 논할 때, ‘무법천지’를 운운하며 강력한 법 집행을 통해 사회 질서를 확립해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하곤 한다. 그러나 법치주의의 역사적 기원을 살펴보면, 이는 단순한 법 강요를 넘어선 개념임을 알 수 있다. 법치는 오히려 통치 권력의 자의적인 행사를 제한하고, 모든 개인이 법 앞에서 평등하다는 원칙을 확립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다.   법치 개념이 등장하기 이전 사회에서는 지배자들이 군사력과 같은 물리적 폭력을 독점하고 이를 자의적으로 행사하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하지만, 법치의 개념이 도입되면서 법은 권력자도 지배하며, 통치자도 법의 제약을 받아야 한다는 개념이 정착하게 됐다.   법 앞의 형식적 평등이라는 개념은 기원전 18세기 함무라비 법전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당시의 법은 여전히 왕이나 귀족의 권력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으며, 권력자는 법 위에 군림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법의 존재 자체가 아예 없는 사회보다는 진일보한 형태였음은 분명하다.   법치주의 발전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된 사건은 13세기 영국에서 발생했다. 1215년 제정된 마그나 카르타는 왕의 전횡을 제한하고 왕 또한 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원칙을 명문화함으로써, 권력자에 대한 법적 구속이라는 중요한 개념을 확립했다. 비록 현대적인 관점에서 보면 미흡한 점이 있을 수 있지만, 당시로서는 왕의 권력 행사를 법으로 제한한다는 발상 자체가 전례가 없던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17세기 계몽주의 사상가 존 로크는 자연권 이론과 사회계약설을 통해 정부의 존재 이유는 시민의 자유를 보호하는 데 있으며, 정부가 이를 위배할 경우 시민은 저항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몽테스키외는 그의 저서 ‘법의 정신(1748년)’에서 권력은 권력에 의해 견제되어야 하며, 법에 의한 지배만이 권력 남용을 막을 수 있다고 역설했다. 이는 현대 민주주의 국가의 근간을 이루는 삼권분립이라는 견제와 균형의 원리로 구체화되었다.   20세기 이후, 파시즘과 나치즘과 같은 전체주의와 독재 체제의 비극적인 역사를 반성하며 법치주의는 기본권 보장과 사회 정의 실현이라는 실질적 법치주의로 심화됐다. 법의 내용 자체가 정의롭고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조된 것이다.   우리는 흔히 법치를 국민이 국가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해야 하는 명령 체계로 오해하곤 한다. 그러나 진정한 법치는 오히려 권력자가 자의적으로 통치하지 못하도록 견제하는 시민의 방어 기제이자 자유의 보루로 이해해야 한다.     예를 들어 시민이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행사할 때, 국가가 이를 부당하게 억압한다면 법치는 ‘국가도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는 원칙을 통해 시민의 권리를 보호하는 방패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대통령은 그 권력을 행사하되, 국민의 편에서, 국가의 이익을 위해, 그리고 헌법적 질서 안에서 행사해야 하는 것이 법치주의의 핵심 가치이다. 법치주의는 단순히 국민에게 ‘법을 지켜라’ 혹은 ‘악법도 법이다’라며 맹목적인 복종을 강요하는 질서가 아니라, 통치자의 자의적인 지배를 막기 위해 오랜 역사 속에서 시민들이 끊임없이 만들어온 자유의 제도다.   최근 한국의 대통령 탄핵 사태를 통해 우리는 법치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한번 깊이 새기고, 권력의 주체이든 일반 시민이든 모든 구성원이 법 앞에 평등하다는 기본적인 원칙을 재확인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시민을 억압하고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법치가 아니라,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고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진정한 의미의 법치의 개념을 되새겨야 한다. 김한신 / 변호사니케의 저울 법치 의미 법치주의 발전 법치 개념 역사적 발전

2025.04.14.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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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케의 저울] 관세 전쟁사는 현재의 거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과 동시에 전 세계가 관세 전쟁에 돌입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캐나다, 멕시코, 중국에 대한 관세를 부과했고, 이에 맞서 3개국 역시 미국 제품에 보복 관세를 선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일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한국을 직접 언급하며 한국의 관세가 미국보다 네 배나 높다고 지적했고, 이로 인해 한국 역시 관세 정책의 영향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전통적인 동맹국조차 예외가 아닌 보호무역 강화 흐름 속에서, 주식 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으며 국제사회도 관세 전쟁이 초래할 결과에 대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관세를 둘러싼 논란과 갈등은 미국 역사에서 반복되어 온 주제다. 1773년 보스턴 차 사건은 영국 의회가 통과시킨 ‘차법(Tea Act)’으로 촉발되었다. 영국 동인도회사의 차에 특별 세금이 부과되자, 미국 식민지인들은 “대표 없는 과세(No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라는 구호를 내걸며 영국이 자신들의 의회 동의없이 세금을 부과하는 것에 강하게 반발했다. 결국 1773년 12월 16일 보스턴 시민들이 동인도회사의 차 상자들을 바다에 던지는 사건이 발생했고, 이는 미국 독립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초기 미국 정부는 관세를 주요 세수원으로 활용했다. 당시 연방 정부 수입의 90% 이상이 관세에서 나왔으며, 동시에 영국과 프랑스 등의 선진국으로부터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역할도 수행했다. 노예제 폐지가 주요 이슈로 기억되는 남북전쟁에서도 관세 정책은 중요한 갈등 요소였다. 농업 중심의 남부는 자유무역을 지지한 반면, 공업이 발달한 북부는 유럽산 제품으로부터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높은 관세를 원했다. 전쟁이 북부의 승리로 끝나면서 미국의 보호무역 기조는 더욱 강화되었다.     이후 1890년 맥킨리 관세법과 1930년 스무트-홀리 관세법이 시행되었지만, 이로 인해 각국이 보복 관세를 부과하면서 세계 무역이 위축되었고, 소비자 물가 상승 등 경제적 부작용이 심화되었다. 특히 1930년대 대공황 당시 보호무역 강화는 경제 회복을 지연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초강대국으로 부상하면서 ‘GATT 체제’로 대표되는 자유무역의 시대가 열렸다. 1947년 체결된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는 최근까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 경제질서의 기본 틀이 되었다. 이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다양한 무역협정을 통해 자유무역 기조가 확대되었다.   그러나 트럼프 집권 1기 당시인 2017년부터 보호무역으로의 회귀 움직임이 본격화되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중국산 제품에 대한 25% 이상의 고율 관세 부과로 촉발된 미·중 무역전쟁이다. 트럼프의 집권 2기에는 전통적인 우방들도 가리지 않는, 더욱 확실한 보호무역 강화가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관세 부과 권한은 원칙적으로 의회에 있다. 미국 헌법 제1조 8항에 따르면 의회가 무역 및 관세 관련 입법 권한을 갖지만, 국가안보나 외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에 대응하는 특별한 경우에는 대통령이 관세를 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최근에는 오히려 이러한 대통령의 예외적 권한이 일반화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2기에서는 의회의 견제를 받지 않고 행정명령을 통한 관세 정책이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   관세로 촉발된 미국독립전쟁을 통해 탄생한 미국이라는 나라가 보호무역과 자유무역을 오가는 역사적 경로를 살펴보는 것은 트럼프 행정부 시대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거울의 역할을 한다.   특히 2차 대전 직전 강력한 보호무역 정책이 경제에 미친 영향을 다시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유무역을 주도하며 세계 경제 질서를 구축한 만큼, 보호무역으로의 회귀가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을 스스로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이다. 김한신 / 변호사니케의 저울 전쟁사 관세 보호무역 강화 홀리 관세법 보호무역 기조

2025.03.12. 20:09

[니케의 저울] 수정헌법 14조의 역사적 역설

최근 한국의 정치 사회적 갈등 상황이 내전에 가깝다는 우려까지 제기될 만큼 양극으로 치닫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에서도 내전이 있었고 그 상처는 아주 깊고 오래 지속되었다. 어쩌면 오늘날에도 그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흔히 ‘남북전쟁’이라고 불리는 노예제를 지키려는 남부와 이를 철폐하려는 북부간의 4년간의 전쟁, 그리고 링컨 대통령의 노예 해방령으로 기록되는 그 역사가 내전(U.S. Civil War)이었다.     그 상처는 아주 깊었다. 75년 전 발발한 동족 간의 전쟁을 경험한 한국인들의 입장에서 내전의 아픔과 긴 후유증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전쟁에는 패했지만 흑인들에게 동등한 시민의 권리를 부여할 수 없다고 저항하는 남부에서는 ‘흑인차별법’ (Black Codes)을 제정하여 흑인들의 재산권과 투표권을 제한하였다. 이에 연방정부가 소위 ‘재건 수정헌법(Reconstruction Amendments)’을 채택하기에 이른다.     수정헌법 13조는 노예제 폐지, 14조는 미국에서 태어난 모든 사람에게 시민권을 주고, 15조는 모든 시민의 투표권을 보장하는 헌법 개정안들이다. 이 수정헌법으로 인해 해방된 흑인 노예들도 법적으로 미국 시민권을 부여받게 되었다.   소위 ‘속지주의’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한 이 수정헌법 14조가 또 한 번 큰 격랑을 거치게 되는데, 아시안아메리칸이 사건의 중심이었던 1898년의 ‘웅 킴 아크 재판’ (U.S. v. Wong Kim Ark)이다.   1873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중국인 가정에서 태어난 웅 킴 아크가 21세 되던 1894년 중국을 방문하고 미국으로 귀국할 때 미국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입국이 거절된 사건이었다.   당시 미국 정부는 웅 킴 아크가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부모가 중국 국적이어서 미국인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연방대법원은 수정헌법 14조에 의해 미국내 출생한 사람은 부모의 국적과 무관하게 미국 시민이라고 판결했다. 이 연방대법원의 판결이 아니었다면, 대부분의 한인들도 미국 시민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수정헌법 14조가 다시 소환되어 미국의 뜨거운 화두가 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과 동시에 내린 여러 가지 행정명령(Executive Order) 중 하나가 미국 시민 혹은 영주권자가 아닌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가 아니라면 미국 시민권을 부여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이는 수정헌법 14조는 물론 연방대법원 판례와 상충하는 것으로 보여 큰 사회적 파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을 필두로 한 강경파 공화당들이 주장하는 행정명령의 근거는 수정헌법 14조에 포함된 미국 관할권에 속하는지(Subject to the Jurisdiction There of)에 대해 해석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가령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미국 법의 관할권에 속하지 않는 외교관의 자녀는 시민권을 부여하지 않고 있다. 마찬가지로 서류미비자나(합법 체류라 하더라도) 학생 비자, 취업 비자 소지자등의 비영주권자 외국인들은 미국 법의 관할권에 완전히 귀속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의 자녀에게 시민권을 부여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수정헌법 14조가 보호하려고 했던 의도는 해방된 흑인 노예지 외국인이 아니라거나, 이민법을 관장할 권리가 전적으로 행정부에 있다는 논리 등이 트럼프 대통령 측의 법적 근거가 되고 있다.   다수의 헌법학자들에 따르면 이러한 논리들은 ‘웅 킴 아크 사건’의 대법원 해석과 직접적으로 상충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연방대법원은 이미 부모의 국적과 상관없이 미국 내 출생자는 미국인이라고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행정명령에 반대하는 수많은 주들이 연방법원에 위헌 소송을 제기했다.고 이미 워싱턴주 시애틀 소재 연방지방법원에서 이 행정명령의 효력을 일시 정지시키는 판결을 낸 바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연방대법원까지 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 현재 연방대법관들 대부분이 공화당 대통령들이 임명한 점을 고려할 때 궁극적 결과를 예측하기는 어렵다.   내전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수정헌법 14조가 오늘날 사회를 갈라 놓은 논쟁 대상이 되었다는 점은 역설적이다. 또한 수정헌법 14조를 강력히 채택했던 주체가 당시 공화당 강경파였고, 2025년에 수정헌법 14조를 제한하려는 주체가 트럼프 대통령을 필두로 한 공화당 강경파라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김한신 / 변호사니케의 저울 수정헌법 역사 재건 수정헌법 수정헌법 14조 수정헌법 13조

2025.02.06.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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