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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케의 저울] 트럼프 대 뉴섬, 미국 헌정사의 분기점

Los Angeles

2025.06.18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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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신 변호사

김한신 변호사

다른 나라들에 비해 미국의 특이한 정치제도 중 하나는 ‘연방주의(Federalism)’다.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권한을 분리하여 각자의 고유한 역할을 수행하는 이 독특한 체제는, 미국 독립 당시부터 헌법에 새겨진 정치 철학이다.  
 
독립 이전 영국과의 갈등은 단순한 세금 문제를 넘어서 ‘누가 통치권을 갖는가’의 문제였고, 독립 이후 제정된 미국 헌법은 군주제와 다른 권력 분산을 그 핵심 원리로 삼았다.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경계했던 바도, 강력한 중앙집권보다는 분산된 권력이 더 자유롭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든다는 신념이었다. 따라서 미국은 지금도 연방정부가 모든 권한을 독점하지 않으며, 교육, 치안 등 많은 영역은 주정부가 담당한다.
 
하지만 이런 이념적 구조는 종종 실제 정치 현장에서 충돌을 일으켜 왔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간에 벌어지고 있는 법적 갈등도 그 중 하나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충돌이 아니라, 미국 헌법 질서와 권력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사건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LA 시내 시위에 대응한다는 명목으로 병력을 배치하고 캘리포니아주 방위군(National Guard)의 지휘권을 연방정부로 이전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뉴섬 주지사는 연방정부가 주정부의 동의없이 주 방위군을 연방화하는 것은 위헌이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의 첫 번째 핵심은 1807년에 제정된 ‘반란법(Insurrection Act)’에 대한 해석이다. 반란법은 연방정부가 주정부의 요청 없이도 군 병력을 동원할 수 있도록 허용하지만, ‘반란, 폭동, 또는 법의 집행이 불가능한 상황’으로 한정된다.  
 
뉴섬 주지사는 시위가 대체로 평화적이었고, 법 집행도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며, 트럼프의 행위는 초법적 조치라고 주장했다. 일단 연방법원도 이에 동의했다. 연방법원은 대통령의 조치는 법률이 허용한 범위를 벗어난 것이며, 연방정부는 주정부의 고유 권한을 침해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반란법의 적용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두 번째 쟁점은 연방헌법 ‘수정헌법 제10조(Tenth Amendment)’다. 이 조항은 연방정부에 명시적으로 부여되지 않은 권한은 모두 주 정부 또는 국민에게 귀속된다고 규정하고, 이는 연방정부의 권한 남용을 막는 헌법적 근거가 된다. 캘리포니아주는 대통령이 주 방위군을 연방화한 것은 주의 치안과 군사 운영에 대한 자율성을 침해한 것이며, 특히 사전 협의조차 없이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군사력을 행사한 점은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세 번째 쟁점은 1878년에 제정된 ‘포시 코미터스 법 (Posse Comitatus Act)’이다. 이 법은 연방군이 국내 민간 치안 업무에 개입하는 것을 금지한다. 이 법의 본질은 군대가 시민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사용돼서는 안 된다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반영한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군대를 LA 지역에 배치했고, 이들 병력이 민간 시위대를 제지하는 데 개입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명백한 위법 소지가 제기되었다. 정부 측은 군대는 단지 연방 자산을 보호하기 위한 배치라고 주장했지만, 현장 영상과 증언은 군 병력이 사실상 치안 유지에 나섰음을 보여준다.
 
이 사건은 단순한 정치적 충돌을 넘어, 미국 헌법상 연방정부 권한의 경계를 시험하는 중대한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뉴섬 주지사는 대통령도 헌법 위에 있지 않다며 연방지방법원 승소 이후 연설에서 “우리는 군사력보다 법의 힘을 믿는 나라”라고 강조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즉각 항소했고,  고등법원에서는 일단 대통령의 손을 들어준 상태다.
 
미국의 역사에서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갈등은 낯선 일이 아니다. 남북전쟁도 연방정부와 주정부간 주도권을 둘러싼 싸움이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연방주의의 원칙상 연방정부와 주정부간 권력 한계에 대한 중요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연방주의는 역사 속에 박제된 유물이 아니라 여전히 미국 민주주의 현실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김한신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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