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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방된 아빠, 남겨진 가족…생이별의 고통

멕시코 유카탄주 키니 - 6월의 한 무더운 밤, 예수스 크루즈는 마침내 자신이 17살까지 살았던 작은 고향 마을 키니로 돌아왔다. 수십 년 만의 귀향이었다.   누이는 눈물 어린 포옹으로 그를 맞았다. 다음 날, 그는 병든 어머니를 찾았다. 어머니는 그의 귀에 속삭였다. “네가 다시 돌아올 줄은 몰랐다.”   하지만 그는 집에 온 듯하면서도 집으로 돌아온 것이 아니었다.   그가 사랑하던 모든 것은 3000마일 떨어진 미국 남가주에 남겨져 있었다. 이민 단속 요원들이 세차장을 급습해 그에게 수갑을 채워 끌고 가기 전까지 33년 동안 살았던 곳이다.   크루즈는 친구들과 작은 흰 개 ‘부카’를 그리워했다. 집도, 차도, 직장도 모두 잃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아내 노에미 시아우와 네 자녀를 간절히 그리워했다. 시아우는 야간 근무를 했고, 크루즈는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며 학교와 음악학원에 데려다 주는 일을 도맡았다. 혼잡하고 힘든 일상이었지만 그는 그것을 사랑했다. “아이들이 더 나은 삶을 살길 원했다. 내가 살았던 삶이 아닌, 더 나은 삶을.”   그러나 이제 그는 멕시코에서 홀로, 처가 소유의 빈집에 살고 있었다. 그는 영주권자인 아내와 함께 불가능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아내와 아이들이 멕시코로 와야 할까, 아니면 미국 잉글우드에 남아야 할까.   두 사람 모두 국경 때문에 가족이 찢어진 경험이 있었다. 그 고통을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몇 달간 아이들은 힘들어했다. 16살 장녀 델레이니는 잠을 거의 이루지 못했고, 가장 사랑하던 피아노 연주도 멈췄다. 5살 막내 가브리엘은 문제 행동을 보였다. 14살 에스테르와 10살 안헬 역시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네 명의 미국 시민권자 아이들을 멕시코로 데려오는 것도 공정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스페인어를 하지 못했고, 키니의 학교는 미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했다. 델레이니는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었고, UC계 대학과 하버드 로스쿨 진학을 꿈꾸고 있었다.   경제적 문제도 컸다. 세차장에서 그는 하루 220달러를 벌었다. 그러나 키니의 일용직 노동자 하루 품삯은 8달러에 불과했다. 시아우는 LA 국제공항에서 국제 항공사의 화물 영업을 담당하는 안정적인 직장을 갖고 있었다. 그 일을 포기한다는 것은 무모했다.   시아우는 남편을 안고 싶었다. 온 가족이 멕시코에 모여 사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8월 초, 그녀는 아이들과 함께 불쑥 크루즈를 찾아왔다.   키니는 메리다에서 차로 한 시간가량 떨어진 울창한 열대림 속에 있다. 크루즈는 이곳에서 스페인어와 마야어를 쓰며 초가집에서 자랐다. 부모는 너무 가난해 신발조차 사주지 못했고, 그는 어린 나이에 학교를 그만두고 아버지와 함께 소를 키우고 농삿일을 거들었다. 17살 때 미국으로 향하는 청년 무리에 합류했다.   1992년, 로드니 킹 사건으로 격렬한 시위가 벌어지던 시기에 그는 LA 잉글우드에 도착했다. 친척이 살던 초록색 스투코 아파트 단지는 키니 출신 이민자들의 보금자리가 되었고, 그는 그곳에서 안정을 찾았다. 그곳에서 그는 노에미 시아우를 만나 결혼했다. 그녀는 어린 시절 부모를 따라 미국에 건너와 레이건 대통령의 사면 정책 덕에 합법 신분을 얻었다.   네 아이가 태어나자 가족은 소박한 전통을 만들었다. 아이가 우등상을 받으면 데이브앤버스터스에서 축하했고, 여름마다 디즈니랜드를 찾았다. 주말이면 멕시코 음식점 카사 감비노에서 저녁을 함께했고, 금요일 밤에는 조부모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부부만의 데이트를 즐겼다.   미국에 합법적으로 머물 수 있는 길도 있었다. 네 아이가 모두 미국 시민권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변호사들은 멕시코에서 신청해야 하고 수년이 걸릴 수 있다고 했다. 아이들을 떠나고 싶지 않았던 그는 그대로 머물렀다.   지난해 가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며 ‘대규모 추방’을 공언했다. 크루즈는 걱정하지 않으려 했다. 범죄 기록이 없는 자신은 안전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번 정부의 단속은 달랐다.   지난 6월 8일, 복면을 한 이민 단속 요원들이 웨스트체스터 세차장을 급습했다. 크루즈는 순찰차에 강제로 밀쳐 넣어졌고, 손목은 심하게 졸라매져 온몸에 멍이 들었고 어깨를 다쳤다. 그는 변호사나 가족과 연락할 기회도 거부당한 채 엘파소 구치소로 이송됐다. 결국 그는 안경이 없어 글을 읽지도 못한 채 ‘자진 출국’ 서류에 서명했다.   수십 년 만에 돌아온 키니는 달라져 있었다. 미국에서 돌아온 사람들이 지은 호화 주택이 늘어섰고, 낯선 젊은이들이 그를 호기심과 경계의 눈으로 바라봤다. 그는 소박한 농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새벽이면 자전거를 타고 나가 잡초를 뽑고 소를 돌봤다. 오랜 도시 생활 끝에 맞이한 고향의 고요함은 낯설면서도 익숙했다.   무엇보다 어머니와 함께할 수 있었다. 다발성경화증을 앓는 어머니는 어떤 날은 대화를 나눴고, 어떤 날은 침묵 속에 함께 앉아 있었다. 그는 매일 밤 아이들과 통화하며 멀리서라도 아버지 역할을 하려 했다. 그러나 딸 델레이니가 더 이상 피아노를 치지 않는다는 소식은 그를 아프게 했다.   8월, 아내와 아이들이 멕시코에 도착했을 때 그는 공항으로 달려갔다. 온 가족이 피자를 먹으며 웃고 울었다. 막내 가브리엘은 처음 만나는 사촌들과 비를 맞으며 놀았고, 델레이니는 오랜만에 깊은 잠에 빠졌다. 시아우는 “마침내 행복한 가족이 된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곧 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현실이 그들을 짓눌렀다.   키니의 축제 현장에서 함께 소를 구경하며 웃고, 밤에는 함께 춤을 추었지만 떠날 날은 다가왔다. 마지막 밤, 부부는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미래를 고민했다. 미국으로 돌아가기 위한 소송을 제기했지만, 언제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었다.   출국 날, 크루즈는 가족을 공항까지 배웅하지 않았다. 이별의 고통을 견딜 자신이 없었다. 막내 가브리엘은 아버지를 끌어안고 울며 말했다.   “사랑해요, 아빠.”   “괜찮아, 아가. 나도 사랑해.”   그날 오후, 그는 혼자 키니의 거리를 걸었다. 축제의 흔적은 사라지고 노동자들이 땀을 흘리며 시설을 철거하고 있었다. 며칠 전 딸의 생일을 떠올렸다. 디즈니랜드에서 치러졌어야 할 파티 대신, 키니의 집에서 마리아치 밴드가 부른 노래에 맞춰 딸과 춤을 추었다.   “너는 내 태양, 내 평온, 내 삶, 내 영원한 사랑.”   ━       원문은 LA타임스 8월28일자 “A wrenching decision for a family torn apart” 기사입니다.   글=케이트 린시컴미국 생이별 막내 가브리엘 장녀 델레이니 아내 노에미

2025.09.03.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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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생이별…박세준씨 돕자…법적 비용 마련에 지인들 청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 정책 강화로 자진 출국을 선택한 미 육군 출신의 한인 영주권자 박세준(55)씨를 돕기 위해 지인들이 도움을 호소하고 나섰다.   온라인 모금 사이트인 고펀드미(Go Fund Me)에는 지난 28일 ‘퍼플 하트 훈장을 받은 박세준을 집으로 데려오자’는 내용의 청원글이 올라왔다. 이 글은 박씨의 40년 지기인 테리 라폰테가 게재했다.   라폰테는 “그는 과거 실수를 인정하고 이후 14년간 정직하게 살아왔다”며 “변호사 비용을 마련해서 그를 미국으로 데려오는 데 도움을 줬으면 한다”고 전했다.   그는 청원글을 통해 “변호사 비용 지원으로 기부된 모든 기금은 박 씨의 법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쓰일 것이며, 목표액을 초과한다면 이는 참전 용사와 이민자 법률 지원 단체에 기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29일 현재 이 청원에는 총 16명이 기부, 총 1612달러가 모였다. 목표 금액은 5만 달러다.   박씨는 현재 하와이에 사는 가족들과 홀로 떨어져 서울에 머물고 있다. 한국어가 서툴러 적응에 어려움까지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기부는 고펀드미 웹사이트(www.gofundme.com/f/bring-our-hero-sae-joon-park-home)를 통해 가능하다. 송윤서 기자생이별 박세준 법적 비용 지인들 청원 변호사 비용

2025.07.29.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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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추방으로 생이별하는 아동 보호”

오렌지카운티 수퍼바이저위원회가 불법 체류 중인 부모가 추방될 경우, 남게 될 아동들을 보호하겠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했다.   수퍼바이저위원회는 지난 11일 정기 회의에서 결의안을 찬성 3표, 반대 2표로 가결했다.     온라인 보도매체 보이스오브 OC의 12일 보도에 따르면 결의안 통과를 주도한 비센테 사미엔토 수퍼바이저는 연방 정부의 이민법 집행 강화에 따라 향후 부모와 생이별하는 아동이 늘어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원인 사미엔토, 덕 채피 수퍼바이저는 OC 소셜 서비스국에 부모가 추방되더라도 자녀가 위탁 양육(Foster Care) 시스템에 들어가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방법과 위탁 양육 시스템에 속할 경우, 카운티 정부에 발생할 수 있는 비용을 검토할 것을 요청했다.   공화당원인 돈 와그너, 재닛 우엔 수퍼바이저는 결의안에 반대했다. 이들은 지난 10년간 OC에서 부모가 추방돼 위탁 양육 가정의 보호를 받는 아동이 단 한 명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와그너 수퍼바이저는 “부모가 체포돼 자녀를 돌볼 수 없게 되는 일은 자주 발생한다”고 말했다.   찬반이 팽팽히 맞선 가운데 캐스팅 보트를 행사한 민주당 소속 카트리나 폴리 수퍼바이저는 “부모들은 자녀가 위탁 양육 가정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수퍼바이저위원회는 홀로 남게 될 아동을 돌볼 성인을 지정하는 방법으로 보호자 허가 선서 진술서(Caregiver Authorization Affidavit) 또는 공식 보호자(Official Guardianship) 지정, 두 가지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안 트랜 소셜서비스 국장은 부모가 모두 추방될 경우, 아동의 친척을 찾아 보호자로 지정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실패하면 오렌지우드의 보호 시설에 수용하고 위탁 양육을 포함한 다른 대안을 모색한다고 밝혔다.   카운티 정부 변호사 니콜 월시는 선서 진술서 작성이 더 쉽지만, 공식 보호자 지정이 아동에게 더 많은 보호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월시는 “보호자 선서 진술서를 통해 아동을 학교에 보내고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다른 결정도 대신 내릴 수 있지만, 공식적인 법적 보호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다른 대안이 없다면 보호자 선서 진술서라도 있는 것이 낫다고 설명했다.   카트리나 폴리 수퍼바이저는 부모 중 최소 1명이 불법 체류자인 OC 아동이 약 2만5000명에 달한다면서 보호자 선서 진술보다 법원이 관할하는 공식 보호자 지정이 아동 보호에 효과적이란 정보를 주민에게 충분히 전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방 센서스국에 따르면 OC엔 96만7000명의 외국 태생 거주자가 거주하며, 이는 전체 카운티 주민 중 약 3분의 1에 해당한다.   이민정책연구소는 OC의 불법 이민자를 약 23만6000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사미엔토 수퍼바이저는 회의에서 많은 교육구 관계자가 추방 가능성이 있는 부모를 둔 학생들을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 미성년 자녀가 부모와 이별해야 하는 상황이 카운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고 전했다. 이어 추방에 따른 이별이 없다면 가장 좋겠지만, 그런 일이 발생할 경우 수용 능력, 자원, 인력 등에 대한 모든 질문에 관해 답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임상환 기자생이별 부모 공식 보호자 오렌지카운티 수퍼바이저위원회 보호자 허가

2025.03.1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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