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최신기사

'아돌프 히틀러' 아기 이름 놓고 정부-부모 양육권 다툼

아들 이름을 '히틀러'로 지은 부부〈본지 18일자 A-8면>가 정부와 양육권 다툼을 벌이게 됐다. 뉴저지주 홀란드타운십 반 길슨 경찰서장은 13일 3살 난 남자 아기 '아돌프 히틀러 캠벨'이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들에 의해 집에서 격리 조치됐다고 밝혔다. 아돌프의 여동생인 2살 조이스린 아리안 네이션 캠벨과 1살 혼츨린 힌러 지니 캠벨도 함께 격리됐다. 길슨 서장은 이들 아기가 불확실한 이유로 격리 조치됐으며 15일 현지 법정에서 아기들의 거취를 결정하기 위한 청문회가 열린다고 덧붙였다. 뉴저지 청소년ㆍ가정 관련 당국자는 이에 대해 언급을 거부했으나 이름 만을 문제 삼아 아기들을 격리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아리안 네이션은 미국에서 활동하는 백인 우월주의 단체이며 힌러는 히틀러 친위대장이었던 하인리히 힘러와 비슷하다.

2009.01.15. 19:47

'내 아들 이름은 아돌프 히틀러' 마켓서 생일케이크에 이름 쓰기 거부

뉴저지주에 사는 한 부부가 동네 수퍼마켓에 아들의 생일 케이크를 주문하려다 거절당했다. 이유는 올해 3살되는 그 남자아이의 이름이 아돌프 히틀러였기 때문. 그리니치에 있는 샵라이트란 이름의 마켓은 "우리가 부적절하다고 생각하는 문구를 케이크에 적지 않을 권리가 있다"면서 "해피 버스데이 아돌프 히틀러는 부적절한 문구"라고 주장했다. 아돌프의 아빠 히스 캠벨은 "나는 그 이름을 좋아하고 이세상 어느누구도 갖지 않는 이름이기 때문에 그 이름을 지었다"고 설명했다. 신복례 기자

2008.12.17. 19:35

[오늘은…] 히틀러 자살

1945년 오늘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가 자신이 일하던 총통관저에서 권총 자살했다. 히틀러는 1914년 제1차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독일군에 입대한 후로 주로 선전활동했으며 제대후엔 나치 운동에 전념했다. 1921년 당의 총서기가 되어 실권을 장악하였으며 베르사유조약의 폐기 유대인 배척 바이마르 공화제 반대 등을 주장하여 일반 민중의 지지를 얻었고 1933년 1월 독일 총리에 임명됐다. 그는 유태인 말살정책을 고집하여 수백만의 무고한 유태인을 학살했다. 그의 시신은 러시아군에 의해 화장된 후 추모행사를 막기위해 여기저기로 옮겨지다 결국 1970년 구소련 정부가 강에 내다 버린 것으로 알려졌다.

2008.04.29. 19:01

'히틀러 광고' 논란 가열…제작사 '문제단어 삭제' 유대계 '눈가리고 아웅'

〈속보> '히틀러'가 똑똑하다는 것을 암시하는 광고로 유대계 커뮤니티의 항의를 받고 있는 코리아나 화장품 광고에 대한 논란이 좀처럼 식지 않을 전망이다. 코리아나 화장품 광고 대행사 (주)코래드는 7일 본지에 보내온 해명자료에서 "문제의 동영상과 이미지는 시사용으로 제작했던 광고물"이라며 "히틀러에 대한 일부 언급이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판단에 단어를 삭제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유대계 커뮤니티에서는 화면에 내보이는 카피문구에서만 '히틀러' 라는 단어가 빠졌을 뿐 독일장교복이나 음악 등 컨셉은 그대로 유지한채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며 이는 '눈가리고 아웅'식이라고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이번 광고의 문제점을 지적한 전국 유대교 단체인 사이먼 윈센털 센터는 이날 워싱턴D.C.에 있는 주한미국대사관과 LA총영사관에 항의서를 발송했다. 사이먼 윈센털 센터의 랍비 아브라함 쿠퍼는 "유튜브에서 동영상이 삭제된 걸 알고있다. 하지만 히틀러라는 단어만 빠졌다고 현재 내보내고 있는 광고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며 "2차 세계 대전의 독일장교를 상징하는 광고를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코래드사는 "광고 제품의 특징을 극대화하기 위해 독일 여군의 이미지를 형상화해 광고를 제작했다"며 "나치나 히틀러를 연상시키기 위한 의도와는 무관하다"고 강조했다. 코래드사는 또 "제작의 의도와 달리 이번 문제를 이슈화 하는 것은 건전한 기업 활동을 위한 광고 표현의 자유에 대해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중대한 문제로 생각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장연화 기자

2008.04.07. 19:59

유대계 '히틀러 광고'에 발끈…'한국 회사가 역사 왜곡…'

한국 유명 화장품 회사가 히틀러를 이용한 광고를 상영해 미국 유대계 커뮤니티가 항의하고 나섰다. 문제의 광고는 코리아나사의 녹두 제품 광고로 독일 장교복과 모자를 쓰고 있는 배우 박진희가 모델로 등장한다. 유대계 커뮤니티에 따르면 이 광고 중간에 마치 히틀러가 똑똑하다는 것을 암시하는 듯한 뉘앙스의 문구가 삽입돼 있다는 것. 유대계 커뮤니티는 이에 따라 한국의 코리아나 본사와 한인 커뮤니티에 즉각 항의 성명서를 보내는 한편 광고중단을 요구했다. 성명서를 발송한 사이먼 윈센털센터의 랍비 아브라함 쿠퍼는 "화장품 광고라고 하지만 문구나 광고 내용이 히틀러를 천재로 암시하고 있다"며 "이같은 광고 내용은 유대인 역사와 문화를 무시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동맹국이 일본이었고 그 일본의 만행으로 한국의 역사도 힘들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역사를 아는 한국인들이 그런 내용의 광고를 내보냈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랍비 쿠퍼는 "코리아나사는 아시아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고 들었다. 이런 광고가 인터넷이나 TV를 통해 전 세계에 알려진다면 회사 이미지에도 치명타를 줄 것"이라며 즉각적인 광고 중단을 요구했다. 한편 이번 항의와 관련 LA 코리아나사 총판의 줄리아나 윤 부사장은 "한국에서 제작된 광고는 초상권 등의 이유로 미국에서 사용할 수 없게 돼 있다"고 말했다. 장연화 기자

2008.04.06. 20:02

썸네일

히틀러가 군수품업자?…청소년 역사상식 '위험 수위'

뉴욕 타임스(NYT)는 27일 교양과목 교육 강화를 요구하는 단체인 '커먼 코어'가 17세 청소년 1200명을 상대로 전화 조사한 결과 미국의 남북 전쟁이 언제였는지를 모르는 학생이 절반을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또 응답자의 25%는 1492년인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이 1750년 이후로 잘못 알고 있었고 나치 독일을 이끈 아돌프 히틀러를 군수품업자나 오스트리아 총리 독일 황제로 알고 있는 학생도 25% 가량 됐다. 반면 "나는 꿈이 있다"고 천명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묻은 것에는 마틴 루터 킹 목사라고 답한 응답자가 97%에 달해 가장 쉬운 질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신문은 10대들의 문학에 대한 무지는 더욱 심각한 수준이라면서 남부에서 성장해 할렘으로 이주한 젊은이에 관한 소설인 '보이지 않는 인간'의 저자인 랄프 엘리슨을 제대로 답한 10대는 10명중 4명에 불과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조사의 질문은 1986년 정부 주관으로 치러진 시험에서 뽑은 것으로 커먼 코어는 10대들의 상당수가 역사와 문학에 관해 '기절할 정도의 무지' 속에 살고 있음을 이번 조사결과가 보여주고 있다고 밝혔다. 봉화식 기자

2008.02.27. 18:21

히틀러의 '잃어버린 잠수함대' 터키 앞바다서 발견돼

제2차 세계대전 기간 흑해에서 수십척의 배를 침몰시킨 독일 잠수함 3척이 '실종'된 지 60여년만에 터키 앞바다에서 발견됐다. 4일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인터넷판에 따르면 터키의 해양 전문가인 셀추크 콜라이 팀이 문제의 잠수함들을 발견, 이번 주 영국 플리머스에서 열리는 해양고고학회에 발표할 예정이다. 콜라이는 독일 유보트(U-BOAT)인 U-20과 U-23이 터키 아그바 항 앞바다 해저에, U-19이 종굴다크 항 앞바다 밑바닥에 각각 위치해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는 이미 잠수작업을 통해 U-20이 아그바 항에서 약 3㎞ 떨어진 수역에서 깊이 25m 위치에 침몰해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한 아그바 항에서 5㎞ 떨어진 해역에서 깊이 50m 되는 곳에 U-23가 위치해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악천후로 인해 잠수를 통한 확인 절차를 미루고 있는 상태다. 콜라이는 종굴다크 항에서 약 5㎞ 떨어진 해역에서 깊이 500m 쯤 되는 곳에 U-19이 '잠들어'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는 U-23의 함장이었던 루돌프 아렌트(85)를 비롯한 생존 선원 등에 대한 면담과 해저에 대한 음파탐지기 조사결과 및 독일의 문건기록 조사 등을 통해 지난 60년 동안 미스터리로 있었던 이 배들의 위치를 확인한 것. 문제의 유보트 3척은 지난 1944년 8월 흑해 수역에서 승무원들에 의해 배에 구멍이 뚫려 침몰됐으며 함장 등 승무원들은 독일 본토로 복귀를 시도했으나 당시 중립을 지키다 연합군편에 가담한 터키에 의해 모두 붙잡혔다. 독일군 상부는 유보트들이 루마니아 콘스탄차항을 기지로 작전을 펴왔으나 루마니아가 돌연 연합군편으로 돌아서자 더이상 함대를 존속시키지 못하고 승무원들에게 배를 스스로 침몰시켜 역사의 미스터리로 남도록 지시했던 것. 모두 6척으로 구성된 소함대는 약 2년동안의 작전 끝에 수십척의 배를 침몰시키는 과정에서 3척을 잃어 3척만이 남아 있었다. 앞서 독일은 지난 1941년 러시아 침공을 결정하면서 러시아 선박들을 공격하기 위해 발트해에 있던 일부 잠수함들을 루마니아 콘스탄차로 이동시켰다. 무려 3천㎞가 넘는 긴 여정이었다. 독일은 발트해에 위치한 킬 항에서 잠수함들을 해체해 드레스덴, 바이에른주의 잉골슈타트를 거쳐 다뉴브강을 통해 콘스탄차로 옮긴 뒤 현지에서 재조립했다. 이 가운데 U-23은 제2차 대전 기간 독일 잠수함 함장 중 가장 많은 전공을 올려 최고로 평가되는 오토 크레취머에 의해 한 때 운용되기도 했다. (연합뉴스)

2008.02.04. 11:44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