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 캘리포니아에서 한 여성이 자신의 테슬라 차량에서 반려견을 도난당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플라자 앳 푸엔테 힐스(Plaza at Puente Hills) 주차장에서 발생했다. 피해자 조요 주오(Zoyo Zuo)는 차량에 테슬라의 '도그 모드(Dog Mode)'를 설정해 반려견 레몬(Lemon)을 차 안에 둔 채 잠시 자리를 비웠다. 도그 모드는 차 안 온도를 쾌적하게 유지하며, 외부 디스플레이에 “곧 돌아오겠습니다”라는 메시지를 표시하는 기능이다. 감시카메라 영상에는 용의자가 차량을 세 차례나 접근한 후, 창문을 깨고 내부로 진입해 11살 된 요크셔테리어 레몬을 납치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차량 내 테슬라 보안 카메라에는 용의자의 얼굴이 더 선명하게 포착됐다. 레몬은 현재 심장 질환을 앓고 있으며 약물 치료가 필요한 상태다. 조요는 즉시 경찰에 신고했으며, 레몬의 무사 귀환을 위해 2,000달러의 현상금을 걸었다. AI 생성 기사테슬라 악몽 테슬라 차량 테슬라 보안 요크셔테리어 레몬
2025.04.30. 16:20
환갑이 지난 지도 몇 년이나 지났고 메디케어를 받기 시작한 66세 인데도 간혹 가다가 꿈 속에서 꾸고 싶지 않은 꿈을 꾸는 이유는 무엇인가. 물론 시니어가 됐다고 꿈을 아예 꾸지 않는 것은 아니다. 상식적으로 누구든 꿈을 꾸지만 대부분 잠에 깨면서 잊는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유독 몇 가지 꿈은 기억에서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나만 그런가. 어느 날 한창 잠을 자는데 한기가 느껴진다. 춥다. 그래서 잠에서 깼다. 그런데 여기가 어디지? 딱딱한 바닥에 모포 위에 내가 있고 뒤에는 관물대가 있다. "아니 여긴 내무반이잖아." 군대를 다녀온 지도 수 십년이 지났는데 이런 꿈을 꾸는 대한민국의 남성들이 많다. 다행인 것은 이런 꿈은 미국에 오면서, 혹은 시간이 많이 지나서 꾸지 않는 경우가 많다. 깨어나 보니 아직도 군대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이것은 군대를 다녀 오지 않았던 사람들도 쉽게 짐작할만한 내용이다. 심지어 타임슬립(시간을 거꾸로 돌아가는) 드라마에서 조차 군대를 다시 가야한다는 것에 좌절하는 남성이 그려진다. 미국인들은 한국식 군대 꿈은 꾸지 않지만 다른 종류의 꿈을 꾼다. 대학 캠퍼스에 있는 나는 급하게 시험을 보기 위해서 강의실에 들어간다. 그리고 시험을 끝내고 나오는데 아무 것도 쓰지 못했다. 하얀 백지를 내고 나온다. 혹은 시험지를 봤는데 아무 것도 안보인다. 이런 종류의 꿈을 '기말고사 악몽'이라고 부른다. 이런 용어가 있다는 것을 보면, 이런 종류의 꿈을 꾸는 사람이 제법 많다는 것이다. 그런 꿈을 꾼다는 것이 내 의식 저아래 깊은 곳에 깔려 있는 무의식의 산물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분명히 공부를 했는데 시험에서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아서 아무 것도 못쓴다. 공부 안한 것이 무척 후회가 된다. 공부 안한 것도 아주 구체적이다. 수학의 미적분이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꿈인지 알게 되는 순간, 자각이라고 한다. 안심하고 일어나지만 불편하다. 해몽과 관련된 사이트에 들어가서 찾아봤다. 군대에 징집되는 꿈은 '욕정에 사로 잡혀 고민하고 있다', 혹은 직접 군대에 입대하거나 병영생활을 하고 있는 꿈은 '재물과 명예, 지위 등에 따른 이익과 발전을 하게 된다'라고 풀이돼 있다. 아무래도 해몽 사이트를 믿어서는 안될 것같다. 수년 전 드라마(푸른거탑)가 있다. 제대한 군인이 다시 병영에서 꿈을 깨는 내용이 있었다. 많은 남성에게 끔찍한 상상인지 알 수 있다. 해몽사이트의 시험 답안을 못쓰는 풀이는 더 구체적이다. 시험을 잘보면 뭔가가 잘되는 것이고 못쓰면 뭔가가 안되는 것이다. 미래인지, 현재 갖고 있는 불안의 반영인지 잘 모르겠다. 다만 "다행이다. 나만 그런게 아니었다." 침대에서 총을 쏘고 펄떡 펄떡 뛰는 심장을 옆자리에 던져 준다. 옆에서 자고 있는 배우자의 코골이를 통해 현실에 돌아온다. 곧이어 또 다시 기말고사 악몽으로 들어간다. 지금 66세나 먹었는데 이런 꿈이 아직도 일어날 수 있나 싶어서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대학에 다닐 때에 주위에서는 수업도 빼먹고 미팅을 가거나 그렇지 않으면 교내로 몰려온 전경에게 돌을 던지는 일이 있었지만 공부에 진심으로 기말고사를 준비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왜 좋은 시절을 꿈꿀 수 없나 많은 사람이, 특히 같은 또래 친구들에게 기말고사 악몽이 있다는 말을 듣고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또 사람마다 고유한 자기만의 버전이 있다. 항상 수학을 싫어했던 친구는 수학시험의 악몽을 꾼다. 다른 친구는 완전히 방향 감각을 잃어 교실을 찾을 수 없다가 꿈에서 깨어난다. 어떤 여성은 항상 회사에 알몸으로 도착한다. 그는 깨어있는 삶에서 업무 스트레스를 받을 때, 중요한 프레젠테이션 직전에, 업무중에 상사로부터 시험을 받고 있다고 느끼거나 실패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느낄 때 악몽이 찾아온다. 한 심리학자에 따르면, 기말고사 악몽은 필기시험을 통과하고 역량을 입증하고 상사로부터 승인을 받아야 하는 압력이 있는 서구의 시험 문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이렇게 불안한 꿈의 종류에는 길에서 넘어지거나, 누군가에게 쫓기거나, 통제할 수 없는 자동차를 운전하거나, 여행 중 사고를 당하는 것이 포함된다. 역시 직업에 따라 꿈도 다양하다. 이탈리아에서 여행가이드로 일하는 한 남성은 자신의 직업과 관련된 불안한 악몽을 가끔 꾼다. 손님들과 투어에 나서기 전에 꿈 속에서 재난의 악몽을 꾼다. 그러다가 호텔을 찾을 수 없는 꿈을 꾼다. 또한 대기중이던 관광버스가 약속된 자리에 없는데 마침 버스 기사의 전화번호가 없거나, 식당에 들어갔는데 식탁이 세팅이 전혀 돼 있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이런 꿈은 투어 가이드에게 일어날 수 있는 상상할 수 있는 온갖 어려운 상황일 것이다. 그래서 투어는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가이드는 이러한 꿈이 준비를 위한 경고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잠재의식 속에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다. 악몽은 그에게 세부 사항에 계속 주의를 기울이도록 상기시켜서 모든 일이 잘 진행되도록 하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이제 시니어나 은퇴자라는 말을 듣는 내가 꾸는 기말고사 악몽은 다르다. 불안한 꿈보다 더 당혹스럽고 혼란스럽다. 조용한 휴식 시간,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올 때, 이런 생각이 들곤 한다. 궁금해서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신뢰 가득한 열망"부터 미래의 "예상치 못한 어려움"에 대한 징조에 이르기까지 꿈의 의미에 대한 풀이나 답안이 다양하다. ◆꿈의 이해 꿈 연구 심리학자 칼 융(Carl Jung)의 해석은 정답에 가까울 수도 있다. 꿈이 개인이 갖고 있는 무의식이 의식과 소통하는 방식이며 꿈을 이해하는 것이 정체성의 열쇠라고 그는 믿었다. 자신을 진정으로 아는 것, 즉 그는 '개별화'(individuation)라고 부르는 지속적인 과정이라고 해석했다. 그에 따르면, "꿈은 영혼의 문이다. 밖을 바라보는 사람은 꿈을 꾸고, 안을 들여다 보는 사람은 깨어난다." 반복해서 기말고사 악몽에 대해 융의 꿈 해석을 활용하고 있는 심리치료사의 대답은 이랬다. 꿈을 꾸는 사람에게 주의를 요구하고, 돌봐야할, 돌보고 싶은 사업이 있다. 시대는 다르고 백세시대는 아니었지만, 칼 융은 56세 이후를 '인생의 오후'라고 정의하며 우리가 가장 깊은 내면의 일을 할 수 있는 시기라고 믿었다. 꿈을 이해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역시 기말고사 악몽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정해진 답이 없다. 우리는 자신의 독특한 삶의 경험에서 비롯된 자신만의 상징을 가지고 있다. 깨어 있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감정과, 꿈에서 깨어났을 때 우리가 반응하는 방식 등도 자신의 꿈을 분석하는데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꿈을 기억하고 해석하고 싶다면 작은 메모장을 침대 옆에 두어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세부사항을 적으면 나중에 해석하는데 좋다. 자신을 알게 되는 개성화 과정(꿈)을 통해서 어떤 것을 알게 될 지 궁금하다. 악몽 다행 기말고사 악몽 시험 답안 한국식 군대
2024.07.28. 19:00
“아직도 생생한 그날의 악몽 때문에 매일 밤 소파에서 잠을 청합니다” 6·25 전쟁 발발 74주년을 맞은 오늘. ‘잊혀진 전쟁(Forgotten War)’이라 불려 온 이 전쟁을 절대 잊지 않기 위해 여전히 그날의 기억 속에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지난 22일 롱아일랜드 하팍 자택에서 만난 살바토르 스칼라토 뉴욕주한국전참전용사회(KWVA) 롱아일랜드 지회장. 지하실을 가득 메운 전쟁 기록에서 한국전 참전에 대한 그의 자부심을, 반나절 가까이 진행된 인터뷰 내내 보인 한맺힌 눈빛에서 세상을 떠난 동료들에 대한 그리움을 느낄 수 있었다. 1933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나 1951년부터 해군으로 복무한 그는 이듬해인 1952년 인천에 도착해 최전방에서 전투를 벌였다. 그리고 1953년, 손과 목, 다리에 부상을 입은 채로 미국에 돌아왔다. 한국을 증오했다던 그는 어쩌다 “내 심장은 한국에 두고 왔다”고 말하게 됐을까. 미국과 한국을 모두 증오했다 “너무 많은 동료들이 내 품에서 죽어 나갔다”는 그는 처음으로 동료의 죽음을 목격했던 그날 밤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전했다. 전쟁터에서 집으로 돌아가기까지 일주일을 앞둔 동료는 갑작스런 공격으로 총알을 맞고 스칼라토 회장의 몸 위로 쓰러졌고, 복부 압박을 했지만 결국 그의 품에서 차갑게 식어갔다. 그는 “미국과 한국을 증오했고, 왜 우리가 남을 위해 목숨 바쳐 희생해야 하는가에 대해 분노했다”고 전했다. 주머니 속 잘린 아이의 손 그랬던 그는 한 아이의 죽음을 목격하며 생각을 바꾸게 된다. 전쟁 중 폭격을 맞아 주민 대부분이 사망한 한 마을에서 손이 잘려나간 한 남자아이를 발견한 그는 잘린 손목을 주머니에 넣은 채 아이를 안고 의사가 있다는 고아원으로 향했다. 그는 “공포에 질린 아이가 남은 한쪽 손으로 내 목을 꽉 끌어안았다”며 “아이를 의사에게 넘겨주고 나왔다가, 주머니 속 아이의 손이 생각나 다시 들어가 전달했지만 이미 아이가 죽은 후였다”고 설명했다. 아이의 시체를 끌어안고 한참을 울던 그는 그때 결심했다고 한다. 이 죄 없는 한국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끝까지 싸우겠노라고. 그 어디에도 없었던 기록 통역병으로 전투에 참여했던 KWVA 하세종 수석부회장은 “전쟁에 참여한 미군 17만5000명 중 10만5000명은 부상, 8600명은 실종, 8000명은 포로로 잡혔다”며 “살아 돌아온 미군 중 70~80%가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로 귀국 후에도 병원 신세를 지며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지 못한다”고 전했다. 이렇게 목숨 바쳐 싸웠으나 몇십 년이 지나도록 미국에서 한국전에 대한 기록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살바토르 회장은 “1985년 한국전에 대한 리포트를 쓰겠다는 딸에게, 도서관에 가서 자료를 찾아보라고 전한 뉴욕의 한 참전용사는 ‘그 어디에도 자료가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며 “이에 심각성을 느껴 KWVA가 탄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 ‘잊혀진 전쟁’〈Forgotten War〉에서 ‘잊혀지지 않은 전쟁’〈Unforgotten War〉으로 1999년 연방의회 결의안 통과로 예우받기 시작 전국 참전용사들 ‘텔 아메리카 프로그램’ 착수 한국 위상 높아지며 인식 개선…교육은 여전히 부족 어쩌다 ‘잊힌 전쟁’이 됐을까 한국전 참전용사들이 전쟁 영웅으로 예우를 받기 시작한 건 전쟁 발발 약 50년 후인 1999년부터다. 이전까지 한국전은 트루먼 대통령 재임 당시 지시된 군사 작전(police action) 정도로만 규정됐고, 1999년 한국 정부가 미국의 참전용사들에게 메달을 지급하고 싶다고 요청하며 연방의회에서 결의안이 통과돼 전쟁 지위를 회복했다. ‘잊혀진 전쟁’에서 ‘잊혀지지 않은 전쟁’으로 살바토르 회장은 요즘 길에서 마주친 사람들에게 “땡큐 포 유어 서비스”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고 한다. 물론 문화·경제적으로 한국의 위상이 높아져 보다 많은 이들이 한국전에 관심을 갖게 된 덕분도 있겠지만, 여기에는 50개주 참전용사들의 피나는 노력도 들어가 있다. 협회가 결성된 이후 전국의 참전용사들은 ‘텔 아메리카 프로그램’이라는 교육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잊혀진 전쟁’으로만 남을 게 아니라, 한국을 위해 싸운 이유와 목적을 차세대 청소년들도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참전용사들이 직접 발벗고 나섰다. 전국의 중·고등학교를 돌아다니며 학생들에게 강연했고, 또 교회와 도서관을 다니며 일반 시민들에게 체험담을 공유했다. 한국전 교육 여전히 부족 참전용사들은 “그럼에도 여전히 한국전에 대한 교육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살바토르 회장은 “지금은 예전보다 도서관에 가면 한국전 관련 책들이 몇 권 생겼다”며 “그래도 한국전은 베트남전 등에 비해 미국에 큰 의미가 없는 전쟁이라, 역사 교과서에서도 1~2페이지만 차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텔 아메리카 프로그램’도 이전에 비해 활발히 진행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제 남아 있는 참전 용사들이 얼마 없고, 대부분의 참전용사들이 고령화돼 외부 강연이 힘들기 때문이다. 하세종 부회장은 “협회 창립 당시 회원이 3만여 명이었는데, 현재는 10분의 1에 불과하다”며 “차세대 한인들도 우리가 어떻게 지금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고 밝혔다. 다시 찾은 대한민국은 반짝였다 전쟁 후 한국을 9번이나 방문했다는 살바토르 회장은 “다시 찾은 대한민국은 반짝였다”고 설명했다. 특히 2010년 방문 당시 동료 참전용사가 서울의 야경을 보고 “맨해튼과 다를 게 없지 않냐”고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한국에 갈 때마다 만감이 교차한다는 그는 “전쟁 당시 움츠렸던 대한민국은 이제 두려운 게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전했다. 아직도 생생한 전쟁의 기억 때문에 침대에서 잠을 이루기 힘들어 소파를 찾는다는 살바토르 회장. 마지막으로 중앙일보 독자들에게 전할 말이 있냐는 질문에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한국전을 기억해달라”고. 그리고 “우리의 희생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잊지 말아달라고”. 글·사진=윤지혜 기자전쟁 악몽 한국전 참전용사들 전쟁 기록 전쟁 지위
2024.06.24. 20:21
6.25전쟁 발발 72주년이다. 전쟁의 악몽은 일상의 생활을 우울하게 만든다. 우리는 이날을 맞아 기념할 때마다 그때 싸우다 전사한 군인들을 생각하고 영령들의 명복을 빈다.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4시, 아직 새벽잠에서 꿈을 꾸고 있을 때 김일성 일당은 소련제 탱크 242대를 앞세워 38선을 뭉개고 남한을 침공해 왔다. 농사를 짓다 말고, 학교에서 학기를 다 마치지도 못한 채 가족을 집에 남겨두고 떠난 집안의 아들, 오빠, 동생, 형제들이다. 소총 하나로 힘겹게 싸웠다. 한강에서 낙동강 전선까지 밀렸지만 피로 얼룩진 강토에서 죽기 살기로 싸워 3개월 후 수도 서울을 수복했다. 전쟁으로 국군 13만8000명이 전사했고 45만 명이 부상 당했으며 2만5000명이 실종됐다. 100만 명에 달하는 민간인이 사망, 학살, 부상 등으로 피해를 입었으며 10만 명이 고아가 돼 거리에 나왔고 20만 명의 전쟁 미망인이 발생했다. 320만 명이 고향을 떠나고, 1000만 명의 국민이 이산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전쟁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자유민주주의가 후퇴했고, 모두에게 경제적으로도 참혹한 피해를 안겨주었다. 도시와 산업 시설은 파괴됐고 국민의 재산은 잿더미가 되었다. 사회 경제의 기반과 국민 삶의 터전이 폐허가 되는 어려움을 겪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남과 북은 긴 세월 휴전선을 마주한 채 냉전의 최전방에서 서로 대치하고 있다. 국방에 국력을 소모하면서도 6.25전쟁을 극복한 세대에 의해 ‘한강의 기적’을 이뤘다. 전쟁이 끝난 1953년 당시 1인당 국민소득 67달러에 불과했던 대한민국이 국민소득 3만 달러가 넘는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발전했다.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가 됐고 세계 6위권의 군사대국으로 우뚝 섰다. 최근 코로나 극복 과정에서도 세계가 주목하는 나라가 됐다. 나라에 위기가 닥쳤을 때 국가의 존재 가치를 체감하면서 국민들의 애국심은 고양됐고 평화의 소중함도 자각했다. 어떤 난관도 극복할 수 있는 자신감의 원천도 6.25전쟁이란 민족 수난을 겪으면서 생겨났다. 휴전 후 참전 용사들은 전쟁을 이겨낸 자부심과 군에서 익힌 기술로 전후 재건의 주축이 돼 경제대국의 선도적 역군이 되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전쟁은 전선에서 흘린 용사들의 피로, 후방 건설은 재건의 용사들이 흘린 구슬 같은 땀으로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룩했다. 우리는 평화를 원하고 전쟁을 반대한다. 그러나 누구라도 우리 국민의 안전과 생존을 위협한다면 단호히 대응해야 할 것이다. 일전에 윤석열 대통령도 “연명도 포격과 같은 북한의 도발은 사과가 아니라 원점을 타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때 자유민주주의가 훼손하고 국군의 위상이 실추되기도 했지만 이제는 다르다. 국가 안보 없이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없다는 건 진리다. 6.25전쟁은 자유와 평화, 번영의 뿌리가 된 수많은 희생에 대한 기억과 우리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다. 아직도 한반도 북녘에는 전쟁의 원죄 김일성과 김정일, 김정은 3대 세습으로 이어진 인민에 대한 폭정이 계속되고 있다. 또한 수없이 미사일 대남 도발도 감행하고 있다. 총소리가 멎었다고 전쟁이 끝난 게 아니다. 평화는 전쟁을 대비하는 국가에게 오는 것이다. 이재학 / 6.25참전유공자회 회장기고 전쟁 악몽 25전쟁이란 민족 전쟁 미망인 세월 휴전선
2022.06.22. 20:06
예전에 일본이 고령화 사회로 들어서면서 실버산업에 대한 기대가 폭발한 적이 있다. 사업가들은 시니어들이 오래 살게 되면서 그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상당한 준비했는데 고령층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오히려 지갑을 닫는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져서 일본의 실버산업은 결국 완전 실패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미국에서도 베이비부머가 은퇴하면서 시니어를 겨냥한 실버산업이 속속 출현하고 있지만 일본과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시니어 입장에서 보면, 최악의 상황은 생전에 은퇴 자금이 남지 않는 경우, 말년에 가난해지는 것이다. 지갑을 닫을 수 밖에 없다. 미국은퇴협회에서는 시니어가 지혜롭게 자신의 가계 예산을 관리하는 12가지 단계를 조언했다. 팬데믹의 여파인지 소셜연금을 40여 년만에 무려 5.9%를 올릴 수밖에 없을 정도로 물가가 오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래서 가계 예산 집행의 합리화가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아무래도 가계 예산은 언제나 부족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 재정전문가협회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인 10명 중 6명 가까이는 자신들의 지출을 전혀 헤아리지 않는다고 응답했고 심지어 5명 중 2명은 예산을 마련한 적이 없다. 그러나 팬데믹 이후의 삶을 위해서는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아들여 가계 예산을 보다 합리적으로 관리해볼만 하다. 1.지난해 집행을 돌아보라 자신과 가족이 지난해 돈을 어떻게 썼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책할 필요는 없다. 전문가들은 "가족끼리 모여서 결산하는 것은 과거사로 자신이나 배우자를 괴롭히기 위한 것이 절대 아니다"면서 "작년에 일어난 일을 정리해서 앞으로 지출될 것에 대한 준비 자료로 쓰는 것에 그쳐야 한다"고 조언했다. 2.자신이 원하는 것을 파악하라 사람들은 제한된 자금을 아끼는데 급급해서 가장 중요한 것을 못하기도 한다. 시니어라고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자문해보자. 전문가들은 "여생에 기쁨이나 가치를 가져다주는 영역에 지출을 집중하고 나머지는 가능한 제거하라"고 조언한다. 연간 예산을 책정하기 전에 자신과 배우자와 대화가 필요한 이유다. 이 예산에는 들어오는 수입과 나가는 지출 뿐만 아니라 실제 지출하고 싶은 방법과 장소가 있어야 한다. 올해 꼭 남미 여행을 가고 싶다면 그것을 항목에 넣어야 된다. 3.자신을 파악하라 자신의 지출에 대해서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자신이다. 배우자도 혹은 자녀들은 잘 알지 못한다. 따라서 예산을 작성할 때 과거 행동을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시 말해서, 지난해 소비한 식대의 70%가 식당에서 쓰였다면 올해 갑자기 0으로 줄이지 말아야 한다. 현실적으로 10%나 20%를 줄이는 것이 더 낫다고 설명한다. 극적인 절약을 시도한다면 그것은 매우 비현실적인 것이다. 자신을 파악하라는 얘기는 비현실적인 계획을 세우지 말라는 것이다. 현실적인 작은 변화를 통해야만 실현 가능성이 높아진다. 계획은 지켜낼 때 의미가 있다. 4.핵심 가치를 인정하라 자신과 배우자는 결국 돈을 놓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가족의 핵심 가치를 존중하고 충족해야 한다. 예를 들어 남편은 가족이 함께 경험하는 것에 관심이 많아서 가족 휴가를 위해 많은 돈을 쓰는 것을 선호하는데 반해 아내는 주택 개량에 큰 관심을 가지고 매년 상당한 주택 개량 자금을 조성할 수 있다. 5.단순하게 유지하라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가계 예산 관리가 복잡할 필요는 없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중요한 것은 지속적으로 실행하기 쉽게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가족 휴가 및 주택 개조 기금과 같은 저축 계좌에 대한 주요 항목을 만들어 매월 자동 이체를 설정해두면 일상에서는 복잡한 가계부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 6.서비스 계약 검토하라 합리적인 예산 집행에 우선 사항은 바로 모든 서비스 계약에 대한 철저한 검토가 필요하다. 매달 수시로 검토할 필요는 없고 연초나 초봄 등의 시기에 시행하면 된다. 여기에는 구독, 보험 계약 조건, 조경 서비스, 수영장 청소, 각종 보증, 아마존 프라임, 넷플릭스, 인터넷 서비스, 케이블 TV 및 헬스 클럽 계약 등이 포함된다. 또한 모기지, 자동차, 크레딧 한도 및 크레딧 카드를 포함한 모든 대출 계약을 검토해보는 것이 좋다. 7.자신에게 먼저 지불하라 소득의 출처와 상관없이 첫번째 지출은 자동으로 이체되는 저축이 좋다. 물론 시니어에 따라서는 저축계좌를 별도로 만들지 못하는 수가 있지만 이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단 저축이 우선이다. 8.큰 구매 전 예산 변경하라 정부 예산이나 일반 회사나 가계 예산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큰 구매나 큰 사업에 앞서 기존의 지출을 집행하는 예산에 변화를 줘야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큰 지출을 염두에 두고 기본 지출을 미리 조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새 차를 구매할 계획이라면 구매하기 전에 월별 결제 금액을 예산에 미리 고려하는게 좋다. 월 700달러의 페이먼트는 모기지 납부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아니면 저렴한 차종으로 바꾸는 것도 고려해 봐야 한다. 9.미리 알 수 없는 상황을 고려하라 미리 알 수 없는 상황을 고려하는 것은 계획도 어렵고 골치가 아플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연간 예산에 포함시키지 않으면 낭패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옛말에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마련'이라고 전한다. 파티오에 떨어진 이웃의 나무 문제, 정화조 문제, 혹은 에어컨 컴프레서나 워터히터 교체 등이 있을 수 있다. 새 차 구입과는 다른 종류의 문제다. 10.매월 대화의 시간을 가져라 배우자와 함께 예산을 짜는 상황이라면 매달 최소 1시간 정도를 재정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목표는 미리 합의된 일정 금액의 지출에 대해서 사소하게 다투지 않기 위해서 그렇다. 두 사람 모두 참여해 대화의 시간을 갖도록 하자. 11.무엇을 하고 있는지 확인하라 계획은 그냥 계획일 뿐이고 예산은 그냥 예산이다. 하지만 계획이나 예산을 미리 세우는 것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달성하기 위한 목표 때문이다. 시니어 가계라고 목표가 없지 않듯이 달성도 중요하다. 예산을 유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목표 예산 금액에 대해 매주 지출 진행 상황을 확인하는 것이다. 예산이 부족하면 저축을 줄이든지 목표를 하향 조정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12.무엇이 잘못될 수 있는지 고려하라 계획과 예산을 세우고 실행하고 목표 달성을 위해서 노력하지만 항상 첫 플랜이 효과적이지 않을 수 있다. 플랜B나 플랜C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가계관리가 잘못됐다고 아주 망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시니어들이 거주하고 있는 곳이 미국이기 때문이다. 장병희 기자은퇴자금 악몽 가계 예산 예산 집행 연간 예산
2022.04.03. 18: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