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중요한 토대다. 특히 중국과의 관계에서 이러한 역사 인식이 더욱 중요하게 다가온다. 중국은 오랜 역사 속에서 한반도를 향한 침략을 끊임없이 자행해왔다. 기원전 109년 한 무제의 위만조선 침략을 시작으로, 240년 수·당나라의 고구려 침략, 그리고 신라가 당나라 세력을 축출한 사례 등 수많은 침탈의 역사가 존재한다. 이들은 우리 민족을 ‘동쪽에 사는 오랑캐’라는 뜻의 동이(東夷)라 칭하며 멸시하기도 했다. 나아가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뜻의 순치지국(脣齒之國)이라며 한국을 자신들의 부속물처럼 여기는 오만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중국의 ‘엉큼한 속내’는 근세사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1942년 2월, 중경에 임시정부를 두고 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연합국의 승인을 미국에 요청했으나 거부당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미국 국무장관 코델 헐은 일본의 지배하에 있던 한국과 만주를 중국이 다시 손에 넣어 종주국 행세를 하려는 야욕을 간파했던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인 1943년 11월 24일 카이로 회담에서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중국의 이러한 야심에 경고를 보냈다. 그는 중국이 전후 한국을 다시 손에 넣으려 할 경우, 이를 저지하기 위해 국제 신탁통치를 주장하기까지 했다. 우여곡절 끝에 한국이 독립을 쟁취하자, 중국은 소련과 함께 김일성을 사주하여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 전쟁을 일으켰다. 한국군과 미군을 비롯한 유엔군의 반격으로 통일 직전까지 갔던 상황에서, 중국은 80만 대군을 앞세운 인해전술로 통일의 호기를 무참히 짓밟았다. 이 사건은 중국이 한반도 문제에 있어 결코 단순한 이웃 국가가 아닌, 자국의 이익을 위해 언제든 군사적 개입을 서슴지 않는 패권적 본성을 가지고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이러한 중국의 행태는 하버드대학 경제학 교수 조지프 슘페터가 ‘본능적 자기 확장 논리’라는 논문에서 지적한 바와 일치한다. 그는 “독재국가들은 경제력과 군사력을 함께 갖추고 나면 주변 국가들에 대하여 고압적이고 패권적인 자세를 취한다”고 역설했다. 현재 중국이 추구하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과 ‘공산당 건설’이라는 100년 목표는 이러한 슘페터 교수의 통찰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는 단순히 경제 성장을 넘어 주변국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고 패권을 공고히 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음을 시사한다. 최근 한미 동맹 강화와 미·중 갈등 심화 속에서 많은 국민들이 한국이 미국과 중국 중 어느 편에 서는 것이 유리할지 고민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중요한 시점에서 분명한 인식을 가져야 한다. 단언컨대 중국은 역사적으로나 현재의 행태로나 폭력으로 빼앗는 약탈적 패권국임을 자각해야 한다. 반면 미국은 국제 질서 유지를 위해 기여하며, 때로는 동맹국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 베푸는 시혜적 패권국임을 인지해야 한다. 이러한 냉철한 현실 인식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현명한 선택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박종식 / 예비역 육군 소장열린광장 미중 갈등 대한민국 임시정부 약탈적 패권국 역사 인식
2025.07.27. 18:40
‘점령’이란 일반적으로 타국의 영토를 무력으로 장악해 자국의 지배하에 두는 행위, 곧 약탈적 패권국의 전형적 행동을 의미한다. 그러나 미국은 이러한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오히려 시혜적 패권국으로, 일정한 전략적 목적 외에 영토 확장을 추구하지 않는 점에서 기존의 제국주의와는 구분된다. 미국은 이미 광활한 국토와 풍부한 자원, 이민을 통해 유입된 양질의 노동력을 바탕으로 세계 최강의 경제와 군사력을 보유한 국가다. 이러한 기반 덕분에, 근본적으로 타국의 영토를 탐하지 않는다. 다만 4년 또는 8년마다 정권이 교체되는 구조 속에서, 외교정책의 기조가 외향적 개입과 내향적 고립 사이를 오가며 혼선을 빚는 경우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시장경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군사적 대응도 불사해 왔다. 이는 단순한 확장이 아닌, 국제질서의 균형을 위한 개입으로 봐야 한다. 미군의 한반도 주둔 역시 이러한 맥락 속에서 이뤄졌다. 1945년 8월 8일, 소련군이 만주를 통해 한반도로 남하하자, 윈스턴 처칠의 권고에 따라 미국이 참전하면서 38선이 설정되었고, 미군이 주둔하게 되었다. 이후에도 미군은 여러 차례 철수를 검토했으나, 한미 양국 군 수뇌부의 반대로 전력 균형 차원에서 주둔이 유지됐다. 해방 직후 극심한 빈곤 속에 있던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막대한 원조를 받았다. 1945년부터 1975년까지 30년간 총 74억 달러에 달하는 무상원조가 이뤄졌으며, 이후 카터 대통령 시절부터는 차관 형식으로 전환되었다. 6·25 전쟁 당시 미국은 전비 670억 달러를 부담했으며, 잉여 농산물도 무상으로 지원했다. 운송 수단이 부족하자 미국 측은 자국 수송선을 이용해 부산까지 운반해주기도 했다. 베트남전에서는 한국군에 전투수당은 물론 최신 무기를 제공했고, 이 과정에서 한국군의 현대화와 국가 재건이 가능했다. 이와 같은 지원은 단순한 군사동맹을 넘어 실질적인 국가 성장의 토대가 되었다. 반면 중국과 일본은 한반도에 대해 약탈적 패권의 역사적 행태를 보여 왔다. 조선시대부터 인적·물적 자원을 수탈해 왔으며, 특히 중국은 6·25 전쟁에 개입해 통일 직전까지 갔던 남진을 가로막았다. 지금도 종주국 행세를 하며 한국에 정치·경제적 압박을 가하고 있는 현실이다. 로마 시대 철학자 세네카는 “신세를 지고도 이를 부정하는 자는 배은망덕이며, 갚지 않는 자도 배은망덕하고, 잊어버리는 자는 가장 배은망덕하다”고 했다. 이 말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비록 작고 사소한 예일 수 있으나, 최근 한국에서 활동 중인 미국 출신 마리아, 독일 출신 로미나 같은 외국인 가수들이 겪는 어려움은 우리에게 작지 않은 메시지를 준다. 마리아는 6·25 참전용사의 손녀이고, 로미나는 우리나라가 어려울 때 독일이 수천 명의 광부와 간호사를 받아들여 외화를 벌 수 있게 도왔던 나라 출신이다. 특히 독일은 노동력을 담보로 1억5900(당시 4000만달러)만 마르크를 추가 지원해 우리 산업화의 기틀을 마련해줬다. 이런 인연을 가진 이들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맞이하고 도와주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받은 은혜에 대한 소박한 보답이자, 성숙한 국가로서의 예의일 것이다. 박종식 / 예비역 육군소장열린광장 감사 외교 한반도 주둔 약탈적 패권국 시혜적 패권국
2025.06.17. 19: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