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령’이란 일반적으로 타국의 영토를 무력으로 장악해 자국의 지배하에 두는 행위, 곧 약탈적 패권국의 전형적 행동을 의미한다. 그러나 미국은 이러한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오히려 시혜적 패권국으로, 일정한 전략적 목적 외에 영토 확장을 추구하지 않는 점에서 기존의 제국주의와는 구분된다.
미국은 이미 광활한 국토와 풍부한 자원, 이민을 통해 유입된 양질의 노동력을 바탕으로 세계 최강의 경제와 군사력을 보유한 국가다. 이러한 기반 덕분에, 근본적으로 타국의 영토를 탐하지 않는다. 다만 4년 또는 8년마다 정권이 교체되는 구조 속에서, 외교정책의 기조가 외향적 개입과 내향적 고립 사이를 오가며 혼선을 빚는 경우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시장경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군사적 대응도 불사해 왔다. 이는 단순한 확장이 아닌, 국제질서의 균형을 위한 개입으로 봐야 한다.
미군의 한반도 주둔 역시 이러한 맥락 속에서 이뤄졌다. 1945년 8월 8일, 소련군이 만주를 통해 한반도로 남하하자, 윈스턴 처칠의 권고에 따라 미국이 참전하면서 38선이 설정되었고, 미군이 주둔하게 되었다. 이후에도 미군은 여러 차례 철수를 검토했으나, 한미 양국 군 수뇌부의 반대로 전력 균형 차원에서 주둔이 유지됐다.
해방 직후 극심한 빈곤 속에 있던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막대한 원조를 받았다. 1945년부터 1975년까지 30년간 총 74억 달러에 달하는 무상원조가 이뤄졌으며, 이후 카터 대통령 시절부터는 차관 형식으로 전환되었다. 6·25 전쟁 당시 미국은 전비 670억 달러를 부담했으며, 잉여 농산물도 무상으로 지원했다. 운송 수단이 부족하자 미국 측은 자국 수송선을 이용해 부산까지 운반해주기도 했다.
베트남전에서는 한국군에 전투수당은 물론 최신 무기를 제공했고, 이 과정에서 한국군의 현대화와 국가 재건이 가능했다. 이와 같은 지원은 단순한 군사동맹을 넘어 실질적인 국가 성장의 토대가 되었다.
반면 중국과 일본은 한반도에 대해 약탈적 패권의 역사적 행태를 보여 왔다. 조선시대부터 인적·물적 자원을 수탈해 왔으며, 특히 중국은 6·25 전쟁에 개입해 통일 직전까지 갔던 남진을 가로막았다. 지금도 종주국 행세를 하며 한국에 정치·경제적 압박을 가하고 있는 현실이다.
로마 시대 철학자 세네카는 “신세를 지고도 이를 부정하는 자는 배은망덕이며, 갚지 않는 자도 배은망덕하고, 잊어버리는 자는 가장 배은망덕하다”고 했다. 이 말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비록 작고 사소한 예일 수 있으나, 최근 한국에서 활동 중인 미국 출신 마리아, 독일 출신 로미나 같은 외국인 가수들이 겪는 어려움은 우리에게 작지 않은 메시지를 준다. 마리아는 6·25 참전용사의 손녀이고, 로미나는 우리나라가 어려울 때 독일이 수천 명의 광부와 간호사를 받아들여 외화를 벌 수 있게 도왔던 나라 출신이다. 특히 독일은 노동력을 담보로 1억5900(당시 4000만달러)만 마르크를 추가 지원해 우리 산업화의 기틀을 마련해줬다.
이런 인연을 가진 이들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맞이하고 도와주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받은 은혜에 대한 소박한 보답이자, 성숙한 국가로서의 예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