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자크 루소의 ‘인간 언어 기원론’을 보면 ‘고대인은 무엇이든지 가장 생생한 방법으로 말했다. 그들은 언어로 표현하지 않았고, 기호로 표현하였다. 그들은 사물에 대해 말하지 않고, 보여주었다. (이봉일 역)’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는 ‘생생하다’는 표현에 마음이 갔습니다. 바로 몸짓과 그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몸짓언어는 생생합니다. 상형문자는 생생합니다. 논리적이고 문법적인 언어는 구체적인 듯하나 생생하지는 않습니다. 느낌이 그대로 전달되지는 않는 겁니다. 상형문자의 생생함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문자의 발달로 인해서 몸짓언어와 상형문자의 생생함을 잃어버렸습니다. 지금은 상형문자는 해석하기도 어렵습니다. 저는 언어 접촉에서 빠뜨려서는 안 되는 게 몸짓언어라고 생각합니다. 몸짓은 그야말로 몸이 하는 말입니다. 말은 근본적으로 입이라는 신체기관을 통해서 나오는 소리이므로 몸이 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몸의 움직임으로 말이 보여주는 느낌보다 깊은 감정을 표현하기도 하므로 몸짓은 생생한 언어입니다. 예를 들어 눈은 그대로 언어입니다. 바라보는 눈빛은 수많은 감정을 담고 있습니다. 손은 어떻습니까. 손짓을 한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손도 그대로 언어입니다. 말없이 손만으로도 충분히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때로는 더 강력한 의미를 담습니다. 눈이나 손은 말 이상의 위력을 보여줍니다. 소리를 내지 말아야 하는 상황에서는 더 큰 힘이 있습니다. 그윽하게 바라보고, 말없이 쳐다보고, 노려보고, 째려보고, 훑어보고, 깔보고, 올려다봅니다. 손으로는 오라고, 가라고, 싫다고, 아니라고, 응원한다고 다양한 행위를 합니다. 손사래를 치거나, 박수를 치고, 잡아당기기도 하고, 밀어내기도 합니다. 어떤 말보다 강력한 의사전달입니다. 손짓발짓이라는 표현은 있는데, 우리는 보통 발짓은 잘 안 합니다. 오히려 발길질을 하죠. 여기에서 ‘짓과 질’은 행위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몸짓언어는 본능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지극히 문화적이기도 합니다. 더 정확히 설명하자면 습관이고 버릇이 굳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에 따라, 문화에 따라 행위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접촉의 현장에서 몸짓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몸짓을 본능으로 받아들이면 수많은 오해가 발생합니다. 물론 문화마다 비슷한 몸짓도 많습니다. 대부분의 문화에서 화가 나면 주먹을 쥐고, 눈을 부라리며, 가슴을 펴고, 씩씩댑니다. 하지만 어디서나 비슷할 것 같았던 행위가 다르게 해석되면 당황스럽습니다. 오라는 손짓이 문화마다 다릅니다. 어떤 문화에서는 손짓 자체가 무례한 행위입니다. 아마 너무 직접적이어서 그럴 수 있겠습니다. 같은 문화권 사람끼리 살 때는 말도, 몸짓언어도 그렇고 크게 문제될 일이 없습니다. 이런 문화적 배경을 ‘고맥락’이라고 합니다. 고맥락 문화는 상황이 중요합니다. 서로 상황에 대한 이해가 근본이 됩니다. 반면에 저맥락은 상황을 배제하려고 합니다. 따라서 말이나 글이 중요합니다. 정확하게 말하고,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사회는 저맥락한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이동이 많을수록, 다른 문화권과 접촉이 많아질수록 세상은 저맥락한 문화로 바뀝니다. 고맥락한 사회에서는 서로 상황을 이해하기에 ‘척하면 척’입니다. 부정확하게 말해도 이해하고, 눈빛만 봐도 무슨 뜻인지 알아차립니다. 그야말로 ‘말이 필요 없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의사소통이 가능한 겁니다. 말로 표현하는 것은 더 자세히 설명하려고 할 때입니다. 감정의 전달은 몸짓으로 충분합니다. 그런데 다른 문화의 사람이 섞여서 살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눈빛이나 눈짓은 오해를 사기 딱 좋습니다. 많은 행위가 잘못 전해집니다. 몸짓언어가 언어 접촉에서 중요한 이유입니다. 몸짓언어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접촉이고, 소통입니다. 당연히 귀한 행위입니다. 따라서 서로의 몸짓언어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끊임없이 있어야 합니다. 가깝게는 가족이나 친구부터, 멀리는 다른 언어 사용자나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말입니다. 몸짓언어가 생생하다는 것은 우리의 감정을 가장 잘 전달한다는 의미도 됩니다. 말을 하더라도, 글을 쓰더라도 몸짓언어는 필수적입니다. 몸짓언어의 접촉이 언어 접촉 이해의 시작이기 바랍니다. 몸짓이 오해의 언어가 아니라 이해와 배려의 언어이기 바랍니다.아름다운 우리말 몸짓언어 언어 언어 접촉 문법적인 언어 언어 사용자
2025.10.26. 17:17
한국에서 우리는 한국어로만 사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에는 이미 수많은 언어가 들어와 있습니다. 비공식적으로도 들어와 있지만, 공식적으로도 들어와 있습니다. 많은 곳에 한국어와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이 섞여서 제시되어 있기도 합니다. 제가 살고 있는 동네에는 길의 표지판이 한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로 되어 있습니다. 작은 표지판에 네 언어가 쓰여있는 게 답답해 보이지만 친절함이나 배려의 상징으로도 보입니다. 간판의 경우는 훨씬 심각한 접촉의 현장입니다. 예전에는 이태원을 중심으로 보였던 영어 간판이 도시를 뒤덮은 지 오랩니다. 최근에는 급속도로 일본어 간판도 늘고 있습니다. 일본어에 대한 거부감이 많이 약해진 탓으로 보입니다. 대학가를 중심으로는 중국어 간판이 아주 많습니다. 중국인 유학생이 많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물론 외국인이 많이 모여 사는 곳에는 오히려 한국어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때로는 한 간판에 한국어, 영어, 중국어 등이 섞여 있기도 합니다. 언어 접촉의 현장이 곳곳에 있습니다. 이는 방송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홈쇼핑과 같은 채널에서는 수많은 외국어와 외래어가 쏟아져 나옵니다. 패션에 관한 프로그램에서는 외국어가 한국어보다 더 많은 듯합니다. 모르는 말투성이입니다. 화장품이나 미용에 관한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의료와 관련된 드라마를 보면 아예 자막으로 설명을 해줍니다. 대부분 외국어로 된 전문용어입니다. 뉴스, 스포츠, 드라마, 피디 등의 단어가 다 순우리말이 아니니 외국어 범람의 현상은 놀랄 일도 아닐 겁니다. 케이팝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전에는 가끔 들어갔던 외국어 가사가 이제는 주를 이룹니다. 오히려 한국어 가사가 맛보기처럼 들어갑니다. 사실 케이팝의 정의 자체가 어렵습니다. 작곡가, 가사, 가수, 기획사 등에 한국적이지 않은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외국의 작곡가가 작곡한 노래도 많고, 심지어 팀원 중에 외국인도 여럿입니다. 어쩌면 케이팝 자체가 접촉의 현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관점을 돌려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일본에 가면 지하철에서 한글 안내판을 발견하게 됩니다. 거리마다 한국어 안내가 있어서 종종 여기가 어디인지 혼란스럽습니다. 간판에도 한글이 보입니다. 미국 등의 한인타운에는 그야말로 영어가 드뭅니다. 한동안 한국어 간판에 영어를 같이 써 달라는 현지의 요구가 있었을 정도입니다. 무슨 가게인지 도대체 알 수 없다는 항의였습니다. 외국인은 한국 드라마와 케이팝에 열광하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어와 한글을 접합니다. 자연스러운 언어 접촉의 현장입니다. 한국어로 된 간판이 드라마에 나오면 무슨 뜻인지 궁금해하고, 케이팝에 한국어로 된 가사가 나오면 뜻을 찾아보고 따라 부릅니다. 이제 한글과 한국어는 더 이상 외국인에게 낯선 문자, 낯선 언어가 아닙니다. 우리 속에 외국어가 엄청나게 들어온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한국어도 세계 속으로 널리 퍼져가고 있습니다. 언어 접촉은 한 방향이 아닙니다. 언어 접촉은 쌍방향이고, 다방향이기도 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한 언어가 여러 언어에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시대에 따라 영향을 미치는 방향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한자어가 한국과 일본, 베트남, 태국 등에 영향을 미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근대에는 일본에서 만든 한자어가 역으로 한국이나 중국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제는 한국어가 일본어나 중국어 속으로 들어가기도 합니다. 앞으로 베트남어나 태국어가 우리말 속으로 더 들어오게 될 겁니다. 그래서 언어 접촉의 현장은 궁금함의 현장이어야 하고 배려의 현장이어야 합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일까 하고 궁금해 하는 과정에서 교류가 생깁니다. 혹시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배려가 생깁니다. 그래서 언어 접촉의 현장은 상호 문화교류의 현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접촉의 현장에서 문화적으로 더 성숙하기 바랍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기고 한글날 언어 언어 접촉 한국어 영어 한글날 언어
2025.10.08. 19:41
한국에서 우리는 한국어로만 사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에는 이미 수많은 언어가 들어와 있습니다. 비공식적으로도 들어와 있지만, 공식적으로도 들어와 있습니다. 많은 곳에 한국어와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이 섞여서 제시되어 있기도 합니다. 제가 살고 있는 동네에는 길의 표지판이 한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로 되어 있습니다. 작은 표지판에 네 언어가 쓰여있는 게 답답해 보이지만 친절함이나 배려의 상징으로도 보입니다. 지하철을 타면 늘 여러 언어의 방송을 들을 수 있습니다. 간판의 경우는 훨씬 심각한 접촉의 현장입니다. 예전에는 이태원을 중심으로 보였던 영어 간판이 도시를 뒤덮은 지 오래입니다. 최근에는 급속도로 일본어 간판도 늘고 있습니다. 일본어에 대한 거부감이 많이 약해진 탓으로 보입니다. 대학가를 중심으로는 중국어 간판이 아주 많습니다. 중국인 유학생이 많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물론 외국인이 많이 모여 사는 곳에는 오히려 한국어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때로는 한 간판에 한국어, 영어, 중국어 등이 섞여 있기도 합니다. 언어 접촉의 현장이 곳곳에 있습니다. 이는 방송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홈쇼핑과 같은 채널에서는 수많은 외국어와 외래어가 쏟아져 나옵니다. 패션에 관한 프로그램에서는 외국어가 한국어보다 더 많은 듯합니다. 모르는 말투성이입니다. 화장품이나 미용에 관한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의료와 관련된 드라마를 보면 아예 자막으로 설명을 해줍니다. 대부분 외국어로 된 전문용어입니다. 뉴스, 스포츠, 드라마, 피디 등의 단어가 다 순우리말이 아니니 외국어 범람의 현상은 놀랄 일도 아닐 겁니다. 케이팝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전에는 가끔 들어갔던 외국어 가사가 이제는 주를 이룹니다. 오히려 한국어 가사가 맛보기처럼 들어갑니다. 사실 케이팝의 정의 자체가 어렵습니다. 작곡가, 가사, 가수, 기획사 등에 한국적이지 않은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외국의 작곡가가 작곡한 노래도 많고, 심지어 팀원 중에 외국인도 여럿입니다. 어쩌면 케이팝 자체가 접촉의 현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관점을 돌려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일본에 가면 지하철에서 한글 안내판을 발견하게 됩니다. 거리마다 한국어 안내가 있어서 종종 여기가 어디인지 혼란스럽습니다. 간판에도 한글이 보입니다. 미국 등의 한인타운에는 그야말로 영어가 드뭅니다. 한동안 한국어 간판에 영어를 같이 써 달라는 현지의 요구가 있었을 정도입니다. 무슨 가게인지 도대체 알 수 없다는 항의였습니다. 외국인은 한국 드라마와 케이팝에 열광하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어와 한글을 접합니다. 자연스러운 언어 접촉의 현장입니다. 한국어로 된 간판이 드라마에 나오면 무슨 뜻인지 궁금해하고, 케이팝에 한국어로 된 가사가 나오면 뜻을 찾아보고 따라 부릅니다. 이제 한글과 한국어는 더 이상 외국인에게 낯선 문자, 낯선 언어가 아닙니다. 우리 속에 외국어가 엄청나게 들어온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한국어도 세계 속으로 널리 퍼져가고 있습니다. 언어 접촉은 한 방향이 아닙니다. 언어 접촉은 쌍방향이고, 다방향이기도 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한 언어가 여러 언어에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시대에 따라 영향을 미치는 방향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한자어가 한국과 일본, 베트남, 태국 등에 영향을 미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근대에는 일본에서 만든 한자어가 역으로 한국이나 중국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제는 한국어가 일본어나 중국어 속으로 들어가기도 합니다. 앞으로 베트남어나 태국어가 우리말 속으로 더 들어오게 될 겁니다. 그래서 언어 접촉의 현장은 궁금함의 현장이어야 하고 배려의 현장이어야 합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일까 하고 궁금해하는 과정에서 교류가 생깁니다. 혹시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배려가 생깁니다. 그래서 언어 접촉의 현장은 상호 문화교류의 현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접촉의 현장에서 문화적으로 더 성숙하기 바랍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현장에서 한글날 언어 접촉 한국어 영어 한글날 언어
2025.10.05. 16:40
언어의 접촉에 관해 논의할 때 눈에 거슬리는 어휘가 있습니다. 바로 혼혈(混血)이라는 어휘입니다. 혼혈은 말 그대로 피가 섞였다는 뜻입니다. 혼혈아(混血兒)라는 표현도 합니다. 지금은 차별적인 어휘로 다루기도 합니다. 혼혈이라는 말을 칭찬의 경우보다는 비하의 의미로 쓰기 때문입니다. 혼혈은 서로 다른 종족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의미합니다. 한편 혼종(混種)이라는 말은 종이 섞였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굳이 보자면 인종 간의 출산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묘한 것은 혼혈이라는 말은 한국인과 중국인, 한국인과 일본인 사이의 출생에는 그다지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한국, 일본, 중국 등은 같은 종족이라고 보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한국어에서 혼혈이라는 말은 오히려 인종 사이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모습이 한민족과 달라지지 않으면 혼혈로 보지 않는 겁니다. 이는 겉모습을 강조하는 태도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겉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게 씁쓸합니다. 사실 세상에 단일민족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단일민족을 강조하면 남을 배척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특히 지금처럼 세계화 시대, 다문화, 상호문화 시대에 단일민족을 강조하고, 다른 문화를 다문화로 비하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겁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도 수많은 다문화 가정이 있고, 국제결혼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국제결혼이라는 말도 어색할 수 있습니다. ‘국제’라는 말에는 나라와 나라 사이라는 점이 전제인데, 실제로는 한국에서 자란 다른 민족, 인종의 결혼이 늘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문화라는 말도 마찬가지로 어색한 표현이 될 겁니다. 일본에서는 국제결혼 자녀를 ‘하프(half)’라는 용어를 써서 부르기도 합니다. 반반씩 섞였다는 의미일 겁니다. 하프라는 말에도 차별의 느낌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요즘에는 하프가 아니라 ‘더블(double)’로 부르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아이노코’라는 표현을 하기도 했습니다. 사이에서 낳았다는 의미입니다. 비하어죠. 저도 어릴 적에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이 말을 쓴 적이 있습니다. 언어의 접촉에서 등장하는 용어는 혼종어(混種語)입니다. 서로 다른 언어에서 유래한 말이 합쳐서 형성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전셋집’처럼 고유어와 한자어가 합쳐진 말이 대표적일 겁니다. 고유어와 유럽어가 합쳐진 어휘도 많습니다. ‘드럼통’처럼 유럽어와 한자어가 합쳐진 말도 많습니다. 깡통도 캔과 통이 합쳐진 말입니다만, 일본을 거쳐서 캔이 깡으로 변하고, 통과 합쳐졌습니다. 볼펜심도 비슷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어에서 변형된 볼펜과 심(心/芯)이 합쳐진 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말 혼종어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구성은 아마도 ‘비까번쩍’이 아닐까 합니다. 이 말은 화려하고 광이 나는 것을 표현하는 속어입니다. 사전에도 올라가 있지 않은 말입니다. 이 말은 우리말 ‘번쩍번쩍’과 비슷한 말입니다. 그런데 비까는 일본어입니다. 일본어에는 ‘비카비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 말은 번쩍번쩍, 강렬하게 빛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본 만화영화에 나오는 피카추의 피카가 바로 여기에서 유래된 표현입니다. 강렬한 빛을 내는 캐릭터입니다. 왔다리갔다리의 ‘-다리’도 일본어식 표현이 어미로 붙어있는 묘한 구성입니다. ‘-다리’는 ‘-거나’의 의미를 가진 일본어 표현인데 우리 용언 어간에 붙어있는 겁니다. 혼종어 중에는 고유어, 한자어, 유럽어가 모두 함께 섞인 혼종어도 있습니다. 순우리말로 보이는 어휘 중에도 유래를 명확히 알기 어려운 어휘가 많으니 순수한 고유어를 논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일 수 있습니다. 혼종어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기원을 명확히 구분하기가 어려울 겁니다. 혼종어는 언어 접촉의 모습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자료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혼종 고유어 한자어 국제결혼 자녀 언어 접촉
2025.09.14. 1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