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우리는 한국어로만 사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에는 이미 수많은 언어가 들어와 있습니다. 비공식적으로도 들어와 있지만, 공식적으로도 들어와 있습니다. 많은 곳에 한국어와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이 섞여서 제시되어 있기도 합니다. 제가 살고 있는 동네에는 길의 표지판이 한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로 되어 있습니다. 작은 표지판에 네 언어가 쓰여있는 게 답답해 보이지만 친절함이나 배려의 상징으로도 보입니다. 지하철을 타면 늘 여러 언어의 방송을 들을 수 있습니다.
간판의 경우는 훨씬 심각한 접촉의 현장입니다. 예전에는 이태원을 중심으로 보였던 영어 간판이 도시를 뒤덮은 지 오래입니다. 최근에는 급속도로 일본어 간판도 늘고 있습니다. 일본어에 대한 거부감이 많이 약해진 탓으로 보입니다. 대학가를 중심으로는 중국어 간판이 아주 많습니다. 중국인 유학생이 많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물론 외국인이 많이 모여 사는 곳에는 오히려 한국어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때로는 한 간판에 한국어, 영어, 중국어 등이 섞여 있기도 합니다. 언어 접촉의 현장이 곳곳에 있습니다.
이는 방송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홈쇼핑과 같은 채널에서는 수많은 외국어와 외래어가 쏟아져 나옵니다. 패션에 관한 프로그램에서는 외국어가 한국어보다 더 많은 듯합니다. 모르는 말투성이입니다. 화장품이나 미용에 관한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의료와 관련된 드라마를 보면 아예 자막으로 설명을 해줍니다. 대부분 외국어로 된 전문용어입니다. 뉴스, 스포츠, 드라마, 피디 등의 단어가 다 순우리말이 아니니 외국어 범람의 현상은 놀랄 일도 아닐 겁니다.
케이팝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전에는 가끔 들어갔던 외국어 가사가 이제는 주를 이룹니다. 오히려 한국어 가사가 맛보기처럼 들어갑니다. 사실 케이팝의 정의 자체가 어렵습니다. 작곡가, 가사, 가수, 기획사 등에 한국적이지 않은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외국의 작곡가가 작곡한 노래도 많고, 심지어 팀원 중에 외국인도 여럿입니다. 어쩌면 케이팝 자체가 접촉의 현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관점을 돌려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일본에 가면 지하철에서 한글 안내판을 발견하게 됩니다. 거리마다 한국어 안내가 있어서 종종 여기가 어디인지 혼란스럽습니다. 간판에도 한글이 보입니다. 미국 등의 한인타운에는 그야말로 영어가 드뭅니다. 한동안 한국어 간판에 영어를 같이 써 달라는 현지의 요구가 있었을 정도입니다. 무슨 가게인지 도대체 알 수 없다는 항의였습니다.
외국인은 한국 드라마와 케이팝에 열광하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어와 한글을 접합니다. 자연스러운 언어 접촉의 현장입니다. 한국어로 된 간판이 드라마에 나오면 무슨 뜻인지 궁금해하고, 케이팝에 한국어로 된 가사가 나오면 뜻을 찾아보고 따라 부릅니다. 이제 한글과 한국어는 더 이상 외국인에게 낯선 문자, 낯선 언어가 아닙니다. 우리 속에 외국어가 엄청나게 들어온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한국어도 세계 속으로 널리 퍼져가고 있습니다.
언어 접촉은 한 방향이 아닙니다. 언어 접촉은 쌍방향이고, 다방향이기도 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한 언어가 여러 언어에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시대에 따라 영향을 미치는 방향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한자어가 한국과 일본, 베트남, 태국 등에 영향을 미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근대에는 일본에서 만든 한자어가 역으로 한국이나 중국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제는 한국어가 일본어나 중국어 속으로 들어가기도 합니다. 앞으로 베트남어나 태국어가 우리말 속으로 더 들어오게 될 겁니다.
그래서 언어 접촉의 현장은 궁금함의 현장이어야 하고 배려의 현장이어야 합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일까 하고 궁금해하는 과정에서 교류가 생깁니다. 혹시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배려가 생깁니다. 그래서 언어 접촉의 현장은 상호 문화교류의 현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접촉의 현장에서 문화적으로 더 성숙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