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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업] AI를 넘어서는 지혜, ‘깊이 읽기’

북클럽에 소속되어 동료들과 책을 읽고 토론하는 것은 필자의 오랜 습관이자 즐거움이다. 독서는 분주한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춰 삶의 깊이를 성찰하게 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때로는 지적인 자극을 통해 사고의 지평을 넓히고, 때로는 복잡한 현실로부터 잠시 벗어날 수 있는 건강한 도피처가 되어주기도 한다.   최근 필자의 이러한 생각에 확신을 더해준 책 한 권을 만났다. 바로 구글의 저명한 AI 연구원이자 미래학자인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이 쓴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특이점이 온다, 더 가까이(The Singularity is Nearer)’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인공지능(AI)이 인간의 경쟁자가 아닌, 인간의 능력을 확장하는 동반자가 될 것이라 역설한다. 즉, 인간 고유의 감성(High Touch)과 AI의 기술(High Tech)이 결합하여 새로운 차원의 공존을 이룰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렇다면 AI가 기술적 영역을 담당하게 될 미래에 인간이 갖춰야 할 핵심 역량은 무엇일까. 바로 AI가 대체할 수 없는, 지극히 ‘인간적인’ 능력들이다. 커즈와일의 통찰은 우리에게 몇가지 역량들을 연마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게 한다. 먼저 상대를 헤아리는 힘인 ‘공감’과 ‘연민’이다. 또 협상 능력과 복합적 문제 해결 능력, 인간관계 및 관리 기술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비판적 사고력과 창의력과 판단 및 의사결정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   이러한 역량들은 결코 단기간에 길러지지 않는다. 깊이 있는 독서와 치열한 토론을 통해 오랜 시간 숙성시켜야 하는 지혜에 가깝다. 이제 아이들에게만 “책 좀 읽으라”고 할 때가 아니다.     가정과 직장, 그리고 우리가 속한 모든 공동체에서 어른들이 먼저 책을 들고 ‘함께 읽기’를 시작해야 한다. “배우면 배울수록 얼마나 모르는지를 깨닫고, 배우지 않으면 않을수록 스스로가 모든 것을 안다고 착각하게 된다”는 격언을 되새겨야 할 시점이다.   필자가 교육 현장에서 교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함께 읽기’의 힘은 실로 막강하다. 아무리 바쁜 와중에도 한 달에 한 번씩 동료 교장들과 북클럽을 통해 꾸준히 책을 읽었다. 교육 현안과 리더십에 대한 책의 시사점을 나누는 과정에서 학교를 이끄는 혜안을 얻을 수 있었다.     이러한 긍정적 경험을 바탕으로 학교 내 교사 북클럽 활동을 지원했고, 이는 자발적인 학부모 북클럽 결성으로까지 이어졌다. 학부모들에게 자녀 양육 관련 서적을 추천하며 함께 성장하는 교육 공동체를 만들었던 경험은 지금도 큰 보람으로 남아있다.   자녀는 어른의 거울이다. 읽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는 자연스럽게 책을 손에 잡는다. 가정에서부터 변화를 시작해야 한다. 한 달에 한 번, 온 가족이 둘러앉아 20분간 각자 책을 읽는 ‘가족 독서의 날’을 제안한다. 독서 후에 자신이 읽은 내용과 느낀 점, 배운 점을 서로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아이들은 읽은 내용을 말로 표현하고, 글로 요약하거나, 그림으로 그리게 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독후 활동을 이어갈 수 있다.     이처럼 읽고(Read), 대화하고(Talk), 쓰고(Write), 그리는(Draw) 과정 속에서 가족 간의 유대는 깊어지고, AI 시대에 필요한 인간적 역량은 자연스럽게 성장할 것이다.   ▶교육상담: [email protected] 수지 오 / 교육학박사·교육전문가오픈업 지혜 학부모 북클럽 가족 독서 의사결정 능력

2025.07.03.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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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업] 한국의 ‘필립 공’들에게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서거한 지 6개월이 되어간다. 그녀는 여왕으로만 71년을 살았다. 정치적 결정권은 없었지만 한 나라의 수장으로 세계의 관심과 존경을 받았던 분이다.     여왕도 지구촌 일반 시민들처럼 시대적 변화를 겪었다. 국제 정세에 따라 영국의 지배 영역이 축소되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대영제국에 속했던 56개 국가가 하나씩 독립하고 이들과 연방(Commonwealth) 관계를 맺어야 했던 결정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근대의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던 대영제국의 위치를 여왕 시대에 포기해야 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옆에는 항상 부군인 필립 공이 있었다. 둘은 모두 빅토리아 여왕의 후손들로 친척 간이다. 그리스에서 태어난 필립 공은 그리스, 덴마크, 프로이센, 러시아의 로마노프 왕족과 피가 섞인 사람이다. 젊은 시절의 여왕 부부는 싱그러운 모습으로 세상의 관심을 끌었다. 신경질적이거나 권위의식을 갖고 군림하지 않았다. 그녀의 눈은 맑고 간사함이나 비겁함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또 단정하고, 선하고, 가식이 없고 진실했다. 10대 공주 시절, 결혼식 당시, 그리고 왕관을 썼던 25세 때 등 여왕의  모든 모습에 세계가 환호하고 좋아했다. 그녀가 여왕의 자리를 잘 지키도록, 영국은 그녀를 사랑하고 보호하였다고 할까?   여왕 관련 기사를 읽으면서 “필립 공은 참 대단해. 앞장설 수는 없었던 입장이라 해도, 여왕인 부인 옆에서 함께 하는 모습이 뒷전으로 밀려 보이지 않고, 멋있어!”라고 말하자, 남편은 손가락으로 자기 가슴을 가리키면서 “아키(aqui)!”라고 말해 웃었다. 아키란 스페인어로 ‘여기’ ‘이곳’, ‘저’라는 뜻이다. 나 자신을 가리키면서 말한다면 ‘나’라는 의미도 있다. 남편은 ‘나 같은 사람’이라는 뜻에서 그런 것이다.   그러고 보니, 세상엔 훌륭한 필립 공들이 많다. 남편은 외부 일, 아내는 집안 살림이라는 오래된 고정관념이 바뀌기 시작한 것도 꽤 오래됐다. 지금 한국과  해외 한인 가정들에서도 남녀의 역할이 바뀐 가정이 꽤 많을 것이다. 엄밀히 따져 보면, 역할이 바뀌었다기보다는 경계가 없어지고 부부나 동거인들이 가사를 함께 해결하는 모습이다.     나는 여자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의예과 때 ‘기독교 문학’이라는 과목이 필수였다. 중장년 연령의 목사님이 강의를 맡았다. 첫 강의가 있던 날, 그 목사님은 여자들이 집안 살림, 남편 보조, 육아 등을 하지 않고 의사의 길을 간다는 것은 무리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알고 있는 어떤 여자 의사는 새벽에 일어나 모든 가사 관련 일을 한 후에야 자기 일을 하러 출근한다는 예를 들었다. 가사 관련 일이란 혹시 늦게 귀가할 경우를 대비해 식사 준비까지 해 놓는 것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또 한국 최초의 여자 변호사는 퇴근길 버스에서 내리기 무섭게 입었던 외출복을 벗어 가면서 귀가하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부엌으로 향한다는 것이었다. 반세기 전의 일이다.     지금은 어떤가? 한국은 물론 세계의 노동시장은 꾸준히 변하고 있다. 미국의사협의회(American Medical Association)에 따르면 2018년에는 의과대학 지원자의 남녀 비율이 비슷했던 것이  2019~2020년에는 여성 비율이 53.5%로 더 많았다. 그러나 실제 의료인 가운데 여성 비율은 36.3%에 지나지 않는다. 의과대학 입학부터, 의료인으로 활동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고려하여 보면 이해가 된다.     한국 국가통계국(KOSIS)은  2023년 한국의 전업주부 남성이 21만 명 이상이라고 발표했다.  또 육아, 가사 부담이 큰 경우, 남편과 아내 두 사람 중 수입이 적은 쪽이 직장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남성이 포기하는 현상이 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인 ‘필립 공’들이 많아졌다는 뜻이겠다. 한국인 ‘필립 공’‘들에게 힘내시라 하고 싶다.   내 아버지 세대에는 ’필립 공‘들보다 ’신 사임당‘들이 더 많았다. 딴 세상에 가 계신 내 아버지는 여러 모자를 바꿔 써 가면서 사는 나를 보고 무어라 하실지 궁금하다. 모니카 류 / 종양방사선 전문의·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오픈업 한국 필립 여왕 엘리자베스 여왕도 지구촌 필립 공들

2023.03.06.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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