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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33년 중환자실에서 지켜본 죽음

지난 2월 한 달 동안 내가 맡은 환자가 4명이나 세상을 떠났다. 유난히도 추웠던 2월이었고 출근길은 날마다 전쟁이었다. 눈이 쌓였거나 얼음 빙판이었다. 시베리아 바람이 볼을 후벼대는 검푸른 어둠을 헤치고 나가는 전사 같았다. 언젠가 ‘2월은 회색이다’라는 시를 쓴 적이 있다. 그때도 지금도 2월은 회색의 기억이 있다.   중환자실에서만 33년째 근무를 해오고 있어 아마도 나만큼 죽어가는 환자를 많이 경험해 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장의사도 이미 죽어 경직된 시신을 다룰 뿐 나처럼 죽어가고 있는 환자의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의 표정, 신체의 각 부분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시시각각 살피며 지켜보는 경우는 흔치 않은 경험이다.     일단 환자가 고통스러워하면 진통제, 가래 줄이는 약과 진정제를 투여해서 환자를 편안한 상태로 유도한다. 환자가 편안해 보이면 지켜보는 가족도 편안해진다.     환자가 죽어갈 때 그들의 모습과 표정에도 아주 미세한 차이가 있다. 어떤 이는 이제 다 놓고 받아들이는 듯 잔잔한 미소를 띠고, 어떤 이는 이렇게 죽어가는 것이 억울한 듯 인상을 찌푸린다.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나면 그때의 표정이 그대로 굳어진다. 더 이상의 움직임이나 변화는 없다. 의사는 사망선고를 한다. 보통 2~3시간의 슬퍼할 시간(grieving time)을 준다. 그리고 가족들에게 장의사에게 연락하라고 알려주고 시신은 비닐백에 넣어 냉동 시체 보관실로 옮긴다.     이제 거주할 육신을 잃은 혼은 어디로 가나. 이때 개인의 종교나 믿음에 따라 생각이 달라진다. 기독교에서는 육신은 죽어 흙으로 돌아가지만, 영혼은 천국 아니면 지옥에 간다고 믿고, 불교에서는 업보에 따른 윤회설을 믿는다. 평소 자신이 믿고 있는 신앙 세계로 갈 것으로 추측한다.     이는 증명된 사실이 아니고 증명할 수도 없으며 그렇게 믿음으로써 내 마음에 평화가 오기 때문이다. 조상숭배도 하나의 신앙으로 중국의 유교, 일본의 신도, 한국의 선교, 인도의 힌두교는 죽어서 영혼이 조상의 세계로 찾아간다고 믿는다.   장석주의 ‘내가 읽은 책이 곧 나의 우주다’라는 책은 앞으로 읽고 싶은 책이다. 이 문장을 ‘내가 살아오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경험과 읽은 책이 나의 우주다’라고 수정하고 싶다. 살면서 우리 내면에 축적된 경험의 깊이, 그 밑에 흐르는 무의식의 거울이 우리 몸을 통해 빛을 낸다.     한때 사후세계에 관심이 많아 이와 관련된 많은 서적을 구매해 읽었다. 그 결과 ‘잘 죽는 법’이라는 졸저를 출간했다. 그 당시만 해도 나는 사람을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적으로 나눠 구별했다. 다시 말하면 몸을 쓰는 사람과 머리를 쓰는 사람으로 분류해서 대인관계를 맺고 지내왔었다. 이제 겨우 철이 들어가는 것일까. 살아갈 날이 살아온 시간보다 짧아질수록 삶 자체가 실존임을 실감한다. 삶을 체험하는 몸 자체가 실존이다. 탄생해서 죽을 때까지 육신을 입고 겪는 일만이 삶이고 실존이다.     니체는 ‘몸은 형태의 형태이자 영혼의 형태이다’라고 햇다. 이 묘사는 과연 혁명적인 선언이다. ‘영혼, 정신, 몸 중에서 몸이 가장 앞선다. 정신이 몸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몸이 정신을 제 도구로 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이 얼마나 엄청난 반란인가. 평생 정신이 몸을 지배한다고 믿고 살아온 나에게 니체의 이 사상은 큰 충격이었다. 평생 수천 수만 명의 죽음을 목격해 온 나는 이제 몸, 몸만을 믿게 되었다.     사람은 평생의 경험이 몸을 통해 표출된다. 몸은 나의 존재를 표현하는 현상이다. 한강은 ‘소년이 온다’에서 총에 맞아 죽은 정대의 혼이 주위를 맴돌다가 화장 당한 후 소멸하였다고 묘사한다.     우리는 죽은 자의 혼이 어디로 가는지 증명할 수 없고 추측만 할 뿐이다. 기도와 장례식은 죽은 자에 대한 가족과 친구들의 마지막 예우다. 살아남은 자들은 이런 의식을 치름으로써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다했다는 평안을 얻지만 죽은 자는 고요하다. 정명숙 / 시인이아침에 중환자실 죽음 영혼 정신 명의 죽음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적

2025.04.08.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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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죽음은 다리 하나 건널 뿐

캘리포니아 역사상 최악의 산불로 하늘은 빨갛게 타올랐다. 검게 물들은 구름이 하늘을 뒤덮었다. 아직도 타는 듯한 냄새가 코에서 맴돌았고 잿가루가 차 지붕에 쌓였다. 을씨년스러운 산과 주위를 보며 프리웨이를 달렸다. 정체가 없어서 생각보다 일찍 할리우드 힐스 포리스트 론에 도착했다.   예전에는 이곳에 오면 마음이 무거웠다.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기 때문이리라. 뭔가 겪고 싶지 않은 두려움이 다가오기 때문이리라. 착잡한 마음으로 장례식에 참석하고 끝나 가기를 기다렸었다. 그러나 이젠 그렇지 않다. 하나의 과정으로 받아들이며 자연스러운 것이며 이별식으로 생각하게 됐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많이 오지 않았다. 긴 의자는 등받이가 높았고 칸막이를 해 놓은 듯 보여 엄숙함을 더 하는 것 같았다. 조문객들은 조용히 마지막 작별을 하기 위해 앉아 있었다. 접수처에서 내 이름을 쓰고 있는데 누군가 내 등을 두드렸다. 밸리에 사는 문우였다. 오기로 한 문우들이 시작 시간이 다 되어서야 도착했다.   장례식 순서지를 보니 시와 수필이 실려있었다. 시는 추모하는 글이었고 수필은 그녀가 죽기 전에 써놓은 글이었다. ‘영혼의 이별식’인데 지인의 장례식에 다녀와서 쓴 것이다.     그녀는 “평소 즐기던 음악을 내 장례식에 참석한 지인들과 감상하고 영혼의 이별식 하루 만이라도 숙명적으로 낙엽인 된 나와의 결별을 슬퍼해 줄 몇 명의 진실한 가슴만 있다면 떠나는 길이 외롭지 않을 것이리라”고 썼다.   이제 내가 여기에 와있다. 그녀가 써놓은 수필의 손님으로 앉아 있다. 그녀는 작년 8월 달 동네방 글공부 모임에 나왔었다. 내가 밥을 산다고 했다. 그때는 4명만 나왔다. 그녀는 “밥을 산다고 하니 나와야죠” 하고 말했다. 약간 수척한 듯 보였지만 아픈 것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글에 대해 진지하게 평하면서 이야기했다.   그리고 지난 10월 모임과 한강 노벨상 문학 축하 자리에 나왔었다. 마지막으로 본 것은 11월 달 줌미팅에서였다. 그때 한 회원이 그녀에게 말했다. “선생님, 나오기를 기다렸었는데 저번 때 나오지 않으셨더라고요. 선생님이 저번 때 평한 것을 가지고 제 작품을 많이 고쳤어요.”     그때에도 그녀가 많이 아프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던 지난달 6일 카톡으로 그녀의 마지막 메시지가 왔다. 어느 회원의 이메일을 알려 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전체 이메일로 그녀가 그 회원의 작품에 대해 평한 것이 들어왔다. 아마도 건강이 허락지 않아 대면 모임에 나오기 힘들어서 보낸 것 같았다. 나중에 그녀가 갑자기 찾아온 암과 싸우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난달 14일 동네방 글공부 대면 모임에 그녀는 나오지 않았다. 먼 거리에 사는 회원이 모처럼 나왔다. 그녀가 왜 나오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어제 전화통화를 했다고 했다. 오늘 나올 수 있도록 해보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슬픈 소식이 들려왔다. 그녀가 세상을 떠났다. 실감나지 않았다. 뜻밖이었다. 회원들은 놀랐다. 그녀가 그렇게 빨리 떠나갈 줄 몰랐다.     이제 마지막 작별을 하기 위해 그녀 앞에 와 있다. 그녀의 남편이 말했다.     “제 아내는 아직도 아름다워요. 그녀의 마지막 모습을 잘 보고 가세요.”     그녀 앞에 다가갔을 때 평소 말하는 나직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선생님, 와 줘서 고마워요. 제가 가는 길이 외롭지 않겠어요.”   그녀는 단지 신호등의 교차로를 건너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차로를 건너가면 다른 거리가 보이고 다른 세상이 보인다. 죽음은 멀리 있는 것도 아니고 언제 올지도 모르며 우리 곁에 있다. 그저 다리 하나 건너는 것뿐이다. 죽음이 무섭지 않고 두렵지 않게 다가왔다.   죽음을 의연하게 맞이하고 하나의 연결로 생각하려면 살아 있는 동안에 오늘 하루를 충실히 최선을 다해 살아야 될 것 같다. 그리고 가족, 친구, 지인을 포함해서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살아 있는 순간 순간 충실해야 할 것 같다. 이정호 / 수필가이아침에 죽음 다리 대면 모임 동네방 글공부 다리 하나

2025.01.26.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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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으로 읽는 세상] ‘죽음과 소녀’

슈베르트의 현악4중주 14번에는 ‘죽음과 소녀’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이런 제목이 붙은 이유는 이 곡의 2악장이 슈베르트의 가곡 ‘죽음과 소녀’의 선율을 주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티아스 클라우디우스의 시에 곡을 붙인 가곡 ‘죽음과 소녀’는 소녀를 데려가려는 죽음과 이를 거부하는 소녀와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저리 가요. 저리 가라구요. 나는 아직 젊어요. 그러니 이대로 내버려 두세요.” “아름답고 상냥한 아가씨, 나는 너의 친구야. 두려워 말고 내 품에서 편히 잠들려무나.”   현악4중주는 이런 가곡의 선율을 주제로 다양한 변주가 펼쳐진다. 처음에 주제를 제시하는 부분은 ‘죽음’이 친절한 친구로 가장하고 소녀에게 접근하듯 그렇게 아름답고 우아할 수가 없다. 주제가 끝나고 나오는 첫 번째 변주 역시 그렇다. 여기서 제1바이올린은 고음역 특유의 화려한 음색으로 주제선율을 아름답게 장식한다. 특히 프레이즈의 끝자락을 사라지듯 장식하는 아련하고 처연한 멜로디가 일품이다.   두 번째 변주에서는 첼로가 중후하고 편안한 목소리로 듣는 이의 마음을 위로해 준다. 하지만 그다음 변주부터 현악기들이 절규하기 시작한다. 절규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비명이라고 해야 할까. 격렬하게 현을 긁어대기 시작한다. 그랬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처음의 평화로 돌아온다. 하지만 곧 다시 시작되는 절규와 비명. 이런 처절한 몸부림이 모두 지나고 나면 현악기들이 조용히 ‘죽음과 소녀’의 멜로디를 연주하며 끝을 맺는다.   말년에 슈베르트는 병마에 시달렸다. 심한 두통과 고열, 구토로 괴로워하는 와중에 그는 “묻히는 건 싫어. 혼자 있는 건 싫어”라고 중얼거렸다고 한다. 음악 속의 소녀처럼 그 역시 죽음에 저항했던 것이다. 하지만 슈베르트는 죽음과의 싸움에서 패배했다. ‘죽음과 소녀’를 작곡한 지 2년이 지난 1828년, 31살이라는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진회숙 / 음악평론가음악으로 읽는 세상 죽음 소녀 현악4중주 14번 마티아스 클라우디우스 고열 구토로

2024.10.07. 18:40

[글마당] 죽음의 매뉴얼

계절이 흘러가고 세상이 흘러가고 도시가 흘러간다 평생 걸어서 쌓아 올린 발자국이 모두 시가 된다 삶은 온통 시다 날마다 시의 행간을 서성인다   여기까지 왔다 아픔과 슬픔을 먹고 단단해진 심장 이제 더 이상 견디기에는   너무나 헐거워진 슬픔   이 슬픔을 꽃피우는 것이 우리가 할 일 네가 피워낸 꽃은 충분히 사랑스러워 이제 너는 다른 꽃봉오리를 찾아내는 일만 남았어 무섭게 굳어있던 우리 사이의 경계가 무너지고 녹아내리는 소리가 들려   삶은 묻는 만큼만 답을 준다지 이 세상 떠날 때   너는 무엇을 남길까 파장으로 겹친 이들과의 기억 그것도 잠깐이야 아름답고 소중한 기억도 우리 아들은 반쯤 기억하고 손주는 반의반쯤 기억하고 아들의 손주는 까마득할 거야   이게 죽음의 매뉴얼이야 정명숙 시인글마당 매뉴얼 죽음 반의반쯤 기억하고아들 기억도우리 아들

2024.06.21. 23:03

[발언대] 안타까운 죽음

정신 질환자에 대한 경찰 총격 사건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최근 정신 질환을 앓고 있던 한인 양용 씨가 경찰 총격에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정신 질환 환자들을 치료하는 전문의로서 매우 안타까운 마음이다.   LA시의회는 2년 전 정신건강 문제, 이웃 간 논쟁, 약물 남용, 자살 위협, 고성과 물건 부수기, 가정불화 등의 신고에 대처하는 ‘비무장 민간대응팀’을 신설했다. 경찰은 폭력, 살인 등 중요 범죄에만 출동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LA경찰국도 시의회가 통과시킨 비무장 민간대응팀 가동을 적극 지지했다.   하지만 전문가 입장에서 이런 민간대응팀이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가져왔다. 왜냐하면 정신과 관련 응급상황이란 치료를 거부하며 폭력적 성향으로 변한 환자를 강제로 병원까지 데리고 가는 경우이기 때문이다. LA카운티 정신건강국은 이미 정신과 응급팀(PET)을 두고 위기 상담 카운슬러를 24시간 대기시키고 있다. 소정의 교육을 받은 경찰 무장 요원과 정신건강 상담원이 팀을 이뤄 출동하고 있다. 하지만 이 시스템이 원활하게 작동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가디언지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2023년에 경찰 총격에 숨진 주민이 1200명이 넘는다. 이 중 100명(8%)이 정신 질환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다. 이성을 잃은 정신질환자가 경찰에 대항하다가 숨진 케이스로 볼 수 있다. 경찰과 대립하는 과정에서 체포돼 형을 치르는 경우도 있다. 모두 시스템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아 발생하는 사건들이다.     경찰은 정신질환자와 연관된 사건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제 식구 감싸기로 경찰 편만 들어서는 안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경찰 개혁이다. 물론 그동안 경찰은 여러 위기 상황에서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정신문제, 우울증, 자살 충동, 불안 장애, 약물중독, 주의산만증,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등을 겪는 경찰들이 있다. 이런 문제는 경찰 조직뿐만 아니라 법조계, 의료계, 정치, 경제, 외교, 군 등에서도 발견된다. 문제점이 드러나는 경찰관이 있다면 철저한 교육이 필요하다.   또한 각 로컬 정부의 정신과 응급팀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위기 상황이 발생하기 전에 강제 입원 치료할 수 있는 정신과 응급 병원과 병실 확대도 서둘러야 한다.   응급 상황에서는 환자와 같은 인종의 경찰관 내지 최소한 상담자를 동반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민간팀을 운영할 경우에는 그들이 자칫 다치는 등의 피해를 보지 않도록 보호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팬데믹 이후 정신질환과 관련해 폭행을 동반한 사건이 계속 늘고 있다. 전문적이고 효율적인 대처방안이 시급하다.   조만철 / 정신과 전문의발언대 죽음 정신 질환자 la카운티 정신건강국 정신문제 우울증

2024.05.22. 19:58

'죽음의 마약' 펜타닐, 작년 1억1500만개 압류

'죽음의 마약'으로 불리는 펜타닐이 미국 내에서 성행함에 따라 마약단속국(DEA)에 압류된 펜타닐 양도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13일 의회전문 매체 더힐(The Hill)이 DEA 자료를 인용해 보도한 데 따르면, 지난해 DEA가 압수한 펜타닐 알약은 1억1500만개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2017년에만 해도 펜타닐 압류량이 약 5만개 수준이었지만,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셈이다.     노라 볼코우 국립약물남용연구소 국장은 "펜타닐이 다른 약으로 위장돼 빠른 속도로 전국에 퍼지고 있다"며 "총 거래 건수도 엄청난 상황이라 매우 우려된다"고 전했다.   볼코우 국장은 펜타닐이 함유된 알약이 미국 거주자들에게 도달하는 일반적인 방법은 온라인 쇼핑이라고 전했다. 통증이 있지만 의사가 아편성 진통제(오피오이드)를 처방하지는 않는 수준의 질병이 있는 경우, 환자들은 다른 진통제를 온라인에서 구매하곤 하는데 여기에 펜타닐이 포함돼 있다는 것을 모르고 주문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특히 65~74세 노인 중 약물 과다복용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이 펜타닐 약물을 처음부터 찾았던 것은 아니라고 전했다. DEA는 미국으로 밀수되는 펜타닐의 주요 공급원으로 중국을 지목하고 있다.   2023년에는 플로리다주에서 펜타닐 적발 건수가 가장 많았고, 애리조나주와 캘리포니아주가 그 뒤를 이었다. 지역적으로는 서부 지역에서 압수된 알약이 압류량의 대부분을 차지했고, 북동부 지역은 적은 편이었다. 김은별 기자 [email protected]펜타닐 죽음 펜타닐 압류량 마약 펜타닐 펜타닐 알약

2024.05.13. 20:09

[신 영웅전] 키케로의 삶과 죽음

재능만 따진다면 고대 로마사에서 가장 출중한 인물은 키케로(BC 106~BC 43)였다. 수재로 만권 서적을 읽었다. 수재는 어떻게 다른지 궁금해한 학부모들이 학교에 찾아가 그를 지켜봤다. 키케로는 역사학자가 되어 『로마사』를 집대성하는 것이 꿈이었다.   그러나 수사학에 빠진 그는 자기 능력이 부족하다고 여겨 그리스에 유학한 뒤 변호사가 됐다. 로마 시민들의 이름과 규모가 큰 토지의 시세와 물주를 거의 외우다시피 했다. 그는 변호사가 되든, 정치가가 되든 부동산 큰 손이 되는 것이 제일이라 확신했다.   송사는 되도록 위험하고 큰 사건을 맡았다. 피고를 변론하다가 원고가 변호비를 더 주면 거침없이 갈아탔다. 많은 돈을 벌자 집정관에 거뜬히 당선돼 ‘로마의 국부(Pater Patriae)’라는 칭호를 들었다. 위증과 매수에 거리낌이 없었다. 선거에서는 정의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돈다발을 흔들며 더럽게 대드는 쪽이 이긴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키케로가 정적을 공격하는 연설에는 독이 묻어 있었다. 정적을 공격하는 연설문의 몇 가지 매뉴얼을 만들어 이름만 바꿔 넣었다. 변호사인 그가 살린 사람보다 그의 독설에 죽은 사람이 더 많았다. “감형해 주면 고맙게 여기기보다 원한만 더 깊어진다.” 주변에서 어제와 오늘의 말이 왜 다르냐고 물으면 “내 화술은 로마 시민을 설득할 능력이 있다”고 장담했다. 그의 아내 테렌티아가 더 설쳤다.   그러나 키케로는 카이사르를 암살한 브루투스를 변론한 것이 실수였다. 그가 살려준 노예의 밀고로 은신처가 드러나 안토니우스가 보낸 백인대장의 도끼에 목과 손이 함께 잘렸다. ‘부동산업자는 원수진 사람의 손에 죽지 않고 자신의 손에 죽는다’(크라수스). 정권에 붙은 그의 아내는 밀고한 노예에게 “자기 살을 베어먹는 것으로 연명하라”는 형벌을 내렸다. 2000여 년 전 남의 나라 이야기인데 낯설지 않다. 신복룡 / 전 건국대 석좌교수신 영웅전 키케로 죽음 고대 로마사 로마 시민들 밀고로 은신처

2024.04.14. 19:00

[음악으로 읽는 세상] 베니스에서의 죽음

1971년에 나온 비스콘티 감독의 ‘베니스에서의 죽음’은 독일의 문호 토마스 만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작곡가 구스타프는 베니스의 리도 섬으로 여행을 갔다가 그곳에서 마치 그리스 조각처럼 완벽한 아름다움을 지닌 소년을 보고 한순간에 매료되고 만다. 평생 아폴로적인 절제와 금욕을 최고의 덕목으로 알고 살았던 예술가가 디오니소스적인 욕망에 속수무책으로 내몰린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섬에 전염병이 찾아와 소년의 가족이 섬을 떠난다는 소식을 듣는다. 다시는 소년을 볼 수 없다는 절망에 휩싸인 구스타프는 이발사를 찾아가 흰머리를 검은색으로 물들이고, 얼굴에 하얗게 분칠을 한다. 입술에는 빨간 연지도 바른다. 늙은 얼굴을 가린 채 소년의 주변을 맴돈다.   영화의 주제음악은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제5번의 4악장 아다지에토다. 처연하고 비극적인 느낌의 이 느린 악장은 집요하게 죽음을 이야기한다. 이 악장에서 말러는 오로지 현악기만 사용했는데, 그 소리가 그렇게 비장하고 처연할 수가 없다. 인간 존재의 실존적 의미, 젊음의 소멸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멀리서 검은 구름이 밀려오듯 현악기의 처연한 음색이 점점 소리의 강도를 높여 간다. 그 장면에서 남자는 죽음을 맞는다. 그의 얼굴에서 땀이 흘러내린다. 머리와 눈썹, 얼굴과 입술을 물들인 염색약과 화장품이 땀으로 범벅된다. 그 추한 모습은 되돌릴 수 없는 젊음을 화장으로 감추려 했던 남자의 소망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가를 처절하게 보여준다.   소년의 모습이 점점 멀어지는 동안 구스타프의 삶도 서서히 꺼져 간다. 갑자기 현기증이 밀려온다. 멀리 사라져 가는 소년을 따라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구스타프는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만다. 소년과의 이별이 곧 육신의 죽음이자 정신의 죽음이 된 것이다. 진회숙 / 음악평론가음악으로 읽는 세상 베니스 죽음 소멸과 죽음 구스타프 말러 작곡가 구스타프

2024.04.01. 19:10

[투어멘토 박평식의 여행 이야기]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도시, 인도 바라나시

최근 만화가 겸 방송인인 기안84가 유튜버 빠니보틀, 덱스와 함께한 인도 여행기가 시청자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MBC에서 방영된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프로그램에는 기안84가 인도 바라나시(Varanasi)를 여행하는 모습이 담겼다. 그는 갠지스강에 입수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갠지스강 물을 마시기도 했으며, 터번을 쓰고 거리를 활보하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생소한 여행지인 인도를 누비면서 벌어지는 소탈하고도 진솔한 여행기가 큰 인기를 끌면서 인도 여행을 고려하는 이들도 부쩍 늘었다.   일찍이 미국의 대문호 마크 트웨인은 바라나시를 두고 '역사보다, 전통보다, 전설보다 오래된 도시'라고 표현한 바 있다. 필자 역시 인도를 가보지 않고는 세계일주를 했다고, 갠지스 강변의 바라나시를 가보지 않고는 인도를 여행했다고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바라나시는 인도 우타르 프라데시주 에 있는 도시다. 과거 '빛의 도시'라는 뜻의 카시(Kashi)라고 불렸다. 갠지스강 중류에 자리하며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이자 힌두교에서 가장 신성한 도시로 여겨진다. 바라나시에서는 소들이 가게를 기웃거리고 거리를 활보하고 소똥이 널브러져 있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 모습이 마치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듯한데, 힌두신을 태우고 다니는 소를 신성시하는 것이다. 비슷한 맥락으로 갠지스강을 처음 봤다면 예상보다도 탁한 강물과 여기저기 떠다니는 오물을 보고 실망할 확률이 높다. 그럼에도 인도 사람들, 특히 힌두교도들에게 있어 갠지스강은 눈으로 보이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 성스러운 영혼의 젖줄이다.   바나라시의 강물 한 방울이면 모든 물이 갠지스강이 된다는 믿음이 있기에 이 강물에 몸을 담그려는 열망으로 이른 새벽부터 세계 곳곳에서 모여든 다양한 계층의 순례객들이 넘쳐난다. 강변을 따라 수십 개의 '가트(터)'가 줄지어 있는데 여기서 가트란, 강변과 맞닿아 있는 계단을 뜻한다. 고유한 이름을 가진 각각의 가트는 개인, 단체, 혹은 왕가의 사유물이다. 가트 아래에서 힌두교도들은 강물을 머리 위에 끼얹는다. 누군가에게는 더러운 물이지만 힌두교도에게는 죄를 씻을 수 있는 성수이다.   또한 인도인들은 이곳에서 삶의 마지막을 보내기도 한다. 이곳에서 화장한 골분을 갠지스강에 흘려보내면 억겁의 윤회 고리를 끊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즉, 생과 사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화장터에는 통곡하는 사람이 없고 오히려 성지의 화장터에서 죽는 것을 큰 영광이라 여긴다. 저녁 무렵이면 힌두교 시바신을 향한 제사가 펼쳐지는데 종소리로, 디아 꽃잎으로, 연기로, 불로 행하는 영혼 정화를 위한 의식은 신비한 기운마저 감돈다.     그렇다고 가트에서 종교적인 행위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빨래를 하는 아낙네부터 수염을 늘어뜨리고 경전을 읽는 수행자, 이방인들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아이들도 만날 수 있다. 바라나시는 소우주와 같이 다양한 문화, 종교, 철학이 교차하는 성스러운 명소이자 그 안에서 내면을 성찰할 수 있는 힐링 여행지다. 박평식 / US아주투어 대표·동아대 겸임교수투어멘토 박평식의 여행 이야기 바라나시 죽음 인도 바라나시 도시 인도 인도 여행

2024.03.21.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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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 죽음의 바다…이순신 3부작의 피날레 '노량: 죽음의 바다'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는 임진왜란 발발 후 7년, 조선에서 퇴각하려는 왜군을 완벽하게 섬멸하기 위한 이순신 장군의 최후의 전투를 그린 전쟁 액션 대작이다.     대한민국 최고 흥행의 역사를 기록한 영화 '명량'과 2022년 여름 최고 흥행작 '한산: 용의 출현'을 이은 세 번째 작품이자, 이순신의 마지막 전투를 그린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가 12월 마침내 공개를 확정했다. 이로써 지난 10년간 이순신 3부작 프로젝트를 향해 달려온 김한민 감독 이하 스태프들의 대장정이 막을 내린다.   명량을 기획할 당시만 하더라도 '이순신 3부작 프로젝트'는 실질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는 업계의 의견이 많았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성웅 이순신을 주인공으로 세계 해전 역사상 손꼽히는 전투를 스크린에 옮긴다는 것에 대해 실현 가능성과 실현 불가능성 사이, 의견이 분분했던 것. 그러나 김한민 감독은 명량을 시작으로 한산: 용의 출현, 노량: 죽음의 바다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하나의 시리즈, 세 명의 캐스팅이라는 획기적인 기획을 영화로 완성해냈다.     준비 기간까지 포함하면 10년이 훌쩍 넘는 여정의 마지막 작품인 노량: 죽음의 바다는 1598년 노량 해협의 겨울 바다에서 살아서 돌아가려는 왜와 전쟁을 완전히 끝내려는 조선의 난전과 이순신의 마지막 전투를 압도적 스케일로 펼칠 것을 예고한다.   명량의 최민식, 한산: 용의 출현의 박해일에 이어 이번 노량: 죽음의 바다에서는 배우 김윤석이 노량에서의 마지막 전투를 준비하는 이순신 장군 역할을 맡아 압도적인 연기로 대미를 장식할 예정이다.   이처럼 역사적인 한 인물을 두고 서로 다른 배우들이 바통을 이어받아 그 캐릭터를 해석한 경우 역시 한국 영화 사상 이순신 3부작 프로젝트가 최초다. 최후의 전투를 앞둔 이순신 장군 역으로 분한 김윤석은 좁고 깊은 노량 해협에서의 마지막 전투를 준비하는 현명한 장수, '현장'(賢將)의 모습으로 몰입해 보는 것만으로도 압도되는 현장감과 함께 그간 보지 못한 새로운 얼굴을 선보일 예정이다. 여기에 다시 한번 관객들에게 스펙터클한 재미와 더불어, 왜와의 전쟁을 끝내려는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전투를 압도적 스케일로 스크린에 재현해 이순신 3부작의 마지막 전투를 더욱 성대하게 채울 것으로 기대된다.     이처럼 노량: 죽음의 바다는 1598년 최후의 전투의 현장으로 돌아가 관객들에게 장엄한 승리의 전투의 쾌감을 선사할 것이다.업계 죽음 바다

2023.12.24.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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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삶 속의 죽음

생명을 가진 존재는 누구나 세상 밖으로 사라진다. 아무도 몇 분 후에 닥쳐올 죽음에 대해서는 생각이나 준비함이 없다.     최근 몇 달 동안 내 주변에서 정을 준 많은 사람이 떠나갔다. 그들에게도 예상하지 않았던 죽음이 한순간에 닥쳐왔다. 모든 꿈도 삶의 기쁨도 소망도 한순간 구름처럼 산산이 흩어져 버리고 말았다.  성경에는 “죽음이 너희에게 도적 같이 오리라”고 했다. 그토록 삶은 질기고 길면서도 또 한순간처럼 허무하고 내일을 알 수 없는 생명의 불가사의를 뜻하고 있다.   떠난 자들의 슬프지 않은 뒷모습은 없기에 아픔과 슬픔으로 몸도 마음도 슬픔의 덫에 걸려 삶의 기쁨이란 하나도 없는 것처럼 견디기 힘든 외로움이 묻어 있는 시간을 보냈다. 나의 고통 뒤에는 떠남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이 있었기에 더 괴로운 것이었고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슬픔의 고통은 충분했다.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의 죽음을 봤고 또 경험했지만 황혼의 나이가 되도록 동물이 죽는 모습을 본 적은 없었다. 그런 내가 가슴에 금이 가는 아픔을 안고 반려견이었던 큐팁이의 마지막 가는 모습을 지켜본 것이다. 큐팁이는 15년 전 우리 집에 입양되면서 가족이 됐다. 가족들에게 사랑받는 귀염둥이였고 외로움을 풀어주던 친구였다. 세월에 예외 일 수 없었던 큐팁이도 노년에 들어서며 신장에 문제가 생겨 큰 고통을 겪으면서도 아프다는 말 한마디 못하고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는 곳으로 떠났다.     큐팁이가 머물다 간 15년의 흔적이 너무나 커 쓸쓸하고 허전한 여운을 남기지만 우리 가족은 큐팁이와 함께 행복했던 그 시간을 오래오래 기억할 것이다. 큐팁이의 죽음을 슬퍼하고 애도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작가 윌리스 사이프는 ‘반려동물을 잃는 것에 관해’라는 글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반려동물은 우리에게 순진무구하게 의존하며 우정과 사랑을 준다. 무엇보다도 반려동물은 우리를 판단하지 않은 채 온전히 받아들인다. 우리가 삶에서 바라는 역할이 무엇이든, 동물들은 그것이 되어주며 우리를 결코 실망시키지 않는다. 우리는 동물들을 통해서 우리 자신을 판단한다. 동물과의 우정은 우리에게 안정감과 목적의식, 그리고 형용할 수 없는 개인적 풍요로움을 선사한다.”   작가의 글에 공감하는 바가 크다. 인간과 가장 가까이에 있으며 충실과 헌신의 상징으로 일컬어지는 것이 반려견이라는 생각이다.     아픔이나 괴롭고 슬픈 일일망정 가득히 담겨있는 것이 삶의 무게가 아니겠는가 싶다.   이 해도 저물어가는 12월에 있다. 인생은 이별을 준비하는 삶이기에 날마다 죽음을 향해 가까이 가고 있는 시간 속에 떠난 자들에게 못다 한 사랑을 생각하니 부끄러움이 쓴 약처럼 아프게 가슴 속을 흘러내리며 12월의 마음은 의미 있는 삶을 생각하게 한다.   인간에게는 불가항력적인 사랑이라는 유전자가 내재해 있어 사랑은 또 다른 생명에게로 이어질 것을 믿기에 맑고 밝은 마음속에 사랑을 가득 담아 이 해 마지막 달에 바치고 싶다. 눈 부신 빛 한 올이 저만치서 오고 있다. 나는 일어선다. 김영중 / 수필가이 아침에 죽음 한순간 구름 우리 가족 작가 윌리스

2023.12.15. 19:05

[글마당] 소하의 죽음에 대한 남자들의 불라불라

소하의 죽음에 대한 친정 식구들은 시부모 구박으로 스트레스를 받아서. 시집 식구들은 미국에 초청한 친정 식구들이 자리 잡는데 도와달라는 성화를 견디지 못하고. 여자들 말로는 ‘남편의 외도로 속 썩이다’가. 또 다른 엇갈린 소문은 소하가 남편 몰래 누군가에게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해 동분서주하다가 열 받아서 쓰러졌다고 남자들은 쑥덕거렸다.   교포입네 하고 남자들이 한국에 나가서 예쁜 색시를 데려오곤 했던 1970대 초, 미국으로 이민 간 오빠 친구가 한국에 나와서 창숙을 보고 한눈에 반했다. 서둘러 결혼하고 미국으로 데려왔다. 기술 고등학교만 간신히 졸업하고 미국에 온 창숙 남편은 정비소에서 일했다. 엔진오일 묻은 작업복을 입고 기름때 낀 손으로 자기 몸을 더듬는 남편이 귀찮고 싫었다. 창숙은 속아서 한 결혼이라며 주말이면 LA 갈비 씹듯이 불평불만을 질근질근 씹었다.   창숙은 6개월 동안 빈둥거리다가 돈을 벌어 집도 사고 꿈꾸던 멋진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소하의 바느질 공장을 찾았다. “일 배워보고 싶어 왔습니다.” 뽀얀 피부, 커다란 눈, 부푼 가슴을 자랑하듯 내민 창숙의 상냥한 목소리에 직공들은 일제히 고개를 들고 바느질할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 화려한 창숙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소하는 마치 동공이 닫혀 보이지 않았던 물체를 확인하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넋 나간 듯 창숙을 쳐다봤다. 창숙은 그 순간 왜 사람들이 ‘쉬엄쉬엄 일해도 뭐라지 않고 소하가 제 한 몸으로 다 때우는 여자’라는 동네 소문을 이해할 수 있었다.     창숙이 소하 밑에서 일하면서 시집 식구에게 구박받는 소하를 보고 있자니 부아가 나서 못 참고 “왜 그렇게 죽어 살아요. 일만 하지 말고 바람도 쐬고 멋도 부려요. 누구를 위해 돈을 버는데요. 제대로 대접도 받지 못하면서.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인 줄 알아요. 시집 식구와 맞서서 자신의 위치를 다져야 해요. 돈 버는 사람 따로 있고 쓰는 사람 따로 있다더니. 운전면허증도 따요. 도와줄게요.”   얼마 후 창숙은 재봉질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그만두었다. 그리고 카지노 딜러가 된 후 남편과 이혼했다. 소하는 그동안 틈틈이 익힌 운전 솜씨로 마음이 심란할 때면 창숙을 만나러 갔다. 쇼핑도 외식도 하며 점점 자신만을 위한 삶을 터득했다. 창숙은 카지노 딜러가 성격에 맞는지 인기가 좋았다.     “언니 나 골수암이래. 수술해야 하는데 수술비가 없어. 급전 좀 해줄 수 있어요? 부탁이야.”   시댁, 친정과 남편에게 돈으로 시달리는 소하는 돈거래만은 누구와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그나마 자기에게 살갑게 구는 창숙이 암 수술을 해야 한다니! 4년 전, 쌈짓돈을 들고 가서 꿔줬다. 창숙은 의사의 오진으로 암 수술할 필요가 없었다고도 하고 급전이 필요해서 거짓말을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딜러가 수입이 좋다는데. 나에게 빌려 간 돈 이자는 그만두고 원금이라도 조금씩 갚았으면…” 소하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창숙은 빌려 간 돈을 기억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딴청을 떨었다. 소하는 할 말을 잃고 서둘러 차를 몰고 집으로 향했다. 그동안 창숙만은 믿고 마음을 줬는데. ‘너마저도 나를 버리다니!’ 차를 몰고 오며 소하는 잘못 살아온 자신의 삶을 한탄했다. 상대의 허점을 이용하고 공격하는 사람들이 두려웠다. 차창 밖으로 지는 해를 바라봤다. 하늘에 피를 토하는 듯한 붉은 해를 마주하자, 뇌에 통증이 왔다. 토하고 싶었다. 길가에 차를 세우고 밖으로 나갔다. 팔다리에 힘이 빠지고 시야가 흐려졌다. 쓰러졌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글마당 죽음 남자 창숙은 카지노 창숙은 재봉질 창숙은 의사

2023.10.20. 18:12

[글마당] 소하의 죽음에 대한 여자들의 가십

소하의 죽음에 대한 친정 식구들은 시부모 구박으로 스트레스를 받아서. 시집 식구들은 미국에 초청한 친정 식구들이 자리 잡는데 도와달라는 성화를 견디지 못하고. 또 다른 엇갈린 소문은 ‘남편의 외도로 속 썩이다’가 쓰러졌다고 여자들은 쑥덕거렸다.   소하는 봉제 공장을 다니다가 미싱 서너 대를 가라지에 들여놓고 바느질 공장을 차렸다. 미싱이 불이 날 정도로 달궈지면 다른 미싱으로 옮겨가며 밟았다. 밥때가 되면 배고프다는 시부모 성화에 부엌데기로 세상 밖을 나가지 못하고 돈 버는 기계였다. 영어를 읽을 줄 몰라서 운전도 할 수 없었다. 온몸에는 무지개색 실밥이 풀풀 날렸다. 머리는 산발이었다. 혈색은 누렇게 떴고 병색이 돌았다. 남편도 실밥 묻은 홈드레스 입은 초라한 소하의 모습이 창피한지 외면하고 먼 산 보듯 했다.     “너 하라는 미싱질은 하지 않고 언제 시민권을 따서 친정 식구를 부른 거야. 누구 맘대로. 두고 보자 하니까 이게 못 하는 짓이 없네.”   시부모의 폭언 수위가 높아졌다. 옆집 사는 손위 시누이는 머리채를 낚아챌 기세로 툭하면 달려왔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은 울고불고. 난리가 끊일 날이 없었다. 남편은 골 아프다고 집 나가 들어오지 않았다. 드디어는 한인타운에서 가게 하는 여자와 눈이 맞아 딴 살림을 차렸다. 시부모와 시누이는 상냥하고 싹싹한 내연녀 편으로 돌아섰다. 단지 소하를 내치지 못하는 것은 미싱만 밟으면 내연녀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남편이 소하와 더 멀어진 데는 친정 식구도 한몫했다. 친정 식구들이 미국에 오면 자기에게 힘을 실어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자신들이 살기 위한 방편으로 남편 앞에서 소하를 끌어내리기에 급급했다.     “소하야, 너는 미국에 온 지 꽤 됐는데 도로표지를 읽지 못해 프리웨이를 타지 못한다며. 네 동생 정인이는 오자마자 차를 몰고 프리웨이를 싱싱 달리는데. 네 꼴이 그게 뭐냐. 머리라도 제대로 빗던지. 김 서방 바람피워도 할 말 없겠다.”     엄마를 구박하는 어른들 틈바구니에서 자란 소하의 딸과 아들도 엄마를 무시하다가 대학으로 떠난 후 돈 달랄 때만 연락했다. 남편은 이혼하자고는 하지 않았다. 미안해하지도 않았다. 바람을 피울 수밖에 없었다는 뻔뻔한 태도로 내연녀의 가게 셔터맨을 하며 두 집 살림했다. 이따금 시부모를 본다는 핑계로 와서 돈을 집어 갔다. 시누이 남편은 심장마비로 쓰러져 갑자기 죽었다. 시누이는 생명 보험금을 타서 친구들과 크루즈 여행 다니느라 바빴다. 두 자식 모두 부모에게 살갑게 굴지 않고 크루즈 여행 한 번 가자고 하지 않는 것에 시부모는 섭섭했다. 잔소리와 악다구니가 점점 줄어들더니 드디어는 소하의 눈치를 보며 뒷방 늙은이가 됐다. 시아버지가 죽고 그 이듬해 시어머니도 죽었다.     남편은 내연녀의 가게가 잘 안되는지 집에 오는 횟수가 잦아졌다. 남편이 오든 말든 상관하지 않았다. 말을 섞지 않다가 눈빛도 마주치지 않았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글마당 죽음 여자 시누이 남편 시부모 성화 시부모 구박

2023.10.06. 21:28

[아메리카 편지] 영웅과 죽음

코로나와 출산 휴가를 거치고 3년 만에 강의실에 돌아왔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영웅들’이라는 제목으로 120여 명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마주 보며 강의하고 있으면, 내가 왜 굳이 교수 노릇을 해야만 하는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팬데믹 기간 동안 집에서 온라인수업 들으며 자란 아이들이다. 그래서인지 대면 수업을 기대하는 열렬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서양문화의 기층을 이루는 그리스 신화 영웅들의 이야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기 주제로 꼽히기 때문에 강의는 수월하게 진행된다. 도덕성이나 희생정신 같은 것이 안중에도 없는 그리스 영웅 특유의 성격이 우리가 생각하는 영웅이 갖춰야 할 성격과 상반되는 경우가 많아 좀 코믹하기도 하다.   그런데 이번 학기 첫 수업 들어가면서 나는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를 비롯한 많은 문화에서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영웅의 가장 특징적인 요소가 ‘죽음’이라는 사실이 예전처럼 가볍게 설명되지 않았다. 아킬레우스가 트로이 전쟁 때 싸움을 거부하고 있을 때 그의 어머니 테티스가 한 말이 영웅과 죽음의 관계를 정확히 포착한다. “지금 집으로 돌아가면 너는 부와 건강을 누리고 오랜 삶을 살 것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너를 기억하지 아니할 것이다. 트로이 전쟁에서 싸우면 곧 죽음을 맞이하게 되겠지만 대신 네 이름의 영광(kleos)은 영원할 것이다.”   고대인들에게는, 죽음을 통과해야만 영웅 추대를 받고 컬트가 생긴다는 관념이 지배적이다. 그런데 사춘기 시절 코로나 팬데믹을 겪고, 지난해 러·우크라이나 전쟁을 목격하며 큰 이 학생들은 벌써 죽음으로 둘러싸인 삶을 겪었다(특히 토론토는 우크라이나 피난민이 많은 도시다). 죽음을 택한 아킬레우스를 영웅으로 추대하는 인류사의 경향을 가르치면서, 희생을 요구하고 죽음을 낭만화하는 가치전략이 고대사회에서 그친 현상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김승중 /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아메리카 편지 영웅 죽음 영웅과 죽음 그리스 영웅 영웅 추대

2023.09.29. 18:37

[김상진 기자의 포토 르포] 삶과 죽음의 경계. 국경

국경은 경계를 가르는 선이다.     단순하게 그어놓은 선이 아니다. 지금 그곳엔 삶과 죽음이 교차한다.   지난 11일 불법 이민 금지 규정인 타이틀42가 종료됐다. 그러자 선을 넘고자 하는 이들이 몰리고 있다. 국경수비대는 66만 명 이상으로 추산한다.     그들에겐 ‘불법’이란 딱지가 붙었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그들을 막아서기 위해 군병력을 파견했다. 지난 5월 9일 단 하루에 1만명의 불법 이민자가 체포됐다.   플로리다의 드 산티스 주지사는 병력은 물론 항공기, 이동식 지휘 차량까지 보낼 예정이다.   미국은 막아서려 하고, 이민자는 어떻게든 선을 넘으려 한다. 국경은 지금 전장과 같다. 사투는 때론 죽음까지 부른다.   칼렉시코(Calexico)는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 도시다. ‘캘리포니아’와 ‘멕시코’의 조합이 도시명이 됐다. 이름처럼 양국의 정서가 조화롭게 배어있는 지역이다.  칼렉시코는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 있다. 사막을 지나야 하는 불법 이민자들이 반드시 거쳐 가게 되는 곳이다. 도시명과 달리 현실은 냉랭하다. 그들에겐 마치 신기루와 같은 곳이다.     국경단속반의 통계를 들여다봤다. 국경을 넘다 사망한 불법 이민자는1998년부터 꾸준히 증가하다 지난 한 해 동안 853명이 사망했다. 역대 최다치 다. 당국은 실제 사망자는 더 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사막의 모래에 묻히거나 강물에 떠내려간 시신은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칼렉시코를 지나가던 중 가무덤을 렌즈에 담았다. 사막에서 마주한 안타까움이다. 모래에 묻혀 백골이 드러난 시신이었다고 한다. 이름도 없다. 목숨을 걸고 선을 넘다가 생명을 잃은 영혼이다.   무덤은 현실을 담는다. 국경선은 지금 삶과 죽음을 가르고 있다.  김상진 사진부장 [email protected]김상진 기자의 포토 르포 죽음 경계 불법 이민자들 사막 한가운데 항공기 이동식

2023.05.19.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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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죽음과 생명의 발견

인간은 시간에 대한 관념을 갖는 특이한 존재다. 그리고 인간만이 유일하게 죽음을 생각하고 영원을 생각하며 나아가 영원한 삶을 소망한다. 요즈음 한국에서는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한 웰다잉(well-dying) 수업이 유행한다고 한다. 또한 ‘메멘토 모리’라는 말도 많이 회자하고 있다. 이 말은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 또는 ‘네가 죽을 것을 기억하라’를 뜻하는 라틴어다. 창조주 이외의 존재는 다 죽을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다. 하지만 인간은 반드시 죽는 존재이면서도 자기가 죽는다는 사실을 잊고 살아가고 있다. 필자 역시 평생 멘토로 모시던 김동길 교수님께서 세상을 떠나시면서 자연스레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1998년 가을, 문경새재에 있는 금란정에서 스승님께서 필자에게 성삼문의 사세가를 붓글씨로 써 주셨다.     울리는 저 북소리 목숨을 재촉하네   (擊鼓催人命)   뒤돌아보니 해도 서산에 걸렸구나   (回頭日欲斜)   저승길에는 주막 하나 없다는데   (黃泉無一店)   오늘 밤은 뉘 집에서 쉬었다 갈꼬   (今夜宿誰家)   38세의 성삼문 (1418-1456)이 단종 복위에 실패하여 노량진 강변의 처형장으로 끌려가면서도 죽음 앞에서 초연한 모습을 보여준 절명시다. 스승님께서 직접 붓으로 써 주신 작품이어서 액자에 넣어 오랫동안 서재에 걸어두었다. 하지만 이 시를 읽을 때마다 마음에 큰 부담을 가졌던 것은 사실이다. 왜냐하면 스승님께서 죽음 앞에서 담대하라는 뜻으로 이 시를 써 주셨는데, 사실 이런 마음의 자세를 갖는다는 것이 필자에게는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죽음이라는 관문을 어떻게 통과하느냐 하는 문제는 우리가 살아온 세월보다도 훨씬 더 심각한 과제다. 스승님의 가르침에 의하면 죽음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삶이 아무런 가치도 없다고 한다. 삶과 죽음을 하나로 보라는 것이다. 죽음이라는 것은 내가 태어날 때부터 함께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죽음은 괴로움이나 고통보다는 그저 의식이 사라지는 상태가 아닐까라고 추측도 해본다.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 상태이기에 죽음 자체를 너무 두려워할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도 든다. 왜냐하면 죽음은 모든 사람과 생물에게 공평하게 찾아오는 자연현상이며 필연적인 운명이기 때문이다.     자연 위에 초자연이 있고, 시간 위에 영원이 있고, 죽음 위에 영원한 삶이 있다고 믿는다면 삶의 마지막인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렇다면 영원한 삶을 얻기 위해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할까. 인간은 사랑으로 영원을 이해할 수 있고, 사랑을 통해서만 영원에 도달할 수 있기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러면 인간은 사랑 때문에 죽어도 영원히 살 수 있는 존재가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죽음의 발견이 곧 생명의 발견이며 생명을 안다는 것이 바로 창조주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그러기에 인간은 마지막 순간에 하나님이 내미는 손을 붙잡는 것이다. 손국락 / 보잉사 시스템공학 박사·라번대학 겸임교수이 아침에 죽음 생명 마지막인 죽음 죽음 자체 창조주 하나님

2023.03.20. 17:21

[김형석의 100년 산책] 14살 때 죽음 앞두고 올린 기도, 평생 지킨 '기도하는삶'

나의 정신적 불행은 일제강점기, 12살부터 시작되었다. 고향의 초등학교는 4학년까지 다녔다. 부친이 주변 학교 중에서 칠골의 창덕소학교가 가깝고 좋겠다고 생각해 편입시험을 보러 갔다. 부친을 따라 교무실로 들어갔는데, 5~6학년 담임이었던 윤태영 선생이 일본어를 전혀 배우지 못해 안 되겠다고 거절했다. 그때였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교장 심 목사가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겠어요. 애가 똑똑해 보이니까 붙여주라”고 했다. 그때부터 해방까지 13년 동안, 우리글과 일본어를 함께 배우며 살았다. 솔직히 생활은 우리말로 했지만 읽고 쓰는 데선 일본어 비중이 커졌다. 식민지 민족의 슬픈 운명이었다.   그런 과거 때문에 지금도 한글 문장력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30대 중반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으니까 저술에 자신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일찍부터 교회에 나갔고 기독교 학교에 다녔다. 내 정신과 사상의 기반이 당초 동양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더욱이 서양철학을 전공하여서 동양 및 한국 전통과는 조우할 기회가 적었다. 내 사상의 그릇에 동서양이란 대립하는 정신을 함께 담을 수 없었다.   일제강점기에 자란 세대들의 불운     나만 그런 것은 아니다. 나와 같은 세대들의 역사적 불운이었다. 서양 학문과 사상, 특히 철학을 전공한 학자나 교수들에게 주어진 공통된 숙명이기도 했다. 문자로 표출되지 않는 예술 분야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가요나 가곡을 제외하고는 한국 전통음악을 제대로 이해할 여유가 없었다. 대학강의를 하면서도 한국적인 정신과 전통에서 소외당하고 있는 건 아닌지 자괴심마저 들었다. 한국적인 것이 빈약한 나 자신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관심이 갖게 된 분야가 회화를 중심으로 한 한국미술이었다. 사실 회화에 대한 예술의식 비슷한 것은 대학 시절에 키울 수 있었다. 대학생 때 도쿄 우에노 공원에 있는 도쿄 도립미술관 지하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일본을 대표하는 미술관이어서 일본 회화는 물론 서양화가들의 전시회도 연중 열렸다. 식당 위층이 전시장이어서 일본화 대가들을 자주 감상하게 되었다. 그림 미술의 예술성을 조금씩 알 것 같았다.   이후 서울에서 한국 화가들의 그림을 보기 시작했다. 중국의 전통 화풍에서 벗어난 한국적인 그림에 눈을 뜨기 시작하였다. 좀 더 한국적인 것을 찾아보다가 문인화에 마음이 끌리기 시작했다. 선비들이 학문이나 시를 쓰다가 취미 삼아 그린 그림들이다. 궁중화가나 전문화가 작품보다 한국인다운 느낌이 더 물씬하였다. 그리고 민화(民畵)를 접했다. 이것이 한국 특유의 그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 있는 작가도 아니고 목적이 뚜렷한 그림도 아닌 생활의 필요나 재미에서 탄생한 그림들이다. 그 수는 많지 않았으나 전국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었다. 개성이 뚜렷하고, 창작열 뜨거운 작품들이다.   몇십 년 국전을 관람하면서 동양화나 서양화의 주류를 벗어난 한국적 회화가 태어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한국 회화의 장래가 희망적으로 보였다. 그림 감상의 기쁨이 배가되었음은 물론이다. 당시 서울 골동품상 흔하게 볼 수 있는 옛날 도자기들도 우연히 살피게 되었다. 고려시대 작품들은 고급스럽고 예술성이 풍부하나 중국적인 전통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우아한 색채와 상감이 중국 것을 능가하였지만 말이다.   조선시대로 접어들면서는 주변국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우리 것’의 특성이 뚜렷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종류도 다양해졌다. 그 본령을 이루는 것은 당연히 백자이다. 달항아리뿐만이 아니다. 수많은 일상용품 백자가 빚어졌다. 조선 초기의 다양한 백자는 우리 조상들의 일상과 함께하는 예술성을 품고 있다.   상당히 오랜 기간 도자기들을 찾아다니면서 안복(眼福)을 많이 누렸다. 비로소 한국적인 생명력이 넘치는 예술성을 느끼는 듯했다. 이후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도 도자기에 대한 애착과 관심을 내려놓지 않았다. 내 경험을 돌아볼 때 가장 많은 종류의 도자기를 소장한 곳은 튀르키예의 이스탄불 박물관이다. 동서양 작품이 두루 모여 있다. 하지만 세계 어디에 가도 한국적인 것만큼 자연스러우면서도 정감 넘치는 도자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조선 후기의 작품들은 생활미와 예술미, 그 둘의 조화미가 빼어나다.   생활미와 예술미 두루 갖춘 백자   가격도 부담이 적어 한두 점씩 사 모은 것이 이제 몇백점에 이르게 되었다. 인연 있는 중고등학교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상당수 작품을 보내기도 하고, 나머지는 강원도 양구 근현대사 박물관에 기증하였다. 내 기념관인 ‘철학의 집’에 여러 점을 비치하기도 했다. 양구 박물관의 내 도자기 방에는 두 점의 문인화, 조지훈이 도자기를 예찬한 시도 걸려 있다. 규모는 작지만 지방박물관에서는 보기 드문 전시실이 되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는 말이 있다. 그 개념은 과장된 표현이다. 가장 인간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고 믿는다. 모든 국가와 민족은 인간적인 것을 간직하면서 세계적인 것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적인 것도 인간적인 것의 보편성에 들어가 있는 특수성을 갖는다. 그 특수성을 창조해내는 예술가들이 우리 자신이다. 그런 생각을 정리하다 보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인간적 공통성을 지닌 예술성이다. 핵심은 예술인 자신들의 인간적 보편성을 갖는 창조정신이다. 그런 한국적 특수성이 모여 세계적인 보편성을 창조해 나갈 것이다. 김형석 / 연세대 명예교수김형석의 100년 산책 죽음 기도 한국 전통음악 한국 화가들 한국 특유

2023.03.17. 19:58

[김형석의 100년 산책] 14살 때 죽음 앞두고 올린 기도, 평생 지킨 ‘기도하는 삶’

친구였던 안병욱 교수의 얘기가 생각난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모범적이고 아름다웠던 사제 관계는 공자와 그의 제자들과의 기록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여건이 허락한다면 『공자와 그의 제자들』이라는 책자라도 남기고 싶은 마음이라고 했다. 마치 자기가 그 주인공 중의 한 사람이라도 된 듯한 표정이었다. 나도 공감했다. 그래서 인류의 지혜와 교훈을 남겨 줄 수 있었다.   공자의 인품과 삶의 핵심은 무엇이었을까. 성실(誠實)함이었다고 생각한다. 공자만큼 꾸밈없이 진실과 정직을 갖추고 산 사람이 없었을 것 같다. 그는 가난한 마음과 겸손을 겸비하고 있었다. 그 정신의 그릇 속에 인간의 지혜와 지식의 원천을 간직하고 살았다. 학문과 인격의 완성을 위해 평생 정진(精進)하는 자세를 견지했다.   그런 자아의 성실성이 인간관계에서는 인(仁)의 미덕을 탄생시켰다. 선하고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평생 베풀어 주었다. 그래서 스승 중의 스승으로 존경받았다. 나도 그의 제자였다면 인생이 얼마나 풍부하고 행복했을까, 하는 자부심을 가졌을 것 같다.   “아침에 도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아”   그러나 내가 공자를 누구보다도 존경하는 이유의 하나는 그가 자신 속에 잠재해 있는 ‘영원한 것’에의 그리움이다. 『논어』 이인(里仁)편에서 ‘아침에 도를 들을 수 있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겠다’(朝聞道 夕死可矣)고 고백하고 있다. 공자시대의 영원한 것은 ‘하늘의 도’였다. 종교적인 진리였다. 그 하늘의 정신적 실재가 인간화한 것이 인(仁)이었고, 인애(仁愛)를 간직한 사람이 성실한 삶을 찾아 누리게 되어 있다. 개인의 성실함이 인간관계의 어진 마음으로 진화하며, 그 어질다의 근원이 하늘과 우주의 진리라고 믿었다.   서양의 중세기는 기독교 세계관의 시대였다. 그 안에서도 ‘성실한 사람은 악마도 유혹하지 못하며 하느님도 그를 버리지 못한다’는 격언이 있다. 그런데 공자는 그 도는 내가 찾아서 발견하거나 체험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을 초월하는 실재’가 있어야 할 것임을 암시해 준다. 그 도를 가르쳐 주는 정신적 스승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자세로 살았다.   철학적인 표현을 빌린다면 종교적 신앙의 문제는 윤리적 한계를 넘어 존재한다는 뜻이다. 성실함의 한계를 넘어 실재하는 것이 신앙이라는 뜻이다. 인간의 사고와 지식보다 인륜적 삶의 가치를 포괄하면서 삶의 가치를 창출해 주는 더 높은 존재의 원천에서 주어진다는 논리다.   그것이 무엇인가. 철학의 동료들이 나에게 묻는 말이 그것이다. 진리를 탐구하는 철학도가 어떻게 종교적 신앙을 먼저 가질 수 있는가. 그것은 이미 철학의 탐구적 본분을 포기한 것이 아니냐는 반론이다. 우리 세대의 선배였던 박종홍 교수도 같은 질문을 했다. 그는 “나는 철학적 진리의 여신 옷자락을 찾아 붙들고 눈물을 흘릴 수는 있어도 종교적 신앙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제자들에게 말하곤 했다. 신앙이 선행하면 진리의 여신은 떠나버리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진리를 위한 성실성은 종교 신앙과 공존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한때는 세계 휴머니스트협회가 우리나라에도 있었다. 그 회원들 속에는 유신론자가 없었다. 종교적 신앙을 배제했기 때문이다.   나는 철학도가 되기 전에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무신론 철학자의 저서도 읽었고 종교적 신앙이 없는 인생관과 세계관에 관심을 가졌다. 그런데 그 결과는 내 종교적 신앙심을 더 승화시켜 주었을 뿐이다. 종교적 신앙은 인간의 성실성의 선물이나 결실이 아니었다. 그것이 무엇이었는가. 성실성 플러스 경건성이었다.   경건성은 우리가 모두 지니고 있는 성실함을 한 단계 더 높여준다. 반(反) 비(非)성실함이 아니고, 성실을 내포하는 초(超)성실이다. 나에게 그런 신념을 갖게 해 준 철학자는 칸트였다. 그의 종교철학 제목이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이다. 종교는 초이성적인 영역의 실재임을 암시해준다. 나는 칸트를 경건성을 지닌 철학자라고 느꼈다. ‘요청적 유신론’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그 경건성이 무엇인가. 나에게는 ‘기도하는 마음’이다. 내 인생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출발했기 때문이다. 성실성을 갖춘 사람은 기도하는 마음을 포기하지 않는다. 공자의 고백이 바로 그런 뜻이었다. 도를 깨닫기 위해, 성실과 어진 마음이 필요했던 것이다. 『논어』 술이(述而)편에 기도에 관한 얘기가 있다. 공자가 신병으로 고통을 겪을 때 자로(子路)가 기도를 드리자고 했다. 얘기를 들은 공자가 내 건강을 위한 미신적인 기도는 원치 않으나 잘못을 뉘우치고 선을 실천하기 위해 신의 도움을 구한다는 뜻의 기도는 항상 드려왔다고 했다.   철학자 박종홍·김태길 교수의 귀의   공자에게만이 아니다. 친구인 김태길 교수도 기도드리는 말년을 지냈다. 박종홍 교수가 신앙인이 되고, 장례예배가 새문안장로교회에서 열린다는 신문 기사를 본 배종호 교수가 나를 찾아왔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 내가 들려준 병중의 사연과 신앙적 회심을 전해 들은 배 교수가 남긴 말이다. “그래, 박 교수도 갈 곳이 없었겠지”라고 했다.   그렇다. 종교적 신앙은 그런 체험에 뒤따르는 인생의 승화된 삶이다. 나는 14살 때 삶의 종말인 죽음을 앞두고 있었다. 그래서 기도를 드렸다. “하느님께서 저에게도 어른이 될 때까지 살도록 건강을 허락해 주시면, 제가 나를 위해 살지 않고 하느님의 일을 위해 살고 싶습니다”는 기도였다. 기도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런 것이 신앙적 체험이라고 믿는다. 철학의 진리는 선한 인생의 길을 가르쳐 주었다. 그러나 종교적 신앙은 내 삶의 목표와 인간의 영구한 희망을 남겨 주었다. 김형석 / 연세대 명예교수김형석의 100년 산책 기도 죽음 종교적 신앙심 종교 신앙 성실성 플러스

2022.12.30. 19:22

[삶의 뜨락에서] 마침표가 없는 죽음

지인 한 분이 내가 근무하고 있는 중환자실에서 돌아가셨다. 30년 넘게 중환자실에서 근무해왔기에 정말 많은 죽음을 간호사의 처지에서 지켜보아 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직업상의 환자가 아닌 지인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다. 지인은 급성 백혈병 진단을 받고 정확히 3개월의 투병 끝에 심장이 멈췄다. 가장 안타까웠던 일은 그가 의식을 잃을 때까지도 삶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아 마침표가 없는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이다. 나는 적어도 본인이 죽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정리하고 마침표를 찍을 시간과 여유를 갖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당하는 죽음에서 선택하는 죽음을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쇼펜하우어)에서 배웠다.     그는 그동안 두 차례의 항암 치료 후 좋은 결과를 보였으나 공고요법(consolidation therapy) 후에 깨어나지를 못했다. 백혈병은 혈액암의 일종으로 골수 속에 있는 백혈구가 비정상적으로 무한 증식하는 혈액 종양이다. 제대로 성숙하지 못한 백혈구가 대량 생산되어 면역기능을 급속하게 저하한다. 주요 증상으로는 발열, 피로감, 숨이 차고 잇몸 출혈이나 코피, 멍이 자주 든다. 지인은 아무 증상이 없었고 선교활동을 떠나기 전 혈액검사에서 이상이 발견되었다. 골수검사로 확진을 받고 곧바로 응급실로 왔다.     응급실에서 처음 만난 그의 어이없어하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입원 후 1차 항암 치료를 받고 골수검사를 한 다음 2차 항암 치료까지 마친 후 완치 판정을 받고 50일 만에 퇴원했다. 퇴원하던 날 그에게서는 새 생명의 기쁨이 광채를 뿜어냈다. 입원 50일 동안 우리는 상당히 가까워졌고 그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다.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관련 업종에서 일하다 은퇴한 그는 선교 봉사활동을 주로 하고 있었다. 올여름에는 도미니카공화국 선교활동을 위해 준비하다 이 상황을 맞게 되었다.     지난 10년 동안 아프리카 오지, 동남아 난민촌, 카리브해 빈민촌에 전기와 식수 공급 공사 이야기를 하며 마냥 행복해 보였다. 그분의 이타적인 삶의 자세를 보면서 이기적인 나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고 부끄러웠다. 지인은 퇴원 후 집에서 건강관리를 하고 있다 담당 의사의 공고요법 권유로 5일간 입원 치료를 받았다. 공고요법이란 잔류 백혈병 세포들을 제거해 완치율과 생존율을 높이는 치료법이다.     그런데 5일간의 공고요법 치료를 받고 퇴원 후 9일째 되던 날 호흡 장애와 코피를 흘리며 응급실에 실려 왔다. 곧바로 중환자실로 옮겨져 인공호흡기를 부착했지만 그는 2주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쇠약해진 몸이 공고요법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결국 가족과 동료, 친지들과 작별 인사를 나눌 기회조차 없이 호흡이 멈췄다. 인공호흡기 때문에 말을 할 수 없게 되자 종이에 ‘왜 말을 할 수 없죠? 나 지금 죽나요?’라고 쓰던 그의 불안한 얼굴이 지금도 나를 힘들게 한다. 왜 누군가 그에게 ‘당신은 지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세요’라고 말을 해주지 못했을까.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마침표 죽음 공고요법 치료 항암 치료 공고요법 권유

2022.12.05. 18:42

[삶의 뜨락에서] 마침표가 없는 죽음

지인 한 분이 내가 근무하고 있는 중환자실에서 돌아가셨다. 30년 넘게 중환자실에서 근무해왔기에 정말 많은 죽음을 간호사의 처지에서 지켜보아 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직업상의 환자가 아닌 지인으로 함께 죽음의 문턱까지 가보았다. 급성 백혈병으로 진단받고 정확히 3개월의 투병 끝에 결국 심장이 멈췄다. 그의 죽음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일은 그가 의식을 잃을 때까지도 삶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아 마침표가 없는 죽임을 당했다는 것이다. 나는 적어도 본인이 죽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정리하고 마침표를 찍을 시간과 여유를 갖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당하는 죽음에서 선택하는 죽음을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쇼펜하우어)에서 배웠다.     통계적으로 급성 백혈병은 20%의 생존율인데도 그는 그동안 두 차례의 항암 치료에 좋은 결과를 보여왔으나 공고요법(consolidation therapy) 후에 깨어나지를 못했다. 백혈병은 혈액암의 일종으로 골수 속에 있는 백혈구가 비정상적으로 무한 증식하는 혈액 종양이다. 제대로 성숙하지 못한 백혈구가 대량 생산되어 면역기능을 급속하게 저하한다. 주요 증상으로는 발열, 감염의 위험이 크고 쇠약감, 피로감, 숨찬 증상과 잇몸 출혈이나 코피가 나고 멍이 자주 든다. 이 환자의 경우는 아무런 증상이 없었고 선교활동을 떠나기 전에 신체검사를 한 결과 혈액검사에 이상이 발견되었다. 골수검사로 확진을 받고 곧바로 응급실로 왔다.     7월 23일 응급실에서 처음 만난 그의 어이없어하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바로 백혈병 병동에 입원한 후 1차 항암 치료를 받고 골수검사를 한 다음 2차 항암 치료까지 마친 후 혈액검사와 골수검사로 완치를 판정받고 50일 만에 퇴원했다. 퇴원하던 날 그의 얼굴과 몸에서는 새 생명의 기쁨이 눈부신 광채를 뿜어냈다. 50일 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우리는 상당히 가까워졌고 그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다.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그는 평생 전공을 살려 일을 한 후 은퇴 후에 선교 봉사활동을 주로 하고 있었다. 올여름에는 도미니카공화국에 선교활동을 계획하고 태권도 과목을 가르치고 태양열로 전기공급을 준비하고자 심신을 단련하던 중에 이 상황을 맞게 되었다.     지난 10년 동안 아프리카 오지의 나라, 동남아 난민촌, 카리브해 빈민촌에 전기공급으로 전선, 텔레비전, 컴퓨터 그리고 식수 공급까지 계획하고 꿈에 부풀어 마냥 행복해 보였다. 50일 동안 친분을 쌓으면서 지켜본 이분의 이타적인 삶의 자세를 배우게 되니 이기적인 나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고 부끄러웠다. 퇴원 후 집에서 건강관리와 체력관리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담당 의사가 공고요법을 권장하고 5일간의 입원 치료를 지시했다. 공고요법이란 남아있는 미세 잔류 백혈병 세포들을 제거하여 완치율과 생존율을 높이는 치료법이다. 계획대로 5일간의 공고요법을 받고 퇴원 후 9일째 되던 날 호흡 장애와 코피를 흘리며 응급실에 실려 왔다. 곧바로 중환자실로 옮겨와 인공호흡기를 꽂고 나서 2주 만에 그는 세상을 떠났다. 공고요법에 그의 쇠약해진 몸은 견딜 수가 없었다. 신체의 각 장기에서 계속되는 출혈에 심정지가 왔고 아무리 수혈을 많이 해도 체내 출혈의 속도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는 서둘러서 황폐해갔고 결국 남아있는 가족과 동료, 친지들에게 고별인사를 나눌 기회조차 잃은 채 호흡이 멈추었다. 인공호흡기 때문에 말을 할 수 없게 되자 종이에 ‘왜 말을 할 수 없죠? 나 지금 죽나요?’라고 쓰던 그의 불안한 얼굴이 지금도 나를 힘들게 한다. 왜 누군가 그에게 ‘당신은 지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세요’라고 말을 해주지 못했을까.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마침표 죽음 급성 백혈병 항암 치료 입원 치료

2022.12.02.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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