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내가 아침 산책길에 나타나지 않으면 사슴은 숲속에서 기다리다 그냥 돌아가겠지 아무 말 없이 슬픈 눈망울로 사람이 지나가면 토끼들은 반갑게 뛰어나오지 그들은 모르는 것 같지만 나를 알아보았지 내가 ‘토끼들의 이사’라는 시를 써 바쳤으니까 초여름 트레일에는 오디가 까맣게 익어가지 팔을 뻗치면 가지는 나에게 다가왔지 내 손이 닿지 않으면 상심해 일찍 땅바닥으로 떨어지겠지 지난 세월 산책로에 지울 수 없는 발자국을 남겼지 토끼, 사슴, 새들과 이야기를 나눈 영원한 우리들의 땅이었지 내가 안 보이면 바람은 울고 지나가겠지 구름은 슬퍼서 눈물을 뿌리겠지 토끼는 숲속에서 나타나지 않고 사슴은 다른 곳으로 달아나겠지 텅 빈 산책로로 변하겠지 최복림 시인글마당 토끼 사슴 아침 산책길 지난 세월
2024.06.28. 22:30
지난 세월은 한바탕 바람이었다 큰바람, 작은 바람 바람에 넘어졌다가 일어섰고 큰 상처를 입기도 했다 광풍에 쓰러져 영영 일어나지 못한 가족도 있다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 그림자가 깊게 드리우고 있다 성처뿐인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패여 있다 바람의 그림자 지울 수 없다. 항상 따라 다닌다 다시 바람 앞에 서 있다 지나간 바람보다 무섭다 조금만 불어도 넘어질 것 같다 받쳐줄 힘이 없다 바닷가에 나가 바람에 도전한다 모래 위에 엎드려 온몸으로 막는다 바람이 지나간다. 나를 그냥 두고 바람의 그림자를 붙잡고 일어난다 그림자와 떨어질 수 없다 최복림 / 시인글마당 그림자 지난 세월
2024.01.19. 20:20
산과 들녘에 이글이글 붉게 타오르는 단풍 지난 세월 싱그런 녹색 숲을 태워 버리고는 주님을 향하여 뜨겁게 달아오르는 아름다운 단풍이게 하소서 아 우렁찬 함성을 지르게 하소서 찬란한 그 수많은 잎사귀도 묵묵히 한 잎 두 잎 연이어 하늘 영광 높이 두시고 낮은 세상에 우리를 찾아오신 주님을 지금 땅 아래로 떨어지는 낙엽을 보게 하소서 밭에서 거둬드린 알곡 나무에 매달린 상큼한 과실 농부의 땀 흘린 수고와 풍족한 결실 얼씨구좋다절씨구좋다 지화자 좋구나 올해도 이민자에게 베푸신 놀라운 주님의 은혜 감사하자 감사하자 또 감사하자 풍성히 주신 주님께 가을엔 높은 데서 낮은 데로 떨어지는 마감을 읽게 하소서 가을 길을 혼자 차분히 걷게 하소서. 마냥 당신을 찾아가는 본향이게 하소서 가을밤엔 당신과 마주하는 기도 드리게 하소서 김창길/ 목사·시인·뉴저지글마당 가을 기도 하늘 영광 알곡 나무 지난 세월
2022.10.21. 1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