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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검진의 종교·철학 여행] 인간 사고 보편적 질서 발견 노력

레비스트로스는 역사를 갖지 않은 수많은 민족 집단을 보았다. 신석기 시대와 거의 흡사하게 생활하는 부족이었다. 그들 사회에는 문화나 역사랄 상황이나 참여 활동이 거의 없었다. 앞으로 수천 년도 그렇게 살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인간으로서의 존엄이나 이성이 없다고 볼 수도 없을 것이다.     레비스트로스는 문명인들이 그들을 깔보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그들도 자신의 원시적 삶에 의미를 부여하며 전체가 생활한다고 판단한다. 마치 문명인이 어느 지역에 자신들도 모르게 던져진 채 살아가고 있듯이, 그들도 그들이 처한 상황에 맞게 살아갈 뿐 문명인들과 다른 인류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이 구조주의 숙명이다.     레비스트로스는 의식할 수 있는 표면이 아닌 의식이 접근하지 못하는 심층에서 진실을 찾으려 했다. 이것은 일종의 '무의식' 영역이다. 무의식적으로 생성된 '구조'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레비스트로스는 이것을 '보편적 무의식'이라고 하는데 이런 점에서 그의 구조주의 개념은 칼 융의 '집단 무의식'과 매우 유사하다.     레비스트로스의 '구조'가 보편적 인류의 인간성 전체, 즉 인간 사고의 구조 일반에 관한 연구인 반면, 프로이트의 무의식은 선택된 개인에 관한 신경증의 연구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반면에 칼 융의 집단 무의식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 무의식이란 관점에서 레비스트로스의 보편적 무의식과 맥락이 유사하다.     레비스트로스는 이러한 보편적 질서를 문화의 영역에서 발견하려고 했다. 그러한 보편적 질서가 존재한다면 인간 사유의 보편적인 구조를 알 수도 있을 거란 희망에서였다. 즉, 이항 대립의 조합을 되풀이해서 대단히 많은 다른 상태를 표현할 수 있다는 이 '음운론 발상법'을 인류사회의 모든 제도에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를 생각했다는 점이 놀라운 점이다.     또한 트루베츠코이가 이 음운론의 일반 특성으로 정리한 내용 중에, 의식적인 언어학적 현상에 관한 연구로부터 그것의 무의식적인 하부구조에 관한 연구로 이행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에 따르면, 정신의 무의식적인 활동은 내용에 형식을 부과하는 것과 다름없다. 바로 이러한 형식의 부여라는 무의식적인 활동의 특성 속에서 '음운론'과 '인류학'의 방법들이 서로 닮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즉,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는 문화를 구성하는 무의식적 구성원리인 상징적 질서를 발견하려는 시도였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사회 구조를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라 사회 구조가 인간을 만들었다고 한다. 즉,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인간인 것이 아니라, 어떤 사회적 규범을 수용하면서 인간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푸코의 '탈인간주의'와도 맥락이 같다. 이 점에서 '구조주의'가 기존의 '실존주의'를 무너뜨리는 논거가 되었다.     레비스트로스의 언어가 사고를 결정한다는 견해를 '언어결정론'이라고 한다. 즉, 어떤 단어를 알고 있고, 그 단어의 뜻을 제대로 알고 있어야 그것이 그대로 사고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언어는 태초부터 시작된 인간의 심리, 사회, 문화 등 수많은 영역과 교류하는 시간을 거쳐 탄생한 결과물이다.     그러므로 언어는 그 사회의 발전상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라고도 생각된다. 인류의 역사는 서양 중심의 역사로 우리는 알고 있고, 서양 이외의 지역은 문화, 사회적으로 낙후되었다는 선입견이 있다. 그러나 벤저민 리 워프에 따르면 아메리카 원주민의 언어를 파헤쳐보면 유럽 언어의 사고, 문법 체계보다도 더 섬세한 면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박검진   단국대 전자공학과 졸업. 한국기술교육대에서 기술경영학(MOT)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LG반도체 특허협상팀 팀장, 하이닉스반도체 특허분석팀 차장, 호서대 특허관리어드바이저, 한국기술교육대 산학협력단 교수를 거쳐 현재 콜라보기술경영연구소 대표.박검진의 종교·철학 여행 발견 질서 집단 무의식 보편적 무의식이란 구조주의 개념

2025.12.22.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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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작두를 타다

작두를 탄다는 말은 무당이 공수(무당이 신(神)이 내려 신의 소리를 내는 일) 등을 할 때 작두 위를 뛰면서 이야기를 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작두가 볏짚 따위를 자를 때 쓰는 도구이니 작두를 탄다는 것은 칼날 위에 서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두려운 행위죠. 무당의 신통력을 보여주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작두를 아무 때나 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신이 내려야 탈 수 있는 거죠. 자칫하면 큰일 납니다. 발바닥을 벨 수 있는 겁니다.    작두는 작도(斫刀)에서 온 말로 봅니다. 베는 칼이라는 뜻입니다. 한편 우리는 작두를 탄다는 말을 종종 비유적인 관용표현으로 쓰기도 합니다. 어떤 일에 몰두하거나 황홀경에 빠져서 일을 할 때 생각보다 더 힘이 나고, 에너지가 솟아서 힘든 줄도 모르고 일을 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마치 발을 베이지 않는 것처럼 온몸에 나도 모르는 에너지가 가득 솟는 기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유적인 표현이지만 살면서 작두를 타는 것처럼 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런 경우를 단순히 표현하면 신이 나는 겁니다. 신나서 일을 하면, 덜 힘듭니다. 신나다를 어원적으로 살펴보자면 신이 내 몸속에서 나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신은 다른 말로 에너지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신이 나오려면 선행되어야 하는 일이 신이 들어오는 것이겠죠. 우리는 이럴 때 신들린 듯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신이 들리면 신이 나오고 힘이 솟는 것입니다. 우리말을 보면 신은 참 가까이에 있습니다. 우리 속에서 나를 움직이게 하는 힘이 신인 겁니다.      요즘에 유행하는 말로는 영끌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영혼까지 끌어 모은다는 말인데 어쩌면 신나다나 신들리다는 말을 달리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전혀 용법은 다르지만 말입니다. 영끌하여 집을 사거나 주식투자를 하거나 가상화폐를 사는 것은 영혼과는 관계가 없어 보이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혼을 아무 때나 끌어오면 안 되겠죠. 자칫하면 넋이 나가버립니다.    누구의 연기를 칭찬할 때 작두를 타는 것 같다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어떻게 저렇게 연기를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칭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당은 작두를 타면서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고, 신의 말씀을 전하기도 합니다. 맨발로 칼날 위에 올라가 있는 모습을 보면서 관중들도 넋을 잃습니다. 함께 환각에 빠지는 느낌입니다. 집단 무의식 상태라고나 할까요? 아마도 우리가 실제로 작두를 탈 일은 없겠죠. 무당이 되어야 낳는다고 하는 무병(巫炳)을 앓는다든지 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어떤 무당은 작두를 계단처럼 만들어 놓고 올라가며 타기도 합니다. 대단합니다.      종종은 저도 제가 하는 일에서 작두를 탔다는 이야기를 하고, 칭찬을 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프다가도 힘이 쪽 빠져있다가도 좋아하는 일을 시작하면 펄펄 나는 듯한 기분 말입니다. 여러분은 언제 그런 느낌을 갖습니까? 저는 강의가 재미있고 신이 날 때 그렇습니다. 특히 학생이나 청중의 반응이 좋을 때 힘이 솟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남도 좋아해 주면 그때만큼 기쁜 때가 없는 겁니다.   아픈 것도 상관없습니다. 슬픈 일이 있거나 걱정이 있는 경우에도 상관없습니다. 그야말로 펄펄 날아가는 기분입니다. 그때는 강의를 듣는 사람도 같은 기분을 느낍니다. 혼연일체(渾然一體)가 되는 시간입니다. 그런 강의를 자주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좋을 때는 제가 앓고 있던 병이 낫기도 합니다. 저뿐만 아니라 듣는 사람도 병이 낫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치유의 순간입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작두 작두가 볏짚 비유적인 관용표현 집단 무의식

2022.05.15.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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