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취리히 의과대학 교수였던 칼 융은 그의 나이 32세 때 당시 51세가 된 프로이트를 만나기 위해 오스트리아 빈으로 갔다. 둘은 13시간 동안 토론을 했다. 그 결과, '무의식'에는 서로 동의했고, 히스테리, 강박증, 신경증이 성적 에너지와 관련이 있다는 점도 동의했다. 그러나 유아성욕론이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엔 동의하지 않았다.
융은 얼마 후, 프로이트가 창설한 정신분석학회에서 탈퇴하고, 분석심리학회를 창설했다. 그에 따르면, 젊은 시절에는 '페르소나(Persona, 가면극의 가면)'라는 가면을 쓰고 자신의 무의식을 감추지만, 중년이 되면 자기실현을 위한 기회를 찾고자 이전에 보지 못했던 자기의 무의식을 들여다보기 위해 애쓴다고 한다. 마음의 문을 열고, 자신의 무의식과 대면하는 행위는 페르소나 속에 있는 자신을 들여다보며 심리적으로 자신의 '양성성(아니마: 남성이 지니는 무의식적인 여성적 요소, 아니무스: 여성이 지니는 무의식적인 남성적 요소)'을 인정한다. 자기는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성을 가진 존재로 의식적으로 알 수 있다. 이러한 개별화 과정을,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지속한다고 한다.
융은 〈표〉과 같이 무의식을 개인과 집단으로 구분했다. 개인은 후천적으로 경험을 통하여 얻는 무의식이며, 집단은 선천적으로 유전을 통하여 얻는다고 한다. 가령, 뱀을 보면 대부분 사람은 돌로 쳐 죽인다고 한다. 그 이유는 선천적으로 뱀은 나쁜 동물로 인식되어 있고, 사람을 해친다는 사실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한 개인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에 보편적으로 적용된다. 그래서 '집단 무의식'이라는 것이다. 이런 집단 무의식은 나쁜 경우보다는 창조적인 힘을 가진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반면에 '개인 무의식'은 후천적으로 개인이 감추고 싶은 경험이나 열등감 등을 의식의 표면에 드러내는 것을 회피한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긍정적인 경험보다는 부정적인 경험을 개인 무의식 속에 저장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을 개인과 집단으로 구분하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정신적인 억압을 당했을 때, 무의식 속에 저장된다고 했다. 즉, 의식화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융은 개인 무의식의 경우는 외부 자극 따라 '의식화'도 가능하다고 했다. 자크 라캉은 무의식을 의식화하기는 어렵다고 프로이트와 같은 주장을 했다.
융은 '집단 무의식'은 창조적인 힘을 가지고 있어서 위대한 예술작품이나 문학작품을 창작할 수 있는 잠재적인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의지는 곧 욕망이고, 이것은 창조적인 에너지를 생산하는 근원으로 보았다. 물론, 무의식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훗날, 니체도 인간은 욕망으로 인해 개인도 발전하고 사회도 발전한다고 했다. 그 이유는 인간의 욕망은 본성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니체 자신은 늘 외톨이처럼 지냈고, 고통으로 세월을 보냈다. 그가 주장한 것처럼 본성대로 살았으나 이런 현상이 나타났다면, 누가 그를 정상으로 취급하겠나. 니체는 권력에 대한 의지(힘에의 의지)를 주장한 것이지 '성적 의지'를 주장하지는 않았다. 일부 학자들은 니체가 평범하지 못하고 이해할 수 없는 삶을 산 것은 두 개의 의지를 함께 받아들이지 못하고, 힘에의 의지만을 생각한 결과가 아닌지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