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아인슈타인은 국제연맹으로부터 한 가지를 의뢰받는다. "인간에게 최고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문제를 정하고, 가장 의견 교환하고 싶은 상대와 편지를 주고받았으면 한다"라는 내용이었다. 이에 아인슈타인이 선택한 주제는 전쟁이었고, "인간은 왜 전쟁해야만 할까"에 대해서 질문했다. 그는 대화의 상대로 인간 마음의 어둠까지 알게 된 당시 76세의 프로이트가 전쟁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으며, 전쟁을 회피할 수 있는 방도는 없을지를 궁금해했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본능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플라톤의 '향연'에 나오는 '에로스의 이야기'에 견주어 '에로스적 본능' 또는 '성적 본능'과 파괴하고 살해하려는 본능인 '공격 본능' 또는 '파괴 본능'을 설명한다. 가령, 자기 몸과 생명을 보전하고 싶은 본능은 에로스적이나, 공격적인 행동을 할 수 없다면 자신을 유지할 수 없음을 상기시킨다. 당나라 2대 황제인 태종의 후궁이었던 측천무후(무조·武照)의 예를 들어 보자. 그는 태종이 죽자, 절(감업사)로 들어가 중이 되었으나, 태종의 황태자였던 이치(李治)와 각별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이치가 고종으로 등극하자 무조를 황궁으로 부른다. 당시 황후는 '소 숙비'를 견제하고자 무조를 불러들여 소 숙비를 견제하면서 고종의 환심을 사려했다. 무조는 황후를 공손히 모시면서 특유의 친화력과 정치력으로 황궁 내부에 자신에게 우호적인 사람들을 많이 만들어갔다. 그녀는 간계(奸計)를 부려 황후와 소 숙비를 밀어내고, 황후 자리를 차지했다. 그녀가 황궁에 다시 들어오고 4년 만의 일이었다.
그녀의 잔혹성은 시작됐고, 황후와 소 숙비를 곤장 100대를 치고, 손발을 잘라서 항아리 속에 넣어 죽였다. 그녀는 자신이 낳은 황태자와 왕자를 죽였다. 또한 자신이 낳은 딸을 죽이고, 황후를 범인으로 몰았다. 결국, 황후가 죽게 되는 계기를 무조가 계략으로 만든 것이었다. 이것도 모자라 고종이 죽고, 자신이 낳은 4대 황제 중종과 5대 황제 예종을 폐위시키고,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당시 당나라는 여성은 황제가 될 수 없었기에, 나라 이름을 대주(大周)로 바꾸고 수도도 장안에서 낙양으로 옮겼다. 공자시대 주나라와 구별하여 무주(武周)라고 일컫기도 한다.
중국에서 여황제는 '측천무후'가 유일하다. 여황제로 등극하여 15년간이나 통치했다. 고종이 병약할 때, 정권을 누린 것을 고려하면 20여 년을 권좌에 있었던 여황제였던 셈이다. 프로이트가 앞서 말한 "자기 몸과 생명을 보전하고 싶은 본능은 에로스적이나, 공격적인 행동을 할 수 없다면 자신을 유지할 수 없다."에 가장 걸맞은 사례가 측천무후 사례일 것이다. 만약 그녀가 고종의 환심만 사려했다면, 황후나 소 숙비로부터 먼저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공격적인 행동을 먼저 했기에 목숨을 부지하고 권력을 차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조선의 예로 문종 승하 후, 단종을 지키려 했던 김종서가 만약 먼저 수양대군을 공격했다면,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김종서가 암중모색(暗中摸索)하고 있을 때, 수양대군이 먼저 공격했기에 정권은 수양대군이 차지할 수 있었다. 결국, 살아남는 자가 권력을 차지한다는 본보기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