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주 샌호아킨카운티의 마운틴하우스가 지난해 7월 시로 공식 승격되며 가주의 483번째 시가 됐다. 주 재무부에 따르면 마운틴하우스의 현재 인구는 2만8795명이다. 마운틴하우스 시 공식 웹사이트는 마운틴하우스를 스톡턴에서 약 35마일 떨어진 가족 중심 커뮤니티로 소개하며, 이름은 골드러시 시절 광부들이 머물던 숙소에서 유래했다고 밝혔다. 웹사이트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에라 산맥 기슭으로 향하던 광부들이 언덕 아래에 있던 ‘마운틴하우스’라는 숙소에서 휴식을 취했다”며 “지난 1849년 토머스 구달이 세운 천막이 시초로, 이후 구달은 원주민과 함께 아도비 주택을 지어 광부, 목장주, 이민자들이 거쳐 가는 쉼터가 됐다”고 설명했다. 마운틴하우스는 지난 2008년 지역 주민들이 독립을 위한 투표를 거쳐 자체 이사회가 구성됐다. 이어 지난해 정식으로 시 승격이 이뤄졌다. 가주는 인구 500명 이상, 경제적 자립 가능성, 주민 투표 등을 포함한 요건을 충족하고 행정구역 조정위원회(LAFCO)의 승인을 받으면 시 승격을 허용한다. 정윤재 기자마운틴하우스 탄생 현재 인구 공식 웹사이트 광부 목장주
2025.05.08. 23:20
시카고 지역 주민들은 한 가지 특별한 혜택을 누린다. 바로 광활한 미시간 호수에서 끌어온 깨끗한 물이다. 시카고에서 조금만 벗어난 지역에서는 대부분 인근 강물을 식수로 사용하며, 이 강물은 대개 미네랄 함량이 높은 ‘경수(硬水, hard water)’인 경우가 많다. 경수는 식수로 직접 마시기 어렵기에, 해당 지역에서는 주택에 공급되는 모든 물을 부드럽게 만드는 연수기(Water Softener)를 사용하는 가정이 흔하다. 일리노이와 인접한 인디애나주가 대표적이다. 경수가 공급되는 주택에서 연수기를 사용하지 않으면 마시는 물은 정수기나 생수에 의존해야 하며, 세탁기나 식기세척기 등 가전제품의 물 공급관이 경수에 포함된 미네랄 침전물로 막히는 피해를 볼 수 있다. 연수기는 정기적으로 소금을 보충하고 청소하는 등 관리가 번거롭다. 최신 기술이 적용된 무염(無鹽) 연수기는 설치 비용만 수천 달러에 달하기도 한다. 호숫물이 아닌 강수를 생활용수로 사용할 경우, 이래저래 추가적인 불편함과 비용이 발생한다. 몇 해 전 미시간주 플린트 지역에서 발생한 식수 오염 사태를 상기하면, 깨끗한 미시간 호숫물을 마시는 시카고 주민들이 누리는 ‘물의 특혜’는 결코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때문에 부동산 거래 시에도 주택의 물 공급원이 미시간 호수인지, 아니면 우물인지 등을 꼼꼼히 확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카고 서버브 지역에서는 미시간 호수 물을 공급받기 위해 노력하며 시카고 취수원에 사용료를 지불하는 경우도 많다. 오래된 상수도관 교체 등으로 시카고 주민들 역시 나름의 불편을 겪고 있지만, 물의 ‘원천’ 자체만 놓고 보면 상당한 이점을 가진 셈이다. 이렇게 우리 일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미시간 호수와 관련해 최근 학계의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전해졌다. 오대호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새로운 논문이다. 지금까지는 약 1만 년에서 1만 4000년 전 빙하기에 거대한 빙하가 이동하며 지표면을 깎아내 호수가 형성되었다는 것이 정설로 파악돼 왔다. 이는 시카고와 가까운 인디애나 듄스 국립공원의 안내문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다. 안내문은 광대한 모래 언덕 역시 과거 호수 밑이었으며, 수위 변화와 바람 등으로 현재의 모습이 됐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최근 제기된 새로운 주장은 오대호의 탄생 시기를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간다. 약 2억 년에서 3억 년 전, 지구 내부 깊은 곳에 위치했던 ‘케이프 베르데 핫스팟(Cape Verde Hotspot)’이 상승하며 지표면에 거대한 저지대(depression)를 만들었고, 이후 빙하가 도래하여 이 저지대를 더욱 깊게 파내 현재의 호수가 형성됐다는 설명이다. 현재 대서양에 위치한 섬들을 만든 화산 활동의 근원으로 알려진 케이프 베르데 핫스팟이 약 2억 년 전에는 판게아 대륙 아래, 지금의 오대호 자리에 위치했다는 설명이다. 당시 현재와 사뭇 다른 판게아라는 거대 대륙이 존재했으며, 그때 발생한 이 핫스팟 활동이 오대호 분지의 ‘기반’을 마련했고,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난 뒤 빙하가 나타나 현재와 같은 거대한 담수호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는 것이 새로운 학설의 핵심이다. 이는 오대호의 역사가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 수억 년 더 길다는 의미다. 시카고라는 도시의 근원과 역사를 미시간 호수와 분리하여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애초에 시카고가 성장하고 유럽 이민자들에게 알려지게 된 계기 중 하나가 미시간 호수와 미시시피강을 연결하는 수로의 중요성 때문이었다. 현재의 아름다운 다운타운 스카이라인 역시 미시간 호수에서 멀리 떨어져 바라볼 때 가장 인상적이다. 인디애나 듄스에서 바라보면 시카고 다운타운은 마치 호수 위에 떠 있는 신기루처럼 보인다. 이처럼 시카고 주민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미시간 호수와 오대호가 수억 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숨겨진 탄생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새삼 놀라움을 안겨준다. 오대호는 면적으로 세계 최대, 담수량으로 바이칼 호수에 이어 세계 두 번째 규모다. 전 세계 담수의 20% 이상을 차지하며, 동쪽으로는 로렌스강을 통해 대서양과, 남쪽으로는 미시시피강과 연결되는 중요한 수로로서 오늘날까지도 수송 및 레저 활동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가 매일 마시고 사용하는 물에 담긴 수억 년의 역사를 생각하면, 그저 감사하고 경이로울 따름이다. 박춘호 / 시카고 중앙일보 기자기자의 눈 오대호 탄생 미시간 호수 시카고 지역 시카고 주민들
2025.05.06. 18:36
오렌지카운티를 포함한 남가주에 K-민화지도사 12명이 탄생했다. 김승유(미국명 소피아 김) 작가가 운영하는 라하브라의 소류아트(1201 S. Beach Blvd, #203)는 한국민화학교(교장 정병모)와 함께 최근 K-민화지도사 과정 1학기를 마쳤다. 지난달 22일부터 27일까지 1주일 동안 진행된 1학기 수강생들은 총 45시간의 교육 과정을 마치고 K-민화지도사(어린이 지도사 1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한국민화학교가 주최하고 소류아트가 주관한 교육 과정은 한국과 동일하게 적용됐다. 수강생들은 정병모 교장과 민속학 전문가 이윤선 교수의 강좌를 듣고 밤잠을 설쳐가며 실기 프로젝트를 완성했다. 실기는 한국 민화계의 스타로 불리는 문선영 작가가 지도했다. 어린이 지도사 1급 자격증을 받은 수강생들은 오는 10월 열릴 2학기 과정을 마치면 성인 지도사 1급 자격증을 받게 된다. 김 작가는 “요가나 음악, 미술 등 어느 분야든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그에 준하는 자격증을 갖춘 선생님에게 배워야 한다. 이제 미국에서도 민화지도사들의 활약을 기대해 본다”라고 말했다. 소류아트는 K-민화지도사 12명 배출을 계기로 한국민화학교와 업무협약(MOU)을 맺고 앞으로 한국 민화 외에도 다양한 전통 콘텐트로 한인을 위한 이벤트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K-민화지도사에 관한 자세한 문의는 소류아트에 전화(714-576-7400) 또는 이메일([email protected])로 하면 된다. 소류아트 관련 정보는 홈페이지(sofiakim.com)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임상환 기자민화지도사 탄생 민화지도사 과정 민화지도사 12명 어린이 지도사
2024.05.07. 20:00
오렌지카운티 부에나파크 시에 또 하나의 ‘코리아타운’이 추진된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조이스 안 부에나파크 시의원은 코리아타운 지정안을 오는 26일 시의회에 상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코리아타운으로 지정될 지역은 비치 불러바드의 오렌지소프-로즈크랜스 구간으로 한인 업소들이 밀집한 곳이다. 안 시의원은 “한인 상권이 부에나파크 경제에 크게 기여하고 있음을 천명하기 위해 코리아타운 지정안을 추진하게 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부에나파크 코리아타운’이 확정될 경우 오렌지카운에서는 가든그로브 시에 이어 두 번째로 공식 ‘코리아타운’이 생기는 것이다. 부에나파크 시는 한인 인구와 한인 상권이 급성장하는 지역이다. 쾌적한 주거 환경 등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안 시의원의 말처럼 그만큼 한인 사회의 지역 내 영향력도 크다. 이곳에서는 이미 밀러 오씨가 2010년 한인 최초로 시의원에 당선됐고, 2013년에는 시장까지 역임한 바 있다. 이어 2018년에는 써니 박 변호사가 한인 여성 최초로 시의원에 당선된 후 2021년에는 아시아계 여성 최초로 시장에 오르기도 했다. 이런 정치적 성장은 한인 사회의 역량 확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시 정부의 공식 ‘코리아타운’ 지정에는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그만큼 지역사회로부터 한인 사회의 영향력을 평가받고 있다는 것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현실적인 실익도 기대된다. 향후 집중적인 지역 개발을 통한 상권 활성화도 가능하다. 하지만 ‘코리아타운’ 지정은 새로운 시작이다. 지역 한인 사회의 활용 방법에 따라 얻을 수 있는 효과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26일 시의회에서 지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많은 한인이 관심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지정안이 통과될 경우 효과적인 활용 방안 마련을 위해 지혜를 모으는 노력이 필요하다.사설 코리아타운 탄생 코리아타운 지정안 탄생 기대 지역 한인
2023.09.20. 19:16
전문직에 종사하는 지인을 만났더니 사무실 이전 걱정을 하고 있었다. 빌딩 관리업체에서 건물을 아파트로 바꾼다며 사무실을 비워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정도 들었지만 진짜 고민은 옮길 곳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라고 한다. 그의 사무실이 있는 곳은 LA한인타운 윌셔 길에 있는 사무실 빌딩이다. LA한인타운 중심인 윌셔 길이 달라지고 있다. 도로 양옆으로 즐비한 사무실 빌딩들이 하나둘 아파트로 변하는 중이다. 수십 개에 달하는 빌딩 가운데 몇 개만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아파트로 바뀔 것이라는 소문도 들린다. 윌셔 길의 변화가 관심을 끄는 것은 이곳이 한인경제권에는 상징적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한인경제권의 성장과 궤를 같이한다. 1990년대 한인경제권이 급성장하면서도 이곳도 팽창하기 시작했다. 한인 투자자들이 이 지역 빌딩 매입에 나섰고, 그 빌딩은 한인 입주자들로 채워졌다. 그리고 입주자의 대부분은 금융·법률·회계·부동산·보험 등의 업체였다. 이른바 전문 서비스 업종들이다. 한인경제권이 내실을 다지며 성장하는 데 이곳 업체들이 상당한 기여를 한 것이다. 이로 인해 윌셔가는 ‘한인 화이트칼라 타운’으로 불리기도 했다. 기존의 올림픽이나 웨스턴 길에 형성됐던 한인 상권과는 다른 형태의 한인 경제권이었다. 이런 윌셔 길의 비즈니스 생태계가 달라지고 있다. 이 지역 한인 업체 숫자가 감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사무실 임대 수요의 감소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간접적인 자료로도 확인이 된다. LA시 재무국 자료에 따르면 미드 윌셔가 포함된 LA한인타운 지역의 신규 비즈니스 등록 건수는 2018년 이후 매년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팬데믹 기간을 거치며 미드 윌셔 지역의 오피스 빌딩 공실률은 꾸준히 증가했다. 지난해 말에는 32% 선까지 높아졌다. LA 대부분 지역이 공실률 상승세를 보였지만 미드 윌셔는 주변 지역보다 더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오피스 빌딩의 아파트 전환은 이런 상황을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입주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이런 질문에 관계자들은 다른 지역 이전보다 업체 숫자 자체가 줄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라고 한다. 수요 감소에 경쟁 심화로 폐업하는 곳이 생기고 1세 창업주의 은퇴와 함께 문을 닫는 업체도 늘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넘기기 모호한 규모라서, 혹은 미처 후계 플랜을 마련하지 못한 채 은퇴하는 1세 사업주들도 많다고 한다. 더욱이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이런 사례가 더 많아졌다는 것이다. 1세 창업주의 은퇴 증가는 요즘 한인 경제권에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다. 물리적으로 은퇴 연령에 도달한 데다 비즈니스 환경도 급변하면서 은퇴를 생각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윌셔가의 1세들처럼 미처 후계 플랜을 세우지 못해 선뜻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과거 ‘한인 업종’으로 분류됐던 업종들의 성장 동력이 많이 약해진 것도 이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한인 1.5세나 2세들의 성공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직은 1세들이 이룬 성과에 비해서는 미흡해 보인다. 의류업체 ‘포에버 21’의 파산 이후 아직 내세울 만한 한인 기업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 이런 상황을 설명한다. 미국에 핫소스 바람을 일으킨 스리라차 소스를 만드는 ‘호이 퐁 푸드’나 중국식 패스트푸드를 유행시킨 ‘판다 익스프레스’는 후계자들이 경영 전면에 나서면서 사세도 급성장했다. 은퇴를 생각하고 있는 한인 1세 창업주들도 참고할만한 사례다. 성공적인 후계 플랜으로 이들 업체를 능가하는 ‘100년 한인기업’이 탄생했으며 하는 바람이다. 김동필 / 논설실장뉴스포커스 한인기업 탄생 la한인타운 지역 지역 한인 빌딩 관리업체
2023.09.14. 20:45
남가주에서 2명의 새로운 백만장자가 탄생했다. 가주 복권국은 지난 21일, 남가주 소재 편의점에서 판매된 즉석 복권을 통해 2명이 각각 500만 달러의 상금을 받게 됐다고 발표했다. 당첨 복권 가운데 1장은 엘몬티 소재 페이머스 에드스 리커에서 판매됐다. 당첨 복권은 '100배 당첨금 즉석복권'이다. 다른 1장은 샌타모니카 소재 M&A 토바코에서 판매된 '2023 스크래처스 티켓'으로 역시 당첨금은 500만 달러였다. 당첨 복권 판매소는 각각 2만5000달러를 보너스로 받는다. 최근 남가주에서는 각종 복권 당첨을 통해 백만장자 대열에 합류하는 사람이 이전보다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11월 파워볼 잭팟 당첨으로 역사상 최고 금액인 20억4000만 달러를 받은 에드윈 캐스트로 당첨자는 최근 할리우드 힐스 지역의 2550만 달러짜리 초호화 주택을 매입했고 지난 23일에는 자신이 거주하는 알타데나 지역에 또 400만 달러짜리 주택을 구입했다. 그는 이 지역에 있는 주유소에서 복권을 구입해 당첨됐다. 김병일 기자백만장자 탄생 백만장자 대열 당첨 복권 남가주 소재
2023.03.24. 15:49
게시판 탄생 한인 첫아기 할리우드 차병원 한인 아기
2023.01.03. 20:32
캐나다가 이민자로 인구순증가를 유지하며, 동시에 경제활동인구를 확보하고 있는데, 작년에도 40만 명을 넘기는 새 영주권자가 나왔다. 션 프레이져 연방이민난민시민부(Immigration, Refugees and Citizenship Canada, IRCC) 장관은 새해 첫 근무일인 3일 보도자료를 통해 작년 한 해 총 43만 1645명에게 영주권을 부여했다고 밝혔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영주권 업무가 위축됐던 2020년 직후인 작년, 전년도에 부족했던 영주권자 목표를 채우기 위해 40만 1000명에게 영주권을 줬었다. 이는 1913년 이후 가장 많은 영주권을 부여하는 기록을 세웠었다. 그러나 1년 만에 다시 이 기록을 깨게 된 것이다. 프레이져 장관은 "작년 한 해 연방이민난민시민부 직원들은 엄청난 양의 업무를 처리해 이런 결과를 냈다"며, "2022년에 영주권, 임시 체류 비자, 그리고 시민권 등 약 520만 건의 신청서를 처리했다"고 밝혔다. 이 수치는 2021년에 처리한 신청서 수의 2배에 해당한다. 프레이져 장관은 "역사적으로 많은 수의 새 이민자를 수용하기 위해 연방이민난민시민부에 추가적으로 자원을 투입하고, 신기술을 도입하고, 절차를 간편화 했으며, 더 많은 온라인 처리를 진행했다"며, "이런 변화가 캐나다의 이민 시스템을 개선하는 중요 요인이 됐다"고 평가했다. 연방정부는 현재 부족한 현재 노동인력문제와 미래의 강한 경제 환경을 만들기 위한 해법으로 이민을 가장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작년 11월 1일 발표된 2023~2025 이민자 계획에서 올해 총 46만 5000명의 새 영주권을 발부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만약 이 계획대로라면 3년 연속 최다 영주권 기록을 이어나가게 된다. 이뿐만 아니라 2024년 목표가 48만 5000명, 2025년 50만 명이어서 향후 3년 간 급격한 영주권자 수 증가를 목격하게 될 예정이다. 이민자는 현재 캐나다의 노동인구성장의 100%를 담당하고 있다. 캐나다 인구의 연간 증가의 대략 75%가 이민자로 인해 이루어지고 있다. 2021년 인구센서스에서 4명 중 1명이 이민자거나 영주권자였다. 이는 캐나다 탄생( Confederation) 이후 가장 높은 비중이며 G7국가 중에서도 가장 많은 비율을 기록했다. 2016년에서 2021년 사이에 캐나다에 정착한 새 이민자는 130만 명으로 캐나다 인구 센서스가 시작된 이후 최다 인원으로 기록됐다. 현재 계획대로라면 2011년 전체 인구 중 이민자가 20.7%였는데, 2036년에는 그 비중이 30%로 올라간다. 50년 전에 경제활동인구와 은퇴자 비중이 7대 1 이었으나, 2035년에는 2대 1로 고령 비율이 크게 높아질 예정이다. 이민자들은 의사의 36%를 차지하고 직원에게 월급을 주는 사업체 소유자의 33%를 담당하며, 41%가 엔지니어로 캐나다 의료와 경제 등 사회 전반적으로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연방정부는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이민 신청서 적체 문제 해결을 위해 보다 빠르고 신속하게 처리를 하면서도, 캐나다가 필요로 하는 기술 인력을 우선적으로 받아 들여 캐나다의 일손 부족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를 위해 2022-23 회계연도에 추가적으로 5000만 달러의 예산을 배정한 상태이다. 표영태 기자영주권자 탄생 영주권자 목표 캐나다 탄생 프레이져 연방이민난민시민부
2023.01.03. 14:40
짱깨주의의 탄생 김건흡 MDC시니어센터 회원 / 중국 근현대사에서 위안스카이(袁世凱)만큼 독특한 캐릭터도 없을 것이다. 계속되는 행운을 주체하지 못하다가 결국 인생을 불행하게 끝마친 인물이다. 위안스카이에게 인생역전의 기회를 준 사건은 조선의 임오군란이었다. 임오군란 당시 청나라 광동수사제독 우창칭(吳長慶)이 4500여 명의 군인들을 이끌고 조선에 들어와 군란을 진압했는데, 그 4500여 명의 군인들 틈에 위안스카이라는 23세의 청년 군인이 섞여 있었다. 그는 본국에서는 군수급 후보자 정도의 직위였지만, 조선에서는 최고위급 청나라 관리로서 행세할 수 있게 되었다. 젊은 나이에 벼락출세를 해서 그런지, 위안스카이는 이후 10년 동안 조선에서 참으로 방약무인한 행동들만 일삼았다. 조선에 부임한 위안스카이는 마치 섭정왕 같았다. 그는 감국대신을 자처하며 조선 내정에 간섭했다. 말이나 가마를 타고 궁궐 문을 함부로 드나들었고, 조선 정부의 공식행사에서 언제나 상석에 앉았다. 무장한 채 궁궐 안까지 가마 타고 들어와 고종 임금에게 삿대질하기 일쑤였다. 위안스카이가 조선에 대해 극도의 내정간섭을 일삼을 뿐만 아니라 고종 앞에서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양 외교관들마저 그의 건방짐과 무례함을 비난할 정도였다. 그는 고종을 만날 때면 항상 삼읍례를 하곤 했는데, 이런 인사법은 대등한 관계에서나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일국의 군주를 대등한 친구 정도로 대우한 것이다. 한때 위안스카이가 고종 폐위까지 도모한 적이 있었으니, 그가 얼마나 조선 조정을 우습게 여겼는지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으로 일본군이 진주하면서 청나라의 세력이 꺾일 때까지 그는 '조선의 총독'처럼 권력을 휘둘렀다. 갑신정변 때는 청나라 군대를 이끌고 창덕궁에 진입해 고종을 '보호' 조치하면서 일본군 지원 아래 개화파가 단행한 갑신정변을 무산시켰다. 그는 조선의 외교문제에까지 간섭했다. 고종이 구미에 공사를 파견하려 하자 그는 '조선 공사가 주재국에 도착하면 반드시 청국 공사와 함께 주재국 외교부를 찾아갈 것, 공석에서 청국 공사 뒤에 입장할 것, 긴요한 사건이 발생하면 청국 공사와 협의해 그의 지시에 따를 것' 등 소위 '삼단(三端)'을 요구했다. 그는 또 청나라 상인의 조선 진출을 적극 지원했고, 밀수까지 눈감아주도록 세관에 압력을 넣었다. 한미수교 이후 주미한국공사로 부임한 박정양이 미국 클리브랜드 대통령에게 제정한 국서에 우리의 개국연호, ‘짐’ 등의 용어를 사용한 사실을 트집 잡아 박 공사를 부임 10개월만에 강제 소환했다. 박 공사는 위안스카이가 두려워 1년 가까이 일본에 체류하는 수모를 당했다. 위안스카이가 조선에서 활약한 12년은 한·중·일이 근대국가 수립을 위해 '시간과의 경쟁'을 치열하게 벌이던 때였다. 이 절체절명의 시기에 그는 조선이 외교사절을 서구에 보내는 것까지 간섭하면서 발목을 잡았다. 아편전쟁 이후 서구와 불평등조약을 체결한 중국은 사실상 유일한 종속국으로 남아 있던 조선을 제국의 울타리 안에 붙잡아두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루 빨리 부국강병을 이뤄내 식민지로 전락할 위험에서 벗어나야 했던 조선의 입장에서 보면, 위안스카이는 근대국가 건설의 발목을 잡은 ‘원흉’이었다. 서울 도봉구와 경기 의정부시에 걸친 도봉산에 있는 망월사(望月寺) 현판은, 당시 한성에 진주했던 위안스카이가 직접 쓴 것이다. 망월사는 신라 선덕여왕때 창건한 고찰이다. ‘망월사’는 그 현판이 위안스카이에 의해 씌여졌다는 것으로 유명하다. 현판의 왼쪽에는 ‘주한사자원세개(駐韓使者袁世凱)’라는 글로 자신을 밝히고 있다. 쓴 때가 ‘광서신미중추지월(光緖辛未辛未仲秋之月)’이라고 기록하였으니 청일전쟁의 패전으로 조선을 떠나기 3년 전인 1891년이었다. 우리는 지난 수백 년(고려·조선) 중국의 지배 하에 살았다. 중국의 ‘속국’처럼 살았다. 그리고 근세에 와서 36년 간 일본에 병탄됐다가 2차대전 종전과 더불어 미국에 이끌려 대륙을 벗어나 태평양 쪽으로 나올 수 있었다. 한국인이 인간답게 살 수 있었던 것은 그 이후 70여 년이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지리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중국과 일본에 의해 수백 년을 한반도에 갇혀 살다가 미국의 안내로 세계로 뛰쳐나올 수 있었다. 우리가 지금처럼 사는 것은 우리 노력과 지혜의 결산이지만 미국이 기회를 제공했음은 사실이다. 역사는 우리가 앞으로 어디에 서고 어떻게 처신해야 나라와 민족을 보존하고 인간다운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는지를 실체적으로 보여준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반중정서와 혐오정서가 고조되면서 ‘짱깨’라는 용어가 중국을 인식하는 주류 프레임이 됐다.. ‘짱깨’는 중국인을 비하하는 말이다. 한국 사회의 ‘짱깨주의’ 현상은 인과관계가 그리 복잡하지 않다. 사드 보복에서 민낯을 보인 중국이 반중 감정의 씨앗을 뿌렸고, 여기에 문재인 정부의 대중 편향 정책에 대한 반감이 거름 작용을 한 것이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을 취재하던 한국인 사진기자 1명을 중국 정부 경호원 15명이 폭행해 안구출혈 중상까지 일어난 일도 있다. 쐐기를 박았던 건 2017년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발언이다.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고, 다른 곳도 아닌 미·중 정상회담에서 말했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방중 당시 베이징대 연설에서 중국을 “높은 산봉우리” “대국”, 한국은 “작은 나라”라 칭했다. 중국은 중화의 영광을 되찾는 과정에서 세계 곳곳에 반중 정서를 양산했다. 이웃 나라들을 힘으로 겁박한 중화제국주의가 중국 대망론과는 정반대인 혐중 짱깨주의를 낳은 것이다. 진정한 중국몽을 이루려면 중국은 민주주의·법치주의·인권의 보편 가치를 중국 문명에 담아내야 한다. “덕으로 사람을 복종시키는 사람에겐 모두가 기꺼이 복종한다. 힘으로 사람을 복종시키는 것은 마음으로가 아니라, 힘이 모자라기에 복종을 하는 척할 뿐이다.” 중국의 맹자가 한 말이다. 중국엔 경제력과 인구 등 국력, 즉 힘은 있지만 덕이 없다. 올해는 한중수교 30주년이 되는 해다. 지금 우리는 아시아에서 중국, 러시아, 북한이 하나의 안보 블록이 되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결국엔 한·미·일 ‘3국 협력’으로 가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3국 협력은 중국과의 관계에서 이전보다 대등하게 나서려는 새 정부의 바람과도 잘 맞는다. 한국 혼자 중국을 상대하면 중국으로부터 형편없는 대우를 받지만, 한국이 미국·일본과 관계가 돈독하면 중국은 한국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또 3국 협력은 아시아는 물론이고 글로벌 중추 국가로 도약한다는 윤석열 정부의 국가 전략과도 어울린다. 김지민 기자탄생 조선 공사 조선 정부 한때 위안스카이
2022.07.13. 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