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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오대호 탄생의 신비

박춘호 시카고 중앙일보 기자

박춘호 시카고 중앙일보 기자

시카고 지역 주민들은 한 가지 특별한 혜택을 누린다. 바로 광활한 미시간 호수에서 끌어온 깨끗한 물이다.
 
시카고에서 조금만 벗어난 지역에서는 대부분 인근 강물을 식수로 사용하며, 이 강물은 대개 미네랄 함량이 높은 ‘경수(硬水, hard water)’인 경우가 많다.
 
경수는 식수로 직접 마시기 어렵기에, 해당 지역에서는 주택에 공급되는 모든 물을 부드럽게 만드는 연수기(Water Softener)를 사용하는 가정이 흔하다. 일리노이와 인접한 인디애나주가 대표적이다. 경수가 공급되는 주택에서 연수기를 사용하지 않으면 마시는 물은 정수기나 생수에 의존해야 하며, 세탁기나 식기세척기 등 가전제품의 물 공급관이 경수에 포함된 미네랄 침전물로 막히는 피해를 볼 수 있다.
 
연수기는 정기적으로 소금을 보충하고 청소하는 등 관리가 번거롭다. 최신 기술이 적용된 무염(無鹽) 연수기는 설치 비용만 수천 달러에 달하기도 한다. 호숫물이 아닌 강수를 생활용수로 사용할 경우, 이래저래 추가적인 불편함과 비용이 발생한다.
 
몇 해 전 미시간주 플린트 지역에서 발생한 식수 오염 사태를 상기하면, 깨끗한 미시간 호숫물을 마시는 시카고 주민들이 누리는 ‘물의 특혜’는 결코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때문에 부동산 거래 시에도 주택의 물 공급원이 미시간 호수인지, 아니면 우물인지 등을 꼼꼼히 확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카고 서버브 지역에서는 미시간 호수 물을 공급받기 위해 노력하며 시카고 취수원에 사용료를 지불하는 경우도 많다. 오래된 상수도관 교체 등으로 시카고 주민들 역시 나름의 불편을 겪고 있지만, 물의 ‘원천’ 자체만 놓고 보면 상당한 이점을 가진 셈이다.
 
이렇게 우리 일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미시간 호수와 관련해 최근 학계의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전해졌다. 오대호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새로운 논문이다.  
 
지금까지는 약 1만 년에서 1만 4000년 전 빙하기에 거대한 빙하가 이동하며 지표면을 깎아내 호수가 형성되었다는 것이 정설로 파악돼 왔다. 이는 시카고와 가까운 인디애나 듄스 국립공원의 안내문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다. 안내문은 광대한 모래 언덕 역시 과거 호수 밑이었으며, 수위 변화와 바람 등으로 현재의 모습이 됐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최근 제기된 새로운 주장은 오대호의 탄생 시기를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간다. 약 2억 년에서 3억 년 전, 지구 내부 깊은 곳에 위치했던 ‘케이프 베르데 핫스팟(Cape Verde Hotspot)’이 상승하며 지표면에 거대한 저지대(depression)를 만들었고, 이후 빙하가 도래하여 이 저지대를 더욱 깊게 파내 현재의 호수가 형성됐다는 설명이다.
 
현재 대서양에 위치한 섬들을 만든 화산 활동의 근원으로 알려진 케이프 베르데 핫스팟이 약 2억 년 전에는 판게아 대륙 아래, 지금의 오대호 자리에 위치했다는 설명이다. 당시 현재와 사뭇 다른 판게아라는 거대 대륙이 존재했으며, 그때 발생한 이 핫스팟 활동이 오대호 분지의 ‘기반’을 마련했고,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난 뒤 빙하가 나타나 현재와 같은 거대한 담수호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는 것이 새로운 학설의 핵심이다. 이는 오대호의 역사가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 수억 년 더 길다는 의미다.
 
시카고라는 도시의 근원과 역사를 미시간 호수와 분리하여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애초에 시카고가 성장하고 유럽 이민자들에게 알려지게 된 계기 중 하나가 미시간 호수와 미시시피강을 연결하는 수로의 중요성 때문이었다. 현재의 아름다운 다운타운 스카이라인 역시 미시간 호수에서 멀리 떨어져 바라볼 때 가장 인상적이다. 인디애나 듄스에서 바라보면 시카고 다운타운은 마치 호수 위에 떠 있는 신기루처럼 보인다.
 
이처럼 시카고 주민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미시간 호수와 오대호가 수억 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숨겨진 탄생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새삼 놀라움을 안겨준다.
 
오대호는 면적으로 세계 최대, 담수량으로 바이칼 호수에 이어 세계 두 번째 규모다. 전 세계 담수의 20% 이상을 차지하며, 동쪽으로는 로렌스강을 통해 대서양과, 남쪽으로는 미시시피강과 연결되는 중요한 수로로서 오늘날까지도 수송 및 레저 활동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가 매일 마시고 사용하는 물에 담긴 수억 년의 역사를 생각하면, 그저 감사하고 경이로울 따름이다.

박춘호 / 시카고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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