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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인권 포럼

미국 보수단체 디펜스 포럼(대표 수잔 솔티)이 자유와 민주주의, 그리고 인권을 옹호하는 디펜스포럼 파운데이션(Defense Forum Foundation, 대표 수잔 숄티) 주관으로 탈북자들의 증언을 통해 북한 인권 실상을 알리기 위해 오찬 포럼을 개최한다.   포럼은 오는 18일(화) 오후 12시30분, 연방의회 레이번 빌딩 2044호(Rayburn House Office Bldg. Rm. 2044, Washington, D.C)에서 열린다.     이번 행사에는 탈북자 출신인 김지영(Free North Korea Radio) 대표, 다큐멘타리 영화 ‘비욘드 유토피아(Beyond Utopia) 주인공인 김승은 목사, 탈북자 박지아, 이경선 목사(Unification Hope 대표) 등이 참여한다.   더불어 윌리엄 미던도르프 전 유럽연합(EU) 주재 미국 대사와 연방 하원의원, 보좌관들이 참석할 예정이며 수잔 솔티 박사가 환영사를 한다.   프로그램 참석자들은 오는 20일(목) 뉴욕으로 이동해 유엔여성지위위원회(UN Commission on the Status of Women)에서 주최하는 행사에 참석해 북한여성들이 겪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소망을 증언할 예정이다.   한편 이 행사는 인권단체 주빌리 캠페인(Jubilee Campaign), 자유북한라디오(Free North Korea Radio), 갈렙 미션, 이사벨 재단, 에스더 기도운동회 등이 협찬한다.       문의- [email protected]   김윤미 기자 [email protected]탈북자 포럼 탈북자 인권 디펜스포럼 파운데이션 목사 탈북자

2025.03.09.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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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찾아 미국 온 탈북민 한자리에

“고맙죠, 가족도 만나기 어려운데 1년에 한 번 이렇게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줘서.”   지난 7일 오후 6시 30분, LA 한인타운 용수산에서 재미탈북자지원회(회장 로버트 홍)가 개최한 ‘재미 탈북자 환영 송년의 밤’이 열렸다. 약 30명의 탈북자가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알래스카와 샌프란시스코 등 먼 지역에서 온 탈북자들도 참석했다.   30대 탈북자 제임스라고만 밝힌 그는 난민 자격으로 미국에 왔다고 했다.   그는 “3년 전 미국으로 왔고 2년 연속 이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며 “자주 연락하지는 않지만 이렇게라도 탈북자들과 1년에 한 번 만나 기쁘다”고 말했다.   학생인 그는 “LA 국제공항에 도착해 걸려 있는 큰 성조기를 보고 ‘이곳이 미국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미국 정착 당시의 어려움도 토로했다.   그는 “운전면허증이니 사회보장제도니 사회가 붕괴한 북한에서는 경험해 보지 못한 것들”이라며 “나이를 먹고 이런 것도 할 수 없다는 무능력함을 느꼈다”고 했다.   미주 지역의 탈북자들은 식당 서버부터 미장공, 수선공, 스시맨 등 직업도 다양했다. 그중에는 노숙자로 살아가는 이도 있다.   현재 한인타운의 노숙자 셸터에서 거주하는 최정철 씨는 “(동료 탈북자들을 만나) 너무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그는 어린 자녀들과 배를 타고 일본으로 가려다 한국으로 가게 된 비슷한 지역 출신 동료 탈북자와 오래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재미탈북자지원회 연말 파티는 올해로 12년째를 맞았다. 실향민 출신이자 변호사로 활동 중인 로버트 홍 회장은 “어렸을 때 할머니가 매일 같이 북한 이야기를 했다”며 “탈북자들을 보면 가족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는 “어려운 시간을 보낸 탈북자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어 이런 송년회 행사를 계획했다”며 “가슴 아픈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오늘만이라도 기쁨과 행복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미국에 망명하고자 하는 탈북자들을 상담하는 일을 하다 2007년 이런 단체를 만들었다고 했다. 현재 그는 탈북자들이 미국 정착 과정에서 겪는 법률적, 사회적 어려움을 돕는 일도 하고 있다.   이날 송년의 밤 행사에서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 ‘도산’의 감독인 소프라노 클라라 신과 팝페라 가수이자 테너인 최원현씨가 축하 공연을 했다. 이들은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12월로 개사한 노래, 김추자의 ‘살짜기 옵서예’, ‘오 솔레미오’ 등의 노래를 불렀다.   이날 행사에서는 식사 이후 경품 추첨과 노래자랑도 이어졌다. 혼자 참석한 사람, 2명 이상 참석한 가족들에게 현금 선물이 전달됐다. 참가자들은 경품을 통해 믹서기, 인형 등 원하는 선물을 타갔다. 통일을 갈망하는 노래 ‘우리의 소원’을 함께 부르며 행사를 마무리했다. 김영남 기자 [[email protected]]탈북자 송년회 재미탈북자지원회 주최 재미탈북자지원회 연말 탈북자 제임스

2024.12.09.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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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너 대사 주재 탈북자 지원회의

탈북민의 성공적인 미국 정착을 지원하기 위한 원탁회의가 지난 18일 워싱턴 DC 국무부에서 열렸다.     한인인 줄리 터너 북한인권대사가주재한 이날 회의에는 탈북민을 지원하고 있거나 앞으로 지원하고자 하는 다양한 기관과 개인들이 참여했다. 한인가정상담소(KFAM·소장 캐서린 염)의 제니퍼 오 부소장과 폭력 피해자 지원을 담당하는 김선희 디렉터도 자리해, 탈북민 지원 활동에 대한 경험을 공유했다.     KFAM은 2017년부터 탈북민들에게 재정 지원, 상담, 인신매매 피해자 사례 관리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해오고 있다. 이번 회의는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탈북민을 돕는 타 기관들과의 협력 방안을 논의할 수 있는 중요한 자리였다.   터너 대사는 “이번 회의는 각 기관들끼리 서비스와 자원을 공유해 최선의 방안을 모색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KFAM은 “이 행사를 통해 다양한 기관들이 협력하고 지원 체계를 강화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면서 “앞으로 탈북민들에게 장기적이고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할 네트워크가 구축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KFAM은 탈북민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민자와 취약 계층을 위한 지원 활동을 지속할 계획이다.지원회의 탈북자 탈북자 지원회의 터너 대사 탈북민 지원

2024.10.24.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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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리치 밴드’ 힐링 콘서트, 30일 오후 5시 터틀록 센터

기독교 선교 포크록 밴드 ‘아웃리치 밴드(Outreach Band)’가 내일(30일) 오후 5시 어바인에 있는 터틀록 커뮤니티 센터(1 Sunnyhill, Irvine, CA 92603)에서 힐링 콘서트를 개최한다.     ‘억압받는 자들을 위한 조셉의 드림 뮤직(Joseph’s Dream Music For The Oppressed)’이라는 제목으로 진행되는 이번 콘서트는 탈북자의 이야기가 담긴 주제곡 ‘빈센트(Vincent)’로 공연을 펼친다.     팀 멤버 조셉 김씨는 “10년 전 탈북자와 식사를 하며 우연히 듣게 된 이야기에 충격을 받고 만들게 된 곡이다. 많은 분에게 위로와 희망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문의: [email protected]/(714) 673-3439 장수아 기자 [email protected]아웃리치 탈북자 힐링 콘서트 아웃리치 밴드 주제 힐링

2024.03.28. 20:26

“탈북자 강제북송, 동포들 두 번 죽이는 일”

“중국정부는 탈북자 강제북송을 중지하라!”   14일 오후 뉴욕 유엔본부 인근에서 탈북자 강제 북송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맨해튼 다그 함마슐드 광장에 모인 뉴욕한인회와 민주평통뉴욕협의회, 재향군인회 미동북부지회 등 뉴욕에 거주하는 한인 50여 명은 탈북자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호소하며 집회를 열었다.     집회 참가자들에 따르면, 2000명 넘는 탈북자들이 중국에 억류돼 있는 가운데 지난 8일 620여 명이 강제 북송됐다. 김광석 뉴욕한인회장은 “강제 북송된 탈북자들은 죽거나 심각한 고통을 겪게 된다”며, “중국 정부의 반인권적 행위를 전 세계적으로 규탄해야 한다”고 전했다.     탈북자 구호인 씨는 강제북송을 당했던 본인의 경험을 공유하기도 했다. 그는 “2000년 탈북을 시도했다가 중국에서 잡혀 3일 동안 감옥에 있다가 북송됐는데, 북한 감옥에서 나체로 벗겨진 채 구타를 당했다”며, “그 후 강제 노역을 하러 농장으로 보내졌는데, 혹독한 업무 강도에 아파서 쓰러지니 장례조차 치러주기 싫다며 달구지에 실어 집으로 보냈다”고 설명했다. 몸이 회복된 그는 다시 탈북을 시도해 성공했고, 현재는 뉴욕의 주유엔북한대표부와 유엔 본부 앞에서 매주 탈북자를 위한 시위를 하고 있다.     테렌스 박 아시안아메리칸유권자연맹 대표는 “탈북자들은 누군가의 할아버지이자 아버지, 또 아들”이라며, “강제 북송은 살인 행위”라고 호소했다.     시위를 이끈 최윤희 뉴욕한인회 교육문화담당 수석부회장은 “바이든 행정부와 유엔이 협력해 중국 정부를 설득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길 바란다”고 외쳤다.     중국에는 억류된 1400여 명의 탈북자들이 아직 남아있고, 이들도 강제 북송될 위험에 처해 있다. 제임스 정 뉴욕구국동지회 회장은 “남은 북한 동포들을 살리기 위해 이 자리에 왔다”며, “중국 정부는 탈북자들이 원하는 나라로 갈 수 있도록 문을 열어달라”고 호소했다.   글·사진=윤지혜 기자 [email protected]강제북송 탈북자 탈북자 강제북송 탈북자 문제 김광석 뉴욕한인회장

2023.11.14.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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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자녀 지원금 전달…라구나우즈빌리지 한인들

OC의 대표적 은퇴자 거주 단지 라구나우즈 빌리지의 한인들이 탈북자 자녀들에게 학업 지원금을 전달했다. 김홍식씨를 비롯한 한인 약 10명으로 구성된 라구나우즈한인탈북자돕기회는 지난달 31일 단지 내 5번 클럽하우스에서 8명의 탈북자 자녀를 초청, 각 1000달러의 장학금을 수여했다.   탈북자돕기회는 지난 2013년부터 10년째 북한 주민 구출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 모임에 따르면 탈북 경비는 1인당 약 3000달러가 든다. 김씨는 “2250달러가 채워지면 우리 마을을 통해 총 97명을 구출하게 된다”라고 밝혔다.   탈북자돕기회는 지난해 탈북자를 돕는 비영리단체 링크(LiNK)에 5000달러의 기부금을 전달한 바 있다. LiNK의 탈북자 돕기에 동참하길 원하는 이는 웹사이트(bit.ly/3toQ9rh)에서 기부하면 된다.  탈북자 장학금 한인들 탈북자 탈북자 자녀들 탈북자 돕기

2023.09.05. 7:00

탈북자 자녀 위해 시니어 정성 모아

탈북자 자녀들을 돕기 위해 한인 시니어들이 정성을 모았다.   라구나우즈 한인골프회(회장 송기평)가 지난달 29일 라구나우즈 빌리지 컨트리클럽에서 개최한 탈북자 자녀 장학기금 모금 골프대회에 150여 명이 참가, 십시일반으로 정성을 보탠 것.   송기평 회장은 이날 시상식에서 “라구나우즈 한인회가 골프회 회원 중심으로 화합하고 협력해 라구나우즈 빌리지가 즐거운 타운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 특별히 오늘 대회를 탈북자 자녀 장학금을 마련하는 의미 있는 행사로 치를 수 있게 돼 회원 모두에게 감사하다. 해가 갈수록 발전하는 골프회가 되도록 노력하자”고 말했다.   라구나우즈 한인골프회는 대회 수익금 전액을 라구나우즈 한인회(회장 김일홍)를 통해 탈북자 자녀들의 장학금 지원에 쓸 것이라고 밝혔다.   골프회 임원은 송 회장 외에 장금주 부회장, 조재성 총무, 김종배·김수지 진행위원, 복진성 경기위원 등으로 구성됐다.   남가주의 대표적 실버 단지인 라구나우즈 빌리지의 한인들은 지난 2014년부터 탈북자를 돕는 비영리단체 링크(LiNK)에 후원금을 보내고 있다.   라구나우즈빌리지는 총 27홀 규모 골프 코스를 보유하고 있다.골프 탈북자 탈북자 자녀들 한인 시니어들 시니어 정성

2023.07.10.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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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석의 100년 산책] 자유를 찾아서…나도 탈북자의 한 사람이었다

1947년의 일이다. 해방 2년 후였기 때문에 북녘 고향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공산정권 밑에서는 교육다운 교육이 불가능했기에 내가 추진해온 중고등교육을 단념하고 월남하기로 했다.   그해 여름방학이 되었다. 7월 10일이었다. 집 뒷산에 올라가 소나무를 등지고 생각에 잠겼다가 꿈을 꾸었다. 제복을 입은 보안서원이 나타나 장총을 내게 겨누며 “왜 김일성대학에 교수로 오지 않느냐”라고 물었다. “미안하다. 더 좋은 사람을 추천하기로 했으니까 좀 기다려 달라고 약속했다” 했더니, 그가 그렇게 됐느냐는 표정으로 하늘로 향해 발포했다.   아내와 함께 탈북자 수용소 갇혀   그 총소리에 놀라 꿈에서 깨어났다. 산 아래 동네를 내려보았다. 내 동생이 헐떡이면서 뛰어오더니 “형님, 빨리 산속으로 도망치세요. 저 아래 자동차에 김현석 장로가 잡혀가는데 형님도 잡으러 올라올 것 같아요”라고 했다. 차 한 대가 우리 집으로 오는 길목에 서 있고, 두 사람이 우리 집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망설이고 있는데 차가 다시 떠났다. 김 장로는 내가 교장으로 있는 학교 이사장이었는데, 그날 체포되었다가 6·25 때 피살되었다.   나는 탈북을 서두르기로 했다. 8월 16일 아침, 아내는 10개월 된 아들을 업고, 나는 아무 짐도 갖지 않기로 했다. 평양에 들렀다가 다음 날 아침에 기차를 타고 사리원에서 해주로 가는 열차로 갈아탔다. 늦은 오후에 간신히 해주역에 도착했다. 가까이 있는 한 여관을 찾았다. 여관주인이 우리를 깊숙한 안방으로 안내했다. “안심해도 됩니다.” 탈북인으로 직감한 모양이다.   다음 날 아침, 용강 바닷가로 가다가 검문을 받고 탈북자 수용소로 인계되었다. 초등학교 비슷한 두 채의 건물이었는데 앞 건물은 취조실과 남자수용소, 뒷 건물은 여자수용소였다. 나를 인계받은 계장이 조사를 시작했다. 그때였다. 벽에 걸린 전화통이 요란히 울렸다. 계장이 직접 전화를 받았다. 이상하게도 통화 내용이 내게까지 들려왔다. “○○계장입니다.” “오늘도 월남하다가 잡혀 온 놈들이 많아요?” “예, 어제보다 많은 것 같습니다.” “지금 막 평양에서 지시가 왔는데, 지금부터 잡히는 놈들은 책임지고 무조건 북송하라는 명령입니다.”   전화기를 내려놓고 돌아온 계장이 약간 망설이는 표정이었다. 나를 이끌고 밖으로 나왔다. 딴방에 대기 중이던 아내에게 나오라고 했다. 부하 한 명을 불러 “이 가족을 버스 정거장에서 떠나는 것까지 보고 오라”고 명령했다.   그가 나간 후에 갑자기 쪽지 생각이 났다. 나와 함께 교사로 있던 조 선생이 “혹시 도움이 될까 알려 드리는데 제 누님이 해주에 살고 있습니다. 탈북자들을 돕고 있는데 제가 전화번호를 드리겠습니다”라며 건넨 메모였다. 전화를 걸었다. 상황을 묻더니 두 사람이 찾아왔다. 한 여자는 내 아내를, 남자는 나를 이끌고 나섰다. 안내를 받아 들어갔더니, 조 선생 누님이 인사를 하면서 “죄송하지만, 불편하시더라도 선생님은 다락방에서 쉬시고 사모님만 거실에 머물러 달라”고 했다. 검문관이 오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 같았다. 언제 떠나겠느냐고 물었다. 빠를수록 좋다고 했더니, 오늘 밤이나 새벽에 떠나도록 해보자고 했다.   자정이 넘었을 때였다. 안내원을 따라나섰다. 수수밭 안으로 들어서더니 바다 쪽을 향해 숨을 죽이고 걸었다. 다행히 아들애는 깊이 잠들어 있었다. 경비원들이 200~300m씩 왕복하면서 바닷가를 순시하고 있었다. 그 중간시간에 작은 나룻배가 와 닿았다. 탈북자는 우리만이 아니었다. 옆 숲속에서 대기하던 사람들이 뛰쳐나오면서 배는 순식간에 만원이 되었다. 나는 아내를 태우고 더 올라탈 수가 없어 다음 배를 기다렸다. 10여 분 후에 또 한 척이 왔다. 남자 다섯이 곧바로 승선했다.   우리 배를 본 경비원이 호루라기를 불었다. 그러나 배는 이미 바다에 들어선 뒤였다. 마치 작은 배들의 전쟁터 같았다. 경비원이 탄 배가 나룻배를 쫓아가고 나룻배들은 큰 어선 사이로 숨어가곤 했다. 사공이 “위급하게 되면 수영을 하는 손님은 바다로 뛰어들어 어선들 뒤에 숨어라”고 했다. 아내가 탄 배는 어디로 갔는지 알 길이 없었다. 아들애가 울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다. 하느님께 돌보아달라고 기도하였다.   하느님께 기도, “자유 만세” 외쳐   얼마 후 사공이 “이제는 안심해도 된다”라고 했다. 한 사람이 “자유 만세!”를 선창했다. 나도 눈물을 닦았다. 새벽 시간이었다. 바다 남쪽 해안에는 여기저기 모닥불이 피어있었다. 서북청년단원들이 월남한 사람들을 위해 새벽 한기를 피하도록 준비한 것이다. 사공이 “선생님들이, 우리도 자유로운 새 나라에서 살게 도와 달라”던 음성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서북청년단원에게 아내 이름을 적어 주면서 내 가족을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모닥불이 많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날 밤 탈북자가 50~60명, 또는 그 이상일 것 같기도 했다. 20여 분이 지났을까. 아내가 청년의 안내를 받아 찾아왔다. 우리는 말 없이 쳐다보았다. 이렇게 될 줄 믿고 있었다는 표정이다. 아내는 나를 위해, 나는 아내를 위해 기도드린 것에 대한 감사의 모습이었다.     아내가 말했다. 경비정에 끌려가는 나룻배를 셋이나 보았다는 것이다. 아들애는 그제야 눈을 뜨면서 엄마 품에 안겼다. 나는 마음속으로 울음을 참고 참았다. 자유는 목숨보다 귀하다는 사실을 체험했다. 김형석 / 연세대 명예교수김형석의 100년 산책 탈북자 자유 탈북자 수용소 아내 이름 자유 만세

2023.06.09. 19:04

라구나우즈 한인들 탈북자 환영회

 탈북자 환영회 한인들 탈북자

2022.10.05.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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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부격차 느끼지만 노력만큼 기회있어 행복”

  “뉴욕의 살인적 물가를 온몸으로 느낍니다. 홈리스·범죄를 보며 빈부격차도 경험합니다. 그렇다고 북한에 빈부격차가 없었을까요. 노력한 만큼 기회를 얻는 이 시스템이 모두가 가난한 것보다 훨씬 좋습니다.”   북한에 억류됐다 숨진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의 부모가 주는 장학금의 첫 수혜자가 된 탈북자 이서현씨. 지난 5일 뉴욕에서 화상으로 만난 이 씨는 “어떤 장학금보다 의미가 크다”며 비슷한 처지 사람들이 희망을 갖게 될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바깥세상을 경험한 북한인들은 실태를 인지하면서도, 까마득한 두려움이 있다”며 “자유 세계에서 노력한 만큼 성과가 나오고, 도와주는 이들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금고를 관리하는 노동당 39호실에서 근무하던 아버지와 2014년 한국으로 탈출한 이 씨는 2016년 미국에 정착했다. 그는 뉴욕에 거주하며 이번 학기부터 컬럼비아대 국제행정대학원(SIPA·School of International and Public Affairs)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북한 주민이 미래에 부유한 삶을 살도록 시스템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다음은 이 씨와의 일문일답.   -장학금 수혜 소감은, 언제 처음 북한 문제를 인지했나.   “웜비어 부모에 대한 죄송함과 응원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북한인권위원회(HRNK) 갈라에서 만났다. 대학원 합격 후 연락드렸더니 큰 결정을 해 주셔서 감사하다. 2012년 중국 유학시 ‘왜 북한은 이렇게 못 살지’라는 질문에 빠져 있었는데, 중국인 택시 기사의 ‘중국은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했는데, 왜 너희 지도자는 한 번도 그런 결정을 안 하냐’는 질문이 확 꽂혔다.”   -장성택 처형 등을 지켜보며 탈북을 결정했다.   “통상 간부가 해외에 거주하면 자녀들은 인질인데(때문에 이 씨도 김일성종합대학에 다니다 정책이 바뀌어 중국 유학을 나왔다), 운 좋게 온 가족이 해외에 있어 제3국 비행기 티켓을 살 수 있었다.”   -북한 젊은 층이 한국을 보는 시각은.   “드라마·영화 영향에 살기 좋은 자유로운 나라라고 알고 있고, 말투·옷·헤어스타일도 따라하며 동경한다. ‘오빠, 이거 할거야?’ 라는 말투를 많이 따라하고 웃었다.”   -장마당 세대(북한판 MZ·고난의 행군 이후 청년들)의 변화 주도 가능성은.   “장마당이 자연스레 형성됐다고 보는 것은 오해로, 철저한 통제시장이다. ▶시간(오후 2~5시) ▶판매자격(55세 이상 여성만) 등이 엄격해 변화주도 가능성은 제한적. 한 사람 희생으로 가능했다면 충분히 북한도 변했을텐데, 연좌제가 문제다.”   -그만큼 아버지가 대단한데.   “저희가 나와 있어 결정이 가능했다. 한국으로 온 뒤에도 도청·해킹에 시달렸고, 북한 정권이 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를 통해 북한에 남은 할머니와 친척을 출연시키기도 했다. 신변 위협이 커 미국 이민을 선택했다.”   -뉴욕에 살며 불만은 없는지.   “윈스턴 처칠의 ‘자본주의의 고질적 폐해는 풍요의 불평등한 분배, 사회주의의 태생적 미덕은 가난의 평등한 분배’라는 말을 좋아한다. 사회주의를 이론으로 배운 사람은 신봉자가 되고, 몸으로 배운 사람은 반공주의자가 되는 것 같다. 전 몸으로 배워서(웃음). 학비가 너무 비싼 것은 고민이다. 최근 고펀드미(https://gofund.me/891bfa7c) 페이지와 기부 연락처([email protected])도 만들었다.”     -한·미 지도자에게 한마디.   “북미정상회담에 북한이 나왔던 것은 제재와 군사압박 때문이고, 핵 포기 의지는 없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북한이 장기집권 체제를 포기하고 개방하도록 강력히 요구해줬으면 한다.”   -북한에 대해 그리운 것이 있다면.   역시 사람이다. 제가 아는 모든 분이 무사하길 바란다. 하루빨리 뵈었으면 좋겠다.  김은별 기자 [email protected]뉴욕 탈북자 탈북민 이서현 오토웜비어 웜비어 장학금 북한 컬럼비아대

2022.09.07.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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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탈북자'와 '새터민'

 2005년에는 통일부가 ‘탈북자’를 대신할 새로운 용어로 ‘새터민’을 선정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비판이 적지 않게 일었다. 자유를 찾아온 사람을 경제 난민 취급하는 것이냐는 등 부정적 시각이 적지 않았다. “탈북자가 새터민이면 우리는 헌터민이냐”는 비아냥도 나왔다. 급기야 통일부는 2008년 ‘새터민’이란 용어를 가급적 쓰지 말자는 입장을 내놓는다.   최근 들어 부쩍 사용 빈도가 늘어난 것이 ‘탈북민’이다. ‘탈북민’이 지금까지 나온 용어 가운데 가장 나아 보인다는 것이 대체적 견해다.     그러나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탈북민’의 ‘민’을 ‘국민’이란 의미로 받아들인다면 무사히 한국에 들어와 정착한 사람들에게는 어울리지만 북한을 탈출해 아직도 중국 등지에서 떠도는 사람들에게는 맞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각각 ‘탈북민’ ‘탈북자’로 부르자는 의견이 있다.   북한을 탈출한 사람을 부르는 용어는 어느 것이 적절하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용어를 통일하면 좋지만 쉽지 않은 일이므로 상황에 따라 어울리는 말을 사용하는 수밖에 없다.우리말 바루기 탈북자 새터민 용어 가운데 사용 빈도 부정적 시각

2022.02.28.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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