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IRS)에서 온 편지 한장이 우편함에 있었다. 처음으로 세금보고를 마쳐 곧 환급금을 주겠다는 내용이려니 미뤄 짐작하고 책상 한 곳에 밀어뒀다. 세금보고를 한 지 2달이 지나도 환급금이 입금되지 않아서 받은 지 2주 만에 봉투 속의 편지를 읽었다. 제출한 세금보고서와 개인정보를 확인해야만 세금보고를 처리할 수 있다며 IRS 어시스턴트를 만나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결격사유가 있어서 환급을 받지 못할 거라는 의심을 하지 않았던 터라 편지를 받고 당황했다. 일단 소득세 신고를 대행했던 공인회계사(CPA)에게 연락했다.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이런 경우는 매우 드문데 소셜시큐리티 번호가 도용됐거나 IRS가 무작위로 선택해 정보를 확인하는 차원일 수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IRS 사무실을 방문하라고 했다. IRS 웹사이트에 보니 예약 없이 IRS를 방문할 수 있는 토요일은 4월 13일과 5월 18일이었다. 4월 13일 오전 8시 30분 LA다운타운 IRS 사무실 앞에 도착했다. 놀이공원의 롤러코스터 줄보다 긴 줄이 눈앞에 펼쳐졌다. 접이식 의자나 도시락을 준비한 사람들도 보였다. 한마디로 IRS 직원을 만나려고 기다리는 납세자들로 북새통이었다. 사무실 오픈 30분 전에 도착했지만, 주차 공간이 없어서 빌딩 주변을 3바퀴나 돌아야 했다. 결국 근처 몰 주차장에 15달러를 내고 주차한 후, 빌딩을 둘러싼 긴 줄 맨 뒤에 섰다. 다른 대기자에게 물으니 오후 4시는 돼야 입장할 수 있거나 아예 못 만날 수도 있다고 했다. 2시간을 기다린 끝에 대기자 수가 거의 줄지 않아서 포기했다. IRS에 전화를 걸었다. IRS 택스어시스턴스 서비스센터 직원에게 상황을 설명했지만, IRS 직원은 꼭 대면 미팅을 통해 신분을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IRS 직원은 두 가지 옵션을 제시했다. 하나는 가까운 IRS 사무실에 워크인으로 방문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예약을 잡고 방문하는 것이었다. 이미 끝도 없이 늘어선 줄을 보고 대기해 봤기에 예약했다. 그런데 인근 IRS 사무실은 6월까지 모든 예약이 꽉 차 있었다. LA한인타운에서 20마일이나 떨어진 밴나이스 사무실만 방문이 가능했다. 또한, 예약 방문은 월~금요일만 가능했기에 휴가를 내고 IRS 사무실을 찾아가야 했다. 밴나이스 IRS 사무실은 LA다운타운에 비하면 한적했다. 건물로 들어가서 가방 검사를 한 뒤에서야 드디어 IRS 사무실에 발을 들일 수 있었다. 번호표를 받고 기다리다 보면 대형 화면에 번호와 창구 번호가 뜬다. 5명 정도가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1번 방으로 들어가서 여권, 2023년 세금보고 양식 1040, 운전면허증, IRS로부터 받은 통지서를 제출했다. 신분 확인까지 1시간 30분이 걸렸다. IRS 직원은 “신분 도용으로부터 납세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로 첫 세금 신고자를 대상으로 신분 확인 목적의 대면 미팅을 요청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IRS에서 세금 기록을 확인하고 문제가 없으면 90일 이내에 환급이 처리되고 문제가 발견되면 추가 방문도 필요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올해 2월 14일 설레는 마음으로 첫 세금보고를 했다. 일반적으로 21일 이내에 처리된다고 하기에 온갖 사고 싶은 물건들을 온라인 쇼핑몰 장바구니에 담아놨는데 앞으로 7월 중순까지 더 기다려야 한다니 씁쓸했다. 5월 30일 환급금 처리 과정을 IRS 웹사이트를 통해 확인했더니 보고서를 접수했다는 메시지만 덜렁 있을 뿐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정하은 기자 [email protected] 어시스턴스 체험기 세금보고 편지 세금보고 편지 세금보고 양식 사무실 오픈
2024.05.30. 21:17
지난 4월 15일 2023년도 개인 세금보고서 접수가 마감됐습니다. 세금보고를 연장한 납세자들은 오는 10월 15일 전에 세금보고서를 제출하면 됩니다. 세금보고서를 제출한 후 납세자 중 일부는 IRS(연방국세청)로부터 편지를 받게 됩니다. 미납 세금에 대한 내용, 일부 소득의 누락 정보, 추가적인 서류 요청, 납세자 본인의 신분 확인, 신고한 세금보고서 내용을 변경했을 경우나 세금보고서 처리가 지연되고 있음을 알리기 위한 경우 등 내용은 다양합니다. 최근에는 부양가족인 자녀들의 신분도 확인 요청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녀들의 신분을 도용해 차일드 택스 크레딧과 근로 소득 택스 크레딧(EITC)을 가로채는 경우도 적지 않은 듯합니다. 편지에는 어떤 이유로 발송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문제 해결 방법에 대한 내용도 기재되어 있습니다. 일단 납세자의 입장에서 받은 편지 내용에 동의한다면 그 사항에 대해 굳이 답변할 필요는 없습니다. 편지 내용에 대해 납세자의 답변이 없으면 IRS에서는 편지의 내용대로 진행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확인한 결과 동의하지 않는 내용이 있다면 그것에 대해서는 반드시 답변해야 합니다. 국세청은 최소한 30일 내지 45일간의 시간을 주며 그 시간 안에 응답해주면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납세자가 답이 없을 경우 생각지도 못한 택스가 부과되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됩니다. 시간이 2, 3년쯤 흘러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시간과 비용도 훨씬 많이 든다는 것도 유의해야 합니다. 따라서 IRS로부터 편지를 받았다면, 자세히 읽어보고 본인이 접수한 세금보고서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부터 파악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에 맞는 대응 방법도 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납세자들이 종종 받게 되는 IRS 통지서 중에 ‘Notice CP 2000’은 납세자가 보고한 택스 보고와 제삼자(third party)가 IRS에 보낸 납세자에 관한 정보가 일치하지 않은 경우에 세금 보고서 변경을 제안합니다. 이럴 때는 통지서에 명시된 정보를 본인의 원래 보고서 정보와 우선 비교해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IRS 편지에 답변해야 하는 마감일이 기재되어 있다면 주의가 요구됩니다. 납세자가 답변 날짜를 준수해야 할 두 가지 주된 이유가 있는데 추가적인 이자나 페널티 부과금을 최소화할 수 있는 것과 납세자가 동의하지 않을 경우 추가적인 이의 신청권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추가 세금납부와 관련해서 편지를 받았고, 그 내용에 대해서 동의는 하지만 일시불로 납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분납 신청도 가능합니다. 분납 방법은 우선 본인이 납부할 수 있는 만큼 납부한 후 IRS에 분납 플랜을 신청하거나 세액 조정 제안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이밖에 IRS에서 받은 모든 통지서나 서신의 사본을 납세자의 세무 기록과 함께 보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중에 이들 문서가 필요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최소한 4년은 보관하는 것이 좋습니다. IRS로부터 받은 편지내용에 대해 직접 전화로 문의나 답변을 해야 할 때는 그 내용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고 해당 고지서(CP)나 편지(LTR)에 있는 번호를 IRS 에이전트에게 알려주어야 합니다. 편지의 번호는 보통 오른쪽 상단이나 하단 끝부분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CP503’, ‘LTR 5071C’ 등의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편지의 번호를 알려줘야 에이전트로부터 더 정확한 정보를 받을 수 있습니다. 만약 IRS에서 발송된 것처럼 보이지만 수상한 점이 있거나 신분도용 범죄로 의심이 되면 IRS 웹사이트 피싱 신고 페이지를 방문하거나 IRS 전화(800-829-1040)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IRS에서는 절대로 납세자에게 이메일이나 문자메시지, 소셜미디어를 통해 정보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문의:(213)382-3400 윤주호 / CPA세법 상식 대응법 편지 편지 내용 추가 세금납부 개인 세금보고
2024.05.01. 17:39
혹시 유서를 써 본 적이 있으신지요. 아는 분의 부음을 전해 듣고 불현듯 어김없이 다가올 내 생의 마지막 날을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래서 조금은 엉뚱한 유서 얘기를 묻게 됐습니다. 저는 유서를 써 본 경험이 있습니다. 오래전, 2박 3일 일정으로 부부가 함께 성당에서 주관하는 피정에 참석했습니다. 둘째 날 저녁이었습니다. 진행자가 내일 아침까지 완성해 오라면서 ‘당신은 내일 죽게 됩니다. 배우자에게 유서를 쓰십시오’ 라는 주제를 벽에 걸었습니다. 순간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아, 죽음이란 예고 없이 찾아오는 것이구나. 어느 날 이렇게 갑자기 떠나가야 하는 게 인생이구나. 산다는 것은 무엇이고 죽는다는 것은 또 무엇인가. 방에 돌아와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어둠이 깊어지고, 시간이 흘러갈수록 정말로 내일 죽음이 찾아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가정이 아닌 사실이라고 생각하니,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 앞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진정하려고 해도 마음뿐이었습니다. 내가 죽다니. 아직 할 일이 많은데 이렇게 죽어야 한다니. 살아온 날들이 한 장면씩 되살아나고 최선을 다해 살아오지 못한 많은 날이 참으로 후회가 되었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미워했던 이들까지도 회개하고 용서하는 마음을 담아 마지막 편지를 썼습니다. 죽음이 임박하니 순간순간이 절박하고 간절했습니다. 일분일초가 아까웠습니다. 누구를 미워하거나 원망할 틈이 없었습니다. 보이는 모든 것이 아름다웠습니다. 갑자기 눈앞이 흐려왔습니다. 한없이, 끝도 갓도 없이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얼마나 울었을까. 다시 곰곰 생각해보니, 내일은 내가 죽을 날이 아니었습니다. 아, 나에게 아직 생명이 남아있다니. 감사합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새벽에 눈을 떠보니 곁에 아내가 잠들어있었습니다. 눈 뜨면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것이 행복인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나뭇잎이 바람결에 한들거리고, 여명이 가만가만 온 누리에 번지고 있었습니다. 반짝이는 별을 바라보면서 새벽 공기를 한껏 들이마셨습니다. 피정을 끝내고 나니, 모든 게 귀하게 다가왔습니다. 아내도, 아이들도. 친구도, 이웃도, 모두 새롭게 보였습니다. 나무도, 풀도, 나는 새도, 다 사랑스러웠습니다. 그것들을 얼싸안고 뺨에 비비고 사랑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자고 다짐했습니다. 적어도 피정을 끝내고 돌아온 한동안은 그런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점차 무디어지더니, 시나브로 그때의 감정이 메말라갔습니다.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그 길을 누가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마음대로 올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갈 때도 순서 없이 떠나야 합니다. 언제 세상을 떠야 할지 아무도 모릅니다. 당신도 나도 말 한마디 못하고 허둥지둥 가야 할지 또 누가 알겠습니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나요, 늦지 않게 지금, 마지막 편지 한장을 써 보시면 어떨까요. 정찬열 / 시인이 아침에 편지 마지막 편지 유서 얘기 새벽 공기
2024.03.27. 18:45
가을을 좋아하는 그대여 밤을 잊고 지내다 잠 못 이루는 새벽 낙엽 하나 보냈는데 빨간 단풍 둘 보내셨네요 꿈꾸는 호숫가로 사슴 두 마리 보내 주세요 언덕 넘어 산기슭으로 자색 구름 손짓하는 곳 가슴 속 깊은 노래 메아리쳐 나오겠지요 낙엽 속에 숨어 흐르는 냇물 가도 가도 곰산 흐느끼다 바다에서 만나겠지요 이강민 / 뉴저지글마당 가을 편지 가을 편지 가도 가도 낙엽 하나
2023.12.15. 18:07
내 나이 6~7살 때의 일이었다고 기억한다. 그 무렵 나는 소아마비를 치료하러 을지로의 메디컬 센터에 다니고 있었다. 그날은 외할아버지와 병원에 갔었다. 물리치료를 마치고 약을 받아가야 했다. 할아버지는 맹장 수술한 자리에 탈장이 생겨 무거운 것을 오래 들지 못하셨다. 나를 벤치에 내려놓고 모퉁이를 돌아 약국으로 약을 타러 가셨다. 곧 온다던 할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자 혹시 나를 버리고 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씩 훌쩍이다 잠시 후, 엉엉 소리를 내어 울기 시작했다. 모두 나를 슬쩍 쳐다보고는 그냥 지나쳐 가버렸는데, 하얀 간호사복을 입은 누나가 멈추어 섰다. 그리고는 내게 왜 울고 있느냐고 물었다. 훌쩍이며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나를 덥석 팔에 안고 약국으로 갔다. 마침 약을 찾아오던 할아버지를 만나 집으로 돌아왔다. 그 간호사 누나의 얼굴은커녕 모습도 이제는 생각나지 않는다. 너무 오래된 일이다. 하지만 살다가 문득 그 일은 생각난다. 6~7살이면 아직 어린 나이다. 하지만 나는 그때 이미 5년가량 낫는다는 기약도 없는 재활치료를 받아 왔고, 나름 지쳐 있었다. 버려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내게 그때 그녀가 준 것은 포근한 위로였다. 어려운 사람에게는 직장도 필요하고 돈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절실한 것은 따스한 위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과연 60년을 살아오며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따스한 사람이 되어 본 적이 있었나. 며칠 사이에 계절이 확 바뀌었다. 오렌지 색으로 물들었던 마당의 감나무도 며칠 전 비와 간밤의 바람에 절반이나 옷을 벗었다. 또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이 무렵이면 누구나 한 번쯤은 지난 세월을 돌아볼 것이다. 나이가 드니 더 자주 지난 세월을 돌아보게 된다. 돌아보면 참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고 살았다. 그중 많은 이들이 이제는 이 세상에 있지 않거나, 오래전에 연락이 끊어졌다. 카드 한장 보낼 수 없는 상황이다. 아쉬운 일이긴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런 것이 세상사다.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도움과 위로는 카드빚과는 다르다. 카드빚이야 월말에 정산하면 그만이지만, 내가 받은 도움과 위로의 보답이 꼭 준 사람에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지 싶다. 받은 것만큼, 여유가 되면 더 많이, 주변의 다른 이에게 나누어 주는 것으로 내가 받은 것을 갚는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내게 위로와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도 아마 누군가에게 받았던 것을 나누어 준 것이리라. 이런 도움과 위로가 굳이 비싸고 커야 할 필요는 없다. 작은 것이 더 간절하고 소중하다. 슬프고 힘들 때 누군가 건네주는 따스한 말 한마디, 손글씨로 쓴 카드나 편지 한장이 전해주는 위로는 결코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것들이다. 그중에서 가장 손쉬운 것이 누군가에게 쓰는 가을 편지가 아닐까 싶다. 편지지에 사연 몇 자 적어 말린 낙엽 하나 붙여 보내면, 받는 이보다 보내는 이의 마음이 더 푸근해질 것이다. 고동운 / 전 가주 공무원이 아침에 가을 편지 가을 편지 편지 한장 간호사 누나
2023.11.22. 18:50
최인호 작가가 살았을 때 고 김수환 추기경이 그에게 물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먼 여행이 어딘지 아세요?” 잘 모르겠다고 하니 “머리에서 출발해서 가슴까지 오는 여행이지요.” 최 작가는 그 말뜻을 그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의 에세이 모음 책인 ‘천국에서 온 편지’에서 “어머니의 편지가 내 마음의 우체통에 도착하는데 꼬박 30년의 세월이 흐른 것이다” 라고 고백했다. 한국에서 가장 성공했던 작가를 꼽으라고 한다면 그 중 한 분이 최인호 작가일 것이다. 고등학생 때 그의 소설이 신춘문예에 입상했다. 일간지에 연재된 ‘별들의 고향’의 엄청난 인기로 여기저기서 ‘경아’라 불리는 분들이 많았다고 한다. 이어 ‘상도’를 비롯한 수많은 영화 시나리오 작품들이 계속 흥행에 성공해 큰 명성을 누렸다. 그러다가 2008년, 63세의 나이에 침샘암 진단을 받았다. 다음 해 35년간 연재하던 ‘샘터’ 잡지의 ‘가족’을 비롯해 모든 집필을 중단했다. 그가 세상 떠나기 3년 전인 2010년에 출간된 ‘천국에서 온 편지’에서 그의 어머니의 희생과 헌신, 그리고 속죄와 그리움으로 오열하는 최 작가의 모습을 330여 페이지 내내 볼 수 있었다. 필자도 어머니를 회상하면서 잊고 있었던 어머니의 희생적 사랑을 깨닫게 되면서 속죄하는 마음에 크게 공감을 했다. 최 작가의 부친은 변호사였는데 1955년 48세 나이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남편보다 한 살 어렸던 그의 어머니는 47세에 홀로되어 9남매를 키웠다. 딸을 두 번 낳고, 또 쌍둥이 딸을 두 번이나 낳아 딸만 6명이 되었는데 그중 세 딸을 잃는 아픔을 겪었다. 당시 남아선호가 심했기에 어머니는 시댁에 죄인처럼 사셔야 했다. 필자의 어머니도 딸만 셋을 낳았을 때 가까운 친척이 아버지에게 첩을 얻어 아들을 낳아 대를 이으라고 말했다고 하니 어머니들이 받은 수모와 심적 압박감은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최 작가의 어머니는 7번째로 장남인 형을 낳고 필자의 어머니는 4번째 형을 낳게 되어 두 어머니는 비로소 한숨을 돌린 셈이다. 최 작가는 8번째로 태어나기 전 그의 어머니는 임신 중독증으로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1945년 해방과 더불어 38선이 생겨나 이북에 있던 그의 가족들은 사업차 남한으로 간 아버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 남하하려는 남동생을 따라 그의 어머니가 만삭의 몸으로 무작정 따라나섰다. 배가 너무 불러 지게를 거꾸로 타고 넘어왔다고 한다. 그때 어머니가 만삭의 몸으로 월남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이북에서 태어나 김일성을 찬양하는 노랫말을 짓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라고 회상했다. 1945년 10월 출생 시 머리가 아주 커서 어머니가 출산에 무척 고생했다는데 그의 별명이 ‘남북대가리’였고 ‘대갈장군’이었다. 성인이 되면서 머리 크기가 다른 신체와 균형을 잡아갔다. 최 작가가 10살쯤에 아버지가 돌아가셨기에 어머니가 혼자 가장 노릇을 하며 6남매를 먹이고 학교 교육을 시켜야 했다. 방 하나에서 모든 식구가 살고 남은 방 2개를 하숙이나 세를 주고 먹고 살아야 했다. 많은 식솔을 부양하러 어머니가 지독한 절약 생활을 할 때 최 작가는 불평하면서 학교 핑계로 어머니를 속이고 돈을 더 타냈다고 속죄한다. 필자의 어머니는 청각 장애가 있던 아버지와 결혼해 8남매를 낳았다. 막내는 태어나자마자 숨져 7남매를 키우셨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은행 부도를 내서 집에는 세간마다 빨간 딱지가 붙었다. 고등학생인 넷째 누나는 큰누나네로, 중학생인 나는 둘째 누나네로 가서 몇 년을 얹혀살아야 했다. 집안 살림만 하셨던 어머니가 생활 전선에 나서야 했고 시장 노점에서 꽃을 팔아 생활을 이어갔다. 그렇게 어렵게 번 돈으로 내 대학 입학금을 마련해 주셨는데 어머니의 고생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아리다. 최 작가는 어머니가 다리를 못 쓰고, 당뇨병 합병증으로 눈도 잘 못 보셔서 휠체어에 태워 모시고 민속촌을 구경하면서 울고 또 울었다고 했다. 손을 보니 쉴 새 없이 일해서 두터운 손의 지문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수고했기에 자기는 엄청난 죄인이라고 탄식했다. 그러면서 아들 된 도리로 일주일에 한 번 아이들을 데리고 어머니를 찾아갈 때마다 “나는 정말 어머니 모습을 보는 것이 끔찍하게 싫고 고통스러웠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하기 싫은 숙제를 하듯 비틀어진 다리를 십 분 정도 주무르고 "오마니, 갑니다. 안녕히 계시라우요"하며 도망치듯 빠져나오는 것이 고작이었다.” 최 작가는 그의 어머니가 늘 쥐색 두루마기를 입고 멋과는 상관없는 구식할머니였는데 사진을 찍는다고 하면 머리를 빗고 립스틱 바르고 동그랗게 눈을 뜨고 미소 짓는 게 낯설게 보여 그냥 찍으라고 핀잔을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타박했던 사진이 영정사진이 되어 영안실에서 여주인공처럼 화사한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을 보고 울고 또 울었다고 한다. “비록 평생을 낡아빠진 남루한 옷처럼 살아온 인생이지만 여성이기를 포기하지 않으시려는 어머니의 안간힘을 무시하고 이를 박탈하려고 애썼던 내 태도가 실은 잔인한 고문이며 간접적인 살인행위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어머니들은 늘 맛있는 것이나 좋은 옷을 싫어하는 줄 알았지만 그것들이 자식들을 위한 배려였던 것을 어머니 나이가 되고 보니 비로소 그 깊은 뜻을 알게 되었다. 최 작가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천주교에 입교하시게 된 계기로 온 가족이 천주교를 믿게 된다, 어머니 장례식에서 최 작가는 자기가 쓰던 천주교 묵주를 어머니께 드리고 대신 어머니 묵주를 유품으로 받았다. 최 작가는 외출할 때마다 오른쪽 주머니에 어머니의 묵주를 넣고 만지면서 언제나 어머니 손과 마주 잡고 있는 것 같았다고 한다. “어머니 손은 농부의 손이었고 광부의 손이었고 거인의 손이었다” 라고 고백한다. 이제는 최 작가와 부모님 모두 천국에 계시므로 더는 천국에서 편지를 주고받을 일은 없고 함께 손을 잡고 낙원을 걷고 있을 것이다. 윤덕환 / 수필가수필 천국 편지 어머니 모습 그때 어머니 시절 아버지
2023.03.23. 20:52
길 거리에는 개미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 당신은말했겠지요 매서운 바람이 앙상한 나뭇가지만 매질할 뿐 추위를 이기는 새들만 바빠 보이고요 아침 해가 떠오자마자 어둠은 달아났습니다 푸른빛이 그리웠겠지요만 길 건너편 굴뚝에서 튕겨 나온 연기의 치마폭이 길게 허공을 춤추며 빌딩을 휘감고 있습니다 기억은 그리움의 산물일 런지요 야윈 어둠 속 아직 잠들어있는 창가의 새 한 마리 등 기대고 싶은 이와 긴 이별을 한 것일까요 먹이를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꿈의 날개 말입니다 눈은 새들의 하늘 높이 떠오른 날개를 쫓습니다 그들만의 경주에는 이야기가있는 것 같군요 창가의 싱그러운 화초와 이야기를 나눠봅니다 나무의 속삭임을 바꾸는 찬 바람을 마시고 새와 먼 연인인 태양의 꿈마저 훔치고 싶은 겨울 선인장 줄기 끝에 맺힌 불룩한 사랑을 담은 분홍 꽃망울 활짝 터뜨리기를 기다리는 이 마음까지도 터뜨려 주기를 우리가 주고받은 말을 기억할 것이겠지요 정숙자 / 시인·아스토리아글마당 겨울 편지 겨울 편지 겨울 선인장 분홍 꽃망울
2023.01.13. 17:48
겨울 같지 않은 겨울을 지내고 있다. 매년 이맘 때면 폭설이 오고도 몇 번 왔을 것이다. 올해는 눈 대신 비가 내렸다. 이상한 겨울 날씨다. 지구 온난화 현상이라더니 요즘은 모질게 추운 시카고 날씨를 경험하기 어렵다. 바람이 심한 시카고 혹한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웠다. 발이 푹푹 빠지는 폭설이 그려지는 시카고였다. 그런데 최근 몇 년 동안을 되돌아 보니 매섭게 추운 겨울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 때로는 눈 없는 크리스마스를 지내기도 했다. 오늘 아침 눈을 뜨니 창밖에 눈이 살포시 쌓였다. 쌓였다기보다는 살짝 대지를 하얀 무명천으로 덮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럼에도 겨울이라는 느낌이 포근하게 부딛혀왔다. 늦가을이 겨울의 소매를 부여잡고 놓아주지 않는 와중에도 눈이 내렸다. 겨울을 지나지 않고서는 봄은 올 수 없다. 인생의 봄도 깊은 고난의 겨울을 지나서 온다. ‘빼앗긴 땅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 시인의 시가 생각나는 아침이다. 암울했던 그 시기에 시인은 봄을 꿈꾸었을 것이다. 그 봄은 꽃이었고 희망이었다. 누구도 찬탈 할 수 없는 나만의 자유였다. 겨울은 봄으로 이어지는 건널목이란 생각이 든다. 건널목에 설치 된 신호등엔 건너 갈 수 없다는 빨간 신호가 켜져 있다. 우리는 이곳에서 기다려야 한다. 건너편 길에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도, 파란 불이 켜지고 차들이 정지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인생의 날들은 내 마음과 달리 기다려야 할 때가 있다.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할 때가 있다. 손을 뻗으면 잡힐 듯 한데, 눈을 감으면 보일 듯 한데, 걸어가면 바로 닿을 듯한데 멈춰서야 할 때가 있다. 내 생각을 접어야 할 때도 있다. 이해할 수 없지만 나를 내려놓아야 할 때가 있다. 때론 사람의 일보다 자연을 보며 지혜를 얻을 때가 많다. 사람의 생각은 변하지만 자연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그 때 내가 그 자리에 서 있길 잘했다고 나를 돌아볼 때가 있을 것이다.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다 매년 눈에 다가오는 오나먼트가 하나 있다. 화려한 장식을 한 값 비싼 오나먼트보다 더 소중한 이유는 그 속에 나의 웃음과 아들의 행복한 미소가 함께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들의 어릴 적 사진을 작은 나무로 엮어 만든 30년이 넘는 오나먼트다. 사진 속 아들은 웃고 있다. 하얀 이를 드러내고 보조개가 살짝 들어간 영락 없는 개구장이 모습이다. 너에게도 한때 이런 모습, 이런 시간이 있었구나. 유독 에너지가 많아 땀을 뻘뻘 흘리면서 뛰어 놀던 모습이 생생하다. 긴 시간이 흘러갔지만 기억은 흘러가지 않았다. 30년이 넘는 시간의 간극을 두고도 바로 어제 같은 기억으로 다가오는 것들이 있다.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사는 존재라 하지 않았던가. 살다 보면 즐거웠던 추억도 있었을 것이고, 힘들고 아팠던 기억 하고 싶지 않은 추억도 있을 것이다. 견디기 힘들어 밤을 설치도록 가슴 져몃던 일들도 있을 것이리라. 하얗게 덮힌 눈 속에서도 가지마다 움을 트려고 몸을 뒤척이는 나목이 되자. 새로운 봄날을 맞이하기 위해 죽은 자 같지만 살아있는 자.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것 같이 보이지만 모든 것을 다 가진 한 그루의 나목처럼 살아가자. 버리면 얻는 것이고, 낮아지면 높아지기 때문이다. 겨울나무가 찬바람에 울었던 것처럼, 속으로 속으로 뿌리내리며 우리도 울자. 눈 덮힌 창가에 앉아 편지를 쓴다 썼다 지워버린 편지를 다시 쓴다 보내지도 못할 편지를 가슴으로 쓰고 있다 눈이 녹고 봄이 오면 그때도 편지를 쓸 수 있을까 연두의 잎눈이 보석처럼 어리울 때 목련이 긴 목을 내리고 슬피 나를 바라볼 때에도 나 그대 앞에 엎드려 목놓아 울 수 있을까 나목들의 뜨거운 호흡으로 겨울 숲은 잠드는데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편지 시카고 날씨 시카고 혹한 크리스마스 트리
2022.12.19. 15:45
점심 때가 지나 좀 한가한 시간, 엔리케가 아내와 함께 식당으로 들어섰다. 그들은 손님이라기보다는 8촌쯤 되는 친척 같다. 웃으며 그들을 반겼다. 식당을 개업한 얼마 후 엔리케를 종업원으로 채용했다. 15년 전쯤의 일이다. 남미계 이민자이지만 적당한 체구에 안경을 쓴 작은 눈과 갈색 피부는 내 먼 조카라 해도 믿을 정도의 외모였다. 그는 성실한 일꾼이었으나 출근이 5분쯤 늦기 일쑤였다. 그 버릇이 내 신경을 거슬리곤 했다. 그의 둘째 딸이 유아 세례를 받는 날이었다. 나도 초대를 받아 성당에 갔다. 손님은 모두 자리에 앉아 미사 시작을 기다리고 있는데 아이와 부모가 나타나지 않았다. 조마조마했다. 아니나 다를까, 신부님은 아이를 한참이나 기다려야만 했다. 몸에 밴 습관은 고치기 힘든 모양이다. 같이 일하며 몇 해가 지났다. 속마음을 좀처럼 얼굴에 드러내지 않는 그가 한동안 지치고 슬퍼 보였다. 그러던 중 할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그의 이름 ‘엔리케’는 세상을 뜬 조부 이름이고 그는 할아버지 이름과 소셜번호를 도용해 왔다고 고백했다. 중학생 때 멕시코를 떠나 텍사스에서 살고 있던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단다. 손자의 신분 정리를 하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난 조부를 원망하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사실을 알면서 함께 일할 수는 없었다. 신분이 정리되면 다시 일하자고 했다. 그렇게 그는 떠났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대여섯 해를 같이 일했던 그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했다. 적어도 추방은 면하기를 기원했다. 어느 날 그의 아내 애나가 가게에 나타났다. 다급해 보였다. 엔리케가 음주운전으로 유치장에 있는데 신분문제까지 겹친 추방 당할 위기에 처해 있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애나는 온 힘을 다해 남편을 구할 수 있는 길을 찾고 있다며 나에게 엔리케에 대해 편지를 써달라고 부탁했다. 판사에게 제출할 것이란다. 수줍게 미소 지으며 남편 뒤에 서 있던 새댁 모습이 아니었다. 남편을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는 결연한 태도였다. 집으로 돌아와 편지를 썼다. 늘 지각하던 녀석의 모습이 잠깐 떠올랐지만 엔리케가 얼마나 성실하고 유능한지, 그리고 가슴 따뜻한 사람인지를 성심껏 써나갔다. 친절하고 책임감이 강해 우리 비즈니스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며 미국 사회의 좋은 일원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고 했다. 엔리케를 칭찬했던 단골손님 매직 존슨 말까지 인용하면서 정성껏 쓴 편지를 다음날 애나에게 전했다. 수일이 지났다. 애나와 엔리케가 함박웃음을 웃으며 나란히 식당에 나타났다. 판사가 편지를 다 읽고 나서 ‘네 주인이 너를 많이 사랑하는 것 같다’며 그를 풀어주었다고 한다. 편지 한 장이 판사의 결정에 도움이 되다니, 내 일처럼 기뻤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이 거창한 일이 아님을 알았다. 정답게 소곤거리는 애나 부부 모습을 바라본다. 고맙고 예쁘다. 곧 둘째 딸 멜리의 열 번째 생일이란다. 색연필과 스케치북을 선물로 준비해야겠다. 이정숙 / 수필가이 아침에 판사 편지 시간 엔리케 할아버지 이름 조부 이름
2022.06.20. 20:38
점심 때가 지나 좀 한가한 시간, 엔리케가 아내와 함께 식당으로 들어섰다. 그들은 손님이라기보다는 8촌쯤 되는 친척 같다. 웃으며 그들을 반겼다. 식당을 개업한 얼마 후 엔리케를 종업원으로 채용했다. 15년 전쯤의 일이다. 남미계 이민자이지만 적당한 체구에 안경을 쓴 작은 눈과 갈색 피부는 내 먼 조카라 해도 믿을 정도의 외모였다. 그는 성실한 일꾼이었으나 출근이 5분쯤 늦기 일쑤였다. 그 버릇이 내 신경을 거슬리곤 했다. 그의 둘째 딸이 유아 세례를 받는 날이었다. 나도 초대를 받아 성당에 갔다. 손님은 모두 자리에 앉아 미사 시작을 기다리고 있는데 아이와 부모가 나타나지 않았다. 조마조마했다. 아니나 다를까, 신부님은 아이를 한참이나 기다려야만 했다. 몸에 밴 습관은 고치기 힘든 모양이다. 같이 일하며 몇 해가 지났다. 속마음을 좀처럼 얼굴에 드러내지 않는 그가 한동안 지치고 슬퍼 보였다. 그러던 중 할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그의 이름 ‘엔리케’는 세상을 뜬 조부 이름이고 그는 할아버지 이름과 소셜번호를 도용해 왔다고 고백했다. 중학생 때 멕시코를 떠나 텍사스에서 살고 있던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단다. 손자의 신분 정리를 하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난 조부를 원망하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사실을 알면서 함께 일할 수는 없었다. 신분이 정리되면 다시 일하자고 했다. 그렇게 그는 떠났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대여섯 해를 같이 일했던 그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했다. 적어도 추방은 면하기를 기원했다. 어느 날 그의 아내 애나가 가게에 나타났다. 다급해 보였다. 엔리케가 음주운전으로 유치장에 있는데 신분문제까지 겹친 추방 당할 위기에 처해 있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애나는 온 힘을 다해 남편을 구할 수 있는 길을 찾고 있다며 나에게 엔리케에 대해 편지를 써달라고 부탁했다. 판사에게 제출할 것이란다. 수줍게 미소 지으며 남편 뒤에 서 있던 새댁 모습이 아니었다. 남편을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는 결연한 태도였다. 집으로 돌아와 편지를 썼다. 늘 지각하던 녀석의 모습이 잠깐 떠올랐지만 엔리케가 얼마나 성실하고 유능한지, 그리고 가슴 따뜻한 사람인지를 성심껏 써나갔다. 친절하고 책임감이 강해 우리 비즈니스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며 미국 사회의 좋은 일원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고 했다. 엔리케를 칭찬했던 단골손님 매직 존슨 말까지 인용하면서 정성껏 쓴 편지를 다음날 애나에게 전했다. 수일이 지났다. 애나와 엔리케가 함박웃음을 웃으며 나란히 식당에 나타났다. 판사가 편지를 다 읽고 나서 ‘네 주인이 너를 많이 사랑하는 것 같다’며 그를 풀어주었다고 한다. 편지 한 장이 판사의 결정에 도움이 되다니, 내 일처럼 기뻤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이 거창한 일이 아님을 알았다. 정답게 소곤거리는 애나 부부 모습을 바라본다. 고맙고 예쁘다. 곧 둘째 딸 멜리의 열 번째 생일이란다. 색연필과 스케치북을 선물로 준비해야겠다. 이정숙 / 수필가이 아침에 판사 편지 시간 엔리케 할아버지 이름 조부 이름
2022.06.05. 15:43
Q: 지난 3년간 세금보고를 하지 못한 독자입니다. 기사를 보니 IRS(국세청)에서 독촉편지를 안 보낸다고 하던데 자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A: 네, 현재 국세청은 턱없이 부족한 예산과 인력, 그리고 팬데믹 기간 동안 각종 지원금 발송과 자녀 세액 공제 선지급하는 일 등등에 묶여서 사상 최대의 적체 업무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지난 9일에 IRS에서는 임시방편으로 당분간, 자동으로 나가던 몇 가지 징수 관련 노티스와 세금 보고 미신고자에게 발송되던 독촉 편지를 임시 중단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실제적으로는 IRS 자체적인 결정이라기보다 의회와 세금 전문가협회 등에서 최근에 많아지는 잘못된 내용의 편지와 일 처리가 되기 전에 나가는 자동 체납 노티스들에 대한 계속된 압력에 굴복하게 된 것입니다. 먼저 징수 통지서를 살펴보면 IRS에서는 세금이 정식으로 부과된 후 60일 안에 독촉 편지를 보내도록 법적으로 요구되고 있습니다. 만약 이 기간 내에 보내지 않을 경우에 세금이 연체된 납세자에게 선취권(Lien)을 재산에 걸지 못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자동으로 IRS에서 발송해 온 것입니다. 이번 조치에 해당하는 IRS 노티스에는 CP 501, 503, 504가 포함되어 있는데, 체납 세금을 납부하라는 내용과 차압에 대한 경고 노티스입니다. 하지만 유의할 점이 있습니다. IRS 발표 내용을 자세히 보면 앞으로 몇 주 동안에는 이러한 징수 편지들을 받게 되는 납세자들도 있을 것이라 했습니다. 또 이번 조치에는 ‘자동’ 발송되는 편지에만 해당하는 것이지, ‘직접’ 보내는 통지서는 계속 받게 될 것이기 때문에 받으면 미루어 두지 말고 적극적으로 조처를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중요한 점은 편지를 안 받았어도 체납 세금에 대한 각종 ‘벌금과 이자’는 계속해서 불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IRS의 또 다른 종류 조치는 미보고된 세금 보고서를 요구하거나 월급에 원천징수가 너무 적게 되고 있으니 수정하라는 노티스들입니다. 이번 조치를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이렇게 잠시 IRS에서 독촉이나 징수 활동을 부분적으로 집행을 중단하고 있을 때가 해결하기 가장 적합할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분야 전문가 상의하셔서 이 기회에 가장 알맞은 방법으로 세금 문제를 해결하시기를 바랍니다. ▶문의: (213)383-1127I 제임스 차 / 공인회계사세금 클리닉 독촉 편지 독촉 편지 징수 편지들 세금 전문가협회
2022.02.14. 11:01
그와의 만남은 젊은 날 단 2년이었다. 대학 3년째 그는 군대에 입대했기 때문에 그 짧은 2년의 시간은 내게 10년 20년에 버금가는 신선하고, 아름다운 인생의 깊은 추억이 되었다. 오랜 기간 우정을 쌓아가진 않았지만 함께 떠난 스케치 여행, 거의 함께 지낸 화실 생활, 대학 2년 동안 겁도 없이 치른 두번의 그룹전 등은 젊은 우리에겐 거침없는 도전이었고 하루 하루를 맞는 기쁨이었다. 미국 생활 45년 내내 지금까지 마음의 한쪽에 담겨 지워지지 않는 위로와 용기가 되었다. 한창 미국생활에 적응해 갈 무렵 대기업의 데코마스 작업을 위한 미국 방문 중 아내와 함께 시카고에 들려 함께 지낸 몇일간의 시간을 빼면 어쩌면 무심하게, 덤덤하게 서로의 삶을 충실하게 살았다. 저마다의 인생을 땀 흘려 개척하며 자신의 길을 걸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간혹 SNS 를 통해 그의 놀라운 행보를 보며 마음 속으로 박수를 보냈다. 그는 디자인 계열을 이끄는 깊이 있는 사유의 디자이너로, 존경 받는 대학의 교수로 자리매김 하고 있었다. 내가 그를 다시 만난 곳은 2019년 가을 춘천에서였다. ‘바람에 기대어’ 출판기념회로 한국을 방문한 나를 위해 동기 9명이 모였다. 그야말로 젊고 발랄했던 미모의 친구들, 더벅머리 개성 뚜렷했던 친구들이 희끗희끗한 머리로 다시 만나 흘러간 지난 세월을 끄집어내며 박장대소했다. 다음날 아침 친구들이 떠나고 난 후에도 그와 그의 아내는 춘천 김유정 문학관, 서울가는 길에 들른 황순원의 소나기마을까지 동행해 주었다. 두물머리 근처 그의 작업장도 둘러보고 2층 그의 작업장을 꽉 채운 작품들을 뒤로 하고 나는 다시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문득 지난 연말 편지가 왔다. 그리고 나도 반갑게 답장을 했다. 아내에게 이 글을 보여주었다. 아내가 피식 웃는다. 나도 피식 웃었다. 같은 웃음은 아닌 듯했다. 야호~ 오늘은 6,000보, 어제는 건너뛰고 그제는 4,500보... 어쩌다 1만 보를 걸으면 예의를 다한 듯한 마음이 되었던 하루 하루로… 발밑만 보다 어느덧 세밑이 되었습니다. 꽃과 녹음, 단풍과 눈, 바람과 향기가 사물처럼 지나쳤습니다. 걷기가 일이 된 나이, 정처 없이 걷는 그 길에서 가끔 고요히 떠오르는 질문처럼 벗 신호철을 만납니다. 낯설지만 기뻤던, 침묵 속의 공감들, 서두르다 놓쳤던 것들... 그 기억의 파편들이 밤하늘 은하수 같습니다. 내일도 또 다른 날도 아름다운 반짝임은 계속해서 그곳에 있을 것입니다. 한 해가 끝나갑니다. 인간으로 산다는 그 어려운 일을 68년째, 무탈하게 버텨왔다는 것으로 한 해의 결실로 거둡니다. 더불어 둥근 완성을 위해 최선을 다하였을 그대의 노고와 현재를 존중하며, 느닷없이 안부를 묻고 고마움을 전합니다. 건강을 빕니다. 벗 신호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21년 12월 30일 / 서기흔 드림 이 나이 까지도 젊고 싱그러운 청년 서기흔!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길 위로 상큼한 바람이 불어온다. 우린 얼마나 흘러 왔을까? 얼마나 많은 날들이 깨어나고 다시 누웠던가. 꽃들은 피었다가 지기를, 그 뿌리의 생이 다할 때까지 얼마나 많은 날들을 뒤척였던가? 하늘은 얼마나 많은 날의 그리움으로 바람이 되어 불고, 비 뿌리고, 이내 먹먹히 쌓이는 눈이 되는가. 밀려왔다 부서지는 파도의 그 끝도 없는 걸음이 아프게 다가오는데 난 무엇이 되어 이렇게 늙으막히까지 이방인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지구의 반대쪽, 소리 내 부르면 되돌아 오는 얼굴들. 해가 뜨면 해가 지고, 해가 지면 이내 먼동이 트는 날들이 빠르게 흘러, 되돌아 가기엔 너무 멀리 걸어온 세월. 서로의 거리에서 잃어버린, 아니 소중히 포개어 깊숙히 담아 놓았던 시간들을 끄집어 내어 그대를 다시 만나고 있다. 솔 향기 가득한 길 모퉁이를 돌아서면 호수가 시작되고, 그 주변엔 억새가 지천에 자라 숲을 이루고, 청둥오리 한 쌍이 미끄러지듯 새벽을 흐르는데 우린 그동안 호수의 잔잔한 적막처럼 너무 침묵한 건가? 새벽 길을 걷다 보면 그리움이 등 뒤에서 나를 밀고 간다. 젊은 날 내 등을 밀었던 그 바람처럼….(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새해 편지 새해 편지 연말 편지 생활 대학
2022.01.10. 14:59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청마 유치환의 ‘행복’이라는 시다. 참다운 행복이 무엇인가를 생각게 하는 시다. 우리가 아끼고 사랑했던 것들, 우리를 푸근하게 감싸주던 것들, 우리 마음을 훈훈하게 데워주던 것들이 알게 모르게 사라져가고 있다. 초가집들이 사라졌다. 가을 양광에 늙은 박 덩굴을 무료히 머리에 이고 있는 우리의 노모 같은 초가집은 산업화의 회오리에 밀려 어느새 그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도시에서는 밤하늘의 총총한 별들을 바라보는 것을 단념해야 하고, 봄 노고지리, 가을 메뚜기를 시골에서조차 만나기 어렵게 됐다. 해질 무렵 시골 농가의 굴뚝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밥 짓는 연기는 옛 추억 속에 잠겨버렸고, 우직한 소달구지의 정겨움은 버릇없는 트럭으로 대체되었다. 우리 어머니들의 알뜰함이 담겨있던 대나무로 짠 시장바구니는 어느새 일회용 비닐봉지가 그 구실을 대신하고, 때도 철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과일과 푸성귀는 원두막과 콩서리에 얽힌 그리움을 앗아가 버렸다. 또 이메일과 스마트폰의 보급은 편지 쓰는 즐거움과 편지 받는 반가움을 부질없는 일로 만들었다. 시간을 아끼는 현대인은 이제 편지 따위는 하릴없는 사람이나 끄적거리는 것으로 치부한다. 정보화시대의 철학자 맥루한은 열렬한 전화예찬론자이다. 활자문화에서 자라난 구세대들은 전화를 싫어하지만, 전파시대에 출생신고를 낸 아이들은 스마트폰을 애완동물처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화는 그의 이론을 듣고 있으면 애정만이 아니라 인간의 사고방식과 일반적인 행동까지도 바꾸어놓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활자문화 속에서 자라난 구세대는 고립적인 개인주의에 그 특징이 있지만, 정보화시대에 사는 현대인은 높은 참여성이 있다고 맥루한은 주장한다. 그리고 전화야말로 현대인에게 그러한 성격을 부여한 챔피언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전화는 참여성이 강한 미디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스마트폰을 현대의 메시아로 보든, 혹은 독신자가 샤워를 할 때마다 울리는 현대의 악마로 보든, 그것은 분명 현대인의 관계를 횡적으로 확대시켜주고 있다는 것이다. 편지는 말하자면 글자는 우리에게 영원이라는 것을 가르쳐준다. 감정도 사상도 문자로 얘기할 때는 그것이 수백 년 수천 년의 먼 훗날까지 남으리라는 것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화는 축지법처럼 공간을 훌쩍 뛰어넘어 공간을 소멸시킨다. 그 대신 시간을 정복할 수는 없다. 옆으로만 번지게 하고 시간에 그 종적(縱的)인 관계를 생각하지 않게 한다. 현대인은 하루살이처럼 살아간다. ‘오늘만!’, ‘오늘만!’ 이렇게 외치면서 그들은 전파의 가벼운 날개를 타고 시간의 강하를 따라간다. 편지의 깊고 그윽한 맛을 잃어가고 있다. 편지란 흩어진 가족이나 멀리 떨어져 있는 친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감싸주는 위로자다. 편지를 쓰는 사람이나 받아보는 사람 모두가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반성할 수 있는 장(場)을 마련해준다. 편지에는 화려한 문체나 깊은 지식, 물 샐 틈 없는 논리가 없어도 좋다.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백시킨 진실만을 드러내주면 된다. 이러한 편지는 말로만 주고받거나 분위기로만 맺어진 사랑과 정을 더욱 깊게 해준다. 여름방학 때 멀리 있는 친구로부터 받는 한 장의 편지, 그 편지의 어느 구석엔가 호박잎 같은 냄새가 나는 것을 읽고 또 읽으면서 모닥불처럼 피어오르는 행복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훈련소에 입영한 아들로부터 배달된 첫 편지를 받아들고 땀이 배어있는 사연을 읽고 또 읽으면서 기뻐 눈물 흘리는 엄마의 마음… 편지 이외의 통신수단이 대중화되지 못했던 시절만 하더라도 우편배달부를 기다리는 마음은 그리움 그 자체였고, 편지를 쓴다는 행위도 즐거움 그 자체였다. 어버이가 자녀를 외지로 떠나보낼 때나 친지들을 만났다 헤어질 때면 ‘편지를 하라’는 정감어린 말이 오갈 정도였지 않은가. 그러나 전화가 대중화되면서 편지는 서서히 빛이 바래기 시작, 푸대접받아 뒷전으로 물러나 앉고 말았다. 더구나 이메일, 스마트폰이 개선장군처럼 등장하면서부터 편지라는 존재는 점점 더 고전으로 묻혀지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모든 사람의 생활 주변에서 사랑과 정을 담은 편지를 주고받는 일이 가뭄에 콩 나는 것과 다름없게 되어버렸다. 요즘 아이들은 편지를 쓰지 않는다. 서울이나 외국에 유학 간 아들에게서 행여 소식이 올까 하고 까치 울음소리를 상서로운 조짐으로 반기던 우리 어머니들의 ‘기다리는 마음’을 아이들은 모른다. 그래서 편지는 아련한 향수다. 그리움이다. 사라져가는 것은 정겹고 아름다운 것뿐이다. 그 사라져간 자리에는 이메일, 스마트폰과 이른바 ‘능률적인 인생’이 버티고 서 있다. 이렇게 해서 편지의 시대는, 문자의 시대는 지나간다. 러브레터의 시대가 가고 그 대신 스마트폰의 벨 소리가, 카카오톡의 요상한 신호음이 귀를 두드린다. 정글의 약자였던 인간은 소셜 애니멀의 지혜로 야생의 위협과 싸우며 문명을 이룩했다. 문명은 SNS(소셜네트워킹서비스)라는 꼭짓점에서 초연결의 정점을 찍었지만, 동시에 우리는 서로를 감각하던 민감한 협응의 촉수를 잃어버렸다. 너무 쉽게 우정을 거래하고, 물건을 사는 ‘소비 네트워크 서비스’라는 동굴 안에서, 우리는 점점 더 무력해졌다. 외로움이 바이러스보다 무서운 세상이다. 외로움의 동굴에서 서로를 구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다정함이다. 강해지려면 다정해져야 한다. 다정해지려면 부드러워져야 한다. 부드러워지기 위해 우리는 더 필사적으로 서로를 ‘감각’해야 한다. 재난 현장에 고립돼도 다가오는 인간의 기척이 우리를 살게 한다. 살며 생각하며 그리움 편지 편지 이외 편지 따위 이메일 스마트폰
2021.12.28. 1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