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한 자들이여 먹고 마셔라’까지는 아니지만 직장인들에게는 최소한 연말 자축의 시간이 필요하다. 올해 가기 전에 얼굴 한번 보자며 우리가 만나는 이유다. 올해 남가주 한인 은행과 기업들 대부분은 예전과 같은 전직원 송년회 모임을 열지 않는다. 국가 경기와 고용이 팬데믹에서 벗어났다고 선언을 했다지만, 소수계 기업들의 심리적 위축과 우려는 여전한 것일까. 한인 은행장들도 연봉이 소폭 오르고, 은행 내 인력 고용도 늘었지만 이번 연말은 조용하게 지나간다는 계획이다. 사실 모여서 흥청망청하며 돈을 낭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송년 모임은 여러 의미를 갖는다. 오히려 직장에서 꼭 필요한 이벤트다. 첫째로 가장 큰 이유를 꼽으라면 바로 ‘회복’이다. 열심히 일해왔음을 확인하며 리커버(recover)하는 것이다. 첨예한 경쟁과 생산 속에서 많은 직원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겨웠다. 물론 적절한 재정적 보상으로 위로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함께 모여 지난 시간을 반추하는 의미는 돈 이상의 것이다. 바빠서 보지 못했던 옆 부서 동료들과의 인사, 평소에 나누지 못했던 속 깊은 이야기는 직장생활에서 매우 값진 것이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다. 이런 가치는 없어지면 금방 무의미하게 느껴지지만 있을 때는 꽤 큰 힘을 발휘한다. 원상복구의 시간이 되는 것이다. 둘째로는 또 달려야 할 내년을 위해서다. 더 많이 뛰고 일해야 하는데 목표를 적은 신년사나 단체 이메일 보다는 리더의 웃는 모습이 훨씬 더 직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한다. 직원들은 리더들도 지난해 알찬 시간이었는지, 내년에는 어떤 각오로 뛸 것인지,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어떤 모습인지 확인하고 싶어한다. 이는 물론 조직이 바라는 내년의 생산력으로 이어질 것이다. 셋째로는 직원들의 가족을 위해서다. 가족 구성원들은 그가 일하고 있는 조직의 성장 수치만큼이나 사무실에서 여유가 있는지, 다른 동료들과 함께 행복한지 보고 싶어 한다. 이는 직원의 근속과 연계될 수 있는 사안이다. 크게 비싸지 않더라도 송년회 후 들고 오는 선물은 때론 그가 조직에서 가진 가치를 대변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송년회는 웃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 요즘은 혹시나 누구에게 상처나 폭력이 될까봐 말도 조심해야 한다고 하지만 진행자를 비싸게 불러서 게임도 하고 장기자랑도 해서 모두 같이 웃어보자. 적어도 기자의 경험에 따르면 웃음에 인색한 리더는 리더십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송년회를 통해 리더들은 직원들에게 돈으로 살 수 없는 웃음과 여유를 선물하라고 적극적으로 권하고 싶다. 수년 전 한 회사의 송년회에 초대받았는데 대표되는 분이 가장 먼저 노래와 춤을 선보이고, 인사말을 통해 가장 먼저 유머를 전달했다. 게임이 시작되자 가장 먼저 지갑을 열었음은 물론이다. 평소에 기억해온 사무적인 모습과 달라서 보기 좋았다. 나중에도 두고두고 칭찬해드렸더니 “내가 망가져야 다 망가져서 신이 난다”는 설명이 돌아왔다. 밀려오는 업무와 스트레스로 많이 웃지 못한 한 해였다면 송년회에서 신나게 웃어보자. 모두 그럴 자격이 있지 않은가. 아쉽다. 은행들과 기업들이 차라리 재정적으로 어려워서 ‘못한다’고 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더 많이 잔치를 벌였으면 좋겠다. 모든 직원이 한자리에 모일 수 없다면 부서별로라도 조그만 파티를 꼭 했으면 좋겠다. 또 하나 부가적이지만 한인타운에서는 올해 연말을 기점으로 폐업을 고민하는 식당 업주들이 적지 않다. 렌트비 부담과 식재료비 상승으로 힘겨운 한인 요식업계에도 힘을 줄 수 있는 연말이 되면 어떨까. 올 한해 수고 많이 한 우리 독자님들에게도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최인성 / 경제부 부국장중앙칼럼 잔치 시간 전직원 송년회 지난 시간 한인 은행장들
2025.12.01. 17:59
매년 새해 첫날 발행되는 본지 경제 섹션에 게재되는 기사 하나가 있다. 한인 은행장들로부터 한 해 경제 전망과 이에 따른 경영 전략을 듣는 내용이다. 은행장들은 전반적인 경제 흐름을 잘 파악하고 있는 것은 물론 한인 실물 경제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첫 신문이었던 1월2일자도 마찬가지였다. 중앙경제 1면에는 남가주 6개 한인 은행 행장들의 전망이 실렸다. 그런데 이들의 공통된 반응은 “어려운 한 해가 될 것 같다”였다. 은행마다 이에 대비하는 해법은 달랐지만, 상황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데는 의견이 일치한 것이다. 전망은 빗나가지 않았다. 한인 은행들은 힘겨운 한 해를 보냈다. 이는 가장 최근 자료인 3분기 실적에서도 잘 드러난다. 6개 한인 은행 가운데 4곳의 순이익이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줄었다. 그런데 문제는 순이익의 감소 폭이다. 한인 은행들의 감소 폭은 커뮤니티 은행 전체의 배가 넘었다. FDIC(연방예금보험공사) 자료에 따르면 3분기 커뮤니티 은행 전체의 순익은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15%가 줄었지만, 6개 은행의 감소 폭은 34%나 됐다. 고속 성장에 익숙한 한인 은행들로서는 충격적인 성적표다. ‘고금리’라는 외부 조건은 동일했지만 한인 은행권이 받은 타격이 더 컸던 것이다. 이는 예상 가능한 외부 충격에 대비가 부족했다는 의미다. 올해 미국의 은행권은 그야말로 살얼음판이었다. 지난 3월 자산 규모 16위의 실리콘밸리뱅크(SVB)가 파산하면서 위기감은 극에 달했다. 더구나 SVB의 파산이 뱅크런 사태 때문으로 알려지면서 은행들은 고객의 불안심리 해소를 위해 무진 애를 썼다. “다음은 어느 은행일까?”라는 전망이 쏟아지면서 당황하기는 고객들도 마찬가지였다. 이후에도 퍼스트리퍼블릭, 시그니처 뱅크 리저널 뱅크 두 곳이 추가로 문을 닫고서야 사태는 진정됐다. 그나마 한인 은행들은 이런 위기 상황을 잘 넘겼다. FDIC자료에 따르면 올해 문을 닫거나 인수합병된 은행은 20여개에 달한다. 한인 은행의 순수익 급감에는 내부 요인도 있다. 오래전부터 시장과 수익 다각화를 내세우고 있지만 뚜렷한 진전이 없고, 올해 수익성이나 경영 효율성 면에서는 경쟁 상대인 중국계 은행들에도 뒤졌다. 이런 상태면 환경 변화에 대한 대응 속도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한인 은행 실적에 주목하는 이유는 한인 경제와의 관계 때문이다. 한인 은행의 주 고객은 한인이다. 따라서 한인 은행의 수익 동향은 한인 경제 상황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은행 수익이 호조를 보이면 한인 경제도 잘 돌아가는 것이고, 반대 경우라면 한인 경제도 어렵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한인 은행권의 순수익 감소 폭이 업계 전체보다 컸다는 것은 한인 경제권이 고금리의 충격을 더 심하게 받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행히 내년부터 금리가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은행 입장에서는 예금 조달 비용은 줄고 대출 수요는 늘어날 것이다. 한인 은행들도 영업 환경이 좋아지는 셈이다. 그러나 기다리고만 있어서는 기회를 활용할 수 없다. 미리 준비하고 있어야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그런 방법의 하나가 고객 밀착 서비스다. 고객과의 친밀한 관계 형성은 한인 금융시장에 눈독을 들이는 대형 은행이나 타 커뮤니티 은행들이 따라올 수 없는 한인 은행만의 경쟁력이다. 이는 한인 은행들이 앞장서 한인 경제권에 활기를 불어넣은 일도 될 것이다. 오늘 한 행장님으로부터 연말 카드를 받았다. 카드 내용 중에 ‘앞서가는 금융인(Bankers), 차별화된 전문가(Expert), 좋은 이웃(Neighbors)’이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내년에는 고객과의 관계를 더 중시하겠다는 메시지로 읽혔다. 내년 첫날 지면에 실릴 은행장님들의 전망에는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담겼으면 좋겠다. 김동필 / 논설실장뉴스 포커스 경쟁력 한인 한인 은행장들 한인 은행권 한인 은행들
2023.12.14. 20:05
중국계 최대 은행인 이스트웨스트의 도미닉 잉 행장은 지난 4월 투자자 컨퍼런스 콜에서 진땀을 흘렸다. 올해 1분기 수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5.7%나 급증했지만 투자자들의 질문 공세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질문은 상업용 부동산 대출과 예금 문제에 집중됐다.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침체인데 재융자 관련 대책이 있느냐?” “예금은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고 보는가?” 등의 내용이 주를 이뤘다. 앞으로의 영업 환경에 대한 우려를 나타낸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한인 상장 은행들도 비슷했다. 한인 은행장들도 1분기 실적 발표 후 가졌던 투자자 컨퍼런스 콜 시간의 대부분을 상업용 부동산 대책과 예금 확보 방안 설명에 할애했다. 투자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였다. 요즘 은행, 특히 한인 은행과 같은 커뮤니티 은행들이 이중고를 겪고 있다. 상업용 부동산 시장 침체와 예금 비용 증가가 원인이다. 특히 상업용 부동산 대출의 재융자 이슈는 발등의 불이 되고 있다. 코로나19팬데믹 이후 공실률이 높아지면서 사무실 빌딩, 상가, 창고 건물의 가치는 하락하는데 재융자 수요는 늘어 은행 입장에서는 큰 부담이다. 한 금융 정보 업체는 앞으로 3년 내 재융자가 필요한 상업용 부동산 대출 규모가 1조50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분석했다. 문제는 이 중 70%가 커뮤니티 은행들의 몫이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재닛 옐런 재무부 장관 조차 “상업용 부동산 시장 침체로 문을 닫는 소형 은행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할 정도다. 지난 3월 실리콘밸리뱅크(SVB) 파산 사태로 촉발된 예금 확보 문제도 진행형이다. 언제 예금 대량인출 사태가 벌어질지 모르니 은행 입장에서는 이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 기관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도 있지만 한계가 있다. 커뮤니티 은행들이 예대마진 축소까지 감수하며 예금 유치 경쟁을 벌이는 이유다.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자료에 따르면 올 1분기 커뮤니티 은행의 평균 예금 이자율은 직전 분기보다 0.39%포인트 올랐지만, 대출 이자는 평균 0.16%포인트 상승에 그쳤다. 이런 예대마진 축소는 은행의 수익 감소로 직결된다. 특히 전체 수익 가운데 이자 수익의 비중이 절대적인 커뮤니티 은행들로서는 힘든 상황이다. 전문가들이 커뮤니티 은행들의 수익 전망을 어둡게 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분위기는 당연히 주가에도 반영되고 있다. SVB 사태 이후 대부분의 은행주가 급락했지만 커뮤니티 은행들의 낙폭이 더 크고 회복도 더딘 실정이다. 상장 한인 은행들의 주가 동향을 보면 SVB 사태로 14달러 선이 무너진 뱅크오브호프는 현재 8달러 선에서 횡보 중이다. 주당 23달러 선이었던 한미는 현재 15달러를 오가고, PCB는 18달러 선에서 14달러 선으로, 오픈뱅크는 11달러 선에서 8달러 선으로 하락했다. 중국계 대표 은행들인 이스트웨스트나 캐세이도 마찬가지다. SVB 사태 직전 72달러 대를 기록했던 이스트웨스트는 현재 52달러 선으로 떨어졌고, 캐세이 역시 42달러에서 31달러 선으로 밀렸다. 일반적으로 기준 금리가 오르면 은행 수익에는 호재다. 대출 금리에는 금리 인상분이 즉시 반영되지만 예금 금리에는 시차를 두고 반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의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은 오히려 커뮤니티 은행들 수익에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게 금융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한인 은행들은 지난해 사상 최대 수익을 올린 바 있다. 남가주 6개 은행의 순익 규모만 4억5000만 달러가 넘었다. 이런 실적이 가능했던 것은 은행들의 노력 결과지만 금융시장 호황 덕도 있었다. 하지만 올해는 상황이 달라졌다. 지금 전국 4000여개의 커뮤니티 은행들은 공통의 과제를 받아들고 나름의 해법을 찾기 위해 고심중이다. 한인 은행 경영진과 이사회의 능력도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김동필 / 논설실장뉴스 포커스 시험대 경영진 기준금리 인상 한인 은행장들 커뮤니티 은행들
2023.07.06. 19: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