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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진료가 어려웠던 환자들

내게 정신과 질병 중에서 가장 다루기 어려운 병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답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알코올 중독이고, 두 번째가 조울증(양극성 질환)이다.   카이저 그룹에서 근무하던 십여 년 전, 멋진 백인 중년 남성이 우울 증상을 호소하며 찾아왔다. 큰 회사의 부사장이라는 그는 매사에 의욕이 없고, 즐기던 골프나 여행에 대한 관심도 사라졌다고 했다. 그는 진료 시간을 잘 지켰고, 옷차림이나 용모도 전혀 허술함이 없었다.     그는 항우울제 복용을 시작하면서 수면 장애,식욕 부진 등의 증상은 많이 호전되었지만 그 이상의 진전은 없었다. 그래서 다음 진료 시간에는 부인과 같이 올 것을 부탁했다.     놀랍게도 그의 아내는 환자의 음주 문제를 들려주었다. 주 중에는 전혀 마시지 않지만 주말만 되면 폭음을 한다는 것이었다. 환자 자신도 음주 문제를 부인하지 않았다.   바로 옆 사무실의 ‘물질 의존 및 재활 치료 프로그램(Chemical Dependency and Rehabilitation Program; C.D.R.P.)’에 전화해 치료를 부탁했다. 술을 끊지 않는다면 정신과 치료도 구멍 난 독에 물 붓기처럼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알코올은 중추 신경의 진정제(downer)이다. 처음 한 두 잔 마실 때는 자신을 조이고 있던 여러 압박으로부터의 해방감을 느낄 수 있지만 계속 마시면 몸과 마음에 심한 손상을 불러온다.   인간의 두뇌에는 오래전부터 ‘보상체계(Reward System)’라는 특별 회로가 존재한다. 이 회로는 숨골 근처에서 시작되어 변연계(감정뇌)와 대뇌 피질까지를 아우른다. 과거 동굴에 살던 원시인들은 먹음직한 음식을 발견하거나 자손을 퍼뜨리는 데 적합한 이성을 보면 관련 신경 세포에서 도파민이 분출됐다. 기분이 황홀해지고 기운이 넘치며,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런데 현대인이 술 등의 물질에 중독이 되면, 이 물질들만이 보상체계를 활발하게 만든다. 음식이나 이성은 더는 흥분의 조건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술집 앞에만 가도 심장이 뛰고, 술병 그림만 봐도 도파민 분비가 높아진다. 술 등 물질 중독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이유다.   앞에서 예를 든 환자와 같은 경우를 ‘이중 진단(dual diagnosis)’ 상태라 하며,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다루는 것이 최선의 치료법이다. 정신과 진료실과 같은 건물에 ‘물질 사용 장애 재활 치료 프로그램’이 있는 이유다.     조울증은 진단과 치료가 모두 어려운 정신과 질병이다. 오진 확률이 높은 심각한 우울병이기도 하다. 경조증(hypomania) 증상이 나타나는 기간은 나흘 정도고, 조증(mania)이면 강제 입원 되는 경우가 많아 일주일 정도에 그친다. 그러나 이 짧은 기간에 기분이 좋아지고, 수면은 3시간으로도 충분하다. 그런데 하지 말아야 할 행동들을 하는 것이 문제다.   갑자기 백화점에서 수천 달러짜리 가방을 구매하거나 일주일마다 사업을 바꿔 부모님의 노후 자금을 모두 탕진한 환자도 있었다. 이 외에 도박, 위험한 성관계 등 충동적이고 과대망상에 의거한 행동을 하기 때문에 이런 증상이 나타나면 강제 입원이 필요하다. ‘위험한 환자’들을 대하는 탓에 이들을 수용하는 병원에 대한 자격 심사도 매우 까다롭다. 병원에서는 환자를 ‘보호 관찰’하며, 진단에 알맞은 치료를 통해 환자 자신이 병에 대한 ‘인식(insight)’을 갖게 한다. 과거 한국 방문 중에 만났던 조울병 환자의 가족들은 이를 ‘병식’이라 불렀다. ‘병에 대한 인식’을 줄여 사용하는 듯했다. 이런 인식을 갖게 된 환자는 정서 안정제나 항정신제 등 처방약을 잘 복용하며 운동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의사와의 약속 시간도 잘 지킨다. 하지만 한인 부모들 가운데는 자녀가 공격적 행동의 조절 기능을 잃은 상태임에도 강제  입윈을 망설이다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조울증 환자는 세 가지 힘든 감정을 극복해야 한다. 우울함과 극심한 불안, 그리고 분노의 감정이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을 구하기 위해(?) 술이나 마리화나 등을 찾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다른 질병, 즉 물질 사용 장애나 알코올 중독에 빠지게 된다.     미국 부모들이 자주 쓰는 말 가운데 ‘Tough Love’라는 것이 있다. 아마 ‘사랑의 매’쯤의 의미일 것이다. 자녀가 원하지 않더라도 강제 치료나 입원을 시킬 수 있는 냉정한 마음가짐만이 자녀를 행복의 길로 인도할 수 있다.     조울증은 두뇌라는 장기의 화학 물질 불균형 때문에 오는 몸의 병이다. 그래서 몸과 마음과 환경을 바꿀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마치 당뇨병과도 비슷한 것이다. 당뇨병 환자가 인슐린 주사나 약 복용을 거부하면, 그대로 놓아둘 수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수잔 정 / 소아정신과 전문의오픈 업 진료 환자 환자 자신 정신과 치료 진료 시간

2026.05.03.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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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의사 조력 자살’ 입법 타당한가

초겨울은 입원실 병동에서 잠깐 만나고 세상을 떠난 환자들을 생각하게 한다. 이곳 LA는 아열대성 날씨라 뼛속까지 시린 한국의 겨울 날씨가 주는 아름다움은 없다. 그래도 나름대로 LA만이 줄 수 있는 특수함이 있다. 어떤 길에는 한국 못지않게, 꺽다리 가로수가 색색으로 물든 이파리를 내리고 있다. 나무는 낙엽과 작별하지만, 봄이 되면 다시 새 생명을 세상으로 내어 보낸다. 나의 환자들은 환생하였을까.     의과대학을 갓 졸업하고, 타교에 가서 인턴을 했다. 권력과 부(富)의 배경이 없던 나에게, 외과 교수님께서 모교보다 큰 의과대학 부속병원을 추천해 주셨다. 인턴들은 상급 레지던트 밑에서 배당 병동의 환자에 대한 모든 사항을 점검하고, 그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 환자들이 급히 피검사나 엑스레이 촬영이 필요하면, 제일 하급자인 인턴이 심부름꾼이 되어 랩(lab)과 영상의학과에 달려가기도 하고, 결과가 빨리 나오도록 약간의 귀여운 뇌물도 주어야 했던 때였다.     어느 날 회진 준비를 하고 있던 나에게, 선배 레지던트는 간호사 스테이션 옆에 있는 병실 입원 환자에게는 신경을 쓰지 말라고 일렀다. 그리고 “그 환자는 곧 운명할 거에요”라고 말했다. 죽음을 못 본 것도 아닌데, 왜 그런 명령 아니면 배려를 해 준 것인지 의아했다. 그 환자는 20대 초반의 젊은 청년이었고, 병실을 지키던 그의 형은 20대 중반의 당시 내 나이 또래였다. 얼마 안 있어, 그 환자는 숨졌다.     간호사 스테이션을 떠나지 못하고 있던 나를 붙들고 형은 절규했다. “세상이 왜 이리도 불공평합니까.” 임종이 가까웠던 그 젊은 환자는 증상 완화 조치가 필요했을 터인데, 그 당시 의학계에는 종말 치료나 완화치료에 대한 행정적 방침이 없었다.     불치병 환자들을 위한 ‘의사 조력자살(PAS: physician assisted suicide)’법은 1942년 스위스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그 후 유럽, 미국, 캐나다, 호주 등에서 허용하고 있다. 한국도 지금 입법화를 추진하고 있다. PAS 는 허락해도 ‘안락사’는 허용하지 않는 나라도 있다. ‘안락사’는 의사가 직접 치사제를 투약하는 것이고, ‘의사 조력자살’은 의사의 처방을 받아 환자 자신이 약을 먹어 임종을 앞당기는 것을 뜻한다.     불치병은 말기 종양 이외에 완치할 수 없는 질환을 통틀어 칭한다. 정신질환, 후천성면역결핍증 등과 특정 종류의 선천성 불구 같은 것이 이에 속한다. 불치병이 환자를 금방 죽이는 것은 아니다. 불치병을 갖고 오래 사는 경우도 허다하다.     인위적 죽음이 가능한 나라에서도, 이러한 방법을 택해 죽는 권리(?)를 행하게 될 때까지 여러 절차를 거치도록 한다. 혹시 의료진의 잘못된 진단과 부족한 치료가 있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고, 시스템을 부적절하게 악용하는 예도 배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어린이를 포함한 취약층 환자들에게는 신경을 더 써야 한다. 네덜란드와 벨기에에서는 한 살 미만의 유아와 어린이까지 조력 사망을 허락한다. 운전면허를 18세가 되어서야 받을 수 있는 나라에서 12살에 죽음을 선택하게 한다는 것은 이론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국제적으로 많은 비난을 받고 있다.     극단적인 결정을 내리기 전에 환자와 가족들은 충분한 상담을 받는 것이 옳다. 극단적인 선택을 미루거나,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극심한 고통이 있다면, 투약으로 또는 신경 마취 방법 등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평소에 생명의 중요함과 건전한 윤리관을 가정에서부터 조성해 나가면 가정이라는 공동체가 모여 이루는 사회도 변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속수무책으로 젊었던 때 보았던 그 청년 환자가 다시 돌아와 아프다면, 이젠 충분한 리소스를 알려주고, 그중에서 가정방문 호스피스 서비스와 전문 상담 서비스를 추천해 줄 것이다. 그가 편안히, 아파하지 않고, 자신이 자랐던 집에서, 그리고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편안히 삶을 마감할 수 있게 말이다. 류 모니카 / 종양방사선 전문의·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오픈 업 의사 조력 의사 조력자살 불치병 환자들 환자 자신

2022.12.04.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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