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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의사 조력 자살’ 입법 타당한가

Los Angeles

2022.12.04 13:49 2022.12.04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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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겨울은 입원실 병동에서 잠깐 만나고 세상을 떠난 환자들을 생각하게 한다. 이곳 LA는 아열대성 날씨라 뼛속까지 시린 한국의 겨울 날씨가 주는 아름다움은 없다. 그래도 나름대로 LA만이 줄 수 있는 특수함이 있다. 어떤 길에는 한국 못지않게, 꺽다리 가로수가 색색으로 물든 이파리를 내리고 있다. 나무는 낙엽과 작별하지만, 봄이 되면 다시 새 생명을 세상으로 내어 보낸다. 나의 환자들은 환생하였을까.  
 
의과대학을 갓 졸업하고, 타교에 가서 인턴을 했다. 권력과 부(富)의 배경이 없던 나에게, 외과 교수님께서 모교보다 큰 의과대학 부속병원을 추천해 주셨다. 인턴들은 상급 레지던트 밑에서 배당 병동의 환자에 대한 모든 사항을 점검하고, 그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 환자들이 급히 피검사나 엑스레이 촬영이 필요하면, 제일 하급자인 인턴이 심부름꾼이 되어 랩(lab)과 영상의학과에 달려가기도 하고, 결과가 빨리 나오도록 약간의 귀여운 뇌물도 주어야 했던 때였다.  
 
어느 날 회진 준비를 하고 있던 나에게, 선배 레지던트는 간호사 스테이션 옆에 있는 병실 입원 환자에게는 신경을 쓰지 말라고 일렀다. 그리고 “그 환자는 곧 운명할 거에요”라고 말했다. 죽음을 못 본 것도 아닌데, 왜 그런 명령 아니면 배려를 해 준 것인지 의아했다. 그 환자는 20대 초반의 젊은 청년이었고, 병실을 지키던 그의 형은 20대 중반의 당시 내 나이 또래였다. 얼마 안 있어, 그 환자는 숨졌다.  
 
간호사 스테이션을 떠나지 못하고 있던 나를 붙들고 형은 절규했다. “세상이 왜 이리도 불공평합니까.” 임종이 가까웠던 그 젊은 환자는 증상 완화 조치가 필요했을 터인데, 그 당시 의학계에는 종말 치료나 완화치료에 대한 행정적 방침이 없었다.  
 
불치병 환자들을 위한 ‘의사 조력자살(PAS: physician assisted suicide)’법은 1942년 스위스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그 후 유럽, 미국, 캐나다, 호주 등에서 허용하고 있다. 한국도 지금 입법화를 추진하고 있다. PAS 는 허락해도 ‘안락사’는 허용하지 않는 나라도 있다. ‘안락사’는 의사가 직접 치사제를 투약하는 것이고, ‘의사 조력자살’은 의사의 처방을 받아 환자 자신이 약을 먹어 임종을 앞당기는 것을 뜻한다.  
 
불치병은 말기 종양 이외에 완치할 수 없는 질환을 통틀어 칭한다. 정신질환, 후천성면역결핍증 등과 특정 종류의 선천성 불구 같은 것이 이에 속한다. 불치병이 환자를 금방 죽이는 것은 아니다. 불치병을 갖고 오래 사는 경우도 허다하다.  
 
인위적 죽음이 가능한 나라에서도, 이러한 방법을 택해 죽는 권리(?)를 행하게 될 때까지 여러 절차를 거치도록 한다. 혹시 의료진의 잘못된 진단과 부족한 치료가 있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고, 시스템을 부적절하게 악용하는 예도 배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어린이를 포함한 취약층 환자들에게는 신경을 더 써야 한다. 네덜란드와 벨기에에서는 한 살 미만의 유아와 어린이까지 조력 사망을 허락한다. 운전면허를 18세가 되어서야 받을 수 있는 나라에서 12살에 죽음을 선택하게 한다는 것은 이론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국제적으로 많은 비난을 받고 있다.  
 
극단적인 결정을 내리기 전에 환자와 가족들은 충분한 상담을 받는 것이 옳다. 극단적인 선택을 미루거나,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극심한 고통이 있다면, 투약으로 또는 신경 마취 방법 등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평소에 생명의 중요함과 건전한 윤리관을 가정에서부터 조성해 나가면 가정이라는 공동체가 모여 이루는 사회도 변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속수무책으로 젊었던 때 보았던 그 청년 환자가 다시 돌아와 아프다면, 이젠 충분한 리소스를 알려주고, 그중에서 가정방문 호스피스 서비스와 전문 상담 서비스를 추천해 줄 것이다. 그가 편안히, 아파하지 않고, 자신이 자랐던 집에서, 그리고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편안히 삶을 마감할 수 있게 말이다.

류 모니카 / 종양방사선 전문의·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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