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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4·29…기념행사 하나 없다

1992년의 오늘, LA는 폭풍 전야였다. 누적된 갈등과 분노는 결국 다음 날인 4월 29일, 광기로 변해 삽시간에 한인타운을 집어삼켰다.   ‘4·29’가 잊히고 있다. LA 폭동 33주년을 앞두고 잠잠한 분위기가 이를 방증한다.   매년 이맘때면 4·29의 의미를 기리는 행사가 한인 사회 및 LA 곳곳에서 진행됐지만, 올해는 소규모 모임조차 찾아볼 수가 없다.   우선 LA시는 올해 간단한 성명 몇 줄만 발표할 예정이다. 캐런 배스 LA 시장은 지난해에도 별도 행사 없이 간단한 성명만 발표했었다.   김지은 LA 시장실 공보 보좌관은 “행사를 개최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확인이 필요하지만, 산불 재건 등 바쁜 시정 일정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LA 한인회(회장 로버트 안)도 일부 지역 정치인들과 함께 발표하는 성명 외에는 별다른 프로그램을 마련하지 않았다.   제프 이 한인회 사무국장은 “산불과 한국 조기 대선 준비 등으로 일정이 많았다”며 “흑인 커뮤니티와 공동 기념행사를 추진하려 했지만, 단체들 사정상 무산된 것도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한인타운 청소년회관(KYCC)을 비롯한 대부분의 한인 단체들에서도 올해 4·29 관련 행사는 전무하다. 정치인들을 비롯해 한때 저마다 단체명을 내세우며 LA 폭동이 담아내고 있던 의미를 선점하려 했던 모습과는 사뭇 달라진 분위기다.   4·29 이후 정기적으로 흑인 교계와 예배, 세미나 등을 통해 교류하던 한인 교계도 이제는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   미주성시화운동본부 송정명 목사는 “LA 한인 폭동을 경험했던 1세대 목회자들이 이제 세상을 많이 떠났고, 한인 교계도 세대가 변했다”며 “아무래도 젊은 목회자들은 4·29와 같은 역사에 관심이 덜하다 보니 자연스레 흑인 교계와 갖던 교류도 이제는 아예 없어지고, 그 의미도 희석됐다”고 말했다.   4·29의 역사와 의미 등을 다음 세대에게 전달하려는 의지도 과거에 비하면 많이 약해졌다. 역사 교육의 구심점 역할을 할 만한 단체도 없다 보니 간간이 이벤트성 프로그램만 진행되는 실정이다.   한인 2세들의 봉사 단체인 화랑청소년재단(총재 박윤숙)은 오는 6월 진행되는 리더십 프로그램에서 LA 한인 폭동 이야기를 한 부분으로 다룰 예정이다.   박윤숙 총재는 “매년 4·29 시즌이 되면 관련 행사들을 진행했는데, 올해는 일정상 어렵게 됐다”며 “다른 단체들도 아마 상황이 마찬가지겠지만, 4·29가 점점 사람들의 관심 밖의 이슈가 되고 있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은 있다”고 전했다.   LA 폭동이 발생한 지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났고, 그때를 경험했던 세대는 저물고 있다.   4·29 LA 기념재단도 한때 명맥을 유지하다 지금은 없어졌다.   이 재단에서 활동했던 제니 이(70대) 씨는 “당시 피해를 입었던 한인들은 이제 대부분 시니어가 되어 거동이 불편하거나 병원 신세를 지는 경우도 많다”며 “한인 사회가 4·29의 아픈 역사를 잊고, 그 시대를 지나온 이들이 외면당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경준 기자행사 흔적 한인 사회 한인회 사무국장 공동 기념행사

2025.04.27.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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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당] 훈이라는 흔적

바람처럼 빠져버린 그 지퍼 속 찬 언어는     통곡이지만 가을의 연적은 아니었네       피는 잎도 지는 꽃도 열매가 아니듯   잎도 꽃도 아닌 삶의 의미만 뒤적이다가 사계를 만났는가     오계를 당겼는가 부산한 세월만 나의 젊은 계절이었네         너에겐 익숙하지 않은 신기한 계절 하나가 있을 뿐이었는데   살아가는 일이 극히 어려운 일이라고   아이는 책장에 눈물 쏟고 어미는 종아리에 푸른 줄 긋고   산새가 숨어서 울더냐 꽉 찬 하늘에 들판이 없더냐     물처럼 흘러가면 되는 것을   무거운 충족의 조건을 너무 일찍 배워버린 탓에     너의 입술은 없고 잔인하도록 끌어올린 끈기의 수액만이     눈부신 오늘을 숨 쉰다       기억의 자리에도 채찍이 서리는데     뛰는 맥박과 맞는 맷집에 우주는 있었을까     뜻 모를 주문만 외워준다고 그것이 훈육이었고 사랑이었을까     훈이라는 흔적 아래 어린 소매 끝은 해묵이요   어미의 부끄러움은 우주를 보는 날개 끝이라   매찬 어미는 지금 울고 너는 벌써 울었다       이 고백의 아픔에는 이름도 없어   겨울 내린 잎맥 하나 화려하지도 무성하지도 않아   가지 끝 바람에 그늘 없는 양지도 차다 손정아 / 시인·롱아일랜드글마당 흔적 흔적 아래 날개 끝이라 계절 하나

2024.02.16. 19:16

[글마당] 숨어있는 흔적

지난해   겨울에도 봄에도 왔다   올 때마다 밤을 넘는   기억의 흔적 속에       실눈 같은   초승달과 비너스의 만남이   검은 거울 속에담긴 채   깊은 잠을 잔다       수만번 지나온   흔적도 없는 하얀 물길   낮을 삼킨 어둠 속 깊은 곳에   아무렇게나 모른 척아는 척   춤추는 대서양의 자손들   바람잡이 황금 줄에 메었다       피곤한 하루 세상의 것   흔적을 지우며   밀물과 썰물의 틈새에 얽힌   바다의 길손들   숨어 있는 흔적   수평선을 흔들어 깨운다 오광운 / 시인·롱아일랜드글마당 흔적 바람잡이 황금

2023.06.23. 18:09

[이 아침에] 흔적 지우고 별이 되기를

자식이 제일 무섭다. 4월 초부터 봄방학이라서 뉴저지 사는 딸네가 어린 손주 둘 데리고 온다는 문자가 왔다. 한 달 전부터 큰 손님 맞는 것처럼 부산을 떤다. 달력에 도착하는 날과 떠나는 날짜에 동그라미 쳐놓고 쓸고 닦고 버리고 치우고 집 안팎 정리하느라 난리다. 혹시라도 나이 들어 찌질하게 사는 모습으로 비쳐 맘 상해 할까 봐 건강한 척, 잘 사는 척, 아무 걱정 없는 척, 표정관리도 한다. 애들이 어린 탓에 반나절이면 온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건대 나 홀로 깔끔 떨며 왜 정리정돈 하는지 정말 모르겠다. 둥지 떠난 자식은 남이다. 안 보면 그립고 왔다가 떠나갈 때 더 고마운 손님이다.   눈 뜨면 나는 집안 곳곳을 정리정돈 한다. 주변이 흐트러지면 머릿속 생각이 갈피를 잡지 못해 하루가 뒤죽박죽된다. 당일 일정에 맞는 옷을 골라 정성 들여 단장한다. 오랫동안 화랑을 경영하며 언제 어디서 누굴 만나도 주눅 들지 않는 복장을 하는 게 버릇이 됐다. 십 분이면 출동할 준비가 돼 있다. 내가 누구라고 잘난 척 하며 떠벌리는 것보다 보이는 대로 보여 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감동과 찬사는 공짜가 아니라 준비와 노력의 결실이다.       사실은 사업이나 남의 눈 때문에 부산을 떠는 것은 아니다. 거울 속 비치는 내 모습이 허술하고 흐트러지면 자신감이 없어지고 자긍심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자부심은 다른 사람이 긍정적으로 여기거나 칭찬할 때 당당하며 뿌듯한 마음을 가질 때 생긴다. 자부심은 타인으로부터 온다. 자긍심은 본인의 선택과 행동에 대한 보람이나 행복한 감정일 때 생긴다. 자긍심의 출발은 자신이다. 스스로 자신의 가치나 능력을 믿지 못하면 아무도 나를 인정하지 않는다.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다. 자식은 거울 속 부모를 보고 자란다. 이제 거울 속 내 모습을 바라볼 시간이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수다 떨고 동정을 바라기보다 당당하고 멋진, 진솔한 모습으로 거울 앞에 설 시간이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은 연민과 동정이다. 자식들이 슬퍼하는 일이다. 주름진 얼굴과, 사그라져가는 동력과 굳어져 가는 사고의 밑바닥을 지켜보며 슬픔에 젖은 아이들의 눈동자를 바라보게 될 내일이 두렵다.     부모님이 돌아가셨는데 가구와 그림, 소장품들을 어떻게 처분하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소더비나 크리스티 경매에 판매될 작품이 아니면 정리하느라 큰 고생을 한다. 연극은 막이 내리면 다음 극을 준비하지만, 인생은 단 한 번의 공연으로 끝난다. 소품은 정리되고 흔적은 지워진다.     나이 탓인지 좋은 일보다 아픈 소식을 자주 듣는다. 고교 동창은 저녁 잘 먹고 와인 한잔 마시다가 그냥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갔다. 두 해 넘게 의식 불명으로 요양병원에 있다가 다행히 휠체어 타고 다니며 말할 수 있게 됐다. 친구의 시계는 2년을 멈추었다 다시 충전됐다. 인생의 시계는 때가 되면 멈춘다.   나는 매일 떠나는 연습을 한다. 참하고 우아하게 죽는 연습을 한다. 자식들 어깨에 무거운 짐짝 남겨 주지 않으려고 매일 깔끔하고 단정하게 정리하며 산다.  벌써부터 나이 타령하며, 힘없다고 지금 안 하면 나중에는 정말 더 힘들어 못 하는 때가 온다. 흔적은 적게 남기고, 때 묻은 흔적은 지우고, 자식들이 살아갈 새로운 세상에 슬픔 대신 빛나는 새벽 별이나 작은 점으로 남아있기를.   이기희 / Q7 Editions 대표·작가이 아침에 흔적 지우 자식들 어깨 크리스티 경매 머릿속 생각

2023.04.02.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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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흔적 지우고 별이 되기를

자식이 제일 무섭다. 4월 초부터 봄방학이라서 뉴저지 사는 딸네가 어린 손주 둘 데리고 온다는 문자가 왔다. 한달 전부터 큰 손님 맞는 것처럼 부산을 떤다. 달력에 도착하는 날과 떠나는 날짜에 동그라미 쳐놓고 쓸고 닦고 버리고 치우고 집안팍 정리하느라 난리방구통이다. 혹시라도 나이 들어 찌질하게 사는 모습으로 비쳐 맘 상해 할까 봐 건강한 척, 잘 사는 척, 아무 걱정 없는 척, 표정관리도 한다.  애들이 어린 탓에 반나절이면 온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건 데 나홀로 깔끔 떨며 왜 정리정돈 하는지 정말 모르겠다. 둥지 떠난 자식은 남이다. 안 보면 그립고 왔다가 떠나갈 때 더 고마운 손님이다.   눈 뜨면 나는 집안 곳곳을 정리정돈 한다. 주변이 흐트러지면 머리 속 생각이 갈피를 잡지 못해 하루가 뒤죽박죽 된다. 당일 일정에 맞는 옷을 골라 정성 들여 단장한다. 오랜 동안 화랑을 경영하며 언제 어디서 누굴 만나도 주눅들지 않는 복장을 하는 게 버릇이 됐다. 10분이면 언제든지 어디든지 출동할 준비가 돼 있다. 내가 누구라고 잘난 척 하며 떠벌리는 것보다 보이는 대로 보여 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감동과 찬사는 공짜가 아니라 준비와 노력의 결실이다.   사실은 사업이나 남의 눈 때문에 부산을 떠는 것은 아니다. 거울 속 비치는 내 모습이 허술하고 흐트러지면 자신감이 없어지고 자긍심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자부심은 다른 사람이 긍정적으로 여기거나 칭찬할 때 당당하며 뿌듯한 마음을 가질 때 생긴다. 자부심은 타인으로부터 온다. 자긍심은 본인의 선택과 행동에 대한 보람이나 행복한 감정일 때 생긴다. 자긍심의 출발은 자신이다. 스스로 자신의 가치나 능력을 믿지 못하면 아무도 나를 인정하지 않는다.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다. 자식은 거울 속 부모를 보고 자란다. 이제 거울 속 내 모습을 바라볼 시간이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수다 떨고 동정을 바라기 보다 당당하고 멋진, 진솔한 모습으로 거울 앞에 설 시간이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은 연민과 동정이다. 자식들이 슬퍼하는 일이다. 주름진 얼굴과, 사그러져가는 동력과, 굳어져 가는 사고의 밑바닥을 지켜보며 슬픔에 젖은 아이들의 눈동자를 바라보게 될 내일이 두렵다.     화랑을 경영하는 동안 부모님이 돌아가셨는데 가구와 그림, 소장품들을 어떻게 처분하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소더비나 크리스티 경매에 판매 될 작픔이 아니면 정리하느라 큰 고생을 한다. 연극은 막이 내리면 다음 극을 준비하지만 인생은 단 한번의 공연으로 끝난다. 소품은 정리되고 흔적은 지워진다.   나이 탓인지 좋은 일보다 아픈 소식을 자주 듣는다. 고교 동창은 저녁 잘 먹고 와인 한잔 마시다가 그냥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갔다. 두 해 넘게 의식 불명으로 요양병원에 있다가 다행히 휠체어 타고 다니며 말할 수 있게 됐다. 친구의 시계는 2년을 멈추었다 다시 충전됐다. 인생의 시계는 때가 되면 멈춘다.   나는 매일 떠나는 연습을 한다. 참하고 우아하게 죽는 연습을 한다. 자식들 어깨에 무거운 짐짝 남겨 주지 않으려고 매일 깔끔하고 단정하게 정리하며 산다.     벌써부터 나이 타령하며, 힘 없다고 지금 안 하면 나중에는 정말 더 힘들어 못하는 때가 온다. 흔적은 적게 남기고, 때묻은 흔적은 지우고, 자식들이 살아갈 새로운 세상에 슬픔 대신 빛나는 새벽 별이나 작은 점으로 남아있기를.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흔적 지우 자식들 어깨 크리스티 경매 editions 대표

2023.03.28.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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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불 아래서] 닳아버린 흔적이 있는가

오래전이지만 미국에 와서 가장 놀랐던 일 중 하나는 넓은 주차장을 가득 메운 차였고 그중에 같아 보이는 차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전 세계에서 만든 차들이 경합을 벌이는 곳이니 당연했지만, 그때만 해도 거의 같은 모양에 색깔까지 비슷했던 차에 익숙했던 사람에게는 꽤 낯설고 놀라운 일이었다.   그런데 최근에 다시 놀란 일도 주차장에서 생겼다. 여전히 개성 만점의 차들이 빈틈없이 주차해 있었고 엉뚱하게 타이어가 눈에 들어왔는데 모든 타이어가 똑같은 검정이었다. 그렇게나 자신을 표현하기 좋아하는 시대에 빨강이나 노란 타이어가 없었다. 갑자기 낯설었고 그래서 놀랐다.   위에 얹혀가는 자동차는 모두 달라도, 길과 직접 부딪히는 타이어는 눈에 안 띄는 같은 색이다. 그렇게 보니 마치 세상이 다 변해도, 묵묵히 변하지 않고 험한 길과 싸워주는 반가운 사람을 만난 기분이었다.   개성이 없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알고 보니 자기 자리를 지키려고 검은색이다. 타이어는 고무로 되어있지만, 그 강도를 높이고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 탄소 가루인 ‘Carbon Black’과 합성해야 하고 그래서 검은색이 되었기 때문이다. 너도나도 잘난 화려한 세상 속에서 차와 그 안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길을 간 것이 아닌가.   그 평생이 닳아 없어지는 것을 봐도 그렇다. 사실 타이어는 옛날 수레바퀴처럼 나무 살과 바퀴를 링으로 묶어준다는 의미에서 나온 단어이다. 영어로 하자면 ‘tie’ 죽 묶는다는 말에서 온 것이다. 그러나 타이어의 험난한 일생을 알아주는 사람들은 여러 일화를 만들어 냈다. 그중 많이 알려진 것이 자동차에서 가장 피곤한(tired) 곳이기에 타이어라고 불렀다는 이야기이다. 사실 엔진이 제일 피곤하긴 하지만, 험한 길과 매일 부닥치며 살아가니 꽤 그럴듯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게다가 그런 험한 길과 끊임없이 갈등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그래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타이어다. 아마도 그에게 남는 것은 닳아버린 상처 자국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엔진에 연결돼 있는 한 나아갔다. 마치 신자가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기에 고난 중에도 나아갈 수 있듯이 말이다. 비록 울더라도 나아간다. 예수님의 흔적이 남는 진리의 길이기 때문이다.   타이어를 보면서 참된 신자를 찾는 것이 안타깝지만 “믿는 자를 보겠느냐”는 주님의 말씀이 마음에 걸리는 것도 사실이다. 타이어는 닳아도 검은색이다. 고집스럽지만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그러나 앞으로 나아가는 신자가 그리운 것이다.   [email protected] 한성윤 / 목사·나성남포교회등불 아래서 흔적 사실 타이어 옛날 수레바퀴 carbon black

2022.05.09.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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