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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WBC 대표팀 "이번엔 우승"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나설 미국야구대표팀이 최정예 라인업을 구축한다. 그동안 메이저리그 정규시즌 개막을 앞둔 부담 탓에 대표팀 차출을 망설였던 현역 빅리거들이 차례로 참가 의사를 밝혔다. 이들은 야구 종주국의 명예회복과 동시에 WBC 첫 우승을 향한 의지를 내비추고 있다. 미국은 앞선 세 차례 WBC대회에서 단 한 번도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다. 2006년과 2009년 열린 1, 2회 대회 우승팀은 일본이었다. 2013년 열린 3회 대회 때는 도미니카공화국이 우승컵을 가져갔다. 미국의 WBC 역대 최고 성적은 2009년 거둔 4위다. 충분히 자존심이 상할 만하다. 미국 대표팀은 지휘봉을 잡은 짐 리랜드(71) 감독을 중심으로 역대급 야구드림팀을 꿈꾸고 있다. 지난 대회에서 쓴맛을 봤던 아담 존스(볼티모어 오리올스)는 이달 초 일찌감치 WBC 참가 의사를 밝혔다. 올 시즌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을 차지한 맥스 슈어저(워싱턴 내셔널스)를 비롯해 '2년 연속 홈런왕' 놀란 아레나도(콜로라도 로키스), '베테랑 포수' 조나단 루크로이(텍사스 레인저스), 특급 투수 크리스 아처(탬파베이 레이스) 등이 WBC 참가 의사를 밝혔다. 2013년 대회에 불참했던 클레이튼 커쇼(LA 다저스)도 대표팀 합류를 희망하고 있다. 다만 올해 좋지 못했던 그의 몸 상태와 소속팀의 승인 여부가 관건이다.

2016.11.24. 22:43

[포토] '세기의 복싱 대결' 한인 팬들 운집

지난 2일 벌어진 메이웨더와 파퀴아오의 웰터급 통합 타이들 매치 경기는 '세기의 복싱 대결'로 관심을 모았다. 이날 경기를 TV로 중계한 LA한인타운 웨스턴가의 한 스포츠바에는 경기 시작 몇 시간 전부터 한인팬들로 북적였다. 하지만 경기를 지켜 본 대부분의 한인팬들은 "세기의 대결이란 말이 무색했다"며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복싱 경기가 시작되자 한인들이 환호를 하고 있다. 김상진 기자

2015.05.03. 21:57

'세기의 대결'이 '세기의 졸전'으로…뒷걸음만 치다가 1600억원 챙겼다

메이웨더'세기의 대결'은 싱겁게 끝났다.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38·미국)가 필리핀의 국민 영웅 매니 파퀴아오(37)를 이겼다. 하지만 전 세계 복싱 팬들이 기대했던 화끈한 난타전은 없었다. 졸전이었다. 메이웨더는 지난 2일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MGM 그랜드 가든 아레나에서 열린 세계복싱협회(WBA)·세계권투평의회(WBC)·세계복싱기구(WBO)의 웰터급(66.68㎏ 이하) 통합 타이틀전에서 심판 전원일치(3-0) 판정승을 거뒀다. 세 명의 부심 중 두 명이 116-112, 한 명이 118-110으로 메이웨더의 손을 들었다. 메이웨더는 48전 전승(26KO) 무패 행진을 이어갔고, 파퀴아오는 57승(38KO) 2무 6패가 됐다. 아웃복서인 메이웨더는 예상대로 수비에 치중했다. 긴 리치(1m83㎝)를 활용해 거리를 벌리면서 장기인 잽을 마음껏 날렸다. 민첩성과 유연성을 앞세운 방어가 돋보였다. 파퀴아오는 메이웨더를 여러 차례 코너로 몰아넣었지만 결정타를 꽂지 못했다. 파퀴아오가 접근전을 펼치면 메이웨더는 영악하게 클린치를 한 뒤 상대 머리를 감쌌다. 파퀴아오의 신경을 건드리는 전략이었다. 메이웨더는 소나기 펀치를 커버링으로 막아낸 뒤 상대를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후반으로 갈수록 메이웨더가 의도한 대로 경기가 진행됐다. 메이웨더의 승리가 발표되자 현장의 많은 팬들은 야유를 보냈다. 뒷걸음만 치던 메이웨더의 승리를 인정하지 않았다. 12라운드가 끝난 뒤 양팔을 들어 승리를 예감했던 파퀴아오는 "내가 이겼다고 생각했다. 내가 더 많은 주먹을 상대에게 날렸다"고 말했다. 통계회사 '컴퓨복스'의 자료에 따르면 메이웨더는 이날 435번의 주먹을 뻗어 148회(34%) 적중시켰다. 파퀴아오는 429개의 펀치를 날려 81개(19%)를 맞혔다. 잽을 제외한 '파워 펀치' 수에서도 메이웨더가 앞섰다. 파퀴아오는 236개 중 68개(27%), 메이웨더는 168개 중 81개(48%)였다. 기록으로 보면 메이웨더가 분명 우세했다. 메이웨더는 "내가 더 계산적인 경기를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기 내용에서 메이웨더는 결코 승자가 되지 못했다. 그는 득점에 성공한 뒤 철저하게 도망치는 경기 운영을 했다. 파퀴아오의 펀치력을 의식한 것이다. KO보다는 득점을 위한 전략을 짰고, 기계적으로 움직였다. 메이웨더는 얼굴에 상처 하나 입지 않고 대전료 1억5000만 달러(추정·약 1600억원)를 받았다. 파퀴아오도 메이웨더의 반격을 의식해 특유의 저돌적인 공격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파퀴아오는 "3~4주 전 오른쪽 어깨를 다쳤다. 3라운드부터 어깨가 아파 내가 원하는 플레이를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메이웨더는 "나도 부상을 입은 채 뛰었다. (그래도) 난 이길 방법을 찾는다"고 반격했다. 둘은 링 밖에서 말싸움만 치열하게 벌였다. 경기를 지켜본 복싱 영웅들은 일제히 아쉬움을 드러냈다. 두 선수와 모두 싸워 패했던 6체급 챔피언 출신 오스카 델라 호야(42·미국)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SNS)를 통해 '복싱 팬들에게 미안하다(Sorry boxing fans)'는 글을 남겼다. 지루한 경기에 대해 자신이 사과한 것이다. 전 WBC 페더급 챔피언인 지인진(42) 버팔로 프로모션 대표는 "예상했던 흐름이었지만 안타깝다. 화끈한 난타전이 벌어졌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WBC 라이트플라이급 15차 방어에 성공했던 장정구(52)도 "메이웨더가 너무 소극적이었다. 마주 서서 싸우려고 들지 않았다. 실망스러운 경기"라고 혹평했다. 2013년 방송사 쇼타임과 전속 계약한 메이웨더에겐 계약 경기가 한 차례 남아 있다. 게다가 다음 경기에서 이기면 메이웨더는 헤비급의 록키 마르시아노(1924~69)가 기록했던 프로복싱 최다 무패 기록과 타이를 이룬다. CBS 스포츠는 '대기록을 앞둔 메이웨더가 굳이 어려운 상대를 고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다음 일정에 대한 질문에 메이웨더는 "오는 9월에 경기를 한다"며 상대를 밝히지 않았다. 파퀴아오는 "휴가를 다녀온 뒤 (향후 일정을) 생각하겠다"고 답했다. 메이웨더의 마지막 상대는 파퀴아오가 아닐 것 같다. 김효경 기자

2015.05.03. 17:23

라스베이거스 '잭팟'…1초에 10만 달러

*그래픽을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세기의 대결이다. 복싱의 흥행 기록을 죄다 갈아치울 판이다. 당대 최고의 복서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38·미국)와 매니 파퀴아오(37·필리핀)가 드디어 맞붙는다. 둘은 내일(2일) 오후 8시 라스베이거스 MGM 그랜드 아레나에서 한판 대결을 벌인다. WBC·WBA·WBO 웰터급(66.68㎏) 통합 타이틀전이다. 메이웨더와 파퀴아오는 살아온 인생부터 복싱 스타일까지 정반대에 가깝다. 메이웨더는 돈다발을 뿌리며 자신을 뽐낸다. 최근엔 "무함마드 알리 보다 내가 더 뛰어나다"는 자랑을 늘어놨다. 파퀴아오는 서민들의 영웅이다. 내전 중인 필리핀 정부군과 반군도 파퀴아오의 경기가 있는 날에는 전투를 하지 않는다. 두 선수 모두 복싱으로 가난을 이겨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현재 모습은 전혀 다르다.  스스로 악동이 된 메이웨더= 다분히 의도적인 '얄미운 졸부 흑인' 캐릭터를 갖고 있다. 비싼 자동차나 시계 등을 자랑하면서 허세를 부린다. 오죽하면 별명이 '머니(money)'일까. 그러나 메이웨더의 성장환경은 몹시 불우했다. 단칸방에서 살았고, 어머니는 마약 중독자였다. 집에서 총을 쏠 정도로 가정 불화도 심했다. 16세 때는 아버지가 코카인을 거래하다 구속돼 홀로 남겨졌다. 그러나 메이웨더에겐 헌신적인 할머니가 있었다. 할머니는 복싱을 그만두려던 메이웨더를 설득해 운동을 계속하게 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딴 뒤 프로로 전향한 메이웨더는 무패 행진을 이어갔다. 수비 위주의 복싱 스타일 탓에 인기는 높지 않았다. 그가 스타로 떠오른 건 2007년 오스카 델라 호야(42)와의 경기에서 승리한 뒤다.  복싱에 있어서는 철저하다. 술과 담배를 하지 않고 경기가 다가오면 새벽 훈련까지 한다. 신부가 되려 했던 파퀴아오=유년기는 메이웨더보다 더 암울했다. 빈민가 출신인 파퀴아오는 13세까지 길거리에서 빵을 팔았다. 파퀴아오는 자서전에서 '도넛을 5센트에 사서 10센트에 팔았다. 도넛을 먹고 싶었지만 참아야 했다. 어릴 때부터 절제를 배웠다'고 밝혔다. 신앙심 깊은 어머니의 영향으로 신부가 되고 싶어 했다. 그러나 집에서 학비를 댈 수 없어 복싱선수의 꿈을 키웠다. 늘 조용했다. 그러나 정의감이 있고 싸움실력이 뛰어나 동생을 괴롭히는 녀석들을 가만 두지 않았다. 파퀴아오는 프로에 데뷔해 마구잡이 주먹을 휘둘렀다. 그의 야성은 명코치 프레디 로치를 만난 뒤 길들여졌다. 왼손잡이 특유의 까다로운 스타일인 파퀴아오는 지옥훈련을 통해 속사포 펀치를 장착했다. 호야와 리키 해튼 등 최정상급 선수들을 차례로 쓰러뜨린 파퀴아오는 세계 최초로 8체급을 석권하면서 2009년 시사주간지 타임의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2015.04.30.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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