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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방역이라는 국경-93세 아버지와 63살 아들이 함께 떠난 여행

New York

2021.10.28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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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부셔서 깨어나니 아침 햇살이 방안에 한가득하다. 벌써 8시다. 평소 같으면 6시면 이미 하루가 시작되고 커피 한 잔도 마셨을 텐데 여행 전날의 잠이 깊지 못했다. 간간이 짧은 토막 꿈을 꾸고 늦게 먹은 수박 화채도 그 몫을 했다. 화장실을 다녀와 억지로 잠을 청하며 눈을 감고 있노라니 여러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문다.  
 
생각도 하지 못한 코로나는 온 세상을 바꾸어 놓고 차단해 놓았다. 2019년 가을 아버지와 나는 남해와 강원도 여행에서 돌아와 다음 여행을 계획했다. 2020년 봄에 다시 만나 남도 여행을 가기로 하고 아버지와 약속한 지 2년이 지났다. 2016년 뉴욕에 40년을 사셨던 부모님은 어머니 병세가 악화하면서 급히 한국에 나가시게 되셨다. 그 후 수술 후유증으로 어머니를 하늘나라에 먼저 보내 드리고 2018년부터 혼자 되신 아버지는 수원에 있는 유당 마을(시니어타운)에서 살고 계신다. 누나가 자주 뵈러 가시지만 얼마나 혼자 외로운 시간을 보내고 계실지 아들로서 늘 죄송할 따름이다. 그때부터 아버지와 나는 봄, 가을에 둘만의 전국 여행을 다니고 있다. 이번 여행은 봄, 가을 그리고 또 한 번의 봄을 건너뛴 가을에 떠나는 오랜만의 여행이라 더 만감이 교차한다.  
 
93세의 아버지를 모시고 하는 여행은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언제라도 급하게 건강상태가 변할 수 있는 나이시니 늘 컨디션도 살펴야 하고 드시는 약들도 잘 챙겨드려야 한다. 2년 전 여행 때와는 또 다른 면의 다른 상황일지 모르는 일이니 마음은 조금 더 긴장된다. 여행에 필요한 서류들과 스마트폰 Sim Card, 아버지를 잘 모시고 다닐 렌터카 예약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점검했다. 나만을 위한 옷가지 정도 챙기는 여행이 아니다.  
 
어디를 가고 무엇을 보며 무엇을 먹고 어디서 쉬는지 우선 몇 년 전보다는 더 연로해지셨을 아버지가 감당하실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예전보다 가볍지만 알찬 여행이 되어야 한다. 계단을 오르거나 비탈을 내려가는 장소는 피해야 하고 맛집이라고 다녀도 저염분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을 찾아야 한다. 아침은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호텔 뷔페를 이용하겠지만, 점심과 저녁은 그 지역의 특산물이나 새로운 것을 아버지께 대접하고 싶다. 앉기 불편하신 아버지는 바닥에 앉는 식당은 갈 수가 없으니 의자에 앉아 드실 수 있는 식당인지도 면밀히 살펴야 한다.  
 
세상은 New Normal이라는 새로운 국면에 이르렀다. 이 여행은 얼마 전까지도 상상치 못할 일이었지만 직계 가족에게 주는 대한민국 정부의 배려로 가능해졌다. 단지 시간 내에 검사 결과가 나오지 않아서 여행이 연기된 사람의 이야기며, 상상치 않았던 무증상 양성 반응으로 14일 자가격리로 졸지에 발이 묶인 사정들이 약간 불안케 했지만, 비록 두 번 신청 만에 얻은 자가격리 면제 허가와 비행기 탑승을 위한 코로나 검사가 음성으로 잘 통과되어 JFK 공항까지 갈 수 있게 된 것은 New Normal의 기쁨이었다.  
 
한편 아버지는 지난번 2019년 여행 이후 아들과의 여행을 위해서 매일 걷는 연습을 하신다고 하셨다. 93세 아버지에겐 잘 걷는 것도 이미 큰 축복이시다. 못 걸으면 민폐라고 하시며 2년을 그렇게 준비하시는 아버지에 비하면 나의 출국 준비 과정은 너무도 작은 수고였다.

강영진 / 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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