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은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흐른다. 안과에 가서 몇 가지 검사를 했다. 안구건조증이 있다고 한다. 일종의 노화현상이란다. 안구건조증은 증세가 참 이상하다. 눈물이 없어 눈은 건조한데 눈물이 수시로 흘러내린다.
막힌 눈물샘을 녹여줄 온열 찜질 안대와 눈 전용 비누, 인공눈물을 샀다. 눈을 수시로 찜질하고 비누로 닦고 눈물을 넣느라 분주해졌다. 인공눈물은 뺨을 타고 줄줄 흘러 내렸다. 평소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애쓰며 살았는데 이제 눈물을 사서 넣는다.
나는 눈물이 많은 아이였다. 누군가 목소리만 조금 높여도 눈물부터 났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했다. 눈물을 참고 싶었지만 마음과 달리 눈물이 앞서 말을 할 수 없었다.
언젠가 장례식장에서 슬피 운 적이 있다. 돌아가신 분과 그리 잘 아는 사이도 아니었다. 초등학교 다니던 딸아이와 같은 반 학부모로 몇 번 보았을 뿐이다. 갑자기 아버지를 잃은 어린 남매가 애처로워 가슴이 저려왔다. 처음에는 아버지를 잃은 아이 때문에 눈물이 났다. 울다 보니 내 설움에 울고 있었다. 가슴속 깊이 숨겨 놓았던 아버지를 잃은 지난 시간의 슬픔이 떠올라 걷잡을 수 없는 울음이 터졌다. 망자를 핑계 삼아 자연스럽게 울 수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감정이 메말라 갔다. 언제부터인가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좀처럼 눈물을 흘리지 않게 되었다. 허구의 이야기를 보면서 울고 싶지 않아 슬픈 영화를 즐겨 보지도 않는다.
왜 슬픈 영화를 봐도 눈물을 흘리지 않게 되었을까. 내가 사는 세상은 영화와 같지 않다는 경험을 하기 시작했을 때부터인 것 같다. 좋은 사람은 당연히 더 행복하고 나쁜 사람은 벌을 받아야 하는데 늘 그런 결론이 나지 않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아마 오랜 시간 내 감정에 충실하지 않고 외면하려 했기 때문인 것 같다. 가능한 한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애썼다. 감정보다 이성을 중시하며 살아왔다. 좀 더 자신의 감정에 너그러워도 되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눈물은 인생 길 곳곳에 배어 있다. 슬플 때도 기쁠 때도 울어야 한다. 삶이 힘들 때는 크게 소리 내어 울어야 그 무게를 덜어 낼 수 있다. 기쁜 순간엔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춤이라도 춰야 한다.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고 늘 평온한 것은 아니다. 그만한 경지에 이르지 못한 마음은 널뛰 듯 부산스럽다. 그동안 참고 가둬 놓았던 눈물이 쌓여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서 눈물이 부족하다니 좀 억울하다.
하루 일을 끝내고 인공눈물을 넣었다. 진짜 눈물은 말라 버리고 가짜는 넘쳐나게 흐른다. 눈물이 헤프던 어린 시절이 그립다. 눈물이 메말라버린 내가 어떻게 다른 사람을 감동시킬 글을 쓸 수 있을까. 날마다 가슴 뜨거운 눈물을 흘릴 수는 없겠지만 가끔은 진짜 눈물을 흘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