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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마당] 유튜브 끄니, 꽃이 보였다

수필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왔다.  온 천지에 봄기운이 완연하다. 세상은 시끄럽고 요동치건만 한 편에선 자연의 질서 속에 생명력이 넘친다. 햇살이 부드럽고 공기 속에 온기와 생기가 충만하다.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되는 느낌이다. 그런데, 이 좋은 봄날에 방구석에 틀어박힌 채 스마트폰에 매달려 전전긍긍하는 내가 한심하게 느껴진다.
 
얼마 전까지도 잘 보지 않던 유튜브였는데 한국과 미국의 정치 상황이 요란해지면서 자꾸 클릭하게 됐다. 보다 보면 손에서 스마트폰을 놓지 못한다.  
 
특히 숏폼 영상은 짧고 자극적이다. 알고리즘은 내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나보다 더 잘 안다. 보다 보면 관련된 다음 영상이 자동으로 나오니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계속 보게 된다. 자기 전에 보는 바람에 잠도 제대로 못잤는데도 아침에 눈 뜨자마자 또 찾게 된다. 중독성이 있어 끊기가 매우 힘들다.
 
처음엔 정보가 궁금해서였지만 이젠 그냥 습관이 됐다. 생각해보니 그 중심엔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 정당이 있었다. 마음을 쏟는 만큼, 그들이 공격당하면 나도 같이 상처를 입는다. 그래서 더 자주 찾아보고, 지켜주고 싶은 마음에 열을 올린다.
 
그렇게 하루에도 몇 번씩 한국과 미국의 뉴스 속으로 빠져드니, 어느새 마음이 지치고 만다. 점점 나 자신을 잃어가는 기분이다.
 
유튜브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사람을 끌어들인다. 하지만 막상 보다보면 내용이 부풀려졌거나, 심지어 전혀 다른 이야기인 경우가 많다. 제목이 호기심 나서 보면 내용은 딴판이다. 조회 수만 올리면 돈이 되니까, 사실보다 감정을 자극하는 제목을 붙인다. 그걸 잘 알면서도 끌려가는 내가 바보다. 인터넷 중독에서 벗어나야 하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얼마 전 “와이파이 왜 꺼?”라며 친모에 흉기를 들이댄 10대 세 딸에 관한 뉴스가 미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었다. 보도에 따르면 14, 15, 16세의 세 자매는 엄마가 와이파이를 차단하자 인터넷에 접속이 안된데 격분해 주방에서 식칼을 들고 엄마를 위협했다. 엄마가 도망가자 세 자매는 뒤쫓아가 찌르려고 했으며, 자매 중 한 명은 벽돌을 던져 엄마를 맞혔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의 할머니도 다쳤다.  
 
다행히 자매의 엄마와 할머니는 심각한 부상을 입지는 않았다고 한다. 인터넷 중독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최근 한국에서도 20대 여성이 자기의 반려견을 창밖에 던져 죽인 아버지를 경찰관이 보는 앞에서 흉기로 찔러 살해하려 한 사건이 발생했다. 뉴스에서 이런 소식을 접한 사람들의 반응은 “말세다 말세야.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쯧쯧”하며 혀를 찼다.
 
‘말세’란 옛날부터 어른들이 젊은이를 보고 많이 하던 소리이긴 한데, 세상에 워낙 끔찍한 소식이 많이 들려서 인지 요즘은 나이가 그리 많지 않은 사람들 입에서도 심심찮게 들린다. 예전부터 지구 종말론이 거론되기도 하지만 최근엔 세상이 혼란스럽고 도덕이나 풍속이 아주 타락한 상황에서 말세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어느 때 건 말세 소리는 항상 있었던 것 같다. 말세라는 개념 자체는 시대와 종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고 있다. 성경에서는 말세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전쟁과 기근, 지진, 거짓 선지자 등 도덕적 타락 등이 말세의 징조로 언급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시대를 말세 현상이 나타나는 때라고 얘기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자주 일어나는 땅꺼짐, 지진, 홍수, 전쟁, 자연재해와 이상기후, 대형 산불, 이런 현상들은 성경에서 말하는 말세의 징조와 맞아떨어진다.
 
현대에는 종교적 의미뿐만 아니라 사회적, 도덕적 타락 등이 있을 때 “세상이 말세”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요즘 나타나는 말세 현상으로는 사이버 폭력과 가짜뉴스 확산, 악성 댓글로 인한 인신 공격, 마약, 묻지마 범죄 등이 있다. 특히 성전환 수술로 남녀의 성이 바뀌는 현상 등도 이에 해당된다.
 
SNS와 온라인 문화가 발전하면서 서로에 대한 관심보다는 개인주의가 더욱 강해지고 있다. AI의 등장으로 아이들은 모르는 게 있으면 부모나 선생님에게 묻지 않고 AI 에게 묻는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멀쩡하게 잘난 남자 연예인이 사람 대신 AI 여자친구와 사랑을 나누고 외로움을 달래는 이야기가 소개되기도 했다.
 
AI는 비난하지 않고 늘 반응해 주고, 사람처럼 떠나거나 상처주지 않는다. 외로운 시간에 함께 있다는 느낌만으로도 큰 위로가 돼서 인지도 모르겠다. 진짜 사랑이 사라져 가는 시대의 증거 같아서 씁쓸하고 점점 인간성이 무너져 가는 모습이 안타깝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마저 AI로 대체되는 세상, 사랑조차 인공적인 위로로 채워지는 현실이 말세의 또 하나의 징조처럼 느껴졌다.
 
인공지능의 발전이 앞으로 어디까지 확장될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계속 감탄하고 놀라고 무섭기도 할 것이다. 아무리 딥페이크의 시대라 할지라도 인간만은 진짜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계적인 석학인 유발 하라리 교수는 “사람끼리 서로 믿으면 사람이 AI를 통제할 수 있다. 하지만 서로 믿지 못한다면 곧 AI가 인간을 통제하는 날이 올 것이다”라는 절박한 메시지를 낸 바 있다.  
 
이 시대가 말세 같아 보이긴 하지만 사람 안엔 여전히 사랑과 선함이 살아있고, 판도라 상자 밑바닥에 남아 있던 작은 희망의 불씨는 어디에나 있다고 생각한다.
 
남편은 늘 잔소리처럼 말한다. “컴퓨터 앞에 너무 오래 앉아 있지마라” “나가서 햇볕을 쬐며 걸어라” “이 좋은 날씨에 사람들과 어울리며 자연을 즐기라”고. 유튜브에 매몰된 나에게는 그런 소리가 귀담아 들릴 리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외출했다가 집에 들어오는 길에 마치 신부처럼 화사해진 우리 동네를 보고 깜짝 놀랐다. 집집마다 집 앞에 큰 나무 한 그루와 아담한 화단이 있는데, 나무에는 푸른 잎이 무성하고 화단에는 ‘핑크 레이디’라는 연분홍 꽃들이 일제히 만발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은 소란스럽고 사람들은 분노에 고함치지만 봄은 늘 그랬듯이 제때에 오고, 초목은 철을 따라 소리없이 꽃을 피우는구나.’  
 
나도 이젠 다시 삶에 접속해야겠다. 지금 내 곁엔 흐드러지게 핀 봄꽃과 살랑이는 바람과 햇살이 있다. 그들을 보고 느끼며 세파에 찌든 내 마음이 맑게 닦이기를 원한다. 만물이 소생하는 이 봄에 나 또한 새롭게 소생하기를 기대해 본다. 

배광자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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