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잎도 꽃이다![[신호철]](https://www.koreadaily.com/data/photo/202504/29/29500939-5dac-4acf-8a15-331996f4c9a7.jpg)
[신호철]
잠깐씩 뒤란이 궁금해지네
피어나는 잎의 행진을
잎은 꽃보다 아름다워
잎은 오래오래 견디다
노랑, 주홍, 빨강, 갈색의
꽃으로 다시 태어나지
잎으로 피었다 꽃으로 지고
한번 태어나 두 번 살고 가네
거짓말이 아냐, 사실이야
너와 나의 삶도 진행형이지
얼마나 더 붉게 타오를지
산도 모르고 바다도 모르지
얼마나 뜨겁게 살다 갈지
다만 지켜볼 일이야
잎도 한 계절 꽃처럼 산다
잠깐 피었다 지는 꽃보다
더 오래 곁에 머무를 수 있지
붉게 물들어 가슴에 스미어
집도 짓고 내 안에 살게 되지
‘My diary’란 연작으로 오랫동안 그려왔던 작은 소품들이 두 번째 시화집 〈물소리 같았던 하루〉에 시와 함께 출판되리라곤 오랜 미국 생활을 통해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잎도 꽃이다.”라는 나만의 독백이 현실이 된 셈이다. ‘칠십 편의 시 노래와 오십 편의 그림 편지를 가지고 돌아온 시카고의 시인’이란 소제목과 함께 소개되었던 표지에는 보라색 밤하늘 보름달이 떠 있는 노을 진 들녘에 앉아 있는 한 소년의 모습이 담겨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소년의 머리 위로 꽃들이 자라고 있고 푸른 잎들이 그 꽃들을 단단히 붙잡고 있다. 꽃은 달을 올려다보고 달은 꽃을 내려다보는데 소년의 시선은 앞만 바라보고 있다. 푸른 밤하늘이 스며든 푸른 눈가엔 기다림과 그리움을 이겨내려는 순연한 세계가 있다.
![[신호철]](https://www.koreadaily.com/data/photo/202504/29/3bb2e8ad-f2a1-400d-b9b3-d92c3bfe1389.jpg)
[신호철]
그 소년, 아니 청년이라고 하자. 그는 일주일에 삼일 Brown line의 전철을 Kimball 역에서 타고 시카고 다운타운에 있는 SAIC으로 가는 전철에 몸을 담아야 했다. 내려가는 시간 내내 운전하지 않는 자유로운 두 손과 마음껏 상상하고 꿈꾸고 몰입하는 사고가 스케치북에 묘사되는 나만의 시간이었다. 대부분의 그림 편지는 바로 그곳에서 구상되었다. 새로운 곳, 낯설은 거리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 풍경은 그림일기의 소재로는 당연히 일품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청년이 어른이 되었다. 번득이는 예지도 순발력 있는 말투도 사라졌지만, 간간이 깨어난 삶의 시작점에서부터 자리에 눕는 마지막 한점을 이어 위로가 되어주던 시 노래 20편과 10장의 그림일기를 가지고 친구 2명과 책을 엮었다. 잎도 꽃이 될 수 있다는 막연한 바람이 결실해 세 번째 시집이 오늘 세상에 출시되었다는 소식을 친구로부터 듣게되었다.
낯선 거리를 걷다 우연히 미술 재료를 파는 Blick art supply라는 곳을 지나치게 되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문을 열고 상점 안으로 들어갔다. 코걸이를 한 친절한 점원의 안내로 큰 탁자의 서랍장 안에서 도톰 하고 러프한 감촉을 지닌 큰 사이즈의 Watercolor paper를 접하게 되었다. 스케치북의 작은 사이즈로 그림을 그리다 보니 꼭 갖고 싶었던 22“x30”의 큰 사이즈였다. 종이 10장과 물감을 사가지고 나오면서 오래전 SAIC 교내 매점에서 종이를 만지작거렸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결국 돈이 모자라 한 장만 사가지고 나오면서 느꼈던 쓸쓸함이, 그러면서도 그 종이에 그려질 기대에 뭐라 표현할 수 없는 행복감이 내게 느껴져 왔었다.
난 오늘 시간을 거슬러 그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말했다. ”그래 이제 우리 마음껏 그려 보기로 하자. 풀도 꽃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잃지 말고. 우리 앞에 모든 풀은 꽃으로 피어날 거니까. 그 피어난 꽃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사랑을 건네 줄거라 믿어. 어깨를 펴고 푸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자. 너의 젊음과 나의 평안함으로 정지된 지구를 밀어 보는 거야.” 어쩌면 아무도 믿어 주지 않는 “잎도 꽃이다”를 실현시킬 또 하나의 꿈을 이루기 위해 ……잎이 꽃처럼 새록새록 피어나는 어느 봄날을 걸으며 나는 나에게 말하고 있다. (시인, 화가)
신호철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