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우리말] 문화와 정치 그리고 종교
어떤 말은 우리가 늘 사용하고 있지만 정확한 의미를 모르거나 오해하며 살아갑니다. 저는 말의 의미를 정확히 아는 것이 삶을 제대로 사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오늘 제가 다루고자 하는 낱말은 우리말에서 매우 중요한 어휘입니다. 아니, 인간의 언어와 삶에서 매우 중요한 어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문화와 정치 그리고 종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문화 없는 하루하루는 상상하기 어렵죠. 정치가 없다면 세상이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 종교가 우리에게 주는 위안과 마음의 평화는 무엇과도 바꾸기 어려운 가치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문화라는 말이나 정치, 종교라는 말을 잘 이해하고 있을까요? 매일같이 사용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 의미를 깊게 들여다보지 않는 듯합니다.
말의 원래 의미와 사용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문화와 정치, 그리고 종교라는 말은 결국 모두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고 봅니다.
문화(文化)의 방향은 글이고, 정치(政治)의 방향은 올바름이고, 종교(宗敎)의 방향은 높음입니다. 한자로 보면 그렇습니다. 하지만 각각 다른 방향이 아닙니다. 같은 방향을 달라 표현하고 있을 뿐입니다. 문자로 보면 글로 하는 게 문화고, 바르게 다스리는 게 정치이고, 가장 높은 가르침이 종교입니다.
문화는 근본적으로 동물과 달라진 것을 말합니다. 자연 상태에서 벗어난 겁니다. 그래서 영어에서는 ‘Culture’가 ‘재배, 경작’과 ‘교양’의 의미도 있습니다. 인간이 자연에서 벗어난 가장 중요한 증거는 ‘말’입니다. 인간은 말로 서로 소통합니다. 그야말로 말을 하며 울고 웃습니다. 강하게 말하자면 말이 곧 인간입니다. 그런데 말을 한다는 것은 폭력에서 벗어났음을 보여줍니다. 싸우는 것이 아니라 말로 하는 겁니다. 문화는 주먹으로 해결하는 폭력이 아닙니다. 폭력을 부추기는 문화, 싸움으로 가득한 화면이 떠오릅니다.
저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고 했다는 말을 듣고 두 번 놀랐습니다. 하나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다고 알았기 때문입니다. 평생을 잘못 알고 인생을 보내기도 합니다. 다른 하나는 정치적이 좋은 의미라는 점입니다. 하도 우리말 표현에서 정치적이라는 말이 부정적이어서 그랬을 겁니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정치적’이라는 표현은 최고의 찬사입니다. 폭력이 아닌 말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인간이 가지는 겁니다. 폭력을 벗어나야 비로소 정치가 시작됩니다. 야유가 아닌 설득이 정치의 기본입니다. 멋진 수사학과 연설의 기법이 정치의 묘미인 셈입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 우리 정치가 가슴을 답답하게 하네요. 소리 지르고, 야유하고, 비꼬는 낮은 수준의 언어 구사력입니다.
종교는 사실 좀 어려운 영역입니다. 분명 가르침을 좇아야 하는데 의외로 믿음이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믿음이 시각을 좁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나와 다른 믿음은 이단이 되고, 사이비가 됩니다. 다른 종교의 책은 읽으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심하게는 버리거나 불태우거나 금서로 만들기도 합니다.
종교를 믿는 사람이 서로의 믿음에 대한 존중이 없습니다. 참으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종교에서 가장 멀리 해야 할 것은 폭력과 폭언, 악담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종교를 떠올리면 폭언과 악담의 장면이 떠오릅니다. 우리 종교 현실이 또 떠오르네요.
문화와 정치, 종교가 향하는 곳은 평화입니다. 원래 이 세 어휘는 모두 평화를 향하고 조화를 향합니다. 싸우지 않아야 하고 서로를 존중하여야 합니다.
문화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에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폭력을 조장해서는 안 됩니다. 정치를 하는 사람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폭력의 언어를 사용하는 게 아니라 설득의 언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종교를 믿는 사람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종교는 평화입니다. 종교는 사랑입니다. 말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말대로 살아가기 바랍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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