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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믿음] 요세미티에서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가려고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날 산불이 나서 입산 금지가 되었다, 7년 전 이야기다. 그리고 지난주에 아들이 요세미티에서 결혼식을 했다. 요세미티에 간 길에 하루 시간을 내서 7년 전 못 갔던 공원 산길을 걸었다. 산불은 매년 혹은 2, 3년마다 한 번씩 난다고 하는데 어마어마한 지름의 자이언트 세쿼이아 나무들이 밑동을 그을리고 바짝 메마른 채 잿빛 기둥이 되어 하늘을 찌를 듯이 서 있었다. 넘어지고 꺾이기도 했지만, 불에 탄 많은 나무가 선 채로 메말라 잿빛 나무 기둥이 되어 그대로 장관을 이루었다.
 
산불의 피해를 고스란히 품고도 생명을 살려내고, 다시 숲으로 피어나는 웅장한 자연 앞에서 나는 까닭 모를 눈물을 흘렸다. 아무도 손댈 수 없는 산불 재해를 견뎌낸 나무는 또 수백 수천 년을 살아나 울창한 숲을 이루리라는 기개를 숨기지 않고 있었다. 숨겨지지 않는 상처를 품고 다시 일어서는 숲을 보며 벌거벗은 채 하늘을 받치며 선 세쿼이아의 키만큼 높이 슬픔이 차올랐다.
 
아이티는 지금 벼랑 끝에 있다. 수도 포토프린스는 90%가 넘는 대부분 지역이 갱단의 수중에 넘어갔고, 갱들은 여세를 몰아 이제 지방으로 세력을 넓히며 더 많은 국민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가하고 있다. 국제적인 무관심 속에, 유엔 경찰로 파견된 케냐 경찰은 갱들과의 전투에서 여러 명의 사상자를 내고 전의를 상실했다. 최근 유엔 보고서는 아이티가 이제 절망을 넘어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할 수준이 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후원하는 고아원들도 갱단의 위험을 피해 살던 곳을 떠나 다른 자리를 찾아야만 했다. 가브리엘 고아원과 오아시스 고아원은 갱단을 피해 이미 작년에 각각 살고 있던 과다부케와 따바에서델마 지역으로 고아원을 옮겼다. 지난 4월 초에는 하우스 오브 홉이 고아원 건물을 갱단에게 빼앗기고 졸지에 아이들이 거리로 나앉아 델마에 있는 좁은 집에 세를 얻어 들어갔다. 그동안 잘 감당하고 있으려니 하고 있던 브니엘고아원이 매년 4000달러의 렌트를 3년째 밀려서, 집주인이 우선 3년 치를 5000달러로 탕감하자고 한다고 연락이 왔다.
 
고아원 원장이 선교센터에서 식량을 받아서 가지고 가면 미화 100달러가 넘는 통행세를 갱들에게 지급해야 한다. 통행세는 작년까지만 해도 10달러 미만이면 해결이 되었었다.
 
끼니는 멈추지 않고 돌아오고, 렌트는 거르지 않고 내야 한다. 이 와중에 그래도 꿈을 접을 수 없어 공부도 포기할 수 없다. 늘 조마조마한 마음에 아이티 생각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히고 트라우마에 우울해지기까지 한데, 하나님께서는 잔인한 갱들 탓에 불타는 아이티에서 아직 아무 대답이 없으시다.
 
화마에 넘어지고 그을리고 헐벗은 요세미티가 꿋꿋하게 새로운 가지를 뻗고 푸른 잎을 피워내는 숲에서 잠시 전화기에 보관된 불타고 있는 아이티 거리 사진을 보았다. 검은 재로 덮인 거리와 쓰러진 사람들 사이에서 아이티는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 만드신 대자연은 거친 불길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 생명을 회복하고, 메말랐어도 웅장한 풍경이 되어 숲을 이루는데, 아이티도, 고아들도 다시 일어나 평화로운 번영을 이루며 하나님 행하신 일을 찬양하는 날이 올 수 있을까. 깊은 시름의 틈으로, 불에 탄 상처를 품은 숲 가득 슬픔이 밀려오고 있었다.

조 헨리 / 선교사·더 코너 인터내셔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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