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미 육군 창설 250주년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생일을 맞아 워싱턴 DC에서 축하 군사 프레이드가 열렸다.
같은 날 “No Kings(우리는 왕을 원하지 않는다)”라는 구호 아래 미국 전역 50개 주 2,000여 개 도시에서 수백만 명이 거리로 나서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No Kings” 시위를 촉발시킨 것은 일주일 전 LA에서 발생한 불체자 단속 반대 시위였다. 이민세관단속국(ICE)은 6월 6일 다운타운 LA 자바시장 의류상가를 예고 없이 급습했다. 패션디스트릭트 내 의류 유통창고와 일용직 노동자들이 모이는 홈디포를 급습해 불법체류자 수십명을 체포했다. 경악한 라틴계 커뮤니티는 분노했다.
이튿날 아침 일찍 파라마운트 홈디포 앞에 라틴계 이민자들이 모여들었다. 홈디포 맞은편에 위치한 연방 사법기관 시설로 불법체류 단속 연방 요원들이 집결하고 있다는 소식이 SNS를 통해 알려졌기 때문이다. 홈디포 앞에 모인 시위대는 “ICE는 떠나라”고 소리쳤다.
소규모 항의에서 시작된 불법체류 단속 반대 시위는 곧 폭력 사태로 번졌고, 통행금지령과 함께 해병대를 포함한 연방 군병력 4700명이 투입되는 초유의 사태로 비화했다.
라틴계 이민자들은 한인 사회와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한인 의류업체, 식당, 마켓, 건설업체 등에서는 직원의 상당수가 라틴계 이민자들이다. 지난 6일 급습당한 한인 의류업체 ‘엠비언스 어패럴’에서는 라틴계 직원 십 여명이 불법체류 혐의로 체포됐다.
자바시장 한인 의류업체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현재 자바시장 곳곳에는 문을 닫은 업소들이 줄을 잇고 있다. 일부는 직원들이 출근하지 않아 문을 닫았고, 다른 업소들은 단속 여파로 고객이 급감해 정상 영업이 어려운 상황이다. “체류 신분을 입증할 서류가 미비한 직원들은 아예 출근하지 않고 있다. 이전에는 범죄 전력이 없는 경우 나오기도 했지만, 지금은 모두가 무서워서 출근을 하지 않는다.” 자바시장 의류업체 업주의 하소연이다.
라틴계 이민자들을 중심으로 한 비판이 거세지고 있지만, 이는 단지 라틴계만의 분노가 아니다. 미국 전역의 이민자 공동체, 시민단체, 일반 시민들 모두가 ‘공정하고 현실적인 이민개혁’을 요구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무차별 단속이 아닌, 공공의 안전을 위협하는 범죄자들에 집중하는 정교한 이민단속 전략을, 가정과 일터를 파괴하는 단속이 아니라, 실제 위협을 제거하는 정책을 요구한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이러한 요구에 응답하기는커녕, 시위대를 ‘폭도’로 낙인 찍고 군 병력을 투입해 강경 진압에 나섰다. 심지어 트럼프 주니어는 트루스소셜에, 지난 1992년 LA 폭동 당시 옥상에서 총을 들고 무장 경계를 서는 모습의 한인 사진과 함께 “루프톱 코리안을 다시 위대하게!(Make Rooftop Koreans Great Again!)”라는 문구를 게시했다.
한인사회는 이 게시물에 대해 우려의 시선을 보냈다. 1992년 LA 폭동 당시 공권력이 백인 지역을 우선적으로 보호하며 갈등의 방향을 흑인과 한인 간의 대립으로 바꾸었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기 때문이다.
6월11일 밤, 시위대가 윌셔길을 따라 다운타운에서 코리아타운으로 향하자, 경찰은 웨스트레이크가 아닌 코리아타운 중심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했다. 시위대를 코리아타운 중심으로 유도한 듯한 조치에 한인사회는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한인사회는 이런 정치적 연출의 소품이 되기를 단호히 거부한다. 1992년 LA 폭동 당시, 한인들은 보호받지 못한 채 무방비로 방치되었다. 정부와 경찰의 외면 속에서 삶과 가게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저항이 아닌 생존이었다. 그러나 지금, 누군가는 이 아픈 역사를 왜곡해 또 다른 커뮤니티를 겨냥한 폭력을 부추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