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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마당] 모두가 주인공인 세상

Los Angeles

2025.07.03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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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미주지역 교무들이 뉴욕 원달마 센터에 모여 일주일 동안 모임을 가졌다. 마치던 날 훈련 모습을 동영상에 담아 보여주었다. 만남의 순간부터 과정 과정을 찍어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었다. 기록을 위한 사진도 있었지만 대부분 찍힌 지도 모르는 순간 포착된 사진들이 다양하게 들어있었다. 웃고 울며 함께했던 시간이 되살아나 춤을 추는 그 영상에는 우리 모두가 주인공이었다.
 
삼십 중반에 나는 TV 프로에 주인공으로 출연한 적이 있다. ‘인간시대’라는 MBC 교양프로그램이었다. 1986년 강원도 동해시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개척교화를 하고 있을 때였다. 여름이 시작되는 어느 날 서울에서 손님이 왔다. MBC 방송국 PD라고 소개하며 머리 좀 식힐 겸 놀러 왔다면서 우리 교당에서 머물게 해 달라고 했다. 오는 손님 마다할 수 있겠는가, 그는 며칠 동안 교당스태이를 했다. 우리 교당 청년들은 법회를 마치고 깊은 밤까지 교당 잔디밭에 앉아 기타치고 노래하는 게 일상이었다. 그 청소년들의 맑은 모습에 자신의 영혼도 맑아진다며 행복해하던 그가 돌아가겠다고 하면서 나에게 고백을 했다.
 
당시 월요일마다 방영 중이던 교양프로 인간시대 제작 PD였던 그는 우연히 기차 안에서 원불교 교무를 만나 얘기를 나누게 되었단다. 조금은 생소한 교무의 삶을 인간시대를 통해 조명해 보고 싶어졌다고 했다. 교단에서는 공영방송의 출연 제안에 수락하고 수백 명의 교무 중에서 열 명의 교무를 추천해 주었다. 그중 막내였고 바닷가 마을에서 ‘등대’라는 불우이웃 돕기 모임을 이끌며 청소년 교화를 하고 있는 내가 선정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미리 상황파악을 하기 위해 손님인 척 교당 스태이를 자처하여 나의 삶을 지켜보았노라고 털어놓으며 계면쩍은 미소를 지었다.
 
도저히 수락할 수 없었다. 내가 TV출연이라니, 더군다나 원불교 교무라는 상징성을 띠고 공영방송에 출연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나는 새내기 교화자이며 초급 수행자인 설익은 과일 같은 존재였다. 예쁘지도 않고 내어놓을 것도 없는 사람이었다. 있는 그대로 내 삶의 모습을 촬영한다 해도 불특정 다수에게 보여주는 프로가 아닌가, 연기력도 없고 아주 평범한 교무인 내가 인간시대 주인공이라니 안될 일이었다. 두려움도 컸다. 완강한 나를 설득하지 못하고 그는 떠났다.
 
며칠 뒤, 여섯 명 촬영팀이 다시 찾아왔다. 포기한 줄 알았던 그는 교단 본부에 요청했고 공식적인 교단의 명을 거부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인간시대 주인공이 되었다. 새벽 5시, 기도로 시작하는 나의 일상을 담기 위해 4시부터 카메라를 설치하고 일거수일투족을 찍기 시작했다. 원불교 교무로서의 나의 삶이 적나라하게 필름 속으로 흘러들어 갔다. PD는 어떤 요구도 하지 않았다. 늘 해오던 원불교 교무로서 교화하며 사는 삶, 등대의 리더로서 청년 회원들과 어려운 곳 찾아다니며 도와드리는 일들, 짬이 나면 도반들과 바닷가에 나가 담소도 나누고 참선을 하는 모습을 소리없이 따라다니며 카메라에 담을 뿐이었다.
 
하루하루 지나면서 그의 얼굴에 난색이 드리워지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교무님, 우리는 지금 원불교 홍보 영상을 찍는 게 아닙니다. 자연스럽게 교무님의 일상이 찍혀야 대중이 공감하고 그 안에 원불교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지금쯤은 교무라는 생각을 놓을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언제까지 교무라는 생각에 갇혀 있을 겁니까. 이러면 작품이 되지 않습니다.”  
 
대개 사람은 이틀 정도 찍으면 자연스럽게 동화되어 인간 본래 모습 그대로 나오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종교인이라는 틀에 갇혀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내 의지로 어찌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원불교 교무가 아닌가. 좋은 모습 훌륭한 일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그러니 한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항변도 해보았지만 은근히 걱정되기도 했다. 시간은 흘러 촬영은 종반을 달리고 있었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통으로 노출하며 순간을 이어가던 나는 급기야 쓰러져 버렸다. 덕분에 하루를 쉬면서 영양주사까지 맞게 되었다. 교양프로를 시청률 1위로 끌어올리는 명 PD였던 그는 나의 개인 정보도 찾아내어 가족들까지 촬영에 동참시켰다. 그때부터 그의 얼굴에 끼었던 어둠의 그림자가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교단 산업기관 교무로 재직하던 아버지를 도와 복숭아 재배를 하고 있었다. 마침 수확철이 되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던 중이었다. 제작진들이 어머니를 찍겠다고 했을 때 걱정이 되었다. 유난히 꾸밈도 없고 소박한 시골 아낙네인 어머니가 감당하실 수 있을까, 그것은 기우였다. 촬영팀들이 들이닥쳤을 때 어머니는 늘 밭일하러 다니던 그 모습이었다. 웃음이 나왔다 내가 뭘 기대했던가.  
 
“엄마, 텔레비전에 나올 건 게 이쁘게 준비하고 계셔.” “오메 벨소리 다 듣것네 생긴 대로 허제 뭔 준비를 한다냐, 글고 지금 나 무지 바빠야 그럴 시간 없는디 안 오면 안 되것냐.” “꼭 가야 된다는디 어떡혀 그럼 낼 보게.” 이렇게 전화로 연락을 했으니 미장원에라도 다녀오지 않을까 내심 기대를 했었다. 꿈도 야무졌다.
 
어머니를 만난 제작진들은 가뭄에 단비 만난 듯했다. 어머니는 옥색 티셔츠에 꽃무늬 몸뻬를 입고 챙 넓은 모자를 쓴 채 이 나무 저 나무로 옮겨다니며 복숭아 따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연신 카메라를 들이대며 모습을 찍었지만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PD는 순박하고 가식 없는 어머니의 모습을 따라다니며 끊임없이 질문을 했고 솔직 담백한 어머니의 응수에 빠져 들어가는 듯했다. 출가하여 교무로 살아가는 딸이 당신 최고의 선물이며 행복이라고 주저 없이 말하는 어머니가 진정한 인간시대 주인공이라고 그는 말하였다.
 
열흘 동안의 촬영을 마친 몇 주 후 내 이야기는 MBC 인간시대 프로에 ‘출가’라는 제목으로 55분 동안 방영되었다. 사람들의 관심은 상상 이상이었다. 하얀 저고리 까만 치마 쪽진 머리를 한 신생 종교 성직자의 삶이 세상에 드러났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떤 모습을 하고 있어도 알아보고 아는 체를 하였다. 그런데 사람들은 꼭 어머니의 안부를 물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스스로 동영상을 만들어 유튜브에 올리기도 하고 저장해 놓고 보기도 한다. 모두가 주인공인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격세지감을 느낀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하고 노래 부르던 그 시절에 나는 인간시대 주인공으로서 내 삶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었다. 모두가 주인공으로 살 수 있는 이 세상! 나는 어떤 삶의 주인공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이정길 / 원불교 교무·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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