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애니메이션 영화 ‘K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가 전 세계 20개국 이상에서 스트리밍 1위를 기록하며 글로벌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트와이스 등이 참여한 중독성 있는 오리지널 사운드트랙 앨범은 올해 발매된 사운드트랙(OST) 중 최고 순위를 기록했다. K팝 걸그룹과 퇴마 액션이라는 독특한 조합, 한국 설화 기반의 판타지 세계관, 매력적인 악역 보이 그룹 ‘사자 보이즈’, 그리고 한류 스타들의 영어 더빙도 화제다.
퇴마사 걸그룹 리드 보컬 루미역은 한국계 배우 아덴 조, 사자보이즈 리더인 진우는 안효섭, 헌트릭스 멘토인 셀린은 김윤진, 최종 빌런인 귀마는 이병헌, 바비는 켄 정, 힐러 한은 대니얼 대 김이 성우로 참여했다.
이 작품은 K컬처의 글로벌 확장뿐만 아니라 한식을 다루는 방식에서도 기존 한류 콘텐츠와는 차별화된 접근을 시도한다.
액션 애니메이션을 넘어 악귀와의 전투에 앞선 ‘K푸드 먹방’은 유쾌한 볼거리 그 이상이다. 루미, 미라, 조이로 구성된 걸그룹 ‘헌트릭스’가 악귀와 전투 전과, 힘들 때 혹은 공연 후 먹는 컵라면, 김밥, 설렁탕, 냉면, 어묵국 등 폭풍 식사 장면은 한국인의 일상적 식문화를 세계에 전달하는 강력한 ‘서사 언어’로 기능한다.
공동 연출을 맡은 매기 강 감독과 크리스 아펠한스 감독은 이 작품에서 비빔밥, 불고기, 김치 등 이미 글로벌화된 대표 K푸드 대신, 김밥, 컵라면, 냉면, 설렁탕처럼 ‘한국인의 평범한 한 끼’를 영화 전면에 배치했다. “김밥 한 줄을 들고 폭풍 흡입하는 건 한국 사람들에겐 자연스러운 모습”이라는 크리스 아펠한스 감독의 말처럼 이 작품은 한식을 ‘이국적인 것’이 아니라 ‘익숙한 일상’으로 그렸다.
이러한 연출은 기존 글로벌 콘텐츠에서 한식이 종종 ‘낯선 오브제’로 소비되어온 방식과 크게 다르다. 분식집의 초록색과 흰색이 섞인 플라스틱 접시, 어묵국에 떠 있는 파, 참기름 바른 김밥 등은 모두 실제 한국의 식생활에서 차용한 디테일들이다. 시각적 재현을 맡은 소니 이미지웍스는 이를 사실적으로 구현해냈고, 한국 관객들조차 “진짜 같다”고 할 정도의 몰입감을 선사한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공연을 앞두고 고음 발성에 실패한 루미가 설렁탕을 먹으며 위로받는 장면은 단순한 식사 장면이 아니라, 한국인의 ‘음식으로 위로받는 정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첫 장면부터 등장하는 냉면 또한 공동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의 가족사가 투영된 상징적 음식이다. 북한 출신 가족을 둔 매기 강과 크리스 아펠한스 감독에게 냉면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정체성’과 ‘고향의 기억’이었다.
이처럼 K팝 데몬 헌터스는 한식을 단순한 소품이 아닌 ‘문화의 서사적 매개체’로 활용한다. 음식의 맥락과 정서를 함께 담아내는 스토리텔링을 통해 한식은 세계 어디서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음식’으로 영화 속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 콘텐츠가 실제 K푸드 산업 흐름과도 연결되어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실제 최근 몇 년 사이 국내에서 K푸드의 위상이 더욱 올라갔다.
트레이더 조, 월마트, 코스트코 등 대형 유통점에서 김밥, 잡채, 갈비, 떡볶이 등 한식이 인기를 끌고 있고, 올해 상반기 기준 한국의 대미 농수산식품 수출액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K드라마, K팝으로 시작된 관심이 콘텐츠 속 자연스러운 노출을 통해 음식 소비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K팝 디몬헌터스는 한식이 단순히 먹는 것을 넘어, ‘정서’와 ‘문화’를 공유하는 세계 공용 언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식이 이제는 설명이 필요한 ‘이국적 음식’이 아니라, 세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음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것은 K푸드가 실제로 글로벌화의 문턱을 넘고 있다는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