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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당신 앞에서

Chicago

2025.08.04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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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하루는 / 색으로 피어납니다 // 어제는 파란색 / 푸른 하늘 / 연 꼬리 길게 늘어뜨린 / 흰 바람이었습니다 / 밤새 별들이 울다 간 / 꽃잎 흩어진 아침 / 전혀 회색입니다 / 오늘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 침묵입니다 / 혹 내일은 / 색깔을 되찾고 싶습니다만 / 초록으로 돌아갈 겁니다 / 숨이 트이는 곳 / 꽃봉오리 터지는 곳에 / 귀 기울이겠습니다 // 나의 하루는 / 색으로 칠해집니다 // 빌딩의 숲속에서 / 꺼지지 못하는 / 당신의 창을 찾아 / 초록이 자랄 수 있게 / 숲의 향기 스밀 수 있게 / 잠 못 이루는 창 / 닦아드리겠습니다 / 칠하고 덧칠함으로 / 껴지고 꺼짐을 반복하면서 / 당신과의 거리 좁혀가면서 /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은 / 붉은 노을로 지겠습니다 / 나를 다 드려도 / 샘이 되지 않는 당신 앞에 / 뜨겁게 물들어 가겠습니다
 
 
[신호철]

[신호철]

하루가 색으로 피어난다? 색으로 칠해진다? 이게 가능한 일일까요? 그러다 혼자 피식 웃었어요. 허리를 구부렸다가 펄쩍 뛰어보기도 하였죠. 혹 지나가던 사람이 이 모습을 보았다면 혀를 차며 바라보았겠죠. 멀쩡한 사람처럼 보이는데 참 안됐다고요. 그럼에도 그건 가능한 일이지요. 우리 눈에 비친 어떤 풍경도 색을 띠지 않는 사물과 사람을 담고 있지 않거든요. 그러니 그 이야기는 현실이 될 수 있지요. 세상의 모든 화가의 눈엔 평범한 사람들 눈에 스치는, 사라지는 색 그 이상의 강렬한 색들이 보이겠지요. 그저 평면적인 색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색에 감정이 섞여 버무려진 움직이는, 살아나는 색들이 쿵 하고 가슴에 와닿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니 아무것도 없는 하얀 바탕을 색으로 칠하고 이야기를 그리고 그 안에 사유를 담으니, 말이에요.
 
우리는 너무나 바쁘게 살아가고 있어요. 그러다 보면 내 안엔 온통 일, 일, 일의 중독이 돼요.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만드신 아름다운 세상. 하루가 다 가도록 고개 들어 그 아름다운 하늘 한 번 쳐다보지 않고 살아갈 때가 많아요. 빈들 가득히 바람에 일렁이는 들풀의 유희도, 여기저기 군락을 이루며 피어나는 야생화의 신비로움도, 쉼도 없이 밀려오는 광활한 미시간 호수의 파도도 그것을 자라게 하신 그분 손끝의 사랑 때문이지요. 우리 이제 그 손끝을 따라 하루를 시작해요. 우린 썩어갈 것들을 쫓아 발끝만 바라보고 많은 날을 살았어요. 우리에게 늦은 시간이란 없어요. 이제 하늘을 보며 살아요. 지난날들을 뒤돌아보면 나무에 새순이 언제 피었는지, 그 색이 연두였는지 핑크였는지 도무지 기억나질 않아요. 앙상한 가지에 어느새 잎들이 수북이 가지를 덮고 있는지 알 길이 없어요. 고개 들어 나무를 바라본 기억이 없으니까요. 하늘을 보기 위해 고개를 든 적이 없으니까요.
 
꽃이 피고 지는 것을 관찰한 적이 있나요. 얼마나 작은 꽃봉오리가 꽃잎을 서로 붙들고 땀 흘리며 견디어 냈는지 기억하시나요? 스쳐 간 기억조차 아물거리니 생각이 남아 있을 리 없지요. 오늘은 우리가 바라보는, 만지고 느끼는 모든 것들의 색들을 기억하기로 해요. 그 색들 앞에 그때 느꼈던 감정들을 따뜻한 언어로 담아주면 어떨까요. 적어도 창조주의 손길을 다만 작은 부분이라도 공유하며 사는 것이 그분에 대한 바른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뜩 들었어요.
 
시를 쓴다고 이름 석 자에 시인이란 호칭을 불러주는 사람들이 종종 있어요. 처음에는 손사래를 치며 부정했어요. 아니라고 나는 아직 시인이 될 자격이 없다고요. 뒤돌아 오면서 나에게 물어봤어요. 당신은 시인입니까?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야 할 것 같아요. 순수와 열정을 회복해야겠어요. 하루가 어둠의 색으로부터 찬란한 빛의 색으로 피어나는 언덕에 다시 서겠어요. 당신의 손끝이 잠들은 씨앗들을 깨운 빈들의 기적 한가운데서, 당신의 긴 호흡을 느끼겠어요. (시인, 화가)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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