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째 나이트라인 진행 담당 진실 전달 ‘성스러운 책임감’ BTS 공연에 한국 위상 체감
미국의 하루는 한인 앵커에 의해 마무리된다. ABC 나이트라인의 기자이자 공동 메인 앵커로 14년째 뉴스를 전달하는 주주 장(한글명 현주·사진) 앵커는 자신을 ‘스토리텔러’라고 했다. 지난 3일까지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열린 ‘2025 아시아계미국인언론인협회(AAJA) 연례 컨벤션’에서 만난 장 앵커는 뉴스 전달을 ‘성스러운 책임’으로 여긴다고 했다. 38년째 방송 저널리즘의 최전선을 지키고 있는 그는 방송계에서 신뢰의 상징으로 통한다. 장 앵커와 단독 인터뷰를 통해 언론인이 된 이유와 뉴스의 본질이 무엇인지 물었다.
앵커의 길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원래 엔지니어가 될 줄 알았다. 실리콘밸리의 서니베일에서 자라 스탠퍼드대에 입학했는데, 이공계 수업 성적이 엉망이었다. 반면 정치학 수업에서는 A+를 받고 우수상까지 받았다. 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중, 당시 유명 앵커였던 중국계 코니 정에게 영감을 받아 언론인의 길을 결심했다. 학보사 활동과 지역 방송국 인턴을 거쳐, 대학 졸업 10일 만에 ABC에 입사했다. 그렇게 38년이 흘렀다.”
‘한인’이라는 정체성이 활동에 미치는 영향은.
“초반에는 아시아계나 여성으로 분류되는 게 싫어 일부러 남자 기자들처럼 행동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여성, 워킹맘, 한인이라는 내 정체성이 오히려 보도에 깊이를 더해준다는 걸 깨달았다. 특히 내가 설립에 참여했던 한인커뮤니티재단(KACF)을 통해 한인 사회의 현실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됐다. 예를 들어 뉴저지 북부 지역 한인 시니어들은 보험이 없거나, 언어 장벽, 빈곤 문제로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이런 경험은 언론인으로서 우리 커뮤니티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한다는 사명을 일깨웠다.”
유리천장이나 차별은 없었나.
“누군가 대놓고 ‘넌 여기에 어울리지 않아’라고 말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아시아계 여성으로서 늘 스스로를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은 분명히 있었다. 특히 방송계에서 아시아계 임원이 부족한 건 구조적인 문제다. 의사결정권을 가진 자리에 아시아계는 여전히 너무 적다. 그래서 나는 ABC에서 후배 아시아계 기자들을 멘토링 하며, 그들이 ‘이 공간에 속해 있다’는 소속감을 가질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이것이 내가 유리천장을 깨는 방식이다.”
앵커로서 한인임을 깊이 느꼈던 순간은.
“유엔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방탄소년단(BTS)을 인터뷰했을 때, 한국이 ‘소프트 파워’를 통해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습을 생생히 느꼈다. BTS가 유엔에서 메시지를 전하고 춤을 춘 장면은 전 세계 수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유엔 웹사이트가 다운될 정도였다. 그 순간, 한국 문화의 위상을 직접 체감하며 한인으로서 깊은 자부심을 느꼈다.”
주류 언론에 한인 언론인들은 충분한가.
“아직도 턱없이 부족하다. 특히 LA처럼 아시아계 인구 비율이 높은 지역조차, 지역 방송국에 한인 기자는커녕 아시아계조차 없는 경우가 있다. 더 나아가, 우리는 왜 아시안이 운영하는 영어 미디어가 아직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지 고민해야 한다. 아시안이 주도하는 영어 미디어 플랫폼이 절실하다. 미주중앙일보가 그 좋은 예시다.”
주류 언론에 한인이 필요한 이유는.
“대표성은 우리가 이 사회의 ‘당연한 구성원’임을 보여주는 데 있어 핵심 요소다. 우리는 ‘영원한 외국인(perpetual foreigner)’이 아니다. 나는 미국인인데도 ‘영어 잘하시네요’라는 말을 듣는다. 이런 인식은 우리가 주류 미디어 속에서 제대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다양한 이야기와 얼굴을 통해 한인의 입체적인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이 곧 편견을 깨는 힘이다.”
기억에 남는 보도는.
“하나만 꼽긴 어렵다. 50개 주는 물론, 케냐 기린 보호 구역부터 과테말라 난민 문제까지 세계 곳곳을 다녔다. 그래도 한국 관련 보도 중 인상 깊었던 건, 최근 오징어 게임 출연진과 감독 인터뷰, K-뷰티 트렌드 취재가 있다. 또 지난 5월 한국에서 한인 셰프 오스틴 강과 함께 광장시장을 돌고, 유명 댄스 아카데미인 ‘원밀리언 댄스 스튜디오’를 방문했다. 이런 한국 문화 콘텐츠 취재는 내 정체성과 맞닿아 있고, 한국의 글로벌 영향력을 보여줄 수 있어 특별하게 느껴진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인터뷰는.
“조 바이든 전 대통령, 오프라 윈프리 등 많은 유명 인물을 인터뷰했지만, 내게 진짜 의미 있는 인터뷰는 인생의 결정적 순간에 만난 일반인들과의 대화다. 아카데미상을 받은 기쁨의 순간이든, 총기 사고로 아이를 잃은 비극의 한가운데든, 약물 중독으로 병원에 있는 순간이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존엄을 담아 전달하는 것이 내가 이 일을 하는 진짜 이유다.”
어떤 앵커로 남고 싶나.
“나는 모든 사람을, 모든 이야기를 진심으로 존중했던 기자로 기억되고 싶다. 나와 생각이나 배경이 다르더라도, 그들의 인간적인 면을 귀하게 대하려 노력해왔다. 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왜곡 없이 전달하는 걸 ‘성스러운 책임’으로 여긴다. 그런 태도를 끝까지 지키는 앵커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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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 장은
현재 ABC 뉴스 나이트라인 공동 앵커로 지난 2014년부터 11째 진행을 맡고 있다. 그는 굿모닝 아메리카, 20/20, 월드 뉴스 투나잇, 나이트라인 등 주요 프로그램을 이끌며 에미상 등 권위 있는 언론상을 다수 수상해 이제는 미국 방송계에서 신뢰의 상징으로 통한다. 장씨는 지난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나 4살 때 부모님을 따라 미국에 이민 왔다. 스탠퍼드대에서 정치학과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했고, 대학 졸업 10일 만에 ABC에 입사했다. 그는 지난 1995년 공영방송 PBS의 지역 방송국 WNET 대표 닐 샤피로와 결혼해 슬하에 아들 셋을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