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이맘때면 오리건에서는 특별한 축제가 열린다. ‘스팀업(Steam-up)’이라는 이 행사는 오리건에 사람들이 정착하던 시절부터 사용되던 증기기관부터, 캐터필러나 기중기 같은 각종 산업용 기계들까지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유물들을 한자리에 모은다.
나는 이 행사장에서 음악을 연주한다. 매년 가족과 함께 보낸 좋은 기억이 많다. 아들과는 두 번째 방문이다. 아이들에게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보물찾기다. 각종 박물관에 돌아다니며 질문에 답하거나 숨겨놓은 물건 찾기를 통해 노란 종이에 도장을 찍거나 뱃지를 받는다. 아이들을 따라다니며 평소 무심히 지나쳤던 낡은 장치들의 유래를 다시 읽어보니, 그 기계들이 품고 있는 시간의 이야기가 새롭게 다가온다.
행사장 한쪽의 클래식카 전시장에서는 매년 이맘때쯤 재즈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하곤 한다. 이곳엔 건물의 반쪽을 차지할 정도로 거대한, 100년이 넘은 수동 오르간이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건반 하나를 누르면 벽면의 장치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소리를 내는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세월의 흔적이 가득한 이 기계를 정성껏 관리하는 미국인들의 태도에서, 오래된 것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느낄 수 있다.
120년이 다 된 목조 건물의 관리인이 증조할머니가 그곳의 역무원이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배 나온 할아버지들이 수십 년 된 증기기관 트랙터를 몰고 퍼레이드를 펼치는 풍경은, 그들의 삶 속에 스며든 ‘오래됨’의 가치를 웅변하고 있었다.
이 축제를 보며 자연스럽게 내 삶의 일부가 된 오래된 물건들이 떠올랐다.
내가 연주하는 색소폰은 1947년에 만들어졌는데, 이 시기에 만들어진 색소폰들은 이 세상에 다시는 나올 수 없는 명기로 알려져 있다. 악기 제조사들은 그 시절의 소리를 복원하려고 수많은 시도를 했지만, 실패했다.그래서 아직도 사람들은 1940~1950년대에 만들어진 색소폰을 최고의 색소폰으로 일컫고 있다.
그 이유로 가장 많이 회자되는 이야기 중 하나는 소재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직후 남은 포탄을 녹여 만든 황동에는 의도치 않게 다양한 불순물이 섞여 있었고, 이 독특한 조합이 오히려 전설적인 악기의 음색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결국 이 악기는,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다시는 만들 수 없는 시대의 산물이 되었다.
내 서재의 책장 역시 1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에서 만들어져 미국 서부까지 흘러온 것이다. 5년 전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단돈 50달러에 구입했지만, 지금도 뒤틀림 하나 없이 튼튼하게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 아들이 쓰는 장난감, 필자가 모은 보드게임, 외삼촌께 물려받은 골프채, 누군가 버리려던 것을 가져와 조율한 피아노까지, 내 주변의 많은 물건들은 다른 이들의 손을 거쳐 필자에게로 온 것이다.
어머니와 아내는 계절마다 옷을 챙겨주지만, 나는 사계절 내내 같은 두 벌의 옷과 외투 하나, 잠옷 한 벌로 살아간다. 이쯤 되면, 많은 것을 바꾸지 않아도 우리는 관에 들어갈 때까지 큰 불편 없이 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한국의 오래된 아파트 단지들을 보며 나무와 꽃, 그리고 햇볕에 바랜 외벽이 어우러진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발견하곤 한다. 정말 무너질 정도가 아니라면, 굳이 재건축을 서두르기보다 지금 가진 것을 잘 보존하며 그 위에 새로운 기억들을 덧입히는 삶도 충분히 가치 있지 않을까? 새로운 것을 좇기보다, ‘오래됨’의 가치를 발견하고 지키는 삶이 우리에게 더 큰 행복을 가져다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 쉽게, 너무 자주 새로운 것을 갈망하는지도 모른다. 새것만이 가치가 있다고 믿으며, 아직 수명이 한참 남은 물건들조차 버리고 바꾸려 한다. 하지만 시간의 손길과 사람의 이야기가 깃든 물건에는 새것이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깊이와 따뜻함이 있다. 그것은 결국 우리 자신의 삶과 기억이 켜켜이 쌓인 결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