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주 연방 하원 선거구 획정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민주당이 주도하는 가주 의회 양원은 지난 21일 압도적인 표차로 선거구 획정을 최종 결정짓기 위한 주민투표안을 통과시켰고, 개빈 뉴섬 주지사는 곧바로 서명했다. 이에 따라 오는 11월 4일 유권자들은 선거구 획정 여부를 직접 결정하게 된다. 민주당은 이를 정치적 승리로 포장하고 있지만, ‘공정성의 모델’이라던 가주의 자부심을 집권세력이 스스로 걷어찬 순간이었다.
민주당이 내세운 명분은 단순하다. 텍사스가 공화당에 유리하게 선거구를 조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으니, 가주 역시 맞불을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 주의 일방적 행동에 또 다른 주가 똑같은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법치와 절차는 ‘눈에는 눈’의 흥정거리가 아니다. 또 정치란 결국 주민을 위한 것인데, 이 결정에는 주민의 목소리가 빠져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절차적 정당성의 파괴다. 가주는 지난 2010년부터 독립위원회가 선거구 획정을 담당해왔다. 이는 특정 정당의 이해관계가 아닌 공정한 기준에 따라 선거구를 정하자는 취지에서 출발한 제도였다. 그러나 이번에 뉴섬 주지사와 민주당 다수 의회는 헌법까지 비틀어가며 자신들의 안을 밀어붙였다. 이는 제도 자체를 무력화하는 위험한 선례로 남을 수밖에 없다.
더욱이 절차는 ‘속전속결’이었다. 원래는 지난 22일 표결이 예상됐지만, 민주당은 15일 획정안을 발표한 지 불과 6일 만에 의회 표결을 강행했다. 공화당 의원들에게 발언권조차 제대로 허용하지 않은 채 모든 것을 독단적으로 처리했다. 이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인 토론과 견제를 무시한 처사다.
정책적 효과도 노골적이다. 뉴섬 주지사가 공개한 획정안은 공화당 현역 5명을 ‘더 푸른’ 지역으로 몰아넣고, 민주당 경합 지역 세 곳을 더 푸르게 만든다. ‘공정하고 경쟁적인 선거구’라는 원칙 대신 ‘상대가 5석 가져가면 우리도 5석’이라는 등가교환 논리가 기준이 됐다. 유권자의 목소리는 지역사회 대표성으로 모아져야 한다. 그런데 획정안은 공동체 결속과 생활권을 자르는 ‘정치적 메스’가 됐다.
경제적 부담도 가볍지 않다. 주민투표 예상 비용만 2억3500만 달러에 달한다. 이는 고스란히 주민 세금으로 충당된다. 경기 회복, 치안 강화, 주택난 등 산적한 현안과 재정 적자로 허덕이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적 보복 청구서를 얹는 모양새다. 정책 우선순위가 권력 연장보다 뒤에 있는가, 앞에 있는가. 그 질문에서 뉴섬 주지사는 고개를 들지 못한다.
민주당은 그동안 무차별적 이민 단속 등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독단을 비판해왔다. 그렇다면 해법은 더 높은 기준에 스스로를 묶는 것이어야 했다. “그들도 하니 우리도 한다”는 보복과 독단 정치가 아니라, “우리는 달라야 한다”는 규범 정치를 보여줬어야 했다. 그런데도 같은 방식으로 대응하는 순간, 주민들의 삶은 정쟁의 희생물이 될 뿐이다. 정치는 성숙한 절제와 책임에서 출발해야 한다.
결론은 간명하다. 유권자는 ‘맞불’이 아니라 ‘원칙’에 표를 던져야 한다. 독립위원회 기능을 멈추고 색깔 지도에 도장 찍는 순간, 가주는 스스로 자랑하던 공정성 모델에서 미끄러져 내린다. 오는 11월 4일, 선택은 하나다. 권력을 위한 선거구 지도를 고르는가, 원칙을 위한 지도를 되찾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