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삶의 뜨락에서] Turquoise World

New York

2025.08.25 20:21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올여름엔 특별한 여행 계획을 세우지 않았었는데 땡 더위가 기습을 하자 뉴욕에서 탈출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한 지인이 버킷리스트 일 순위로 미국 내 국립공원을 샅샅이 돌아보고 싶다고 한 말이 생각나서 캐나다 로키산맥으로 정했다. 일단 뉴욕에서 시애틀로 날아가 밴쿠버에서 하루를 묵고 다음 날 밴쿠버 시내와 브리티시 콜럼버스의 수도인 빅토리아 시티에 페리를 타고 다녀왔다. 이 아담하고 예쁜 도시는 유럽의 아기자기한 풍경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지금도 캐나다는 영연방과 깊은 관련이 있어 영국풍의 건물, 거리, 시가지가 고풍스러운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운 좋게도 나는 그토록 환상적인 빅토리아시를 수채화로 그리고 있는 화가를 만나 그의 화법에 넘어가 작품 몇 점을 사서 왔다.  
 
다음에 들린 곳은 그 유명한 캐필라노 현수교였다. 이 흔들다리는 브리티시 컬럼비아에서 제일 순위의 관광명소로 알려져 있다. 원주민의 토템으로 시작되는 이 흔들다리는 1889년에 지어졌는데도 관리를 워낙 잘해와 지금도 안전하게 이용되고 있다. 이 다리는 깊은 숲속에 450피트 길이의 아찔한 흔들다리로 지어졌으며 그 주변의 생태학적인 환경을 고려해 지은 교육실습 현장으로 다 돌아보는데 2시간 이상이 걸린다.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면 끝없이 펼쳐진 정글 참나무 숲과 계곡이 만나 이루는 광경은 나의 고개를 숙이게 했다.  
 
밴쿠버에서 다음 코스인 재스퍼 국립공원까지는 8시간 장거리여서 중간에 하룻밤을 쉬고 계속 달려 도착했다. 재스퍼는 밴프와 비교해 볼 때 조금 덜 개발된 국립공원으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울울창창한 침엽수림 사이사이로 흐르는 강물이 계곡을 이루고 계곡이 모여 거대한 폭포가 되어 부서진다. 산 위쪽은 빙하가 서서히 녹아 얼음물로 흘러내려 호수를 이루고 호수는 온통 터키옥(turquoise) 색이다. 물색도 날씨의 영향을 받아 시시각각 변하고 감히 인간이 아니 화가도 흉내 낼 수 없는 신비로운 색채다. 가장 근접하게 옥색이나 에메랄드색이라고들 하지만 난 동의할 수가 없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트레일은 숨이 막히는 경관으로 많은 하이커를 유혹한다. 계곡은 계속 옥빛을 품어내 폭포가 되고 찬란한 옥빛 물보라가 되어 춤을 추며 하늘로 올라간다. 폭포 뒤로 보이는 먼 산은 눈에 덮여있거나 빙하로 흰 녹색의 빛이 화창한 햇빛에 반사되어 영롱하다.  
 
재스퍼를 떠나 밴프로 달린다. 밴프는 많은 이들의 버킷리스트에 꼭 꼽히는 곳이다. 워낙 유명한 곳이다 보니 구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이미지가 많다. 하지만 사진으로도 매우 아름답지만 실제로 보면 정말 감탄이 절로 나오고 할 말을 잃게 된다. 모레인 호수, 루이스 호수, 페이토 호수, 에메랄드 호수 등 가는 곳마다 이름을 다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호수가 많아 세상은 온통 Turquoise World다. 지구 온난화로 빙하가 많이 녹아내렸지만, 설상차를 타고 올라가 빙하 위를 걷는 기분은 지구가 아닌 하늘과 맞닿은 우주를 걷는 듯했다.  
 
자연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겸손이다. 이런 무공해의 자연을 벗 삼고 있으면 나의 눈은 정화되고 머리는 맑아지며 가슴은 뻥 뚫리고 마음은 맑은 호수가 된다. 명랑한 하늘에 경이로운 구름이 시시각각 그리는 수채화를 배경으로 황홀한 신록을 뚫고 그 사이사이로 스쳐 나오는 향긋한 바람이 나를 흔들면 나는 비틀거린다. 찬란한 태양 아래 하늘과 구름, 참나무 숲과 바람으로 물든 나는 한 그루의 나무가 되어 호수 속으로 퐁당 빠진다. 일본인 유키 구라모토가 레이크 루이스를 방문하고 너무 감동한 나머지 작곡한 곡이 있다. 그 음악을 들으면서 그의 재능이 한없이 부럽기도 했지만 동시에 우리의 스승인 자연을 이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는 나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고 안타깝다.

정명수 / 시인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