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주하원, 23일 주상원서 각각 통과…애벗 주지사 서명 앞둬 민주당 의원들의 수정안·필리버스터 등 무산돼…법적 투쟁 예고
텍사스의 새로운 연방하원 선거구 재조정안이 통과되자 일부 시민들이 시위를 하고 있다.
공화당에 유리하게 그려진 텍사스의 새로운 연방하원 선거구 재조정안(congressional redistricting map)이 주의회를 통과해 그렉 애벗(Greg Abbott) 주지사의 서명 절차만을 남겨두게 됐다고 달라스 모닝 뉴스 등 지역 언론들이 보도했다.
텍사스의 새 연방하원 선거구 재조정안은 지난 20일 주하원의 표결에서 찬성 88표, 반대 52표로, 23일 주상원의 표결에서는 찬성 18표, 반대 11표로 각각 승인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화당이 2026년 중간선거에서 연방하원 과반을 지키도록 지원하기 위해 이번 재조정안을 강력히 밀어왔다. 새 선거구에는 공화당에 유리한 5개 지역이 추가됐다.
공화당 소속인 애벗 주지사는 조만간 법안에 서명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민주당은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트럼프와 텍사스 공화당 다수당 주도의 입법 과정은 민주당 의원들의 2주간 보이콧을 촉발했으며 이로 인해 전국적으로 선거구 재조정 움직임이 확산됐다.
민주당은 주상원 표결을 새벽까지 끌고 가 통과를 지연시키려는 마지막 저항을 준비했다. 상원 민주당 대표인 캐롤 알바라도(Carol Alvarado) 의원은 SNS를 통해 필리버스터에 나서 몇 시간 동안 연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필리버스터 시작을 앞둔 시점에서 상원은 장시간 저녁 휴회를 선언했다. 의원들이 회의장에 복귀했을 때, 알바라도 의원은 발언 기회를 얻지 못했다.
공화당이 그녀가 필리버스터를 앞두고 모금 활동을 벌여 상원 규정을 위반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공화당 찰스 페리(Charles Perry) 주상원의원은 “선거 목적에 주 자원을 활용하는 것은 위법 소지가 있으며 최소한 비윤리적”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소속 사라 에크하트(Sarah Eckhardt) 주상원의원은 SNS ‘엑스(X)’에 “모금 이메일을 이유로 필리버스터를 차단한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공화당은 텍사스 유권자의 표를 빼앗아 수백만 달러를 모금하면서도 민주당의 발언권은 억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수주간 이어진 이번 공방은 민주당의 보이콧과 공화당의 체포 위협으로 텍사스 의회를 뒤흔들었다. 실제로 대부분의 공방은 주하원에서 전개됐다.
20일 주하원의 심의에서 법안을 발의한 토드 헌터(Todd Hunter/공화당/코퍼스크리스티) 주하원의원은 선거구 지도를 직접 그린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지 못한다고 주장하면서, 다만 법적 자문을 맡은 법무법인 버틀러 스노(Butler Snow)에서 제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연방대법원이 2019년 판결(Rucho v. Common Cause)을 통해 선거구 획정 과정에서의 당파적 게리맨더링은 연방법원의 관할 밖이라고 밝힌 점을 거듭 강조했다. 헌터 의원은 “선거구 재획정은 언제든 있을 수 있다. 투명성을 원한다면 이것이 연방대법원의 법적 투명성이다. 이번 계획의 근본 목표는 공화당의 정치적 성과를 개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헌터 의원의 설명에도 민주당 의원들은 소수민족 유권자의 표를 분산·약화시키는 방식으로 선거구가 설계됐다며 집중 추궁했다. 의사당 로툰다 홀에서는 동시에 반대 시위가 벌어졌다. 시민단체와 활동가, 연방의원, 일반 주민들이 모여 구호를 외치고 연설을 이어갔으며, “게리맨더링을 끝내고 민주주의를 지켜라(END GERRYMANDERING SAVE DEMOCRACY)”라는 대형 현수막이 내걸렸다.
헌터 의원은 새로운 선거구 획정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기존 선거구 중 일부가 ‘소수민족 연합 기회 선거구(coalition-opportunity district)’로 그려졌다고 주장했다. 이는 서로 다른 비백인 집단이 연합해 대표를 선출할 수 있도록 설계된 지역구를 뜻한다. 그는 최근 제5 연방항소법원의 판례(Petteway v. Galveston County)를 인용해, 소수민족 연합 선거구는 1965년 투표권법 제2조에 어긋난다고 강조했다. 해당 사건은 아직 법적 분쟁이 진행 중이다.
헌터 의원은 새로 그려진 5개 선거구 중 4곳이 히스패닉 다수 지역이라고 주장했으나 알만도 월(Armando Walle/민주당/휴스턴) 주하원의원은 휴스턴 중심의 제29 선거구가 분할되면서 히스패닉 기회 선거구로서의 성격을 잃게 됐다고 반박했다. 이에 헌터 의원은 “29 선거구의 정치적 성향은 여전히 민주당”이라고 맞섰다.
그는 민주당이 현재 차지하고 있는 제9·28·32·34·35선거구를 공화당이 탈환할 목표 지역으로 지목했다. 헌터 의원은 민주당의 정족수 파행 직후 스스로 지도 개정에 착수했으며 법률자문을 받아 공화당의 선거 성과를 강화하기 위해 이번 안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지나 히노호사(Gina Hinojosa/민주당/오스틴) 의원 등 민주당 측은 주민들이 안건에 대해 단 한 번도 공식적으로 의견을 낼 기회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헌터 의원은 다수당인 공화당이 반드시 청문회를 열 의무는 없다며 1차 특별회기에서 이미 4차례 장시간 공청회를 진행했다고 맞받았다. 그는 “18일 동안 뭐든 할 수 있었지만 여러분이 회의를 보이콧했다. 그로 인해 절차가 지연됐다”며 민주당 책임론을 제기했다.
민주당은 이번 획정안이 단순한 당파적 게리맨더링이 아니라 인종 차별적 성격을 띤다고 반발했다. 크리스 터너(Chris Turner/민주당/그랜드프레리) 의원은 법안을 무력화하는 수정안을 제안했으나 부결됐다. 그는 “이 법안은 흑인·히스패닉을 비롯한 유색인종 텍사스 주민들을 의도적으로 분산·집중시켜 차별한다”면서 “이는 민주주의에 대한 사기행위”라고 비판했다.
트레이 마티네즈 피셔(Trey Martinez Fischer/민주당/샌안토니오) 의원은 법안이 투표권법 제2조를 준수하도록 하는 수정안을 내놨으나 무산됐다. 그는 “지금 논의는 단순히 붉은 셔츠냐 파란 셔츠냐의 문제로 전락했다”고 지적했다.
해럴드 더튼(Harold Dutton/민주당/휴스턴) 의원은 연방법원이 명시적으로 흑인·라틴계 유권자에 대한 차별이 없다고 판결하기전까지 효력을 발휘하지 않도록 하자는 수정안을 제안했으나 역시 거부됐다. 도나 하워드(Donna Howard/민주당/오스틴) 의원은 독립적 선거구 획정위원회가 설립되기전까지 효력을 유예하는 수정안을 제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오늘 벌어지는 일은 명백히 다가올 중간선거의 결과를 사전에 결정하려는 시도”라고 성도했다.
진 우(Gene Wu/민주당/휴스턴) 주하원 소수당 대표는 법안과 제프리 엡스타인(Jeffrey Epstein) 사건 관련 자료 공개를 연계하는 이색 수정안을 제안했지만, 브리스코 케인(Briscoe Cain/공화당/디어파크) 의원의 문제 제기로 비관련 조항으로 판단돼 기각됐다. 민주당은 이날 총 12건의 수정안을 발의했으나 모두 부결·철회되거나 불발로 끝났다.
앞서 민주당 의원들은 의회 정족수를 깨기 위해 텍사스를 떠나 2주 넘게 표결을 지연시켰다. 이 과정은 전국적 주목을 받았으며 캘리포니아 등 민주당 다수 주들은 이에 대응해 자체 선거구 조정 작업에 착수하기도 했다. 그러나 텍사스 주하원 내부에서는 오히려 공화당에 유리한 방향으로 선거구가 재설계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23일의 주상원 심의에서도 민주당은 수시간에 걸친 토론으로 법안 처리를 늦추며, 법안 발의자인 공화당 필 킹(Phil King) 주상원의원에게 선거구 재조정안이 유권자 영향력을 인종별로 약화시켜 ‘투표권법(Voting Rights Act)’을 위반한다는 점을 추궁했다. 킹 의원은 이 주장을 강하게 부인하며 “내 목표는 두 가지였다. 모든 지도가 합법적일 것, 그리고 텍사스 공화당 후보들에게 유리한 지도를 만드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지도가 통과되지 않으면 공화당 다수당이 하원에서 무너질 위험이 크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대립은 전국적인 선거구 재조정 전쟁으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민주·공화 양당 주지사 모두 지도 재작성에 나서고 있다. 캘리포니아 민주당은 지난 21일, 민주당에 추가로 5석을 안겨줄 수 있는 새 연방하원 선거구 재조정안을 주민투표에 부치는 특별선거 법안을 통과시켰다. 개빈 뉴섬(Gavin Newsom) 주지사는 즉각 서명했다. 뉴섬 주지사는 “6주 전만 해도 이런 일을 할 거라 상상하지 못했다”며 “이는 텍사스에서 민주주의를 공격한데 대한 대응”이라고 빍혔다. 캘리포니아는 텍사스와 달리 비당파적 위원회가 선거구를 그려 정치적 충돌을 피하기 때문에, 이번 지도는 반드시 주민투표로 승인받아야 한다. 이에 대해 애벗 주지사는 22일, “캘리포니아의 재조정은 농담(joke)이다. 텍사스의 새 지도는 합헌이지만 캘리포니아의 지도는 폐기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국적으로 기존 선거구 구도는 민주당이 과반에 3석 모자라는 상황이다. 통상 중간선거에서는 현직 대통령의 소속 정당이 의석을 잃는 경향이 있다. 텍사스 재조정안은 이미 2026년 선거판을 흔들고 있다. 텍사스 민주당 최다선 의원 로이드 도게트(Lloyd Doggett) 주하원의원은 지난 21일, 새 지도가 시행되면 재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개편안에 따르면 그의 지역구는 또 다른 민주당 현역인 그렉 카사르 의원 지역과 겹치게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인디애나, 미조리 등 다른 공화당 주도 주에도 공화당이 승리할 수 있는 지역구를 늘리기 위해 지도 개편을 촉구해 왔다. 오하이오 공화당도 이미 선거구를 더 당파적으로 재조정할 계획을 잡아놓았다. 애벗 주지사는 “공화당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통상 선거구 재조정은 인구조사 직후 10년마다 진행된다. 일부 주에는 제한 규정이 있지만, 연방 차원에서는 임기 중간에 지도를 다시 그리는 것을 막는 법적 장치는 없다. 연방대법원은 ‘헌법은 인종을 기준으로 선거구를 조정하는 것만 금지할 뿐, 정당적 게리맨더링은 위헌이 아니다’라고 판결한 바 있다.
민주당이 장악한 주에서는 캘리포니아처럼 비당파 위원회나 지도 재작성 제한 규정을 두고 있는 경우가 많아, 공화당이 비교적 자유롭게 재조정에 나설 수 있는 상황이다. 예컨대 뉴욕은 2028년까지 새 지도를 그릴 수 없으며 그때도 주민투표를 거쳐야 한다. 캘리포니아의 비당파 선거구 위원회는 2008년 주민투표로 설치됐으며, 2010년 투표를 통해 연방하원 선거구까지 권한이 확대됐다.
여야 모두 이번 선거구 전쟁의 파급력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캘리포니아 공화당 하원 소수당 대표 제임스 갤러거(James Gallagher) 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다른 지역에서 공화당 의석을 늘리려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그는 뉴섬 주지사의 ‘불에는 불로 맞선다’는 접근법 역시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갤러거 의원은 “불을 불로 막으면 어떻게 되겠느냐”며 “결국 모든 것이 불타 없어질 것”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