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청년들이 만든 무대, 역사와 문화를 잇다 '가평 전투에서 광복절까지…'

Vancouver

2025.08.26 09:34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뮤지컬 링크(R;Link), 한국-캐나다 수교 60년을 넘어 미래를 잇다
밴쿠버 중앙일보

밴쿠버 중앙일보

캐나다 노스밴쿠버에 위치한 캐필라노 대학교 BlueShore Financial Centre for the Performing Arts 공연장. 무대의 막이 오르자, 캐나다 국가 선율 위에 한국의 아리랑이 겹쳐 울려 퍼졌다.
 
익숙한 듯 낯선 두 음악이 한 공간에서 만나자 객석은 순간 숨을 고르듯 조용해졌다. 한국과 캐나다, 서로 다른 역사와 정서가 무대 위에서 교차하며 이날 공연의 서막을 알렸다.
 
이날 선보인 작품은 한국과 캐나다 청년 예술가들이 함께 만든 뮤지컬 ‘링크(R;Link)’다. 한국전쟁 가평 전투를 모티프로 삼은 이번 작품은, 캐나다 국민 스포츠인 아이스하키의 ‘아이스 링크(Rink)’와 ‘연결(Link)’라는 상징을 결합해 양국의 역사의 순간을 무대화했다.
 
단순한 재현을 넘어, 캐나다가 ‘도와준 나라’라는 인식에 머무르지 않고 한국이 세계 각국의 연대와 희생 덕분에 성장했음을 일깨웠다. 오늘의 청년 세대는 이를 바탕으로 “왜 지금 우리가 함께 평화를 지켜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관객 앞에 던졌다.
 
가평 전투에서 출발한 국제 합작
 
이번 프로젝트의 출발점은 한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캐나다 방문이었다. 전쟁기념관을 찾은 장관은 가평 전투 이야기를 듣고 “양국 청년들이 함께 뮤지컬을 만든다면 역사적 의미가 크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를 계기로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KOFICE) 교류사업본부 상호문화팀이 주관을 맡아 구체적인 실행에 나섰다. KOFICE는 참여 대학을 공모했고 최종적으로 한양대학교가 선정됐다.
 
한양대학교 조한준 교수와 협력진의 역할
사진=한양대학교 조한준 교수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한양대학교 조한준 교수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번 공연은 KOFICE의 국제 교류 사업의 일환이었으며, 실제 무대화하는 과정은 한양대학교가 담당했다. 조한준 교수는 캐필라노 대학교와의 파트너십을 성사시키고, 인디저너스(Indigenous) 예술가와의 협업을 연결하며 국제 공동 작업의 교두보 역할을 했다.
 
무대를 실제로 완성시킨 주역은 안준환 협력연출과 배우들이었다. 언어와 정서의 차이로 어려움도 있었지만, “작은 질문과 대화가 결국 서로를 잇는 다리가 됐다”는 말처럼 끊임없는 소통을 이어갔다. 리허설 현장에서는 캐나다의 날씨에서 한국의 음식까지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며 친밀감을 쌓았고, 장면 해석을 두고 의견이 엇갈릴 때마다 대화와 협업으로 합의점을 찾아갔다. 이런 과정이 쌓여 결국 무대 위 화합으로 이어졌다.

인디저너스 문화 반영의 고민과 의미  
밴쿠버 중앙일보

밴쿠버 중앙일보

작품은 한국과 캐나다의 관계를 넘어 캐나다의 인디저너스(Indigenous, 캐나다 원주민을 지칭하는 공식 명칭으로 퍼스트 네이션·메티스·이누이트를 포함) 문화를 무대에 함께 담았다.
 
캐나다가 오랫동안 인디저너스를 억압하고 ‘캐나다화’하려 했던 역사는 한국이 전쟁과 식민의 과정을 겪으며 남긴 상처와 맞닿아 있다. 인디저너스는 땅을 소유의 개념이 아닌, 자연 속에서 함께 살아가며 지나가는 존재라는 세계관을 전한다. 이는 전쟁이 남긴 인간의 소유욕과 폭력성을 반성하게 만들며, 작품의 메시지를 더욱 선명하게 한다.
 
안준환 연출은 “온전히 알지 못한 문화를 무대화하는 것이 조심스러웠다”고 당시 어려웠던 점을 말했다. 이러한 한계는 인디저너스 대학과의 긴밀한 협업을 통해 인디저너스 출신 작가와 배우가 참여하며 보완됐다.
 
끊임없는 교수진과 연출진의 자문 속에서 조심스럽지만 의미 있는 대화를 이어가며 작품을 완성해 나갔다. 이 작품은 한국과 캐나다의 협력 관계를 넘어, 한국이 이끌며 캐나다와 인디저너스 간의 관계를 함께 조명한다는 점에서 높은 문화외교적 성과를 남겼다.
 
광복절의 울림과 국제 교류의 의미
사진=안준환 협력연출 (왼쪽), 한현구 배우(오른쪽)

사진=안준환 협력연출 (왼쪽), 한현구 배우(오른쪽)

 이번 공연은 광복절을 앞둔 시기에 열려 더욱 특별한 의미를 남겼다. 한국전쟁 속 함께 싸워준 캐나다군의 이야기를 무대에 올린 작품이기에, 광복절과 맞물려 관객에게 깊은 울림을 안겼다. 이는 단순히 과거를 기리는 자리가 아니라, 한국-캐나다 수교 60년을 넘어 미래 세대가 함께 이어갈 협력과 평화를 약속하는 무대였다.
 
 
 
이 같은 무대가 가능했던 것은 국제 교류 사업을 통해 청년 예술가들이 만나고 협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언어와 문화의 차이를 넘어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하나의 작품을 완성해낸 과정은 그 자체로 문화외교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링크(R;Link)'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이자, 앞으로의 세대가 평화를 지켜갈 이유를 일깨운 상징적인 무대였다.

[밴쿠버 중앙일보=엄주형 기자 [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