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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총기, 자기방어 대비라는 모순

Los Angeles

2025.09.07 19:00 2025.09.07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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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재 사회부 부장

김형재 사회부 부장

20년 전 인디애나주 미샤와카라는 소도시에서 처음으로 미국이라는 나라를 접했다. 낯선 나라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이 신기했다. 호기심은 커졌고, 한국에서 체험할 수 없던 여러 경험은 짜릿했다. 소방관으로 일하던 어학원 한 호스트 가장은 소방서에 초대해 영화로만 보던 큰 소방차를 직접 설명해 줬다.
 
그 소방관에게 “당신도 총을 가지고 있나요?”라고 물었다. 미국인이라면 다들 총기를 소유하지고 있지 않느냐라는 의도의 질문에 소방관은 눈빛이 변했다. “나는 총을 소유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총이 자기방어 수단이라고 말하지만, 총기를 집에 둠으로써 발생할 위험이 더 크다.”
 
그때 소방관의 진지했던 눈빛과 표현이 아직도 생생하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총이 흔하게 나왔기 때문에 그 위험을 가볍게 여겼던 내 경박함이 창피했다. 그 후 기자로 각종 사건사고 현장을 취재하면서 그 소방관의 말뜻을 이해하게 됐다.
 
10여 년 전 가디나 한 아파트 2층 현관에는 핏자국과 함께 알 수 없는 유기물이 흩뿌려져 있었다. 현장에서는 한인 남편이 아내를 총격 살해하고 본인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전형적인 ‘살해 후 자살(murder-suicide)’ 사건이었다. 남편의 정확한 범행 동기는 미궁에 빠졌지만, 가정불화로 추정됐다. 현관의 유기물은 총상에 의한 뇌수였다. 총격 사건 현장의 처참함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살해 후 자살은 비극 중에서도 비극이다. 단순 자살이 남은 가족에게 평생 가슴 아픈 트라우마를 안긴다면, 살해 후 자살은 커뮤니티까지 비통함에 빠지게 한다.  
 
최근 한인사회에서 가족 살해 후 자살 사건이 다시 반복돼 우려를 키운다. 가해자의 공통점은 가장이면서 총기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정신건강 전문가는 ‘자살’을 정신건강이 나빠진 극단적 부작용으로 본다. ‘우울증, 조울증, 불안장애’를 겪으면 삶을 비관하고 부정적으로 해석한다고 한다. 감정 기복은 반복되고 급기야 자살행동을 촉발한다.
 
특히 총기는 정신건강이 불안정할 때 가장 경계해야 할 무기라고 한다. 정신건강전문의 수잔 정 박사는 “사람도 감정(변연계)에 지배되는 포유동물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면서 “생리학적으로 이성(전두엽)은 25세가 되어야 정립된다. 분노에 휩싸일 때 총기가 옆에 있다면, 그것을 사용하고 싶은 충동은 커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가정불화, 우울증 징후가 보인다면 총기는 더더욱 경계해야 한다. 정 박사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가족은 때로 가장 미워하는 대상이 되기도 한다. 특히 가족을 내 의지대로 소유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가정에서 총기 소유는 멀리해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때로 자기방어를 이유로, 만일의 사태에 가족을 보호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총기를 소유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총구가 거꾸로 본인과 가족에게 향할 수 있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한다. 감정 기복이 심할 정도로 이성이 작동하지 않을 때는 주변에 이를 솔직히 털어놓고, 전문가에게도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해야한다. 비극을 막는 첫걸음이다.
 
총기 소지 위험을 미리 차단하는 자세도 중요하다. 캘리포니아주는 2016년부터 ‘총기 폭력 제한 명령(GVRO·Gun Violence Restraining Order)’을 시행 중이다. 누군가 정신건강이 불안정하고 총기 폭력 가능성까지 보일 경우 법집행기관에 도움을 요청해 해당 인물의 총기 구매·접근·소지를 금지할 수 있다. GVRO( reducetherisk.ca.gov 참조)는 가족, 동거인, 직장 동료, 고용주, 학교 관계자, 친밀한 파트너 등 우려 대상과 관계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김형재 / 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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