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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여자도 고도를 기다린다…

Los Angeles

2025.09.11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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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현 극작가·시인

장소현 극작가·시인

꼭 보고 싶은 연극이 있었다. 한국의 대표적 원로배우 신구(87)와 박근형(83) 두 분이 열연하는 〈고도를 기다리며〉가 그 작품이다. 연기경력 60년이 넘는 원로배우들의 농익은 연기를 감상하는 것만도 벅찬 감동인데, 게다가 그 작품이 〈고도를 기다리며〉라니….
 
극작가 사무엘 베케트(1906~1989)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부조리극의 대명사로 불리는 긴 설명이 필요 없는 현대의 고전이다. 인간 존재의 의미와 무의미에 대한 질문을 무대언어로 살려낸 이 작품은 1953년 프랑스 파리에서 초연된 이후 지금까지 세계 곳곳에서 꾸준히 공연되고 있다.  
 
처음 공연되었을 때에는 일반 대중은 물론 연극 평론가들에게까지 “도무지 무슨 내용인지 이해가 안 된다”는 혹평에 시달렸지만, 공연이 거듭될수록 공감대가 넓어졌고, 베케트가 1969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이후에는 한층 더 유명해졌다.
 
이 연극은 한국에 유달리 사랑받으며 자주 공연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임영웅 연출 버전은 1969년 초연된 이래 거의 매해 장기공연을 가지면서, 수많은 배우들이 무대를 빛냈다. 이번 공연은 한국판 중 최고령 원로배우들의 열연으로 신드롬을 일으키면서, 전국을 순회하며 공연되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꼭 보고 싶었지만, 연극 하나 보겠다고 한국까지 갈 팔자는 못 되는지라, 그저 토막 영상을 찾아보는 것으로 꾹 참아야 했다.
 
이 공연을 보고 싶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원로 여배우 박정자(82) 씨가 한국 공연 역사상 첫 여배우 출연으로 화제를 모았고, 소년 역을 여배우가 맡았기 때문이었다. 어떤 무대가 될지 상상만 해도 흥미로웠다. 왜냐하면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는 금녀(禁女)의 작품으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극작가 베케트는 이 작품에 여배우가 등장하는 것을 허가하지 않았다. 워낙 유명하고 자주 널리 공연되는 작품인지라, 연출가나 배우들은 자기 나름의 개성을 살리고 다양한 해석을 하고 싶어 하는데, 완고하게 용납하지 않았다. 그저 금지하는 정도가 아니라, 소송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으로 막았다.
 
예를 들어, 베케트는 1988년 네덜란드의 한 극단이 여배우들을 캐스팅해서 공연을 준비하자 직접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베케트가 말한 반대 이유는 “여성은 전립선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극중 인물이 종종 소변을 보기 위해 무대를 떠나는 설정에 대해 전립선 문제가 있어서라는 설명이다. 베케트 사후에도 여배우 출연과 관련한 소송이 제기됐다. 물론, 베케트 측이 모든 경우 승소한 것은 아니고, 예외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극작가 베케트는 생전에 자신의 희곡 그대로 무대에 올릴 것을 요구했다. 새로운 해석이 작품을 왜곡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 것이다. 그리고, 저작권을 관리하는 ‘베케트 에스테이트’는 세계 각국에서 대본 수정, 음악 사용 등 희곡에 없는 시도를 할 때마다 소송 등 제동을 거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번 신구, 박근형의 〈고도를 기다리며〉에서도 앙코르 공연에는 박정자와 소년 역의 여배우는 참가하지 못했다. 저작권 가진 ‘베케트 에스테이트’의 강력한 요구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런저런 이유를 댔지만, 요점은 ‘여배우는 안 된다’는 것이다. 좀 어처구니가 없다. 이 작품의 주제가 인간의 보편적 이야기인데 성별의 차이가 무슨 의미를 갖는지? 여자 햄릿이 버젓이 무대에 오르는 세상이다. 박정자는 이렇게 자기 생각을 밝혔다.
 
“베케트 에스테이트가 〈고도를 기다리며〉 앙코르 공연에 여배우 출연을 안 된다고 한 결정은 넌센스라고 생각한다. 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변하는데, 너무 시대착오적 아닌가. 만약 베케트가 지금 살아있더라도 여배우 출연에 대한 과거의 태도를 고수할지 모르겠다.”
 
나도 베케트 선생님께 묻고 싶다. 고도는 신(神)인가? 전립선이 인간의 실존과 무슨 관계인가? 대답이 참 궁금하다. 특히 전립선의 부조리에 대해서….

장소현 / 극작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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