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의 한인교계] 1세 중심의 교회 운영에 한계 차세대와 언어·문화 간극 존재 ‘한지붕 두가족’ 과도기적 양상
주님의 영광교회 주일 오전 예배에서 교인들이 손을 들고 찬양하고 있다. 김상진 기자
한인 교계는 미주 한인 사회의 축소판이다. 교회를 유심히 들여다보면 이민 사회 변화의 흐름이 보인다. 이민 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은 곧 한인 사회가 마주한 현실과 상통한다.
그동안 ‘한인 교회(Korean Church)’는 대체로 1세대 중심의 공동체였다.
교회를 지칭할 때 앞에 ‘한인’이 붙는다는 것은 그만큼 민족적 동질성이 강하게 배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00여 년 전 하와이로 건너온 초기 이민자들의 행적만 봐도 한인 사회는 교회를 중심으로 형성되고 발전해왔다.
LA 한인타운에 있는 미주평안교회 원로인 송정명 목사(81)는 “한인 이민자들은 청교도처럼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교회부터 세웠고, 이는 이민 사회가 교회를 중심으로 구성된 이유”라며 “그동안 이민 교회가 1세대 목회자들의 헌신, 섬김, 희생 등으로 운영됐다면, 이제는 한인 사회의 세대가 바뀌면서 교회도 그 역할이 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인 교회는 1960~1980년대 이민 물결을 타고 급속도로 성장했다. 한인 교회의 존재는 단순히 종교적 공동체를 넘어 이민자를 한데 묶는 사회적 기능까지 감당하게 됐다.
UCLA 유헌성 연구원(사회학)은 “타민족 교회들과 비교했을 때 한인 교회들은 복합적인 요소를 많이 갖고 있다”며 “문제는 세대와 문화가 바뀌면서 이민자의 특성도 변했고, 한인 교회만의 민족적 특성 역시 점차 약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민 세대가 바뀌면서 한국어보다는 영어 중심의 언어적 변화, 문화적 차이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다음 세대는 그동안 민족적 색채가 매우 짙었던 1세 중심 교회의 기능과 역할에 이질감을 느끼게 됐다.
남가주 지역 한 대형 교회에서 시무 장로로 활동했던 유기범(79) 씨는 “1세대에게 미국은 ‘타향살이’지만 2세대에겐 나고 자란 곳”이라며 “‘한인’이라는 경계선이 조금씩 희미해지면서 한인 교계의 토양 역시 바뀌게 됐다”고 전했다.
한인 교계는 이미 세대적, 문화적으로 과도기에 접어들었다. 1세와 2세가 ‘한인’이라는 공통분모만 갖고 모이기에는 여러 부분에서 괴리가 존재하는 상황이다.
이미 2000년대 들어 세대 간 간극을 좁히기 위해 한인 교계에서는 ‘한 지붕 두 가족’ 형태의 교회가 속속 생겨나기 시작했다.
쉽게 말해, 한 교회 안에서 한국어권(KM)과 영어권(EM)으로 회중을 분리한 뒤 영어가 편한 2세들이 독자적으로 공동체를 운영할 수 있도록 교회 구조를 이원화시키는 방식인 셈이다.
실제 남가주사랑의교회, ANC온누리교회, 나성영락교회 등 대다수의 1세권 교회는 영어권 예배를 별도로 만들어 2세들에게 일부 교회 공간을 내주거나 별도 예산을 편성해 재정을 지원해주는 형태로 양 세대가 공존하는 방식을 택했다.
교계의 이러한 변화가 한인 사회에 시사하는 바는 크다.
과도기 가운데 공존 구조는 결국 지속성이 약하다. 교계를 보면 이원화 구조는 결국 분립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
어바인 지역 데이브 노 목사는 “한인 목회자들만 봐도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1세와 2세 사이의 소통은 많이 단절됐고 사실상 따로 분리된 상태로 사역을 한다”며 “이제는 ‘한인’이라는 이민자의 뿌리를 유지하면서도 주류 사회 속에 ‘코리안-아메리칸’ 공동체의 정의가 무엇인지를 재정립하는 것이 오늘날 교회가 당면한 숙제”라고 말했다.
형태적 변화에 따른 대응 능력은 요즘 한인 교계가 안고 있는 고민 중 하나다. 이를 위한 좀 더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협력, 연구 등이 필요한 이유다.
이학준 박사(풀러신학교)는 “이중문화를 신앙의 관점에서 정리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하고, 2세 교육에 대해 이민 교회가 제시할 수 있는 장기적 플랜이 중요하다”며 “지금이라도 뿌리에 기반한 이민 교회의 역사 교육, ‘코리안-아메리칸’으로서 한인들이 갖는 실질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을 고민하는 것 역시 필요한 일”이라고 전했다.
1세대 한인들의 경우 생존형 이민자들이 많았다. 힘겨운 이민 생활을 영위하면서 자녀 세대만큼은 전철을 밟지 않고 언어나 문화적으로 주류 사회에 편입되기를 원했다. 이러한 교육 방식 때문에 한인 2세, 3세들이 주류 사회의 중심부로 향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성장한 차세대가 되레 한인 사회로 회귀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한인 2세인 레이 김(라이트하우스교회)은 “요즘 미국에서는 다민족 교회가 새로운 형태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그 안에 한인이나 소수 인종 교인들은 저마다 결국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며 “소수 인종으로서 한인 사회나 미국 사회에서 주변인으로 있는 경우를 말하는데 결국 이들이 한인 사회로 돌아갔을 때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받아주고 해결해줄 수 있는 교회가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전했다.
트리니티신학대학 피터 차 교수 역시 “현재 2세들 가운데 70~80%가 한인 교회를 떠나 백인 교회, 2세들이 설립한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한다”며 “하지만 중년이 된 2세들은 30~40세들의 정체성을 위해 다시 돌아오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1세대에서 2세대로 변화하고, 주류 사회에서 한인 사회로 회귀하는 현상 속에서 더 이상 한인 교회가 아닌 ‘코리안-아메리칸 교회’로의 정의를 확정하지 못한다면 존립 자체가 어려워진다. 한인 교계의 고민은 곧 한인 사회의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