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렉 애벗(Greg Abbott) 텍사스 주지사가 지난 22일, 성전환자(transgender)의 공공건물·학교 내 화장실 사용을 제한하고 위반 기관에 최대 12만 5,000 달러의 벌금을 부과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화장실 법안(Bathroom bills)’으로 불리는 주상원법안 8(SB 8)은 오는 12월 4일부터 시행되며, 주정부 소유 건물·공립학교·주립대학의 화장실 사용을 출생시 지정된(sex assigned at birth) 성별에 따라 제한한다. 또한 트랜스젠더 수감자의 교도소·구치소 수용 구역 배치에 대한 예외도 두지 않았다. 아울러 출생시 남성으로 지정된 사람은 17세 미만으로 어머니와 함께 서비스를 받는 경우를 제외하고 여성 가정폭력 보호소 출입이 금지된다.
생물학적 성별과 다른 화장실 이용에 민사·형사 처벌을 부과하는 이 ‘화장실 법안’은 텍사스에서 10년 넘게 제안됐으며 이미 19개주에서 통과됐다. 하지만 텍사스 주하원은 2017년 한 차례 격렬한 논란 끝에 추진에 실패했었다. 주상원은 2017년 이후 6차례 화장실 법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주하원은 지난 8월 SB 8을 찬성 86 대 반대 45로 통과시켰다. 수시간의 긴장된 토론 도중 방청석에서 법안 지지 의원들을 향한 야유가 이어졌고 결국 의사당 직원과 공공안전부 요원들이 방청석을 비웠다.
스티브 토스(Steve Toth) 주하원의원(공화당/콘로)는 막판 수정안을 통해 위반 기관의 벌금을 2만 5,000 달러, 재위반시 12만 5,000 달러로 인상했다. 이는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경제적 제재를 담은 화장실 법안이 됐다. 이 수정안은 토론 없이 채택됐고, 주상원은 지난 9월 3일 찬성 18 대 반대 8로 이를 승인했다.
지지자들은 SB 8을 ‘텍사스 여성 프라이버시법(Texas Women’s Privacy Act)’이라고 부르며 여성 탈의실·화장실 등 친밀한 공간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법안 발의자인 안젤리아 오어(Angelia Orr) 주하원의원(공화딩/아이타스카)은 토론에서 “정치적 하위 단체들이 자체적으로 화장실 안전 정책을 마련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누군가의 성적 외모 선호가 생물학적 여성의 안전과 사생활을 우선할 수는 없다. 이 법안이 민간기업에는 적용되지 않으며 개인에게 벌금을 부과하지 않는다”고 부연했다.
반대측은 법이 불필요할 뿐 아니라 트랜스젠더와 잘못 의심받은 시스젠더(cisgender: 타고난 생물학적 성별과 스스로 느끼는 성별 정체성(젠더)이 일치하는 사람)를 괴롭힘에 노출시킨다고 반박했다. 제시카 곤잘레스(Jessica Gonzalez) 주하원의원(민주당/달라스)은 지난 8월 자신이 텍사스 의사당에서 잘못된 화장실을 이용했다는 의심을 받은 경험을 언급하며 이미 유사한 정책이 시행 중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시행 방식에 대해 집중 질의했다. 법안은 기관이 정책 준수를 위해 “모든 합리적 조치”를 취하도록 요구하지만 구체적 방법은 규정하지 않는다. 오어 의원은 “기관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사안”이라고 답했으며 앞서 위원회에서는 외모에 근거해 판단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에린 즈위너(Erin Zwiener) 주하원의원(민주당/드리프트우드)은 “오늘날 화장실에서 누가 더 불편할까. 시스 여성일까, 아니면 괴롭힘을 당할까 두려운 트랜스 여성일까”라고 반문했다.
회의 과정에서는 찬반 의원간 충돌이 잦았다. 지난 8월 주하원 토론 도중 일부 의원들은 소규모 언쟁 끝에 직원들에 의해 분리되기도 했다. 토스 의원은 라파엘 안치아(Rafael Anchia) 주하원의원(민주당/달라스)이 성경 구절을 인용하며 법안 폐기를 위한 수정안을 제안하자 조롱했고 직원의 경고를 받았다. 이후 안치아 의원은 성경 인용을 비판한 힐러리 힉랜드(Hillary Hickland) 주하원의원(공화당/벨턴)과 논쟁을 벌였으며, 다른 의원들 역시 종교적 근거를 내세워 찬반을 이어갔다.
존 브라이언트(John Bryant) 주하원의원(민주당/달라스)은 마무리 발언에서 “우리는 모두 신의 자녀로 태어났고 그렇게 존중받아야 한다. 그것이 성경의 가르침이고, 우리의 양심이 말하는 바다. 정치가 개입할 때만 달라진다”고 꼬집었다.
가정폭력 보호소 관계자들은 법안이 트랜스 피해자뿐 아니라 10대 아들이나 장애 성인 자녀를 둔 여성 피해자들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현재 4개주에서도 성별 기반 제한을 두고 있으나 트랜스 피해자는 별도 숙소 마련시 수용이 가능하다.
텍사스 가정폭력위원회(Texas Council on Family Violence)의 말리 보일스(Molly Voyles) 공공정책 디렉터는 주하원 청문회에서 “핫라인에 전화하는 순간은 곧 죽을 것 같은 순간”이라며 “도망치는 여성 가운데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18세 아들이나, 돌봐야 할 장애 성인 자녀가 있는 경우가 많다. 자녀를 두고 떠나는 선택은 진정한 선택이 될 수 없다”고 증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