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한인타운 인근에 자리한 맥아더 공원. 이 공원에는 한때 미국의 번영을 상징했던 두 영혼의 이야기가 겹쳐져 있다. 한 명은 도시의 발전을 위해 자신의 재산을 기꺼이 내놓은 의사이자 사업가였고, 다른 한 명은 자유 수호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던 전쟁 영웅이다.
공원의 원래 이름은 ‘웨스트레이크 공원’이었다. 1888년 LA로 이주해 도시 발전에 큰 공헌을 했던 의사 헨리커스 월러스 웨스트레이크의 이름을 딴 것이다. 캐나다 몬트리올의 맥길대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에든버러와 비엔나에서 추가 학위를 취득하며 철저히 준비된 의사였던 그는 LA에 정착해 대규모 의료시설을 운영하며 성공을 거뒀다. 그의 사업 영역은 의료 분야에만 머물지 않았다. 초기 성공을 발판 삼아 석유산업과 애리조나의 광산 개발에도 진출하며 막대한 부를 쌓았다.
그러나 그의 진정한 가치는 재산 증식보다 나눔과 기여에서 빛났다. 그는 지역사회와 도시 발전을 위해 자선 활동에 적극적이었다. 특히 겨울철 폭우로 물이 고여 ‘보기 흉한 협곡’이라 불리던 황무지 같은 땅을 개발해 LA시에 기부했다. 이 땅은 오늘날의 맥아더 공원으로 변모했으며, 당시 부유층이 선호하던 주거 지역에 조성되어 도시의 ‘서쪽 호수’라는 별명처럼 지역사회에 아름다운 휴식 공간을 선물했다. 그의 이름은 공원 인근의 웨스트레이크 애비뉴에 여전히 남아 그의 흔적을 기리고 있다.
웨스트레이크 공원은 1942년 5월 7일, 필리핀에서 제2차 세계대전을 이끌던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이름을 따서 개칭되었다. 육군사관학교를 수석 졸업하고, 최연소 육군 참모총장과 원수까지 오른 그의 삶은 곧 육군 그 자체였다. 그는 군인으로서의 탁월한 능력 외에도 독실한 신앙인으로도 유명했다. 그의 어머니 메리 핑크니 하디 맥아더는 아들의 사관학교 생활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웨스트포인트 앞에서 4년간 살았다는 전설적인 일화를 남겼고, 이 일화는 오늘날 ‘헬리콥터 맘’의 원조로 회자되기도 한다.
맥아더의 군인 인생은 영광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 전쟁 당시 트루먼 대통령과의 의견 충돌로 해임되었을 때, 그는 “노병은 죽지 않고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는 명언을 남기며 쓸쓸히 군복을 벗었다. 하지만 그의 유산은 사라지지 않았다. 인천 상륙 작전의 영웅으로서 그는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수호에 기여했고, 일본에서는 관대한 전후 통치로 평화 재건의 토대를 마련했다. 또한 필리핀에서는 아버지에 이어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3개국의 ‘영웅’으로 존경받았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두 영웅의 숨결이 살아 있는 이 공원은 오늘날 아이러니한 현실에 직면해 있다. 도시의 번영을 상징했던 푸른 호수와 깨끗한 공원은 사라지고, 노숙자 텐트와 마약 문제가 만연한 ‘우범 지대’의 오명을 쓰고 있다. 이 공원을 지키고, 가꾸고, 발전시키려 했던 웨스트레이크의 희생과 자유 수호를 위해 목숨 걸었던 맥아더의 헌신은 공원을 가득 메운 무관심과 절망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다.
과거에는 가족들이 모여 여가를 즐기고, 낚시를 하던 이 평화로운 공간이 이제는 하루하루 생존을 위해 싸우는 이들의 삶의 터전이 되었다. 공원에 드리워진 어두운 현실은 단순한 사회 문제가 아니다. 이는 미국의 발전과 번영을 상징했던 가치들이 어떻게 퇴색했는지를 보여주는 슬픈 초상이다. 공원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 땅에 담긴 두 위대한 영혼의 이야기를 기억할까. 공원을 지켜보는 우리는 이 비극적 현실을 통해 무엇을 깨달아야 할까. 미국 근대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이 공간이 왜 이토록 초라한 모습이 되었는지, 그 질문에 답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과제다.